말세에 처한 우리들이 취할 자세

   2. 말세에 처한 우리들이 취할 자세




 복귀섭리역사의 흐름을 보면, 낡은 것이 끝나려 할 때 새로운 것은 시작된다. 따라서 낡은 것이 끝나는 점이 바로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낡은 역사의 종말기는 바로 새 역사의 시작기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는, 같은 점에서 출발하여 각각 그 목적을 달리하여 가지고, 세계적인 결실을 하게 된 선과 악의 두 주권이 서로 교차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처한 인간들은, 내적으로는 이념과 사상의 결핍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와 혼돈 속에 빠지게 되며, 외적으로는 무기로 인한 알력과 투쟁 속에서 떨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말세에는 나라가 나라를 치고, 민족과 민족이 상쟁하며, 가족들이 서로 결투를 하리라(마태복음 24장 4 – 9절)는 성서의 기록대로 온갖 비참한 현상이 실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말세에 있어서 이와 같은 참상이 일어나는 것은 악주권을 청산하고 선주권을 세우기 위한 필연적인 현상이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참상 속에서 새 시대를 이룩하기 위한 선주권의 중심을 반드시 세우시는 것이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예수님 같은 분들은 모두 그러한 새 시대의 중심으로 세워졌던 분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적인 전환기에 있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새 역사의 동참자가 되기 위하여는, 하나님이 세우신 새 역사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 시대의 섭리는 낡은 시대를 완전히 청산한 터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시대의 종말기의 환경 속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것이므로, 그 시대에 대하여는 상충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섭리는 낡은 시대의 인습에 젖은 사람에게는 좀처럼 납득되어지지 않는다. 새 시대의 섭리를 담당하고 나왔던 성현들이, 모두 그 시대의 희생자가 되어 버렸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 실 예로서 아직도 구약시대의 종말기였을 때에, 신약시대의 새로운 섭리의 중심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구약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셨었기 때문에, 종내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살해당하고 마셨다. 예수님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누가복음 5장 38절)고 말씀하셨던 이유도 또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다시 신약시대의 종말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한 새로운 섭리의 중심으로 오셔서, 새 시대의 건설을 위한(요한계시록 21장 1 – 7절) 새 진리를 주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초림 때에 유대인들로부터 바알세불이 접한 사람으로 몰렸듯이(마태복음 12장 24절), 재림 때도 틀림없이 기독교 신도들에게 몰림을 당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장차 재림하시면 자기가 많은 고난을 받으며, 그 세대에 버린 바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던 것이다(누가복음 17장 25절). 그러므로 역사의 전환기에 있어서, 그대로 낡은 시대의 환경에 집착되어 안도하려는 사람들은, 낡은 시대와 더불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타락된 인간은 신령에 대한 감성이 극히 둔하기 때문에, 대개 진리 면에 치중하여 복귀섭리 노정을 따라 나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들은 흔히 낡은 시대의 진리 관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복귀섭리가 새로운 섭리의 시대에로 전환하고 있어도, 그들은 이 새 시대의 섭리에 쉽게 감응하여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집착되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따라 신약시대의 섭리에 호응할 수 없었던 역사적인 사실은 이것을 입증하는 좋은 예라 하겠다. 그러나 기도로써 신령한 것을 감득할수 있는 성도들은, 새 시대의 섭리를 심령 적으로 알게 되므로, 낡은 시대의 진리 면에서는 상충적인 입장에 서면서도 신령을 따라 새 시대의 섭리에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 중에는, 구약성서에 집착된 인물은 하나도 없었고 오직 마음에 느껴지는 신령을 따라간 사람들 뿐이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나 양심적인 사람들이, 말세에 있어서 극심한 심령 적인 초조감을 면할 수 없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막연하나마 신령을 감득하여서, 마음으로는 새 시대의 섭리를 따르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이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새 진리에 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령 적으로 이러한 상태에 처한 신도들이, 그들을 새 시대의 섭리에로 이끌어주는 새 진리를 듣기만 하면, 신령과 진리가 동시에 그들의 심령과 지능을 깨우쳐서, 새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적인 요구를 완전히 인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그에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처한 현세인은 무엇보다도 먼저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를 통하여 신령한 것을 감득하도록 힘써야 한다. 다음으로는 인습적인 관념에 집착되지 알고 우리의 몸을 신령에 호응하게 함으로써, 새 시대의 섭리에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새 진리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찾아진 그 진리가 완전히 자기의 몸에서 신령과 하나되어, 진정한 천적인 기쁨이 심령의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게 하여 주는가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끝날 의 성도들은 참된 구원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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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2. 말세에 처한 우리들이 취할 자세


     복귀섭리역사의 흐름을 보면, 낡은 것이 끝나려 할 때 새로운 것은 시작된다. 따라서 낡은 것이 끝나는 점이 바로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낡은 역사의 종말기는 바로 새 역사의 시작기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시기는, 같은 점에서 출발하여 각각 그 목적을 달리하여 가지고, 세계적인 결실을 하게 된 선과 악의 두 주권이 서로 교차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처한 인간들은, 내적으로는 이념과 사상의 결핍으로 인한 불안과 공포와 혼돈 속에 빠지게 되며, 외적으로는 무기로 인한 알력과 투쟁 속에서 떨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말세에는 나라가 나라를 치고, 민족과 민족이 상쟁하며, 가족들이 서로 결투를 하리라(마태복음 24장 4 – 9절)는 성서의 기록대로 온갖 비참한 현상이 실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말세에 있어서 이와 같은 참상이 일어나는 것은 악주권을 청산하고 선주권을 세우기 위한 필연적인 현상이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참상 속에서 새 시대를 이룩하기 위한 선주권의 중심을 반드시 세우시는 것이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그리고 예수님 같은 분들은 모두 그러한 새 시대의 중심으로 세워졌던 분들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역사적인 전환기에 있어서, 하나님이 바라시는 새 역사의 동참자가 되기 위하여는, 하나님이 세우신 새 역사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새 시대의 섭리는 낡은 시대를 완전히 청산한 터 위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시대의 종말기의 환경 속에서 싹이 트고 자라나는 것이므로, 그 시대에 대하여는 상충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 섭리는 낡은 시대의 인습에 젖은 사람에게는 좀처럼 납득되어지지 않는다. 새 시대의 섭리를 담당하고 나왔던 성현들이, 모두 그 시대의 희생자가 되어 버렸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 실 예로서 아직도 구약시대의 종말기였을 때에, 신약시대의 새로운 섭리의 중심으로 오셨던 예수님은, 구약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 셨었기 때문에, 종내 유대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살해당하고 마셨다. 예수님이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누가복음 5장 38절)고 말씀하셨던 이유도 또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다시 신약시대의 종말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한 새로운 섭리의 중심으로 오셔서, 새 시대의 건설을 위한(요한계시록 21장 1 – 7절) 새 진리를 주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초림 때에 유대인들로부터 바알세불이 접한 사람으로 몰렸듯이(마태복음 12장 24절), 재림 때도 틀림없이 기독교 신도들에게 몰림을 당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장차 재림하시면 자기가 많은 고난을 받으며, 그 세대에 버린 바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던 것이다(누가복음 17장 25절). 그러므로 역사의 전환기에 있어서, 그대로 낡은 시대의 환경에 집착되어 안도하려는 사람들은, 낡은 시대와 더불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타락된 인간은 신령에 대한 감성이 극히 둔하기 때문에, 대개 진리 면에 치중하여 복귀섭리 노정을 따라 나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인간들은 흔히 낡은 시대의 진리 관에 집착되어 있기 때문에, 복귀섭리가 새로운 섭리의 시대에로 전환하고 있어도, 그들은 이 새 시대의 섭리에 쉽게 감응하여 따라갈 수는 없는 것이다. 구약성서에 집착되었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따라 신약시대의 섭리에 호응할 수 없었던 역사적인 사실은 이것을 입증하는 좋은 예라 하겠다. 그러나 기도로써 신령한 것을 감득할수 있는 성도들은, 새 시대의 섭리를 심령 적으로 알게 되므로, 낡은 시대의 진리 면에서는 상충적인 입장에 서면서도 신령을 따라 새 시대의 섭리에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 중에는, 구약성서에 집착된 인물은 하나도 없었고 오직 마음에 느껴지는 신령을 따라간 사람들 뿐이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이나 양심적인 사람들이, 말세에 있어서 극심한 심령 적인 초조감을 면할 수 없게 되는 이유는, 그들이 막연하나마 신령을 감득하여서, 마음으로는 새 시대의 섭리를 따르려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이 방향으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새 진리에 접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령 적으로 이러한 상태에 처한 신도들이, 그들을 새 시대의 섭리에로 이끌어주는 새 진리를 듣기만 하면, 신령과 진리가 동시에 그들의 심령과 지능을 깨우쳐서, 새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 적인 요구를 완전히 인식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그에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처한 현세인은 무엇보다도 먼저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를 통하여 신령한 것을 감득하도록 힘써야 한다. 다음으로는 인습적인 관념에 집착되지 알고 우리의 몸을 신령에 호응하게 함으로써, 새 시대의 섭리에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새 진리를 찾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하여 찾아진 그 진리가 완전히 자기의 몸에서 신령과 하나되어, 진정한 천적인 기쁨이 심령의 깊은 곳에서 용솟음치게 하여 주는가를 확인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끝날 의 성도들은 참된 구원의 길을 찾아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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