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와 성서의 해석
교회의 <독자들>은 사도시대 이후 시기로부터 유래하는 체험과 활동에 대한 영감받은 책들의 목록 또는 정경을 인식하면서 우리 자신들을 기초적 계시의 시기에 일치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즉, 일부 체험들을 다시 생활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I. 성서의 정경화
1. 정경
정경이란 그리스도교의 믿음과 실천을 위하여 권위있는 기준을 제공하여 주는, 이미 확정된 영감받은 책들의 모음으로 볼 수 있다. 정경화는 성서의 실제적인 영감 또는 성령의 특별한 인도를 전제하고 있다. 영감받은 저서들은 정경에 대한 어떤 질문이 제기되기 훨씬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영감적 은사의 실행은 정경화의 과정을 시간적으로 선행하고 있었다. 로마 가톨릭 트렌트 공의회의 헌장에서 영감받은 저서들의 분명한 정경을 최종적으로 규정한 결정적인 인식의 행위를 표명하였다. 그리스도교 교회들, 주교들, 신학자들, 공의회들, 그리고 믿는 이들이 바르나바의 서간, 클레멘스의 첫째 편지, 헤르마스의 <목자>와 같은 저서들을 제외시키고, 유대 기원을 가지고 있는 제 2경전에 속하는 책들을 포함시키면서 정경을 구체화했을 때, 오랜 세월동안 이들을 인도한 기준은 무엇이었는가?
영감자체가 하나의 기준으로서 그 기능을 수행하였던 것은 아니다. 세 가지 기준들이 영감받은 저서들에 대한 공동체의 인식을 인도하여 주었다. <사도적 기원>, <정통성>, 그리고 <전례적 사용>.
첫째, 역사적 기준으로서 <사도적 기원>이 있었다. 정경들은 그리스도의 도래, 그리고 부활과 교회의 창설을 증거하는 사도들의 활동으로 절정에 이르게 된 기초적 계시의 시기에 속하였다. 따라서 모두 사도들의, 또는 사도들과 아주 일치하였던 두 협력자들이 글로 적어 놓은 가르침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도적 기원에 대한 이러한 직접적인 해석은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들면, 바오로가 히브리 서간을 썼다거나, 혹은 베드로가 베드로의 둘째 편지의 저자라는데 동의하는 신학자는 거의 없다. 오로지 예언적으로 또는 사도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한 저서들만이 정경 안에 포함될 수 있었다. 예수의 도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성령의 파견 그리고 교회의 창설 안에 절정을 이룬 사건들에 함께 참여한 자들만이 자신들의 체험에 대한 기록된 증거를 영감받은 성서들을 통하여 표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칼체도니아의 정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업적들, 아욱스부르그 고백 또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과 대한 체험을 그 자체로 직접적으로 증거하여 줄 수 없다. 사도적 기원의 기준은 정경의 저서들을 확인하여 주는 하나의 방법으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경성은 사도성에 기초하고 있다.
둘째, 본질적 메시지, 복음의 순수함, 사도들로부터 우리에게 전달되어 온 가톨릭 신앙, 이에 부합되는 신학적 기준 – <정통성>이 있었다. 시기적으로 볼 때 정경에 포함되어야 할 것 같은 헤르마스의 <목자>와 같은 저서들은 정통성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경에서 제외되었다.
셋째, 특히 <전례의 맥락 안에서 지속적인 사용>은 그리스도교 성서의 마지막 정경 안에 영감받은 저서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도록 보증하여 주었다. 전례적 사용에 대한 이러한 세번째 기준은 간혹 도전받기도 했다. 예를들면, Congar는 이것은 영감받은 저서들을 ‘정경화’ 하기 위한 근원적인 기준으로 사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례적 사용은 … 실제로 정경성을 전제하고 있다”.
초기 고린토 혹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오로로부터 편지를 받았고, 그것을 전례 사용을 위하여 채택하였다. 왜냐하면, 이 쓰여진 문서는 분명히 사도의 구전적 증거와 가르침의 권위를 함께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Congar는 옳다. 그러나 170년경에 고린토의 전례모임에서 여전히 읽혀지고 있던 클레멘스의 첫째 편지의 경우, 정경 안에 결국 포함되지 못한 사실은 옳은 것이었는가? 전례적 사용이 필연적으로 정경성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경화와 성서의 해석
교회의 <독자들>은 사도시대 이후 시기로부터 유래하는 체험과 활동에 대한 영감받은 책들의 목록 또는 정경을 인식하면서 우리 자신들을 기초적 계시의 시기에 일치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즉, 일부 체험들을 다시 생활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I. 성서의 정경화
1. 정경
정경이란 그리스도교의 믿음과 실천을 위하여 권위있는 기준을 제공하여 주는, 이미 확정된 영감받은 책들의 모음으로 볼 수 있다. 정경화는 성서의 실제적인 영감 또는 성령의 특별한 인도를 전제하고 있다. 영감받은 저서들은 정경에 대한 어떤 질문이 제기되기 훨씬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영감적 은사의 실행은 정경화의 과정을 시간적으로 선행하고 있었다. 로마 가톨릭 트렌트 공의회의 헌장에서 영감받은 저서들의 분명한 정경을 최종적으로 규정한 결정적인 인식의 행위를 표명하였다. 그리스도교 교회들, 주교들, 신학자들, 공의회들, 그리고 믿는 이들이 바르나바의 서간, 클레멘스의 첫째 편지, 헤르마스의 <목자>와 같은 저서들을 제외시키고, 유대 기원을 가지고 있는 제 2경전에 속하는 책들을 포함시키면서 정경을 구체화했을 때, 오랜 세월동안 이들을 인도한 기준은 무엇이었는가?
영감자체가 하나의 기준으로서 그 기능을 수행하였던 것은 아니다. 세 가지 기준들이 영감받은 저서들에 대한 공동체의 인식을 인도하여 주었다. <사도적 기원>, <정통성>, 그리고 <전례적 사용>.
첫째, 역사적 기준으로서 <사도적 기원>이 있었다. 정경들은 그리스도의 도래, 그리고 부활과 교회의 창설을 증거하는 사도들의 활동으로 절정에 이르게 된 기초적 계시의 시기에 속하였다. 따라서 모두 사도들의, 또는 사도들과 아주 일치하였던 두 협력자들이 글로 적어 놓은 가르침으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도적 기원에 대한 이러한 직접적인 해석은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들면, 바오로가 히브리 서간을 썼다거나, 혹은 베드로가 베드로의 둘째 편지의 저자라는데 동의하는 신학자는 거의 없다. 오로지 예언적으로 또는 사도적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한 저서들만이 정경 안에 포함될 수 있었다. 예수의 도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성령의 파견 그리고 교회의 창설 안에 절정을 이룬 사건들에 함께 참여한 자들만이 자신들의 체험에 대한 기록된 증거를 영감받은 성서들을 통하여 표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칼체도니아의 정의, 토마스 아퀴나스의 업적들, 아욱스부르그 고백 또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들과 대한 체험을 그 자체로 직접적으로 증거하여 줄 수 없다. 사도적 기원의 기준은 정경의 저서들을 확인하여 주는 하나의 방법으로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정경성은 사도성에 기초하고 있다.
둘째, 본질적 메시지, 복음의 순수함, 사도들로부터 우리에게 전달되어 온 가톨릭 신앙, 이에 부합되는 신학적 기준 – <정통성>이 있었다. 시기적으로 볼 때 정경에 포함되어야 할 것 같은 헤르마스의 <목자>와 같은 저서들은 정통성의 검증을 통과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경에서 제외되었다.
셋째, 특히 <전례의 맥락 안에서 지속적인 사용>은 그리스도교 성서의 마지막 정경 안에 영감받은 저서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도록 보증하여 주었다. 전례적 사용에 대한 이러한 세번째 기준은 간혹 도전받기도 했다. 예를들면, Congar는 이것은 영감받은 저서들을 ‘정경화’ 하기 위한 근원적인 기준으로 사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전례적 사용은 … 실제로 정경성을 전제하고 있다”.
초기 고린토 혹은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오로로부터 편지를 받았고, 그것을 전례 사용을 위하여 채택하였다. 왜냐하면, 이 쓰여진 문서는 분명히 사도의 구전적 증거와 가르침의 권위를 함께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Congar는 옳다. 그러나 170년경에 고린토의 전례모임에서 여전히 읽혀지고 있던 클레멘스의 첫째 편지의 경우, 정경 안에 결국 포함되지 못한 사실은 옳은 것이었는가? 전례적 사용이 필연적으로 정경성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