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서에 나타난 하느님 체험-(사)


그러나 고대교부들은 하느님께 대한 일관된 시각을 형성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즉 철학적 신 개념과 성서적 하느님 이해가 조화되지 않고 단지 병립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세상의 근원으로서의 신의 모습은 잘 표현되었으나, 성서가 증언하듯이 인격적이고 생동적인 존재로서의 하느님 모습은 불충분하게 드러났다. 이는 하느님께 대한 여러 가지 술어의 해석에서 드러난다. 교부들은 하느님은 영원하시다고 묘사하였지만, 그 “영원성은 성서적 의미로서의 강력하고 생동적으로 모든 시간에 해당되는 同時性이라기 보다는 플라톤 철학적으로 無시간성으로 이해되었다. 하느님의 無所不在는 성서적으로 세상에 대한 전능한 지배권이라기보다는 우주에 상태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善하심은 역사 안에서 행동하시는 하느님의 자유롭고 사랑에 가득 찬 은총의 돌보심이라기보다는 선의 자연적인 放散으로 이해되었다. 하느님의 정의는 성실하게 하느님의 약속과 계약에 뿌리를 둔 구원의 정의라기보다는 성과에 따라 서 상벌하는 정의, 시간을 초월한 질서관념에 근거를 둔 정의로 이해되었다. 하느님의 파악불가능성은 하느님의 자유로운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는 相異性이라기보다는 無名의 세계 근거가 추상적이고 특성이 없다는 식으로 이해되었다”. H.Küng, Menschwerdung Gottes, Freiburg, 1970, 534.
하느님이 인격적이고 살아 계신 분이라는 성서적 관점이 그리스 철학의 靜的인 신 개념 때문에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스 철학의 이런 정적인 신 개념은 그리스도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하느님은 불변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로 이해하였는데, 이런 신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고 그 안에서 사람이 되신 성서의 하느님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 장애가 되었다. 플라톤 철학에 따라서 신은 초월적이며 무감각한 존재라는 것을 고집할수록 그리스도가 고통을 당했다는 것과 그의 신성을 조화하는 데에 극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 편에서는 성서가 분명히 증언하듯이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같이 진정한 하느님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거나(에비오니즘, 養子論, 아리아니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을 철저히 갈라놓아야 한다(네스토리아니즘)고 주장하였다. 다른 한 편에서는 성서에 그리스도의 신성이 명백하게 증언된 것을 강조하면서,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진정한 의미에서 고난을 받았음을 부인한다(假現說, 樣態論, 아뽈리나리즘, 單性論).

3.2. 삼위일체 신학의 발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고백한 하느님은 구약성서가 선포한 야훼 하느님, 나자렛 예수의 하느님이었다. 예수의 유일무이한 독특성에 대해서 숙고하면서 예수를 오로지 하느님의 아들로 이해하였다. 이와 함께 하느님께 대해서는 아버지라는 표현이 특별히 강조되었다. 또한 하느님과 예수의 능력이 지속적으로 현존하면서 도움을 주는 것을 체험하면서 이를 하느님과 예수의 영으로 이해하고 또 그렇게 표현하였다. 이런 여러 가지 표현들은 하느님의 유일성과 단일성에 대한 고백을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았다. 신약성서에서 어떤 이론적인 삼위일체론를 찾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신약성서, 특히 요한계의 문헌들은 삼위일체 신학이 형성될 수 있도록 개념적 근거를 제공한다. 즉 신약성서는 아들이 아버지 안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낳음”으로 혹은 “파견됨”으로, 성령이 아버지 안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發出”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상세한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신약성서는 이 셋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언급하지 않고 단순히 병렬적으로 서술할 뿐이다. 전형적인 예를 든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2고린 13,13).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시오”(마태 28,19).

3.2.1. 첫 번째 신학적 시도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이런 병렬적 표현 형식은 신약성서 다음 시대에도 이른바 사도적 교부들에 의해서 그래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서 96년경 로마의 클레멘스에 말하기를: “우리에게는 한분이신 하느님과 한분이신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 위에 부어진 한분의 은총의 영이 계시다”. 우선 예수의 이름으로 수여되던 세례가 2세기에는 점차로 아버지, 아들, 영의 이름으로 수여되었다. 아버지와 영이 유일한 하느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규명하고자 하는 사변적인 노력은 2세기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 노력은 종속론(從屬論, Subordinatianism)의 경향을 지닌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의 수행하고 영은 이제는 현양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을 완성한다. 이런 종속론적인 생각은 “통하여”라는 부가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유스티노는 성찬기도에서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통하여 모든 것이 아버지께 찬미와 영광이 있기를”이라고 표현한다.
초기의 종속론은 신약성서에 나타난 종속적인 표현에서만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은 신 이해에서도 유래하였다. 그래서 호교론자에 속했던 유스티노는 하느님(ho theos), 즉 아버지 홀로 절대적인 신적 주체라고 주장하였다. 무제한적이며 無名의 비가시적인 존재인 그는 세상에 출현할 수 없다. 신적인 말씀, 즉 로고스는 이런 하느님의 뜻에서 (창조되지 않고) 유래하여 세상에 나타났다; 이것은 로고스가 하느님과 똑같이 높은 자격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즉 로고스는 한 단계 낮은 신, 아버지 하느님께 종속된 신이다. 부수적으로 성령에 대해서 언급되었는데, 성령은 로고스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하였고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예언자들을 비추었다고 이해되었다. 유스티노의 제자 타치아누스(Tatianus, +170)도 이와 비슷하게 가르쳤다: 신적인 로고스는 순수한 하느님의 뜻에서 발출한 존재로서 창조 이전에 첫 번째로 태어난 아버지의 작품이다; 햇불에서 새로운 불이 점화되듯이 로고스는 참여를 통해서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본질을 받았다. 성령은 이중으로, 즉 그가 유래된 아버지에게, 그리고 使者로서 일하는 아들에게 종속되어 있다.
그리스 철학, 특히 중기 플라톤 사랑의 영향이 여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느님은 세상의 不動的, 무제한적 근원으로 이해되었는데, 그의 본질은 아주 충만하여서 자신을 전달하면서도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신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하느님은 아들과 영이 자신의 본질에 참여하도록 하였는데, 얼마나 정확하게 참여하게 하였는지는 규정되지 않았다. 하느님은 이렇게 유래되어서 자신에게 종속된 둘을 통해서 세상사에 관여한다.
아버지와 아들, 성령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시도는 처음에는 로고스/아들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누구인가, 어떻게 언제부터 존재하는가? 그러다가 나중에는 성령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논쟁의 역사는 아주 신학적으로 전문화되었고 교회 내적, 정치적인 사정과도 얽혀서 진행되었다. 아주 복잡하고 세분화된 이 진행 과정에 대해서 큰 흐름만을 간추려서 살펴보기로 하자.

3.2.2. 單元說的 경향

단원설(Monarchianism, 또는 唯主論)은 기원후 2-3세기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유다교의 유일신 사상과 결합하려던 일체의 신학적 노력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일부 그룹이나 경향은 구약성서가 증언하는 하느님의 유일성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고백으로 인해서 한분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이 결코 손상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라틴 교부인 떼루뚤리아노(Tertullianus, +202년 이후)는 이런 경향을 추종하는 이들을 “monarchianist”라고 불렀다( “monos” = 홀로, “arche” = 근원 혹은 지배). 이런 경향 안에는 예수와 하느님과의 관계가 정확히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제기된 것은 당연할 일이다. 두 가지 대답이 제시되었는데 그에 따라서 단원설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어진다. 그 하나는 예수는 하느님의 특별한 힘(δυναμισ)을 갖추고 있었으나 결국 그는 단지 인간으로 머물렀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動力的 단원설”(dynamic momarchianism)이라고 부른다. 이 동력적 단원설 중에서 예수가 나중에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여졌단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었는데, 이를 “양자설”(adoptianism)이라고 한다.
초기 단원설의 우두머리는 비잔틴의 테오도투스(Theodotus, +190년경)라고 하겠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하느님의 특별한 성령의 능력을 부여받음으로써 고차원의 인간이 되었으나 신이 되지는 못했다고 주장하였다. 사모사타의 주교 바오로(+260년경)는 이와는 조금 다르면서도 같은 방향으로 가르쳤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인) 로고스는 하느님의 능력 혹은 특성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느님의 지혜(sophia)와 동력적인 영(pneuma)도 이 로고스와 동일시하였다. 바로 이 로고스가 인간 예수와 느슨하게, 단지 외적으로 결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로고스가 어떤 독자성을 지니는 것은 결코 아니고, 그것은 단지 하느님의 특성일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다른 하나의 방향으로는, 예수는 한분이신 아버지 하느님의 특별한 출현양식(出現樣式)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뒤에” 있는 것에만 관심이 집중된다. 그래서 예수의 진정한 人性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았다. 이를 “樣態的 단원설”(modal monarchianism)이라고 한다.
이런 경향에 속하는 이들로서는 노에투스(Noetus, +200년경)와 그의 제자들, 프락세아스(Praxeas, +200년경), 사벨리우스(Sabellius, +220년경)등이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을 철저히 보존하려고 하려고 하면서도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유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벨리우스파들은 “아버지, 아들, 성령은 한 하느님의 여러 가지 표현(onomasiai), 혹은 여러 가지 출현양식(prosopa)이라고 주장하였고 여러 가지 위격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하느님은… 구약성서에서는 율법의 수여자로서의 아버지, 육화에서 숭천까지는 구원자로서의 아들, 그 이후에서 영혼의 성화시키는 성령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출현양식은 시간적으로 제약되어 있다. 즉 하느님은 육화와 함께 아버지임이 중단되고 승천과 함께 아들임이 중단된다. 그러므로 셋이 동시에 함께 하지는 않는다. 하느님은 단지 우리에게 삼중으로 즉 구세경륜적 순서에 따라서 삼중으로 나타날뿐이다”. R.Lachenschmid, “Sabellianismus”, in: LThK, 9, 1964, 193.
떼루뚤리아노는 이 의태적 단원설에 비난적인 의미로서 ‘성부수난설’(聖父受難設, patripassianism)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왜냐하면 이 이론에 따르면 아버지 하느님께서 아들의 탈(假面, prosopon)을 쓰고 수난하였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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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그러나 고대교부들은 하느님께 대한 일관된 시각을 형성하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즉 철학적 신 개념과 성서적 하느님 이해가 조화되지 않고 단지 병립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세상의 근원으로서의 신의 모습은 잘 표현되었으나, 성서가 증언하듯이 인격적이고 생동적인 존재로서의 하느님 모습은 불충분하게 드러났다. 이는 하느님께 대한 여러 가지 술어의 해석에서 드러난다. 교부들은 하느님은 영원하시다고 묘사하였지만, 그 “영원성은 성서적 의미로서의 강력하고 생동적으로 모든 시간에 해당되는 同時性이라기 보다는 플라톤 철학적으로 無시간성으로 이해되었다. 하느님의 無所不在는 성서적으로 세상에 대한 전능한 지배권이라기보다는 우주에 상태적으로 확산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善하심은 역사 안에서 행동하시는 하느님의 자유롭고 사랑에 가득 찬 은총의 돌보심이라기보다는 선의 자연적인 放散으로 이해되었다. 하느님의 정의는 성실하게 하느님의 약속과 계약에 뿌리를 둔 구원의 정의라기보다는 성과에 따라 서 상벌하는 정의, 시간을 초월한 질서관념에 근거를 둔 정의로 이해되었다. 하느님의 파악불가능성은 하느님의 자유로운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는 相異性이라기보다는 無名의 세계 근거가 추상적이고 특성이 없다는 식으로 이해되었다”. H.Küng, Menschwerdung Gottes, Freiburg, 1970, 534.
    하느님이 인격적이고 살아 계신 분이라는 성서적 관점이 그리스 철학의 靜的인 신 개념 때문에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스 철학의 이런 정적인 신 개념은 그리스도론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플라톤 철학의 영향을 받아서 하느님은 불변하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로 이해하였는데, 이런 신 이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고 그 안에서 사람이 되신 성서의 하느님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 장애가 되었다. 플라톤 철학에 따라서 신은 초월적이며 무감각한 존재라는 것을 고집할수록 그리스도가 고통을 당했다는 것과 그의 신성을 조화하는 데에 극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 편에서는 성서가 분명히 증언하듯이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했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같이 진정한 하느님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거나(에비오니즘, 養子論, 아리아니즘),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과 인성을 철저히 갈라놓아야 한다(네스토리아니즘)고 주장하였다. 다른 한 편에서는 성서에 그리스도의 신성이 명백하게 증언된 것을 강조하면서,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진정한 의미에서 고난을 받았음을 부인한다(假現說, 樣態論, 아뽈리나리즘, 單性論).

    3.2. 삼위일체 신학의 발전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고백한 하느님은 구약성서가 선포한 야훼 하느님, 나자렛 예수의 하느님이었다. 예수의 유일무이한 독특성에 대해서 숙고하면서 예수를 오로지 하느님의 아들로 이해하였다. 이와 함께 하느님께 대해서는 아버지라는 표현이 특별히 강조되었다. 또한 하느님과 예수의 능력이 지속적으로 현존하면서 도움을 주는 것을 체험하면서 이를 하느님과 예수의 영으로 이해하고 또 그렇게 표현하였다. 이런 여러 가지 표현들은 하느님의 유일성과 단일성에 대한 고백을 조금도 감소시키지 않았다. 신약성서에서 어떤 이론적인 삼위일체론를 찾아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신약성서, 특히 요한계의 문헌들은 삼위일체 신학이 형성될 수 있도록 개념적 근거를 제공한다. 즉 신약성서는 아들이 아버지 안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낳음”으로 혹은 “파견됨”으로, 성령이 아버지 안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發出”로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상세한 것은 나타나지 않는다. 신약성서는 이 셋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언급하지 않고 단순히 병렬적으로 서술할 뿐이다. 전형적인 예를 든다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의 친교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2고린 13,13). “그러므로 여러분은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시오”(마태 28,19).

    3.2.1. 첫 번째 신학적 시도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한 이런 병렬적 표현 형식은 신약성서 다음 시대에도 이른바 사도적 교부들에 의해서 그래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서 96년경 로마의 클레멘스에 말하기를: “우리에게는 한분이신 하느님과 한분이신 그리스도 그리고 우리 위에 부어진 한분의 은총의 영이 계시다”. 우선 예수의 이름으로 수여되던 세례가 2세기에는 점차로 아버지, 아들, 영의 이름으로 수여되었다. 아버지와 영이 유일한 하느님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규명하고자 하는 사변적인 노력은 2세기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이 노력은 종속론(從屬論, Subordinatianism)의 경향을 지닌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사명의 수행하고 영은 이제는 현양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을 완성한다. 이런 종속론적인 생각은 “통하여”라는 부가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유스티노는 성찬기도에서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통하여 모든 것이 아버지께 찬미와 영광이 있기를”이라고 표현한다.
    초기의 종속론은 신약성서에 나타난 종속적인 표현에서만이 아니라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은 신 이해에서도 유래하였다. 그래서 호교론자에 속했던 유스티노는 하느님(ho theos), 즉 아버지 홀로 절대적인 신적 주체라고 주장하였다. 무제한적이며 無名의 비가시적인 존재인 그는 세상에 출현할 수 없다. 신적인 말씀, 즉 로고스는 이런 하느님의 뜻에서 (창조되지 않고) 유래하여 세상에 나타났다; 이것은 로고스가 하느님과 똑같이 높은 자격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즉 로고스는 한 단계 낮은 신, 아버지 하느님께 종속된 신이다. 부수적으로 성령에 대해서 언급되었는데, 성령은 로고스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하였고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예언자들을 비추었다고 이해되었다. 유스티노의 제자 타치아누스(Tatianus, +170)도 이와 비슷하게 가르쳤다: 신적인 로고스는 순수한 하느님의 뜻에서 발출한 존재로서 창조 이전에 첫 번째로 태어난 아버지의 작품이다; 햇불에서 새로운 불이 점화되듯이 로고스는 참여를 통해서 아버지로부터 자신의 본질을 받았다. 성령은 이중으로, 즉 그가 유래된 아버지에게, 그리고 使者로서 일하는 아들에게 종속되어 있다.
    그리스 철학, 특히 중기 플라톤 사랑의 영향이 여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느님은 세상의 不動的, 무제한적 근원으로 이해되었는데, 그의 본질은 아주 충만하여서 자신을 전달하면서도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이 생각한 신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하느님은 아들과 영이 자신의 본질에 참여하도록 하였는데, 얼마나 정확하게 참여하게 하였는지는 규정되지 않았다. 하느님은 이렇게 유래되어서 자신에게 종속된 둘을 통해서 세상사에 관여한다.
    아버지와 아들, 성령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시도는 처음에는 로고스/아들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누구인가, 어떻게 언제부터 존재하는가? 그러다가 나중에는 성령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를 규명하려는 논쟁의 역사는 아주 신학적으로 전문화되었고 교회 내적, 정치적인 사정과도 얽혀서 진행되었다. 아주 복잡하고 세분화된 이 진행 과정에 대해서 큰 흐름만을 간추려서 살펴보기로 하자.

    3.2.2. 單元說的 경향

    단원설(Monarchianism, 또는 唯主論)은 기원후 2-3세기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유다교의 유일신 사상과 결합하려던 일체의 신학적 노력들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일부 그룹이나 경향은 구약성서가 증언하는 하느님의 유일성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고백으로 인해서 한분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고백이 결코 손상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라틴 교부인 떼루뚤리아노(Tertullianus, +202년 이후)는 이런 경향을 추종하는 이들을 “monarchianist”라고 불렀다( “monos” = 홀로, “arche” = 근원 혹은 지배). 이런 경향 안에는 예수와 하느님과의 관계가 정확히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제기된 것은 당연할 일이다. 두 가지 대답이 제시되었는데 그에 따라서 단원설은 두 가지 방향으로 나뉘어진다. 그 하나는 예수는 하느님의 특별한 힘(δυναμισ)을 갖추고 있었으나 결국 그는 단지 인간으로 머물렀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動力的 단원설”(dynamic momarchianism)이라고 부른다. 이 동력적 단원설 중에서 예수가 나중에 하느님의 아들로 받아들여졌단고 주장하는 견해도 있었는데, 이를 “양자설”(adoptianism)이라고 한다.
    초기 단원설의 우두머리는 비잔틴의 테오도투스(Theodotus, +190년경)라고 하겠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는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하느님의 특별한 성령의 능력을 부여받음으로써 고차원의 인간이 되었으나 신이 되지는 못했다고 주장하였다. 사모사타의 주교 바오로(+260년경)는 이와는 조금 다르면서도 같은 방향으로 가르쳤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인) 로고스는 하느님의 능력 혹은 특성이라고 주장하면서 하느님의 지혜(sophia)와 동력적인 영(pneuma)도 이 로고스와 동일시하였다. 바로 이 로고스가 인간 예수와 느슨하게, 단지 외적으로 결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로고스가 어떤 독자성을 지니는 것은 결코 아니고, 그것은 단지 하느님의 특성일뿐이라고 주장하였다.
    다른 하나의 방향으로는, 예수는 한분이신 아버지 하느님의 특별한 출현양식(出現樣式)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뒤에” 있는 것에만 관심이 집중된다. 그래서 예수의 진정한 人性은 별로 중요시하지 않았다. 이를 “樣態的 단원설”(modal monarchianism)이라고 한다.
    이런 경향에 속하는 이들로서는 노에투스(Noetus, +200년경)와 그의 제자들, 프락세아스(Praxeas, +200년경), 사벨리우스(Sabellius, +220년경)등이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을 철저히 보존하려고 하려고 하면서도 예수의 신성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유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벨리우스파들은 “아버지, 아들, 성령은 한 하느님의 여러 가지 표현(onomasiai), 혹은 여러 가지 출현양식(prosopa)이라고 주장하였고 여러 가지 위격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하느님은… 구약성서에서는 율법의 수여자로서의 아버지, 육화에서 숭천까지는 구원자로서의 아들, 그 이후에서 영혼의 성화시키는 성령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출현양식은 시간적으로 제약되어 있다. 즉 하느님은 육화와 함께 아버지임이 중단되고 승천과 함께 아들임이 중단된다. 그러므로 셋이 동시에 함께 하지는 않는다. 하느님은 단지 우리에게 삼중으로 즉 구세경륜적 순서에 따라서 삼중으로 나타날뿐이다”. R.Lachenschmid, “Sabellianismus”, in: LThK, 9, 1964, 193.
    떼루뚤리아노는 이 의태적 단원설에 비난적인 의미로서 ‘성부수난설’(聖父受難設, patripassianism)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왜냐하면 이 이론에 따르면 아버지 하느님께서 아들의 탈(假面, prosopon)을 쓰고 수난하였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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