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스라엘의 창조신앙-(카)

3.5 에페소서 1,3-10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읍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읍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읍니다.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이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되에서 구출되었읍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풍성한 은총으로 우리에게 온갖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주셔서 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주셨읍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 놓으셨던 계획대로 된 것으로서 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 귀절의 전반부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대한 위대한 찬미가이다. 하느님의 위대한 행업을 거론하면서 그리스도론이 강조되고 있다. 여기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보편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보편성은 처음부터 통찰되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야만 충만한 의미를 지니는 우리의 하느님이다. 또 한편 하느님의 모든 축복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령사건 안에서 우리에게 베풀어진다. 이 축복의 내용은 선택, 예정, 은총을 얻음, 사죄, 신비에로의 축성이다. 이모든 축복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반복해서 진술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희랍어 본문에서는 en Christo, en too Christo로 나타나고 있다. 이 전치사 ‘안에서, 또는 동해서’라는 표현이 이 모든 진술을 지탱해주는 핵심 단어로 나타난다. 골로사이서 찬가의 경우처럼 이 전치사의 정확한 의미는 불명료하다. 어떻든 간에 이 구절들의 공통적 내용은 만사가 하느님의 구체적인 계획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향권에 들어오게 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바오로의 이 서간은 그리스도 사건을 체험하면서 체험과 함께 불가피하게 대두되는 필요성, 즉 그리스도 사건이 차지하고 있는 의미의 공간을 위해서 이사건을 고찰해야 하는 필요성에서 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가 사실상의 구원자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아닌 다른 곳에서는 구원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전치사 en은 하느님 역사의 보편적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 서신은 초기 공동체의 상황에서부터 우주적 전망으로 확대된다. 공동체는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간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창조 이전에 이루어진 이 선택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선재 사상이 명백히 고백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사람들도 선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에서 선재로부터 존재가 생성된다고 한다면, 창조가 이루어지는 한, 그 창조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이루어진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창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편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는 그리스도의 수위성은 구체적인 교회 공동체로부터 우주적 전망으로 향하고 있다. 물론 그리스도가 우두머리임이 구체적 역사속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그리스도는 우주가 존재한 이래, 우주위에 군림하는 그의 지배적 위치를 소유하고 있고, 이 지배자적 위치는 시간과 세계가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하느님의 구원계획안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의이 수위성은 교회활동안에서 드러나게 된다. 교회에 대한 당신의 주권을 통해서 세계의 지배권이 실현된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세계의 구원을 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세상의 구원의 성사로서의 교회). 이렇게 해서 에페소서는 창조론, 구원론, 그리고 종말론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이 일치의 중심은 보편적인 중보자로 세워진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구원자와 완성자로서의 중보자임이 창조의 중보자라는 사실에 근거를 지니게 된다. 한마디로 창조자로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가 바로 우주의 주님이 되게 한다. 3.6 히브리서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아들을 시켜 우리에게말씀하셨읍니다. 하느님게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온세상을 창조하셨으며 그 아들에게 만물을 물려 주시기고 하셨읍니다. 그 아들은 하느님의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시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이시며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본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전능하신 분의오른 편에 앉아 계십니다”(히브 1,1-4). 자주 히브리서는 바오로의 작품으로 간주하는데 실제로 작가는 미상이다. 80년경에서 90년경 사이에 쓰여진 작품으로서 바오로의 다른 서간과 상이한 문체를 이루고 있다. 어떻든 저자는 그리스도를 완벽한 하느님의 계시자로 이해하며, 모세나 그밖의 예언자를 뛰어 넘는 분으로 고백하고 있다.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진술함에 있어서 바오로 사상과 매우 가깝다. 이 귀절에서 그리스도가 창조의 목적으로서 세계의 마지막을 장악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영광의 반영이요,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유가 창조 되었고, 그리스도가 죄를 씻으시고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사 마지막을 장악하신다. 10-12에서는 그리스도를 직접적인 창조주라고 일컫고 있다. “주님, 한 처음 땅을 만드신 이도 주님이시요, 하늘을 손수 만드신 이도 주님이십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주님은 영원히 계십니다. 만물은 옷처럼 낡아질 것이요 주님은 그것들을 겉옷처럼 말아 치우실 것입니다. 만물은 옷처럼 변할지라도 주님은 언제나 같으시고 주님은 영원히 늙지 않으십니다”(히브 1,10-12). 여기서도 그리스도론이 그리스도의 선재로부터 고찰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자 계시자이며, 창조주이자 현양된 분이요 우주의 상속자이다. 그리스도가 항상 영속하는 분으로서 셰계와 세계의 시간을 주관하는 분이다. 창조를 수중에 장악하신 분으로 창조된 분일 수 없다.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주권은 그의 창조의 중보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3.7 요한복음 가장 나중에 쓰여진 문헌으로 보인다. 말씀의 창조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사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였다”(요한 1,1-4). 이 로고스 찬가는 요한 복음 이전에 이미있었던 것을 자신의 복음 서문에 이용한듯 보여진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로고스를 하느님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양자의 중간에 위치하는 중보자로 보고 있다. 그런데 요한 복음 사가는 필로와 유사성을 보여주면서도 역사의 예수와 로고스를 분리시키는 영지주의의 영향은 제시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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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에페소서 1,3-10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의 온갖 영적 축복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읍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읍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읍니다.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이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되에서 구출되었읍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풍성한 은총으로 우리에게 온갖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주셔서 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주셨읍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 놓으셨던 계획대로 된 것으로서 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 귀절의 전반부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대한 위대한 찬미가이다. 하느님의 위대한 행업을 거론하면서 그리스도론이 강조되고 있다. 여기서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보편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보편성은 처음부터 통찰되고 있다. 하느님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야만 충만한 의미를 지니는 우리의 하느님이다. 또 한편 하느님의 모든 축복이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령사건 안에서 우리에게 베풀어진다. 이 축복의 내용은 선택, 예정, 은총을 얻음, 사죄, 신비에로의 축성이다. 이모든 축복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반복해서 진술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희랍어 본문에서는 en Christo, en too Christo로 나타나고 있다. 이 전치사 ‘안에서, 또는 동해서’라는 표현이 이 모든 진술을 지탱해주는 핵심 단어로 나타난다. 골로사이서 찬가의 경우처럼 이 전치사의 정확한 의미는 불명료하다. 어떻든 간에 이 구절들의 공통적 내용은 만사가 하느님의 구체적인 계획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향권에 들어오게 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바오로의 이 서간은 그리스도 사건을 체험하면서 체험과 함께 불가피하게 대두되는 필요성, 즉 그리스도 사건이 차지하고 있는 의미의 공간을 위해서 이사건을 고찰해야 하는 필요성에서 쓰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가 사실상의 구원자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아닌 다른 곳에서는 구원을 생각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 전치사 en은 하느님 역사의 보편적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의 특징을 나타낸다. 이 서신은 초기 공동체의 상황에서부터 우주적 전망으로 확대된다. 공동체는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간택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창조 이전에 이루어진 이 선택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선재 사상이 명백히 고백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받은 사람들도 선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에서 선재로부터 존재가 생성된다고 한다면, 창조가 이루어지는 한, 그 창조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이루어진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택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창조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편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는 그리스도의 수위성은 구체적인 교회 공동체로부터 우주적 전망으로 향하고 있다. 물론 그리스도가 우두머리임이 구체적 역사속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지만, 그리스도는 우주가 존재한 이래, 우주위에 군림하는 그의 지배적 위치를 소유하고 있고, 이 지배자적 위치는 시간과 세계가 창조되기 이전에 이미 하느님의 구원계획안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의이 수위성은 교회활동안에서 드러나게 된다. 교회에 대한 당신의 주권을 통해서 세계의 지배권이 실현된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세계의 구원을 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세상의 구원의 성사로서의 교회). 이렇게 해서 에페소서는 창조론, 구원론, 그리고 종말론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이 일치의 중심은 보편적인 중보자로 세워진 그리스도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구원자와 완성자로서의 중보자임이 창조의 중보자라는 사실에 근거를 지니게 된다. 한마디로 창조자로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가 바로 우주의 주님이 되게 한다. 3.6 히브리서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읍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아들을 시켜 우리에게말씀하셨읍니다. 하느님게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온세상을 창조하셨으며 그 아들에게 만물을 물려 주시기고 하셨읍니다. 그 아들은 하느님의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시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이시며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본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전능하신 분의오른 편에 앉아 계십니다”(히브 1,1-4). 자주 히브리서는 바오로의 작품으로 간주하는데 실제로 작가는 미상이다. 80년경에서 90년경 사이에 쓰여진 작품으로서 바오로의 다른 서간과 상이한 문체를 이루고 있다. 어떻든 저자는 그리스도를 완벽한 하느님의 계시자로 이해하며, 모세나 그밖의 예언자를 뛰어 넘는 분으로 고백하고 있다.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진술함에 있어서 바오로 사상과 매우 가깝다. 이 귀절에서 그리스도가 창조의 목적으로서 세계의 마지막을 장악한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영광의 반영이요, 그리스도를 통해서 만유가 창조 되었고, 그리스도가 죄를 씻으시고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사 마지막을 장악하신다. 10-12에서는 그리스도를 직접적인 창조주라고 일컫고 있다. “주님, 한 처음 땅을 만드신 이도 주님이시요, 하늘을 손수 만드신 이도 주님이십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주님은 영원히 계십니다. 만물은 옷처럼 낡아질 것이요 주님은 그것들을 겉옷처럼 말아 치우실 것입니다. 만물은 옷처럼 변할지라도 주님은 언제나 같으시고 주님은 영원히 늙지 않으십니다”(히브 1,10-12). 여기서도 그리스도론이 그리스도의 선재로부터 고찰되고 있다.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자 계시자이며, 창조주이자 현양된 분이요 우주의 상속자이다. 그리스도가 항상 영속하는 분으로서 셰계와 세계의 시간을 주관하는 분이다. 창조를 수중에 장악하신 분으로 창조된 분일 수 없다.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주권은 그의 창조의 중보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3.7 요한복음 가장 나중에 쓰여진 문헌으로 보인다. 말씀의 창조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 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사셨고, 하느님과 똑같은 분이셨다. 말씀은 한처음 천지가 창조되기 전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은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고, 이 말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생겨난 모든 것이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였다”(요한 1,1-4). 이 로고스 찬가는 요한 복음 이전에 이미있었던 것을 자신의 복음 서문에 이용한듯 보여진다. 알렉산드리아의 필로는 로고스를 하느님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양자의 중간에 위치하는 중보자로 보고 있다. 그런데 요한 복음 사가는 필로와 유사성을 보여주면서도 역사의 예수와 로고스를 분리시키는 영지주의의 영향은 제시되고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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