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마리아론 발전
교부들은 성서를 토대로 마리아가 지닌 의미를 밝히기 시작한다. 유스티노(+163)와 이레네오((+202)는 마리아를 하와와 대비시키고 있다. 하와를 통해서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해선 삶이 왔다는 것이다. (“하와의 불순명의 매듭은 마리아의 순명을 통해서 풀어졌다. 하와가 불순명을 통해서 얽어맨 것을 동정녀 마리아가 신앙을 통해서 풀어낸 것이다.”(이레네오))
특히 이레네오는 마리아를 교회와 연관시켜 마리아를 교회의 원형으로, 교회의 예형(typus)으로 고찰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특히 제 2정전(apocrypha)을 간과 할 수 없는데 제 2정전은 예수 생애에 관한 수많은 기록들이 담겨 있고,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도 풍부하다. 이 사화들은 완전히 상상력을 동원해서 꾸민 얘기라 할 수 있는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교 민중 신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예컨대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의 이름과 행적, 동정 잉태 설화, 성전에서의 봉헌 설화 등도 이러한 설화를 토대로 성서에 유입되었던 것이다.
3C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해 지속적인 고찰
예수 탄생의 비정상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예수의 온전한 인간성에 손상을 줄 위협이 있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떼르뚤리아노(+220), 오리게네스(+253), 히에로니무스(347-419) 등은 동정성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였다. 그러나 서방 교회는 암브로시우스(+397), 아우구스티노(354-430) 등, 동방 교회에서는 요한 크리소스토모(350-407), 시리아의 에프렘(+373) 등이 영원한 동정성을 고찰하였다.
4C 에는 마리아에게 천주의 모친(Theotokos)1)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이와 함께 마리아 신김이 융성하게 된다. 이 시기에 마리아를 주보로 하는 교회들이 건립되었다.
5C 까지는 마리아가 불완전성을 지닌 인간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339-397)와 아우구스띠노를 통해 마리아의 성성과 무죄성이 서방 교회에 관철되어 오랜 논쟁을 거친 끝에 동방 교회에서도 관철되었다.
4C말에 마리아의 임종에 관한 신학적 사유가 처음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렇게 절박한 문제가 아니었다. 5C에 와서 마리아 축일이 등장했다.(8월 15일 – 천주의 모친의 날)
8C에 마리아의 승천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말은 마리아의 영육이 동시에 하느님께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신앙 표현이다.
ꠏꋼ 교부 시대 특징 ; 그리스도의 강생이라는 신비를 중심으로 마리아가 차지하고 있는 의미가 발견되고 구세사적 전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3. 마리아론 발전
3.1 교부 시대
교부들은 성서를 토대로 마리아가 지닌 의미를 밝히기 시작한다. 유스티노(+163)와 이레네오((+202)는 마리아를 하와와 대비시키고 있다. 하와를 통해서 죽음이 왔고 마리아를 통해선 삶이 왔다는 것이다. (“하와의 불순명의 매듭은 마리아의 순명을 통해서 풀어졌다. 하와가 불순명을 통해서 얽어맨 것을 동정녀 마리아가 신앙을 통해서 풀어낸 것이다.”(이레네오))
특히 이레네오는 마리아를 교회와 연관시켜 마리아를 교회의 원형으로, 교회의 예형(typus)으로 고찰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특히 제 2정전(apocrypha)을 간과 할 수 없는데 제 2정전은 예수 생애에 관한 수많은 기록들이 담겨 있고,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도 풍부하다. 이 사화들은 완전히 상상력을 동원해서 꾸민 얘기라 할 수 있는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교 민중 신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예컨대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의 이름과 행적, 동정 잉태 설화, 성전에서의 봉헌 설화 등도 이러한 설화를 토대로 성서에 유입되었던 것이다.
3C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해 지속적인 고찰
예수 탄생의 비정상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예수의 온전한 인간성에 손상을 줄 위협이 있었다. 이 때문에 처음에는 떼르뚤리아노(+220), 오리게네스(+253), 히에로니무스(347-419) 등은 동정성에 대해 말하기를 주저하였다. 그러나 서방 교회는 암브로시우스(+397), 아우구스티노(354-430) 등, 동방 교회에서는 요한 크리소스토모(350-407), 시리아의 에프렘(+373) 등이 영원한 동정성을 고찰하였다.
4C 에는 마리아에게 천주의 모친(Theotokos)1)이라는 칭호를 부여하였다. 이와 함께 마리아 신김이 융성하게 된다. 이 시기에 마리아를 주보로 하는 교회들이 건립되었다.
5C 까지는 마리아가 불완전성을 지닌 인간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암브로시우스(339-397)와 아우구스띠노를 통해 마리아의 성성과 무죄성이 서방 교회에 관철되어 오랜 논쟁을 거친 끝에 동방 교회에서도 관철되었다.
4C말에 마리아의 임종에 관한 신학적 사유가 처음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렇게 절박한 문제가 아니었다. 5C에 와서 마리아 축일이 등장했다.(8월 15일 – 천주의 모친의 날)
8C에 마리아의 승천이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말은 마리아의 영육이 동시에 하느님께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신앙 표현이다.
ꠏꋼ 교부 시대 특징 ; 그리스도의 강생이라는 신비를 중심으로 마리아가 차지하고 있는 의미가 발견되고 구세사적 전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