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3 章 교회의 현재와 미래- 교회의 위기(결론)

 


3.1.5. 결론


공의회 직후 그러니까 한 30년 전에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가톨릭의 시급한 문제는 “새로운 거”, “공동체적인 거”, “열린 것”, “신성한 영역으로 도피하지 않는 것”, “세상을 향한 것”, “세계와 연대한 영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그 이후 겪어야 했던 방황, 무분별하고 절제되지 않은 개방의 폐해 등등의 혹독한 댓가를 치르면서 야기된 새로운 불일치와 분열을 체험하고는 다시금 새로운 고민에 봉착하게 되었다. 다시 옛 영성, 즉 ‘세속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영성과의 연결점을 재발견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임을 깨닫고 있다.


사실 공의회 이후 얼마동안은 무엇보다도 ‘개방적인’ 사제가 주교의 적격자로 여겨졌고 이런 분위기들이 많은 개방적인 주교들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설계도를 잃어버린 건축공사장의 혼란을 뼈저리게 체험하면서 교황은 세계에 대해 개방적인 주교가 필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되었다. 이 시기가 대체로 70년대 후반, 그리고 그 이후로는 가톨릭 교회가 신보수주의로 돌아섰다는 비판을 많이 받게된다. 이러한 회귀의 중심에 지금 교황 요한 바오로 Ⅱ가 계신다.


오늘날 우리가 살혀본 교회의 위기 앞에 사람들은 절박한 임무를 각성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균형감각이다. 즉 현대의 시대적 요청과 전통적인 신앙의 유산 사이에서 요구되는 균형감각이 그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오늘날의 교회는 비관적일 뿐인가, 가망이 없는가하는 체념이 있을 수 있다. 다행이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없는 삶, 믿음이 없는 세상의 진면목이 어떠한가를 조금씩 깨닫고 있다. 그 실상의 공허 안에서 믿음의 풍요로움, 믿음의 필수불가결함을 새로 발견하게 되었다. 학자들은 교회의 희망의 징표로 다음과 같은 것을 주시하고 있다.


① 젊은 교회의 약진: 한국교회와 같은 젊은교회나 박해받아온 교회의 활력,


② 새로운 신심운동의 태동: 가톨릭 교회내의 새로운 신심운동은 많은 경우 20세기초 중반 갈톨릭 개혁운동의 정신을 안고 태동했다. 성령운동, 꾸르실료, 훠꼴라레, 레지오 마리애, 성서운동, 성체와 자유운동, 성모의기사회, 소공동체 운동 등등 교회내에 하나의 새세대가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신심운동은 그얌라로 저 밑바닥에서 부터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쇄신은 완만하게 그러나 효과적으로 이루어져가고 있다고 하겠다. 물론 그 새로운 모습은 지배적인 관념들과의 관계에서 아직은 제목소리를 갖고 있지는 않다 하겠다. 그것은 조용히 성장하고 있다. 교회는 늘 개혁을 요한다. 교회의 직무담당자와 신학자들의 과제는 이 새로운 모습에 문을 열어주는 것,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예측할 수 없는 변화와 요구 앞에 산적한 문제는 적지않다. 더구나 구체적이고도 실재 사목현자에서 와닿는 문제들은 딜레마라고 하겠다. 예컨데 ① 심가갛게 위협받고 있는 사제독신제도의 문제(70:30%) ② 재혼한 이혼자들 문제- 냉담자 문제와 직결 ③ 사제직을 떠난 사람들 문제(70.000명)등이 그것이다. 사실 이들은 아직 교회의 실질적인 해결과는 동떨어져 있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에 있어서 교회의 문은 여전히 닫혀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어쩔수 없이 교회를 떠나야 하겠는가, 그들은 모두 결국 성사로부터 제외되어야만 하는가, 교회는 그들은 공동체에서 제외시키는 것으로 손을 털 수 있는가, 그럼으로써 교회는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는가, 교회는 그들이 떠나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침묵하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가, 그들을 다시 교회의 품안으로 안을 수는 없는가?


우리에게는 더 큰 적대적인 대명제가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부르심을 받고 있고 아무도 구원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진리이다. 교회는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예수께서 바로 그 사회에서 소외되고 제외된 사람들에게 연민으로 다가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은 현실이 냉혹하다. 이것이 우리세대 공통의 과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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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3.1.5. 결론

    공의회 직후 그러니까 한 30년 전에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가톨릭의 시급한 문제는 “새로운 거”, “공동체적인 거”, “열린 것”, “신성한 영역으로 도피하지 않는 것”, “세상을 향한 것”, “세계와 연대한 영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그 이후 겪어야 했던 방황, 무분별하고 절제되지 않은 개방의 폐해 등등의 혹독한 댓가를 치르면서 야기된 새로운 불일치와 분열을 체험하고는 다시금 새로운 고민에 봉착하게 되었다. 다시 옛 영성, 즉 ‘세속으로부터의 도피’라는 영성과의 연결점을 재발견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임을 깨닫고 있다.

    사실 공의회 이후 얼마동안은 무엇보다도 ‘개방적인’ 사제가 주교의 적격자로 여겨졌고 이런 분위기들이 많은 개방적인 주교들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설계도를 잃어버린 건축공사장의 혼란을 뼈저리게 체험하면서 교황은 세계에 대해 개방적인 주교가 필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인식을 하게되었다. 이 시기가 대체로 70년대 후반, 그리고 그 이후로는 가톨릭 교회가 신보수주의로 돌아섰다는 비판을 많이 받게된다. 이러한 회귀의 중심에 지금 교황 요한 바오로 Ⅱ가 계신다.

    오늘날 우리가 살혀본 교회의 위기 앞에 사람들은 절박한 임무를 각성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균형감각이다. 즉 현대의 시대적 요청과 전통적인 신앙의 유산 사이에서 요구되는 균형감각이 그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오늘날의 교회는 비관적일 뿐인가, 가망이 없는가하는 체념이 있을 수 있다. 다행이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 없는 삶, 믿음이 없는 세상의 진면목이 어떠한가를 조금씩 깨닫고 있다. 그 실상의 공허 안에서 믿음의 풍요로움, 믿음의 필수불가결함을 새로 발견하게 되었다. 학자들은 교회의 희망의 징표로 다음과 같은 것을 주시하고 있다.

    ① 젊은 교회의 약진: 한국교회와 같은 젊은교회나 박해받아온 교회의 활력,

    ② 새로운 신심운동의 태동: 가톨릭 교회내의 새로운 신심운동은 많은 경우 20세기초 중반 갈톨릭 개혁운동의 정신을 안고 태동했다. 성령운동, 꾸르실료, 훠꼴라레, 레지오 마리애, 성서운동, 성체와 자유운동, 성모의기사회, 소공동체 운동 등등 교회내에 하나의 새세대가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신심운동은 그얌라로 저 밑바닥에서 부터부터 자생적으로 생겨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쇄신은 완만하게 그러나 효과적으로 이루어져가고 있다고 하겠다. 물론 그 새로운 모습은 지배적인 관념들과의 관계에서 아직은 제목소리를 갖고 있지는 않다 하겠다. 그것은 조용히 성장하고 있다. 교회는 늘 개혁을 요한다. 교회의 직무담당자와 신학자들의 과제는 이 새로운 모습에 문을 열어주는 것,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예측할 수 없는 변화와 요구 앞에 산적한 문제는 적지않다. 더구나 구체적이고도 실재 사목현자에서 와닿는 문제들은 딜레마라고 하겠다. 예컨데 ① 심가갛게 위협받고 있는 사제독신제도의 문제(70:30%) ② 재혼한 이혼자들 문제- 냉담자 문제와 직결 ③ 사제직을 떠난 사람들 문제(70.000명)등이 그것이다. 사실 이들은 아직 교회의 실질적인 해결과는 동떨어져 있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에 있어서 교회의 문은 여전히 닫혀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어쩔수 없이 교회를 떠나야 하겠는가, 그들은 모두 결국 성사로부터 제외되어야만 하는가, 교회는 그들은 공동체에서 제외시키는 것으로 손을 털 수 있는가, 그럼으로써 교회는 할 일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는가, 교회는 그들이 떠나가는 상황을 지켜보며 침묵하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가, 그들을 다시 교회의 품안으로 안을 수는 없는가?

    우리에게는 더 큰 적대적인 대명제가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부르심을 받고 있고 아무도 구원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진리이다. 교회는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가져야 한다. 예수께서 바로 그 사회에서 소외되고 제외된 사람들에게 연민으로 다가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은 현실이 냉혹하다. 이것이 우리세대 공통의 과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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