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개념의 근본 요소-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교회의 종말론적 역동성)

 



3.1.5 교회의 종말론적 역동성


하느님 백성의 개념은 교회의 종말론적 역동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 그 핵심적 의미는 교회가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회는 자신의 본래 희망을 아직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미로 구세사의 연속성에대해 말할수 있는데 이스라엘과 교회는 자신들의 순례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교회는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으로 교회안에서 모든 백성들은 서로 다른 직무와 봉사의 차이를 넘어 순례자들인 것이고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의 롱송동체인 것이다.


교회는 종말론적 역동성안에 있다. 이 역동성은 아브라함으로부터 교회의 종말론적 모임에 이르기까지 인간적인 여정안에 항구한 하느님의 충실성을 드러 내준다. 교회는 이러한 연속성안에 있다.


이 여정안에 교회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표지와 역사적 봉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며그 자체로 단순히 축복과 동일시 되지 않는 다. 이스라엘의 축복과 선택은 하느님의 업적에 대한 역사적인 징표인 것이며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구원보증이 아니다. 동싱에 이스라엘의 실패 또한 하나의 역사적 징표인 것이지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또는 비구원보증이 아니다.


교회는 종종 역사안에서 그리스도 강생의 연장으로 이해되었고 이러한 이해와 함께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는 양자를 동일시하는 위험을 초래 하였다. 신약성서에는 죄에 물든 교회에 대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죄에 물든 옛 하느님 백성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여기에 그리스도의 행위로 말미암아 새로운 백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신약성서는 죄로 물든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와 교회를 동일시 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1고린 12,12-13은 그리스도와 몸, 교회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동일화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어떻게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 할수 있는가?우리는 1고린 6,15이하의 몸개념과 관련하여 일치개념을 추론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육신적의미로 남편과 아내가 한몸(sarx )이듯이 영(pneuma) 안에서 하나를 이룬다. 이러한 영안에서의 일치는 전체로서의 동일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역동적인 일치를 말한다. 즉,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결정적이고 완전한 희생, 또 한편으로는 교회의 그리스도에 대한 부족하고 완전하지 못한 희생으로 구별되는 일치를 말한다. 이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역동적 일치안에 놓인 관계안에서 ‘교회의 거룩함’을 알수 있다. ‘거룩한 교회’라는 표현은 바로 교회안에 주님의 거룩함이 현존한다는 표현이며, 교회자체의 거룩함을 뜻하지 않는다. 거룩함은 바로 주님의 거룩함이며 이 주님의 거룩함이 교회를 이루는 인간들의 죄가운데서 빛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거룩함의 모습안에서 한편으로 교회의 위험이 놓여 있고 또 한편으로 교회의 정화와 쇄신의 당위성이 놓여 있다. 교회는 언제나 죄로 떨어 질 수 있고 거룩함의 도구지만 죄에의 경향을 늘 가지고 있기에 항구히 스스로 정화되어야 한다. 교회는 아직 스스로의 최종적 모습에 도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십자가의 표지와 결합되어 있고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 십자가를 필요로 하는 인간들과 결합되어있다.


전체로서의 교회는 그리스도와 동일하지 않은 관계에서 한 몸이다. 여기에 또한 시간안에 존재하는 교회의 신비가 놓여 있다.교회는 이미 새로운 계약이지만 아직도 하느님 나라는 아니다.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도식이 바로 이러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 도식이 뜻하는 바의 교회의 역사적 실재를 부정함으로써 영광과 승리주의에 도취되게 되고 마침내 종말론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톨릭 교회호교론의 위험이고 역사안에서 실제로 종종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위험에 직면해 왔다.


또 다른 위험은 다만 교회내의 모든 역사적 실재라는 시각에서 신앙안에서 체험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망각하게 되는 위험이다. 이것은 개신교 교회관과 신학이 가지는 위험으로 구체적인 교회를 도외시하게 된다.


하느님 백성개념이 그리스도의 몸개념을 잊어버릴 때 필연적으로 위험이 뒤따르게 된다. 하느님 백성개념 하나만으로 결코 교회에 대한 신약성서적인 잏에 완전히 도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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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3.1.5 교회의 종말론적 역동성

    하느님 백성의 개념은 교회의 종말론적 역동성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 그 핵심적 의미는 교회가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회는 자신의 본래 희망을 아직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의미로 구세사의 연속성에대해 말할수 있는데 이스라엘과 교회는 자신들의 순례여정을 계속하고 있다. 교회는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으로 교회안에서 모든 백성들은 서로 다른 직무와 봉사의 차이를 넘어 순례자들인 것이고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의 롱송동체인 것이다.

    교회는 종말론적 역동성안에 있다. 이 역동성은 아브라함으로부터 교회의 종말론적 모임에 이르기까지 인간적인 여정안에 항구한 하느님의 충실성을 드러 내준다. 교회는 이러한 연속성안에 있다.

    이 여정안에 교회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표지와 역사적 봉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며그 자체로 단순히 축복과 동일시 되지 않는 다. 이스라엘의 축복과 선택은 하느님의 업적에 대한 역사적인 징표인 것이며 비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구원보증이 아니다. 동싱에 이스라엘의 실패 또한 하나의 역사적 징표인 것이지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또는 비구원보증이 아니다.

    교회는 종종 역사안에서 그리스도 강생의 연장으로 이해되었고 이러한 이해와 함께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는 양자를 동일시하는 위험을 초래 하였다. 신약성서에는 죄에 물든 교회에 대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죄에 물든 옛 하느님 백성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여기에 그리스도의 행위로 말미암아 새로운 백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신약성서는 죄로 물든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그리스도와 교회를 동일시 하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1고린 12,12-13은 그리스도와 몸, 교회를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동일화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어떻게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 할수 있는가?우리는 1고린 6,15이하의 몸개념과 관련하여 일치개념을 추론할 수 있다.

    그리스도와 교회는 육신적의미로 남편과 아내가 한몸(sarx )이듯이 영(pneuma) 안에서 하나를 이룬다. 이러한 영안에서의 일치는 전체로서의 동일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역동적인 일치를 말한다. 즉, 한편으로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결정적이고 완전한 희생, 또 한편으로는 교회의 그리스도에 대한 부족하고 완전하지 못한 희생으로 구별되는 일치를 말한다. 이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역동적 일치안에 놓인 관계안에서 ‘교회의 거룩함’을 알수 있다. ‘거룩한 교회’라는 표현은 바로 교회안에 주님의 거룩함이 현존한다는 표현이며, 교회자체의 거룩함을 뜻하지 않는다. 거룩함은 바로 주님의 거룩함이며 이 주님의 거룩함이 교회를 이루는 인간들의 죄가운데서 빛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의 거룩함의 모습안에서 한편으로 교회의 위험이 놓여 있고 또 한편으로 교회의 정화와 쇄신의 당위성이 놓여 있다. 교회는 언제나 죄로 떨어 질 수 있고 거룩함의 도구지만 죄에의 경향을 늘 가지고 있기에 항구히 스스로 정화되어야 한다. 교회는 아직 스스로의 최종적 모습에 도달하지 않았다. 오히려 십자가의 표지와 결합되어 있고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 십자가를 필요로 하는 인간들과 결합되어있다.

    전체로서의 교회는 그리스도와 동일하지 않은 관계에서 한 몸이다. 여기에 또한 시간안에 존재하는 교회의 신비가 놓여 있다.교회는 이미 새로운 계약이지만 아직도 하느님 나라는 아니다. ‘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도식이 바로 이러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이 도식이 뜻하는 바의 교회의 역사적 실재를 부정함으로써 영광과 승리주의에 도취되게 되고 마침내 종말론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가톨릭 교회호교론의 위험이고 역사안에서 실제로 종종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위험에 직면해 왔다.

    또 다른 위험은 다만 교회내의 모든 역사적 실재라는 시각에서 신앙안에서 체험하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망각하게 되는 위험이다. 이것은 개신교 교회관과 신학이 가지는 위험으로 구체적인 교회를 도외시하게 된다.

    하느님 백성개념이 그리스도의 몸개념을 잊어버릴 때 필연적으로 위험이 뒤따르게 된다. 하느님 백성개념 하나만으로 결코 교회에 대한 신약성서적인 잏에 완전히 도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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