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예수 그리스도의 창설로 이루어진 교회

 

2. 예수 그리스도의 창설로 이루어진 교회


   이 항에서는 왜,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교회가 역사적이고 부활한 예수의 창설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지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다시말해 교회가 지닌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사실 이 문제는 19세기 및 20세기를 통해서 자주 변천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에는 교회가 다만 추상적인 의미에서 예수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공동체에 불과하고, 예수의 복음 자체는 교회에 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사고 방식은 이미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시말해 그리스도의 창설로 이루어진 역사적인 모습을 지닌 실재인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교 여러 교파를 통해서 오늘의 교회론에서는 부활 사건뒤에 곧 교회 조직과 비슷한 것이 구성되어 있던 것은 다소간에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원시 그리스도교적 자기 이해에 관해서, 그 통일에 관해서 그리고 교회가 경험주의적으로 보면 상당히 후에 가서 비로소 이방인의 세계에도 넓혀져 간 과정에 관해서 많은 다른 의견이 있다.  따라서 특정한 공동체가 그리스도가 의도한 교회이고, 그것만이 신법에 의해서 제정된 것이라는 따위의 권리 주장은 역사 실증적 사실을 거스르는 것이다.


    무릇 교회의 창설을 역사의 예수라는 법위 안에서 생각한다고 할 때 우리는 다음을 전제할 수 있다.  첫째로 예수는 단순히 일반적인 종교 이념을 설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의 종말론적인 소식을 알린 것이다.  바야흐로 하느님나라가 자기와 자기 인격에서 완전히 새롭고, 또 인간에 대해서 근원적인 요청을 하는 모습으로 도래하고 있음을 말했다.  당시의 바리사이파나 에쎄네파들과 달리 예수는 죄인에 대해서도 하느님나라  도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원리적 요구를 채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약속했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예수가 본래 유대교 안에서 특수한 단체, 일종의 수도회를 창립하고자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는 정말로 모든 사람을 향해 모든 사람을 초대하고자 했다.  이로써 상황은 이미 당초부터 다음 어느쪽의 가능성을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예수 복음선포의 첫번째 수신인이었던 이스라엘이 그 자체 전체로서 종교적 제도로서 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 하느님나라를 대표하는 공동체로 변용하든가,  아니면 예수는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스라엘 밖에서 창설해야 하든가였다.


   예수에 의한 교회의 창설이라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교회는 우선 다음의 사실에서 창설되었다고 해도 좋다.  즉 신앙인들은 예수를 구원의 절대적인 중재자로 믿고, 세계내에 현존하고 예수가 실제로 하느님과 같은 분이라는 믿음에서 교회가 창설된 것이다.  이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유래하는 한 그러한 신앙 공동체인 교회는 예수에게서 유래하는 것이다.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인간이 절대적으로 새롭게 자력에 의해서 만들어낸 응답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둘째, 이 신앙은 결코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인간 내면의 사건처럼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공적인 것이며, 고백이며, 하나의 공동체의 신앙이라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에게서 유래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예수에게 대한 공적이고, 공동체적인 고백으로서 예수에게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세째, 이런 의미에서 교회를 구축하는 것인 신앙 및 교회 자체는 하나의 역사를 가져야만 한다.  신앙과 교회의 역사성은 참된 변화와 동시에 항상 존재하는 동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양자가 진정한 역사를 구성한다.  역사적 본질을 가지는 존재자들 안에서 연속성과 동일성이 보전되어야 한다면 그때마다 자유로운 결단이 요구된다.  변화 속에 연속성을 유지하는 역사적 존재가 그 원천으로부터 필연적으로 귀결되지 않아도 하나의 순수한 결정을 내리고, 이 결정이 후대의 역사에 구속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은 그 원천에서 판단해서 정당하고, 원천에서 유래하고 원천에서 “창설”되었다고까지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그와 같이 역사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라고 할 때 다음과 같은 두가지 사실에 귀결된다.  먼저 이 공동체가 예수에게서 유래하고, 그런 의미에서 예수에 의해서 창설된 것이라는 사실은 이 공동체가 발전중에 역사적 제약을 받는 여러 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구조를 가지게 되는 경우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구조는 그 자체로서 추상적으로 보면 순수하게 가능성이었던 수 많은 것 가운데서 선택되는데 일단 선택이 되면 후에 이어지는 시기에 있어서는 취소할 수 없는 것이고, 구속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여러 구조들은- 가령 교계제도- 예수에게서 유래한 신법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귀결은 다음과 같다. 가령 가톨릭 교회의 어떤 구체적인 구조가 교회에 있어서 항구적인 구속성을 지닌다고 할 경우에도, 그것을 반드시 분명히 예수의 입으로 하신 역사적 사실위의 창설에 관한 말씀에까지 소급해야 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러한 구조를 지닌 교회는 예수에게서 유래하고 창설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의 교회창설 행위에 대해 두가지면에서 복음서를 보도록 하겠다.  물론 이는 제각기 구원사적 위치에 따라서 그 정도를 달리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첫째, 예수는 자기 주위에 제자들을 불러 모으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을 자기 주위에 모으고자 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때 열두 사도단 형성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역사실증적으로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열두 사도단은 그 수에서 말하면 전 이스라엘, 즉 종말론적으로 예수가 의도한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권능을 드러내는 행위는 예수에게 있어서 종말론적 하느님나라가 바야흐로 도래하고, 현재 이미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징표였다.  우리는 예수의 소위 “교회 창설”의 행위를 물을 때, 위에 말한 점에 주목한다.  이런 시각의 정당성은 유대 백성의 대다수가 예수를 거부한 후에도 여전히 제자들의 공동체가 유지된 사실을 감안해 보아도 분명한 것이다.  이는 예수가 하나의 구원의 공동체라는 사상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 인식된다.  이런 견지에서 최후의 만찬과 “성찬”의 창설도 새로운 구원의 질서, 새로운 계약을 향한 것으로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몬을 향해 하신 말씀(루가22,31-32)도 제자들의 공동체가 계속 유지되어야 할 것은 명확히 하고 있다.  끝으로 “부활한 분의 교회론적 파견의 말씀”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그에게 주어진 권능을 궁극적으로 제자들에게 주어, 예수의 사역을 이 세상에서 속행하도록 파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마태오 16,18이하에서는 예수의 교회창설에 대한 직접적인 의지가 이야기 되고 있다.  우선 시몬을 교회의 반석으로하고, 그에게 예수의 교회 열쇠를 맡겨 사람을 “맺고 푸는”권능을 위탁하는 말씀이 정말로 교회의 가장 오래된 복음에 속하는 것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가 있다.  마태오 16,18에서 베드로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베드로”의 지위는 루가 22,31에 의해서 형제들의 집단에서의 특별한 지위로서 확증되었다.  그리고 요한 21,15이하에는 그리스도의 무리들에 대한 지도권의 부활 후의 예수의 말씀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예수의 이런 모든 기본적인 배려외에도 앞으로 닥칠 모든 것을 약속된 성령과 그 성령으로 주도될 교회의 역사, 그리고 물론 무엇보다도 원시 교회의 역사에 맡겼다. 바로 이 원시 사도적 첫 세대의 역사속에서 모든 것에 기초가 되는 기본초석이 구체화되고 확정 되었다.  그리고 이 기본 초석은 뒤따르는 교회의 시대에 근본이며 규범적인 것으로 존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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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 그리스도의 창설로 이루어진 교회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2. 예수 그리스도의 창설로 이루어진 교회

       이 항에서는 왜,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 교회가 역사적이고 부활한 예수의 창설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는지에 관해 말하고자 한다.  다시말해 교회가 지닌 예수 그리스도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사실 이 문제는 19세기 및 20세기를 통해서 자주 변천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에는 교회가 다만 추상적인 의미에서 예수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의 정신적인 공동체에 불과하고, 예수의 복음 자체는 교회에 관해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사고 방식은 이미 거의 보이지 않는다.  다시말해 그리스도의 창설로 이루어진 역사적인 모습을 지닌 실재인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교 여러 교파를 통해서 오늘의 교회론에서는 부활 사건뒤에 곧 교회 조직과 비슷한 것이 구성되어 있던 것은 다소간에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의 원시 그리스도교적 자기 이해에 관해서, 그 통일에 관해서 그리고 교회가 경험주의적으로 보면 상당히 후에 가서 비로소 이방인의 세계에도 넓혀져 간 과정에 관해서 많은 다른 의견이 있다.  따라서 특정한 공동체가 그리스도가 의도한 교회이고, 그것만이 신법에 의해서 제정된 것이라는 따위의 권리 주장은 역사 실증적 사실을 거스르는 것이다.

        무릇 교회의 창설을 역사의 예수라는 법위 안에서 생각한다고 할 때 우리는 다음을 전제할 수 있다.  첫째로 예수는 단순히 일반적인 종교 이념을 설파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는 이스라엘을 향해서 하나의 종말론적인 소식을 알린 것이다.  바야흐로 하느님나라가 자기와 자기 인격에서 완전히 새롭고, 또 인간에 대해서 근원적인 요청을 하는 모습으로 도래하고 있음을 말했다.  당시의 바리사이파나 에쎄네파들과 달리 예수는 죄인에 대해서도 하느님나라  도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원리적 요구를 채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약속했다.  이것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예수가 본래 유대교 안에서 특수한 단체, 일종의 수도회를 창립하고자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는 정말로 모든 사람을 향해 모든 사람을 초대하고자 했다.  이로써 상황은 이미 당초부터 다음 어느쪽의 가능성을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즉 예수 복음선포의 첫번째 수신인이었던 이스라엘이 그 자체 전체로서 종교적 제도로서 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 하느님나라를 대표하는 공동체로 변용하든가,  아니면 예수는 자기를 믿고 따르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스라엘 밖에서 창설해야 하든가였다.

       예수에 의한 교회의 창설이라는 것에 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교회는 우선 다음의 사실에서 창설되었다고 해도 좋다.  즉 신앙인들은 예수를 구원의 절대적인 중재자로 믿고, 세계내에 현존하고 예수가 실제로 하느님과 같은 분이라는 믿음에서 교회가 창설된 것이다.  이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유래하는 한 그러한 신앙 공동체인 교회는 예수에게서 유래하는 것이다.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인간이 절대적으로 새롭게 자력에 의해서 만들어낸 응답인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둘째, 이 신앙은 결코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인간 내면의 사건처럼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공적인 것이며, 고백이며, 하나의 공동체의 신앙이라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에게서 유래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은 예수에게 대한 공적이고, 공동체적인 고백으로서 예수에게서 유래하기 때문이다.      세째, 이런 의미에서 교회를 구축하는 것인 신앙 및 교회 자체는 하나의 역사를 가져야만 한다.  신앙과 교회의 역사성은 참된 변화와 동시에 항상 존재하는 동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양자가 진정한 역사를 구성한다.  역사적 본질을 가지는 존재자들 안에서 연속성과 동일성이 보전되어야 한다면 그때마다 자유로운 결단이 요구된다.  변화 속에 연속성을 유지하는 역사적 존재가 그 원천으로부터 필연적으로 귀결되지 않아도 하나의 순수한 결정을 내리고, 이 결정이 후대의 역사에 구속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결정은 그 원천에서 판단해서 정당하고, 원천에서 유래하고 원천에서 “창설”되었다고까지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그와 같이 역사적이고 자유로운 존재라고 할 때 다음과 같은 두가지 사실에 귀결된다.  먼저 이 공동체가 예수에게서 유래하고, 그런 의미에서 예수에 의해서 창설된 것이라는 사실은 이 공동체가 발전중에 역사적 제약을 받는 여러 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구조를 가지게 되는 경우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구조는 그 자체로서 추상적으로 보면 순수하게 가능성이었던 수 많은 것 가운데서 선택되는데 일단 선택이 되면 후에 이어지는 시기에 있어서는 취소할 수 없는 것이고, 구속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여러 구조들은- 가령 교계제도- 예수에게서 유래한 신법으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귀결은 다음과 같다. 가령 가톨릭 교회의 어떤 구체적인 구조가 교회에 있어서 항구적인 구속성을 지닌다고 할 경우에도, 그것을 반드시 분명히 예수의 입으로 하신 역사적 사실위의 창설에 관한 말씀에까지 소급해야 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그러한 구조를 지닌 교회는 예수에게서 유래하고 창설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수의 교회창설 행위에 대해 두가지면에서 복음서를 보도록 하겠다.  물론 이는 제각기 구원사적 위치에 따라서 그 정도를 달리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첫째, 예수는 자기 주위에 제자들을 불러 모으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백성을 자기 주위에 모으고자 했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때 열두 사도단 형성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역사실증적으로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열두 사도단은 그 수에서 말하면 전 이스라엘, 즉 종말론적으로 예수가 의도한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권능을 드러내는 행위는 예수에게 있어서 종말론적 하느님나라가 바야흐로 도래하고, 현재 이미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징표였다.  우리는 예수의 소위 “교회 창설”의 행위를 물을 때, 위에 말한 점에 주목한다.  이런 시각의 정당성은 유대 백성의 대다수가 예수를 거부한 후에도 여전히 제자들의 공동체가 유지된 사실을 감안해 보아도 분명한 것이다.  이는 예수가 하나의 구원의 공동체라는 사상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 인식된다.  이런 견지에서 최후의 만찬과 “성찬”의 창설도 새로운 구원의 질서, 새로운 계약을 향한 것으로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시몬을 향해 하신 말씀(루가22,31-32)도 제자들의 공동체가 계속 유지되어야 할 것은 명확히 하고 있다.  끝으로 “부활한 분의 교회론적 파견의 말씀”도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말씀은 그에게 주어진 권능을 궁극적으로 제자들에게 주어, 예수의 사역을 이 세상에서 속행하도록 파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마태오 16,18이하에서는 예수의 교회창설에 대한 직접적인 의지가 이야기 되고 있다.  우선 시몬을 교회의 반석으로하고, 그에게 예수의 교회 열쇠를 맡겨 사람을 “맺고 푸는”권능을 위탁하는 말씀이 정말로 교회의 가장 오래된 복음에 속하는 것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가 있다.  마태오 16,18에서 베드로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베드로”의 지위는 루가 22,31에 의해서 형제들의 집단에서의 특별한 지위로서 확증되었다.  그리고 요한 21,15이하에는 그리스도의 무리들에 대한 지도권의 부활 후의 예수의 말씀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예수의 이런 모든 기본적인 배려외에도 앞으로 닥칠 모든 것을 약속된 성령과 그 성령으로 주도될 교회의 역사, 그리고 물론 무엇보다도 원시 교회의 역사에 맡겼다. 바로 이 원시 사도적 첫 세대의 역사속에서 모든 것에 기초가 되는 기본초석이 구체화되고 확정 되었다.  그리고 이 기본 초석은 뒤따르는 교회의 시대에 근본이며 규범적인 것으로 존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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