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하느님 백성의 대조사회(kontrastgesellschaft)
하느님은 어느 누구도 제외시키지 않고 모두를 포용하시는 하느님이시며,“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는”(마태5,45)하느님이시다. 따라서 민중 신학은 계급사회로서의 민중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으로서 민중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편가르는 하느님이 아니라, 모든 이의 하느님을 제시해야 한다.
예수가 형성했던 민중 공동체는 기존의 사회와는 전혀 다르게 모든 사람에게 열린 공동체였으며, 그 누구도 소외되거나 지배당하지 않는 전혀 다른 질서의 공동체였다.
또한 기존의 혈연 관계를 초월하여 새로운 가족으로서 연대를 맺는 공동체였다. 즉 예수의 공동체는 기존 사회와는 완전히 구분되는 하나의‘대조사회’-또는 더 나아가 대척사회(Gegengesellschaft)-였다. G. Lohfink,「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정한교 역 (왜관:분도출판
사,1985), pp.201-217 참조: 사실 예수의 제자 공동체는 예수의 파견 소명뿐 아니
라,세상과 뚜렷이 대조됨으로써 세상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드러내야 하는
대조사회로서의 사명도 받았다.
로핑크(G. Lohfink)에 의하면 “교회란 일반 사회속에서 하느님 대조사회로서 존재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때 여러분은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안에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에페5,8) 사도 바울로는 이같은 맥락에서 “이 세상을 본뜨지 말고 정신을 다시 새롭게 하여 여러분의 모습을 바꾸시오”(로마12,2)라고 촉구한다. 다시말해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공동체는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주는 표징(signum)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중신학의 민중도 하느님 백성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드러내주는 대조사회가 되어야 한다. 즉 민중은 하느님 백성의 대조사회이며, 결국 그 대조사회는 하느님 백성이 온전한 민중공동체를 형성하는 그 순간까지 하느님 백성안에서 성장해가는 공동체인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공의회가 말한 하느님 백성의 참 모습을 제시해 주는 것이 곧 민중이며 민중공동체인 것이다. 서남동,“새로운 공동체를 위하여.”「민중신학의 탐구」,참조.
이제 하느님 백성안에서 민중이 지니는 적극적 의미는 배타적 계급사회가 아니다.이른바 열려있는 ‘대조사회’로서의 의미이다. 이때 이 민중공동체의 하느님은 민중들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모든 이의 하느님이며, 민중은 배타적인 집단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안에서 커가는 ‘겨자씨’(마르 4,30)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은 하느님 백성을 전제할 때 전체로서의 신학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2.하느님 백성의 대조사회(kontrastgesellschaft)
하느님은 어느 누구도 제외시키지 않고 모두를 포용하시는 하느님이시며,“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는”(마태5,45)하느님이시다. 따라서 민중 신학은 계급사회로서의 민중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으로서 민중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편가르는 하느님이 아니라, 모든 이의 하느님을 제시해야 한다.
예수가 형성했던 민중 공동체는 기존의 사회와는 전혀 다르게 모든 사람에게 열린 공동체였으며, 그 누구도 소외되거나 지배당하지 않는 전혀 다른 질서의 공동체였다.
또한 기존의 혈연 관계를 초월하여 새로운 가족으로서 연대를 맺는 공동체였다. 즉 예수의 공동체는 기존 사회와는 완전히 구분되는 하나의‘대조사회’-또는 더 나아가 대척사회(Gegengesellschaft)-였다. G. Lohfink,「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정한교 역 (왜관:분도출판
사,1985), pp.201-217 참조: 사실 예수의 제자 공동체는 예수의 파견 소명뿐 아니
라,세상과 뚜렷이 대조됨으로써 세상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드러내야 하는
대조사회로서의 사명도 받았다.
로핑크(G. Lohfink)에 의하면 “교회란 일반 사회속에서 하느님 대조사회로서 존재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때 여러분은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안에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에페5,8) 사도 바울로는 이같은 맥락에서 “이 세상을 본뜨지 말고 정신을 다시 새롭게 하여 여러분의 모습을 바꾸시오”(로마12,2)라고 촉구한다. 다시말해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공동체는 하느님 나라를 드러내주는 표징(signum)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중신학의 민중도 하느님 백성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드러내주는 대조사회가 되어야 한다. 즉 민중은 하느님 백성의 대조사회이며, 결국 그 대조사회는 하느님 백성이 온전한 민중공동체를 형성하는 그 순간까지 하느님 백성안에서 성장해가는 공동체인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공의회가 말한 하느님 백성의 참 모습을 제시해 주는 것이 곧 민중이며 민중공동체인 것이다. 서남동,“새로운 공동체를 위하여.”「민중신학의 탐구」,참조.
이제 하느님 백성안에서 민중이 지니는 적극적 의미는 배타적 계급사회가 아니다.이른바 열려있는 ‘대조사회’로서의 의미이다. 이때 이 민중공동체의 하느님은 민중들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모든 이의 하느님이며, 민중은 배타적인 집단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안에서 커가는 ‘겨자씨’(마르 4,30)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은 하느님 백성을 전제할 때 전체로서의 신학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