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신자들의 평신도 사도직-평신도 사도직(하)

 

또하나 초기 신자들의 예언직 수행활동에 있어서 두드러지는 점은 말씀에 대한 실천으로써 호교활동과 복음화 활동, 그리고 말씀에 대한 연구자세이다.


우선 그들은 선포된 복음적 메시지를 학문이나 이념 사상이 아니라, 기쁜 소식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성령의 작용하심 아래 자신들로부터 묵상되고 반성된 진리였고 동시에 산 믿음안에서 만난 구세주 그리스도의 증거였다. 그들은 교리 강좌외에 복음 전파를 위해 교리독습을 용이하게 한 교회서적들을 배포하였다. 어떤 이들은 교리서 및 신심서적들을 베껴서 신자들과 예비신자, 그리고 외교인들에게까지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1) 사학징의에 의하면 남대문내 창전(倉前)에 있는 손만호(孫萬戶)의 집에 과부 7,8명이 가끔 모여 천주교 책을 강습했다고 하며 신유박해 때 정광수(鄭光受)는 자신이 손수 성서와 성물을 만들어 매매하였다. 또한 첨례단, 주년첨례, 성교광익, 성교직해, 성교광익직해, 예수 성탄 첨례, 제성첨례 등의 책들을 일찍이 역관 출신인 최창현(崔昌顯)이 번역하였다고 한다.2) 특히 초기 교회 신자들의 저술(著述)과 예술(藝術)활동 중에서 토착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예로 정약종은 무식한 대중이 어려운 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쥬교요지>를 저술하였고 화가인 이희영(李喜英)은 처음으로 예수상을 그렸다. 또한 이들은 호교활동에 있어서도 갓 태어난 교회 안에서 활발히 또 효과적으로 전개하였다. 법정에서의 뛰어난 호교적 증언뿐 아니라 일상적 복음전파 활동도 박해자들에 의해 유포된 허위와 모함, 오해를 정정, 또는 반박하면서 진리를 옹호하는 노력을 병행하여야 했다.3)


그들은 평등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교우촌과 같은 공동체에서는 몰론 가정 공동체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일치를 드러내었다. 두 쌍의 동정부부 치명 순교자의 예가 아니더라도 이들이 부부생활의 성화를 통해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의 신앙과 사랑의 증인이 된 예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초기 신자들은 하느님의 빛과 성령의 은혜에 힙입어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온전히 참여하여 ‘세상의 빛’으로 복음 선교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3) 평신도 왕직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순명하셨으므로 성부께 들어 높임을 받으시고(필립 2,8-9) 당신 나라의 영광을 차지 하셨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 복종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드디어 당신 자신과 이 모든 피조물을 성부께 복종시킴으로써 하느님을 모든 것에 있어서 모든 것이 되시게 하실 것이다(고린 전 15,27-28).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권한을 당신 제자들에게 주시어 그들도 왕다운 자유를 누리면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써 죄가 자신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고(로마 6,12),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 봉사하고는 겸손과 인내로써 자기 형제들을 그리스도 왕에게로 인도하도록 하셨다. “주께서는 당신 왕국을 또한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확장시키고자 하신다(교회헌장 36항)”. 이러한 권한은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먼저 왕이신 그리스도께 그들 자신이 봉사하기 위한 것이며, 다음에는 사람들이 왕이신 그리스도께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아포기와 성스러운 생활로 자시 안의 죄의 지배를 극복해야 하며, 사람들에게 왕이신 그리스도께 봉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겸허와 인내로서 봉사해야 한다. 모든 평신도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그리스도의 것이 된 영혼 안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을 즉 ‘진리와 생명의 나라’,‘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영적 현실’ 자체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세상 것과 다르지만 이 세상 안에서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4) 초기 교회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나라를 역사 안에서 이루어 나갔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의무의 전반적인 수행에 있어 평신도들이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밝히는데(교회헌장 36항), 초기 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내적으로 승격된 세속 지식과 자기 활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겸손과 인내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다. 주문모 신부를 도와 열성으로 활동하였던 강완숙 골롬바는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통찰력과 단단한 마음을 지녔었고, 나쁜 행동을 결코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어머니의 까다로운 성격을 잘 참아냈다고 한다. 고결한 그의 마음은 벌써 무엇인가 위대한 것을 갈망하고 있었다. 강골롬바는 덕산(德山)고을에 사는 홍지영(洪芝榮)이라는 상처한 향반에게 시집갔다. 그는 극도로 순박하고 조금도 총명한데가 없었고, 시어머니의 성격도 꽤 까다로왔으나 갖은 노력 끝에 화목할 수 있게 되었다. 강골롬바는 남편의 친척 바오로라는 사람에게서 천주교 이야기를 듣고 곧 진리를 깨달아 그의 영혼과 모든 능력을 기울여 천주교에 열중하였다. 그의 본분을 다하는데 있어서의 부지럼함과 그의 열심과 극기는 감탄할 만하였고, 그는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입교시키는 데 골몰하였다. 그의 열성은 이웃 동네에까지 미쳤다. 그러나 그는 남편이 도저히 진실한 마음으로 천주교를 실천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골롬바는 시어머니의 완전한 회개를 위해 끊임없이 권하며, 기도하였고 마침내 시어머니도 입교하였다. 그는 처녀들도 많이 모아 입교시키고 교육하였는데, 그 처녀들은 결혼한 후 각기 열성 있는 사도가 되어 그들이 새로 들어간 집안에서 천주교 신앙을 전하여 부모 친척과 친지들을 입교시키는 일이 자주 있었다.5) 이처럼 비상한 정력과 활동력을 타고 났고 하늘의 특별한 은총의 도움을 받은 강골롬바는 그리스도의 왕직에 온전히 참여하여 겸손과 봉사로서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 왕께로 인도하는데 헌신하였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인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잘 구별해야 할 것이라고 천명하였는데(교회헌장 36항), 이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라’(마태 22,21)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기인한 것으로 이는 지나친 조화론 즉, 교회는 사회, 사회는 곧 교회라는 사상도 아니며, 지나친 구별로 교회와 사회를 이원화하는 것도 아니다. 즉 이는 그 기원과 목적에서는 구별되지만 동시에 서로 중요한 것으로 조화로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종교를 도외시한 사회 형성을 주장하여 국민의 종교 자유를 탄압하거나 근절하려는 학설은 마땅히 배격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교회헌장 36항).


충청도 청양(靑陽)고을에서 태어난 이도기(李道起) 바오로는 글을 배우지 않았으나 성령의 학교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천주교의 덕행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일을 배웠고, 얼마 안되는 재산 모두를 외교인을 입교시키는데 썼다. 그는 박해자의 주목을 받아 6번이나 이사를 다니다가 마침내 정산(定山) 고을의 어떤 옹기 공장에 가서 자리잡고 조그만한 장사로 살아갔다. 그의 열성으로 곧 온 마을이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감사(監司)의 명령이 내리고 근처의 외교인이 고발하겠다고 협박했으나 그는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신입 교우들에게 악영향을 끼칠까 염려하여 거기에 머물렀고, 1797년 6월 8일 체포되었다. 그는 온갖 모욕과 고문을 겸허와 인내로 견디어 냈다. 관장(官長)이 “공,맹의 도(道)나 불도는 바른 것인데, 너희들은 그것을 배우기를 거절하고 거짓 도리를 찾아 따르며 나라를 휩쓸려 하느냐? 너희는 국왕도, 부모도 모르며 왕의 금령을 어겼으니 죽어 마땅하다” 라고 말하자 그는“저는 무식해서 선비들의 몫으로만 만들어진 공맹의 도는 알지 못하며, 불도는 중들에게만 관계된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며 창조주 하느님을 만물의 참 임금이요, 주재자로 설명하고 십계의 4계명을 들어 효도와 충성에 대해 말하였다. 그는 장으로 끌려나가 모욕과 매질을 당하였으나 나흘 후 군장(官長)은 잔치를 벌여 배교자는 잔치에 참석하게 하고 나머지는 죽음을 내린다고 말하였다. 마음이 약해진 동료 교우가 배교의 뜻의 보이자 관장은 이에 용기를 얻어 “자, 너도 천주를 욕하라”고 하자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임금님이 법률을 펴시면 그것을 백성에게 전달하고, 사또께서는 그것을 어기기는 고사하고 그것이 잘 지켜지도록 감독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 백성에게 그 참 아버지를 저주하라고 감히 명령하십니까? 저희 나라에는 자기 부모를 저주하는 풍습이 없습니다.” 라고 답하였다. 그후로 그는 끊임없는 굶주림과 추위와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기도를 그치지 않았고 순교의 은혜를 청하였다. 5월에 포졸들은 자주 그를 보러왔고, 문을 별로 지키지 않아 도망가라고 권유하는 것 같았고 또 주위 사람이 도망가라고 권하였으나, 그는 거절하며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마귀의 함정에 빠져 들어가면 우리 영혼과 우리가 세울 수 있는 모든 공로를 잃을 위험을 당하게 되오”하며 후에는 음식이나 아내가 가져오는 물건을 자주 거절하는 등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 죄가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였다(로마 6,12 참조). 6월 10일 사형집행일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기쁨에 넘쳐 어쩔 줄 몰랐다. 그는 끝가지 남은 힘을 다해 배교할 것을 거절하였고, 극심한 고문 후 “성모 마리아여 네게 하례하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손바닥만 빼고 온몸이 상처로 알아볼 수 없었으나 숨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그는 물 한잔 먹지 못했고, 관장은 그가 살아있다는 소리를 돋고 망나니들에게 “네놈들이 그놈을 끝장 내지 못하면 네 놈들을 모두 쳐 죽이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그가 다시 살아날까봐 시체에 계속 형벌을 가했다. 이 바오로의 나이는 56세였고 그때는 1798년 6월 12일이었다. 옥사장이는 미망인을 위로하며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12일 밤에 큰 광채가 당신 남편의 시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오”6)


이처럼 초기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겸손과 인내로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써 그들을 그리스도 왕께로 인도하였고, 극기와 절제의 생활로 죄가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한국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는 초석을 놓았으며 교회의 구성원으써 또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의 자신들의 위치를 올바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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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또하나 초기 신자들의 예언직 수행활동에 있어서 두드러지는 점은 말씀에 대한 실천으로써 호교활동과 복음화 활동, 그리고 말씀에 대한 연구자세이다.

    우선 그들은 선포된 복음적 메시지를 학문이나 이념 사상이 아니라, 기쁜 소식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성령의 작용하심 아래 자신들로부터 묵상되고 반성된 진리였고 동시에 산 믿음안에서 만난 구세주 그리스도의 증거였다. 그들은 교리 강좌외에 복음 전파를 위해 교리독습을 용이하게 한 교회서적들을 배포하였다. 어떤 이들은 교리서 및 신심서적들을 베껴서 신자들과 예비신자, 그리고 외교인들에게까지 나누어 주었던 것이다.1) 사학징의에 의하면 남대문내 창전(倉前)에 있는 손만호(孫萬戶)의 집에 과부 7,8명이 가끔 모여 천주교 책을 강습했다고 하며 신유박해 때 정광수(鄭光受)는 자신이 손수 성서와 성물을 만들어 매매하였다. 또한 첨례단, 주년첨례, 성교광익, 성교직해, 성교광익직해, 예수 성탄 첨례, 제성첨례 등의 책들을 일찍이 역관 출신인 최창현(崔昌顯)이 번역하였다고 한다.2) 특히 초기 교회 신자들의 저술(著述)과 예술(藝術)활동 중에서 토착화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진 예로 정약종은 무식한 대중이 어려운 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쥬교요지>를 저술하였고 화가인 이희영(李喜英)은 처음으로 예수상을 그렸다. 또한 이들은 호교활동에 있어서도 갓 태어난 교회 안에서 활발히 또 효과적으로 전개하였다. 법정에서의 뛰어난 호교적 증언뿐 아니라 일상적 복음전파 활동도 박해자들에 의해 유포된 허위와 모함, 오해를 정정, 또는 반박하면서 진리를 옹호하는 노력을 병행하여야 했다.3)

    그들은 평등과 사랑을 바탕으로 한 교우촌과 같은 공동체에서는 몰론 가정 공동체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일치를 드러내었다. 두 쌍의 동정부부 치명 순교자의 예가 아니더라도 이들이 부부생활의 성화를 통해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의 신앙과 사랑의 증인이 된 예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초기 신자들은 하느님의 빛과 성령의 은혜에 힙입어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온전히 참여하여 ‘세상의 빛’으로 복음 선교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3) 평신도 왕직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순명하셨으므로 성부께 들어 높임을 받으시고(필립 2,8-9) 당신 나라의 영광을 차지 하셨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 복종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는 드디어 당신 자신과 이 모든 피조물을 성부께 복종시킴으로써 하느님을 모든 것에 있어서 모든 것이 되시게 하실 것이다(고린 전 15,27-28).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권한을 당신 제자들에게 주시어 그들도 왕다운 자유를 누리면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써 죄가 자신들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고(로마 6,12),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 가운데서도 그리스도께 봉사하고는 겸손과 인내로써 자기 형제들을 그리스도 왕에게로 인도하도록 하셨다. “주께서는 당신 왕국을 또한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확장시키고자 하신다(교회헌장 36항)”. 이러한 권한은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먼저 왕이신 그리스도께 그들 자신이 봉사하기 위한 것이며, 다음에는 사람들이 왕이신 그리스도께 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아포기와 성스러운 생활로 자시 안의 죄의 지배를 극복해야 하며, 사람들에게 왕이신 그리스도께 봉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안에서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겸허와 인내로서 봉사해야 한다. 모든 평신도는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그리스도의 것이 된 영혼 안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을 즉 ‘진리와 생명의 나라’,‘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영적 현실’ 자체이다. 그리스도의 나라는 이 세상 것과 다르지만 이 세상 안에서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4) 초기 교회의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나라를 역사 안에서 이루어 나갔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러한 의무의 전반적인 수행에 있어 평신도들이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밝히는데(교회헌장 36항), 초기 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내적으로 승격된 세속 지식과 자기 활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겸손과 인내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다. 주문모 신부를 도와 열성으로 활동하였던 강완숙 골롬바는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뛰어난 통찰력과 단단한 마음을 지녔었고, 나쁜 행동을 결코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어머니의 까다로운 성격을 잘 참아냈다고 한다. 고결한 그의 마음은 벌써 무엇인가 위대한 것을 갈망하고 있었다. 강골롬바는 덕산(德山)고을에 사는 홍지영(洪芝榮)이라는 상처한 향반에게 시집갔다. 그는 극도로 순박하고 조금도 총명한데가 없었고, 시어머니의 성격도 꽤 까다로왔으나 갖은 노력 끝에 화목할 수 있게 되었다. 강골롬바는 남편의 친척 바오로라는 사람에게서 천주교 이야기를 듣고 곧 진리를 깨달아 그의 영혼과 모든 능력을 기울여 천주교에 열중하였다. 그의 본분을 다하는데 있어서의 부지럼함과 그의 열심과 극기는 감탄할 만하였고, 그는 가족과  친척, 친구들을 입교시키는 데 골몰하였다. 그의 열성은 이웃 동네에까지 미쳤다. 그러나 그는 남편이 도저히 진실한 마음으로 천주교를 실천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골롬바는 시어머니의 완전한 회개를 위해 끊임없이 권하며, 기도하였고 마침내 시어머니도 입교하였다. 그는 처녀들도 많이 모아 입교시키고 교육하였는데, 그 처녀들은 결혼한 후 각기 열성 있는 사도가 되어 그들이 새로 들어간 집안에서 천주교 신앙을 전하여 부모 친척과 친지들을 입교시키는 일이 자주 있었다.5) 이처럼 비상한 정력과 활동력을 타고 났고 하늘의 특별한 은총의 도움을 받은 강골롬바는 그리스도의 왕직에 온전히 참여하여 겸손과 봉사로서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 왕께로 인도하는데 헌신하였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인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잘 구별해야 할 것이라고 천명하였는데(교회헌장 36항), 이는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돌려라’(마태 22,21)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기인한 것으로 이는 지나친 조화론 즉, 교회는 사회, 사회는 곧 교회라는 사상도 아니며, 지나친 구별로 교회와 사회를 이원화하는 것도 아니다. 즉 이는 그 기원과 목적에서는 구별되지만 동시에 서로 중요한 것으로 조화로움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종교를 도외시한 사회 형성을 주장하여 국민의 종교 자유를 탄압하거나 근절하려는 학설은 마땅히 배격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교회헌장 36항).

    충청도 청양(靑陽)고을에서 태어난 이도기(李道起) 바오로는 글을 배우지 않았으나 성령의 학교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천주교의 덕행을 진정으로 실천하는 일을 배웠고, 얼마 안되는 재산 모두를 외교인을 입교시키는데 썼다. 그는 박해자의 주목을 받아 6번이나 이사를 다니다가 마침내 정산(定山) 고을의 어떤 옹기 공장에 가서 자리잡고 조그만한 장사로 살아갔다. 그의 열성으로 곧 온 마을이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감사(監司)의 명령이 내리고 근처의 외교인이 고발하겠다고 협박했으나 그는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신입 교우들에게 악영향을 끼칠까 염려하여 거기에 머물렀고, 1797년 6월 8일 체포되었다. 그는 온갖 모욕과 고문을 겸허와 인내로 견디어 냈다. 관장(官長)이 “공,맹의 도(道)나 불도는 바른 것인데, 너희들은 그것을 배우기를 거절하고 거짓 도리를 찾아 따르며 나라를 휩쓸려 하느냐? 너희는 국왕도, 부모도 모르며 왕의 금령을 어겼으니 죽어 마땅하다” 라고 말하자 그는“저는 무식해서 선비들의 몫으로만 만들어진 공맹의 도는 알지 못하며, 불도는 중들에게만 관계된 것입니다. 그러나 천주교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며 창조주 하느님을 만물의 참 임금이요, 주재자로 설명하고 십계의 4계명을 들어 효도와 충성에 대해 말하였다. 그는 장으로 끌려나가 모욕과 매질을 당하였으나 나흘 후 군장(官長)은 잔치를 벌여 배교자는 잔치에 참석하게 하고 나머지는 죽음을 내린다고 말하였다. 마음이 약해진 동료 교우가 배교의 뜻의 보이자 관장은 이에 용기를 얻어 “자, 너도 천주를 욕하라”고 하자 이도기(李道起;바오로)는 “임금님이 법률을 펴시면 그것을 백성에게 전달하고, 사또께서는 그것을 어기기는 고사하고 그것이 잘 지켜지도록 감독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늘 백성에게 그 참 아버지를 저주하라고 감히 명령하십니까? 저희 나라에는 자기 부모를 저주하는 풍습이 없습니다.” 라고 답하였다. 그후로 그는 끊임없는 굶주림과 추위와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기도를 그치지 않았고 순교의 은혜를 청하였다. 5월에 포졸들은 자주 그를 보러왔고, 문을 별로 지키지 않아 도망가라고 권유하는 것 같았고 또 주위 사람이 도망가라고 권하였으나, 그는 거절하며 말하기를 “만일 우리가 마귀의 함정에 빠져 들어가면 우리 영혼과 우리가 세울 수 있는 모든 공로를 잃을 위험을 당하게 되오”하며 후에는 음식이나 아내가 가져오는 물건을 자주 거절하는 등 극기와 거룩한 생활로 죄가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였다(로마 6,12 참조). 6월 10일 사형집행일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기쁨에 넘쳐 어쩔 줄 몰랐다. 그는 끝가지 남은 힘을 다해 배교할 것을 거절하였고, 극심한 고문 후 “성모 마리아여 네게 하례하나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손바닥만 빼고 온몸이 상처로 알아볼 수 없었으나 숨은 아직 끊어지지 않았다. 그는 물 한잔 먹지 못했고, 관장은 그가 살아있다는 소리를 돋고 망나니들에게 “네놈들이 그놈을 끝장 내지 못하면 네 놈들을 모두 쳐 죽이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그가 다시 살아날까봐 시체에 계속 형벌을 가했다. 이 바오로의 나이는 56세였고 그때는 1798년 6월 12일이었다. 옥사장이는 미망인을 위로하며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왜냐하면 12일 밤에 큰 광채가 당신 남편의 시체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오”6)

    이처럼 초기교회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겸손과 인내로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써 그들을 그리스도 왕께로 인도하였고, 극기와 절제의 생활로 죄가 자신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한국교회 안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는 초석을 놓았으며 교회의 구성원으써 또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써의 자신들의 위치를 올바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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