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구성원
교회 안에는 성직자, 평신도, 수도자가 있는데 이들 서로가 연대해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룬다. 하지만 여기에서 성직자, 평신도, 수도자를 구분된 세 가지 계급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중세 때 흔히 행해진 구분으로서 사회학적 관점이지 신학적 관점은 아니었다. 교회 안에서의 신분과 직무의 여하를 막론하고 하느님 백성 모두가 그리스도교적 완성에로 불리었으며 세례에서 흘러나오는 동일한 존엄성으로 인하여 평신도와 성직자, 수도자들은 모두 함께 교회의 사명에 대한 책임에 동참해야 한다.
1. 평신도
1) 세상 안에서의 평신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고유한 특징을 ‘세속적 성격’이라고 보았다. 특별히 현세적 일에 종사하며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도록 불린 것이 평신도의 소명이다(교회헌장 31항)라고 하였다.
교회는 본래의 내적 본성과 사명에 있어서 진정한 세속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이는 말씀의 육화 신비 안에 깊이 뿌리 박고 있으며, 교회의 구성원들을 통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 실제로 공의회는 세속 안에 있는 평신도의 상황을 기술하면서 무엇보다도 세속은 평신도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자리라고 가리킨다.
평신도들은 세속에 살고 있다. 세속의 온갖 직무와 일, 가정과 사회의 일상 생활에 그들의 존재 자체가 짜여진 것처럼 그 속에 살고 있다.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조건을 단순히 외부적인 환경 구조로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완전한 의미를 찾도록 운명지어진 현실로서 고찰하고 있다. 즉 세속은 평신도들이 자신의 그리스도인 소명을 성취하는 자리가 되고 수단이 된다. 세상 그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도록 운명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성서에 의하면 세상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이 세상의 최종 운명도 이 계획에 따라 결정된다. 세상은 하느님이 만든 아름다운 피조물이지만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악에 물들여져 있으므로 하느님의 구원을 받고 쇄신되어야 할 실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와 죽음의 세력을 결정적으로 분쇄하였으며 피조물인 세상은 노예상태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상은 아직도 최후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이 세상이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여기에 세상안의 교회인 평신도의 소명이 자리하는 것이다.
평신도들은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세상에 온 그리스도처럼 진리의 증인이 되도록 세상에 파견되었으므로 생활의 증거와 말씀의 선포로 자신의 임무를 다함으로써 세상의 성화와 구원을 위하여 불린 것이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세속 안에서의 생활을 통하여 자신의 풍요로운 존엄을 드러내고 실천한다. 또 평신도는 사제와 수도자가 관여할 수 없는 광대한 분야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풍요로운 존엄을 드러내고 실천한다. 또 평신도는 사제와 수도자가 관여할 수 없는 광대한 분야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이 세상 한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불리웠다. 비오 12세는 평신도를 ‘그리스도의 제 일선의 사절단’이라 하였다. 오늘날에 평신도야말로 교회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들을 통해서만 교회가 지닌 생명의 역동성이 인간 사회 전체에 드러내어질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백성으로 모여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있는 지체를 이루는 평신도들은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는 도구요 증인으로서의 소명을 다하도록 불림받은 것이다. 그래서 교회헌장에서는 평신도를 가리켜 “평신도들의 특별한 사명은 평신도를 통해서만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는 그 장소와 환경 속에 교회를 현존케 하고 활동케 하는 그것이다”(교회헌장 33항)라고 하였다.
2) 평신도의 신원(身元)과 사명(使命)
평신도의 신원과 그 사명에 대한 이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서 그 실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평신도를 위한 공의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신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는 교회를 하느님 백성으로 보는 교회헌장 2장에서 찾아볼 있다. 여기서 교회를 교계제도(敎階制度)와 동일시하던 종래의 입장을 극복하고 하느님 백성 전체는 본질적으로 동등한 관계에 놓여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평신도는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예언직과 사제직과 왕직에 참여함으로써 교회와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의 백성 전체의 사명을 완수하는 도구요 증인으로 불린 것이다.
공의회는 이처럼 평신도직을 그리스도론에 입각하여 이해하면서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이 교계적 구분을 벗어나 참된 평등 속에 있음을 주장한다. 그것은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다 함께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평신도가 축성(祝聖)된 자로 서술되어 있으며 바로 이 때문에 사명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장 특징적인 발전은 이 축성과 사명의 연관을 재발견하고 긍정한 데 있을 것이다. 공의회는 또한 세례성사로 인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덕에의 소명을 받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평신도의 신원과 사명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위한 평등성의 원천인 세례성사의 은총과 존엄성 안에서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부여되는 성덕에의 소명에서 보다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구원사명을 수행하도록 불리웠으며 이러한 부르심은 성직자, 평신도, 수도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보편적 부르심이다. 평신도가 교회의 일부기능만을 수행하고 부수적 역할을 이행하는 것으로 사명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평신도의 본질과 임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모든 평신도들은 세례에서 흘러나오는 하나의 존엄성으로 인하여 각자 예언자요 사제요 왕이신 그리스도의 삼중 사명에 참여함으로써 성직자들과 남녀 수도자들과 더불어 교회의 사명에 대한 책임에 동참해야 한다.
가. 평신도의 예언직
말씀을 밝히 알리는 예언직은 하느님 계시의 궁극적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어서 완성되었다. 예언자 중의 예언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영광을 완전히 드러내실 종말 때까지 성직계 뿐만 아니라 평신도를 통해서 당신의 예언직을 성취하신다. 그리스도께 결합되어 성령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 평신도들은 교회의 초자연적 신앙의 인식에 참여하며 또한 말씀의 은총에 참여한다. 평신도들은 가정과 사회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복음의 힘과 그 새로움을 빛내도록 부름받고 있다. 이 복음의 선포, 즉 생활의 증거와 말로써 평신도가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일반 상황 중에서 그리스도를 알리는데 평신도 예언직의 독특성이 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이 예언직의 내용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백성 전체와 각자는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 15)고 하신 주의 명령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하고 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나 그리스도께서 설교뿐 아니라 그들의 업적과 생활을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선포한 것처럼 신약의 백성도 말씀과 실천 생활로써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하는 것이다.
평신도 예언직은 세례 그 자체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예언자적 사명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각인시키며 이를 통하여 마침내 모든 피조물을 하나로 모아 새롭게 하시는(골로 1, 18-20 참조)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일이 곧 평신도의 예언직이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신앙 생활과 신앙 고백을 주저치 않고 결부시킬 때에 예언자가 되는 것이며 이 세상을 다스리는 암흑의 세력과 악신들을 거슬러(에페 6, 12) 싸움으로써 세속 생활 구조에 있어서도 자신의 희망과 미래의 영광을 현시대의 반대 속에서도 인내로이 용기 있게 표명하도록 부름받고 있다.
나. 평신도의 사제직
평신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획기적인 조치는 평신도의 사제직에 대한 언급이라 하겠다. 공의회 이전에 사제직은 성직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일반 사제직을 논의하는 가운데 평신도 또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모든 하느님의 백성, 즉 성직계와 평신도는 하느님의 백성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성세를 받음으로써 신비체의 일원이 되고 공동 명의로 그리스도 사제직의 일원이 된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영혼의 특성으로 하느님을 공경하도록 지명되었고, 따라서 그들의 조건에 따라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한 몫을 차지한다. 이와같이 물과 성령의 도유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평신도의 사제직을 일반사제직이라 한다. 평신도들의 일반사제직과 직무사제직은 정도와 본질에 있어서 구별된다고는 하지만 서로 관련되어 있으며 각기 특수한 모양으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하는 것이다.
평신도들은 왕다운 사제직의 힘으로 성체 봉헌에 참가하고 성사들의 배령과 기도와 감사와 거룩한 생활의 증거와 자아포기와 행동적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일상 생활로써 이 사제직을 수행한다.
다. 평신도의 왕직
평신도들의 왕직 수행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안에서 죄의 지배를 극복하려는 영적인 투쟁 안에서 이루어진다. 왕직은 자기 자신을 바쳐 모든 형제 자매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평신도들이 왕직에 참여한다는 말은 왕답게 봉사한다는 말이고, 왕답게 행동한다는 것은 자유인으로서 결단을 내린다는 뜻이다. 평신도는 하느님께로부터 왕으로 불리웠으며 이는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의 왕적 자유를 얻게 되어 자아포기와 성스러운 생활로써 죄의 지배를 이기고 그리스도께 봉사하여 겸손과 인내로써 사람들을 그리스도 왕께로 인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세상을 섬기며 세상에 봉사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것은 바로 왕권으로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평신도들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각인시키고 모든 피조물을 그 본래의 가치로 회복시키도록 부름받고 있다. 평신도들은 인류의 진정한 행복과 선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기야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권한 행사에 참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나라를 평신도를 통하여 넓히시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이상 하느님 나라가 평신도의 국적이며 그리스도의 왕권의 본질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마르 10, 45) 그리스도의 섬김에 있다.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는 평신도들의 왕도(王道)는 십자가상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께서 취하고 걸으신 그 왕도, 즉 십자가의 왕도, 사랑의 왕도이다. 바로 평신도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희망과 사랑의 표지요 원천으로서 세상의 모든 분야에 현존하게 되는 것이다.
3)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
평신도들은 모든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영적 보화를, 특히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의 도움을 사목자들에게서 풍부히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 안의 형제들로서의 자유와 신뢰를 가지고 이 모든 필요와 소망을 사목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겠다. 평신도들은 자신이 향유하는 지식과 능력과 자격에 따라 교회의 이익을 위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의 의견을 밝힐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그럴 의무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언제나 교회가 그 목적으로 설립한 기구를 통해서 솔직하고 대담하고 지혜롭게 의견을 밝힐 것이며, 그러나 성무를 수행함으로서 그리스도를 대행하는 성직자들에게 대한 존경과 사랑을 결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평신도들은 죽기까지 순명하심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아들다운 자유의 복된 길을 열어 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거룩한 목자들이 스승과 통치자로서 교회 안에서 결정하는 사항을 그리스도교적 순종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겠다. 또한 사목자들은 책임을 지고 우리 영혼을 돌보고 있으므로 그들이 한탄하는 일이 없이 기꺼이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평신도들은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 바치기를 잊지 말 것이다.
거룩한 목자들은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지니고 있는 품위와 책임을 인정하고 향상시켜 줄 것이다. 기꺼이 그들의 의견을 참작하고, 그들을 믿고 교회에 봉사할 일들을 그들에게 맡기며, 행동의 자유와 여유를 그들에게 남겨줄 뿐 아니라 오히려 자발적으로 일을 착수할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할 것이다. 평신도들의 창의와 요청과 소망을 자부적(慈父的) 사랑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존중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현세 국가에서 누리고 있는 정당한 자유를 사목자들은 인정하고 존중할 것이다.
평신도와 사목자들의 이같은 가정적(家庭的) 교류에서 우리는 교회의 허다한 선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평신도들의 책임감이 커지고 정열이 강해지며, 보다 쉽게 사목자들 사업에 평신도들이 협력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또 사목자들은 평신도들의 경험에서 도움을 받아 영신 사정이나 현세 사정에 있어서 보다 명백하고 보다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교회전체가 모든 지체들의 힘을 합하여 현세의 사명을 보다 효과적으로 완수하게 될 것이다.
또한 평신도 각자는 세속에 대하여 예수의 부활과 생명의 증인이어야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표지이어야 한다. 다함께 또는 각기 자기 몫을 따라 영신적 열매를 맺음으로써 세상을 길러 주고, 주께서 친히 복음에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선포하신 청빈의 정신을 가진 사람, 온순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의 정신을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 신자들은 육신 안에서의 영혼의 역할을 세속 안에서 완수해야 하겠다.”
2. 성직자
1) 직무의 계승
예수는 ‘봉사하시는 분’으로서 당신 사도들 가운데 계셨고, 동시에 권위를 가진 분으로서 작은 무리의 중심에 계셨다. 같은 모양으로 사도들에게도 하느님 백성의 종들인 동시에 당신의 권위 있는 대리자가 되는 책임을 지우셨다. 복음서는 이 직무의 부여를 “내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8, 18)하는 말씀으로 서술하고 있다. 구약성서적 배경에서 매고 푼다는 것은 공동체를 다스리고 또 문제를 결정하는 권위를 의미한다. 최후만찬 중에 예수께서는 또한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루가 22, 19)하는 명령을 사도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부활 후에는 사도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으시고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할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3)하고 말씀하셨다. 다스리고 가르치고, 주님의 표징들을 집행하는 것, 이것들은 사도들의 권위로써 하는 것이다.
신약성서에서는 사도들이 자기들의 사목 직무를 계승시키도록 배려한 것이 엿보인다. 사도들은 이미 자신들의 후계자들을 준비시키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의 ‘원로’들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피며 성령께서 맡겨주신 양떼들을 잘 돌보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값을 치루고 얻으신 당신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사도 20, 28). 사도 바오로는 디모테오에게 신앙을 전해주는 사명을 맡긴다. “그대는 많은 증인들이 있는 데서 내가 들려준 것을 믿음직한 사람들에게 전하시오. 그러면 그들도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2디모 2, 2).
사도적 계승은 옛 교부들에게 있어서 가톨릭 신앙의 보증이며 기초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주교들의 계승이 베드로에게서 출발하여 중단없이 이어져 온 것은 교회가 참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사도직 직무와 기능이 인간의 주도권이나 법적 가치를 지닌 단순한 권한을 통해서만 역사 안에서 계승될 수는 없다. 하나의 ‘권한’이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실제로 행사되려면 그것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에게서 와야 한다. 이 때문에 신품성사는 사도들의 시대때부터 안수예식과 더불어 거행되어 왔다. “그대가 선물로 받은 그 거룩한 직무, 곧 원로들이 그대에게 안수하며 예언해 준 말씀을 통해서 그대에게 맡겨진 직무를 등한시하지 마시오”(1디모 4, 14).
신품성사에 의해 부여되는 권한은 다른 서임된 직무들과 무관한 개인의 독점물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머리이시며 그분이 주시는 성령의 선물은 하나의 몸 곧 한 ‘단체’에 전해지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에는 신품성사가 세 가지 교계적 계층 혹은 품으로 구성되는데, 주교품, 사제품, 부제품이다.
2) 주교
주교는 사도들의 후계자이며 지역교회의 목자로서 교회를 하느님의 말씀으로써 돌보며 성사들로써 양육하고 교회를 인도한다. 주교는 신품성사의 충만한 은총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맡겨진 “지역교회에 있어서 일치의 볼 수 있는 원천이며 기초”(교회헌장 23항)가 된다. “주교들은 하느님을 대리하여 양무리를 맡아 그 목자로서 교리의 스승, 거룩한 제사의 사제, 교회의 행정관이 되는 것이다”(교회헌장 20항). 주교와 오늘의 교회가 갖는 관계는 사도들이 초대교회 공동체와 갖던 관계와 같다.
개별적으로 주교는 지역교회의 머리 역할을 맡으며 주교단으로서는 전체 교회와 그 사명을 책임진 자들이다. 주교단은 교회내의 계승과 하느님의 뜻에 의하여 사도단을 계승한 것인데 이 주교단의 으뜸은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다. 이 수위권은 베드로를 사도단의 우두머리로 세우신 그리스도의 명백한 원의에서 유래된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에 주시고자 하셨던 또 다른 주요한 은사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교회가 신앙과 도덕의 가르침을 선포하는 데 그르침이 없도록 해주는 성령의 특별한 보살핌이다.
교회 교도권의 무류성(無謬性)은 주교들 각자에게가 아니라 교황과 일치되어 있는 주교단 전체에게 주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교들이 지역적으로 전세계에 흩어져 있을지라도 그들 상호간에, 그리고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되어 있으면서 신앙과 도덕의 분야에서 명백하고도 최종적인 결정에 다같이 동의할 때 그르침이 없다는 것이다.
3) 사제
교회 초기부터 주교와 더불어 또 다른 직무자들이 등장하였다. 이들 가운데는 특별한 역할을 맡은 자들이 있었는데 ‘장로’ 또는 ‘원로’라 불리는 사제들이다. 이들은 늘 사도들 가까이 있으면서 그들과 함께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교회를 이끌어 가는 이들이다.
사제는 하느님과 형제들을 위하여 전적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신품성사를 통해 사제는 머리이시며 대사제이신 그리스도를 닮게 되며 그리스도와의 깊은 일치와 거룩한 생활로 인해 사제는 그리스도의 산 도구로서 그분을 대행하는 것이다. 완전한 목자적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양무리의 사표(師表)가 되어 교회를 보다 큰 성덕으로 이끄는데 있어서 사목자의 성성이 실현되는 것이다. 사제의 독신생활은 모든 이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불림을 받은 사람인만큼 이에 적합한 생활양식, 즉 자기 목숨을 무조건, 전적으로 바쳐 자유로이 봉사하는 생활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제의 특은과 함께 임무를 띠고 교회내에 현존하는 것은 성령에 의해 생겨난 다른 모든 은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다음 말씀에 따라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실에 근거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요한 15, 16).
사제의 주요 임무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활동하시는 성체성사를 집전하고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하며 신자들의 기도를 자기 희생과 합치시켜 성부께 바쳐드리는 일이다. 이리하여 하느님의 가족을 모으고 아버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교회를 세상 안에 건설하는 것이다. 사제들은 주교와의 친밀한 일치 속에서 자기 직무를 수행하는데 그들은 주교에 의해 안수로써 축성되어 신자들 가운데 파견된 이들이며, 사제 직무에 있어서 직접적이며 으뜸가는 주교의 협력자들이다.
4) 부제
부제의 직무도 성령의 선물이다. 부제라는 직명은 ‘봉사’라고 하는 희랍어에서 나온다. 그의 임무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전례 거행을 거들어줌으로서 하느님과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고무시키는 것이다. 교회 초기부터 사도들은 최초의 보조자들을 선정하고 안수하여 교회의 물질을 관리하고 성사집전을 돕고 전도사로 활약하게 하였다(사도 6, 1-7; 8, 26-40). 이들은 사제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직을 위하여 안수를 받은 것이다. 부제는 전례거행에서 주교나 사제를 보좌하고 장엄하게 세례성사를 집전하고, 성체를 보관하고 분배하며 혼인식과 장례식을 주관하고 준성사를 집전한다.
3. 수도자
교회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구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 안에 계속적으로 현존하시는 사실을 증거하는 표지이다. 그런데 현세의 교회를 구성하는 인간들은 시간 안에 끊임없이 진화하는 역동적 존재이다. 따라서 현세 교회는 역사성을 띠고 있으므로 인간 역사의 흥망성쇠 가운데 성장하고 있으므로, 그 품안에 안고 있는 모든 인간들의 실패와 성공, 비애와 환희, 죄악과 덕행을 함께 지고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종점에서 만물을 갱신하실 때까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순례하고 있다. 교회의 이러한 자의식을 종말론적 의식이라 한다.
인간은 미래의 희망을 앞당기고 싶어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말의 완성을 기다리면서 전진하는 현재의 교회는 완성된 교회의 모습을 어떤 방법으로라도 현재의 인간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이러한 희망의 표지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수도자들이다. 즉 수도자는 청빈, 정결, 순명의 3대 서원을 통하여 자신을 오로지 하느님께 봉헌하여 복음적 권고를 실천하면서 교회의 성성(聖性)의 표지가 되고, 완성되었을 때의 교회의 모습을 미리 증거하는 신자이다. 수도생활의 의미를 개인적인 완덕의 신분의 차원에서만 보지 않고 교회의 종말론적 완성의 증인이라고 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은 그들의 위치와 사명을 더 깊고 근본적인 면에서 재인식시킨다. 교회가 세상 안에 존재하지만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수도자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의 것이 아님을 복음적 권고의 실천으로 증명하기 때문에 수도자는 교회의 종말론적 성격의 증인이 된다. 교회의 종말론적 성격의 증인으로서 수도자의 임무는, 교회의 3대 임무인 예언직과 사제직과 왕직 중에서 특히 예언직에 깊이 참여하고 있다.
수도생활은 지상의 사업을 넘어서 세말에 완성될 교회의 모습, 즉 하느님 나라의 영광과 영생을 미리 이 지상에서 증거하는 생활이기 때문에, 지상생활에 얽매인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진정한 인생의 목적과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일깨워주는 호소요 표지인 것이다. 수도생활은 자아포기와 현세 사물에 대한 애착심의 포기와 타인을 위한 사랑의 희생 등을 통하여, 이 지상의 것이 아무리 좋더라도 하느님 나라의 선에 비기면 아무것도 아님을 일깨워준다. 이것은 결코 현세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천상 가치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수도자 신분은 교계적 구조의 일부는 아니기 때문에, 성직자와 평신도의 사이에 위치하는 중간 상태가 아니다. 성직자나 평신도 양면에서 이와같은 수도성소를 찾을 수 있다(교회헌장 43항, 44항). 수도신분은 하느님 나라의 탁월성을 특수한 모양으로 밝혀주며 그리스도의 위대한 능력과 성령의 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복음적 권고를 서원하는 수도신분은 교회 생명과 성성에 요지 부동하게 속하는 것이다(교회헌장 44항).

교회의 구성원
교회 안에는 성직자, 평신도, 수도자가 있는데 이들 서로가 연대해서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룬다. 하지만 여기에서 성직자, 평신도, 수도자를 구분된 세 가지 계급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중세 때 흔히 행해진 구분으로서 사회학적 관점이지 신학적 관점은 아니었다. 교회 안에서의 신분과 직무의 여하를 막론하고 하느님 백성 모두가 그리스도교적 완성에로 불리었으며 세례에서 흘러나오는 동일한 존엄성으로 인하여 평신도와 성직자, 수도자들은 모두 함께 교회의 사명에 대한 책임에 동참해야 한다.
1. 평신도
1) 세상 안에서의 평신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고유한 특징을 ‘세속적 성격’이라고 보았다. 특별히 현세적 일에 종사하며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추구하도록 불린 것이 평신도의 소명이다(교회헌장 31항)라고 하였다.
교회는 본래의 내적 본성과 사명에 있어서 진정한 세속적 차원을 지니고 있다. 이는 말씀의 육화 신비 안에 깊이 뿌리 박고 있으며, 교회의 구성원들을 통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 실제로 공의회는 세속 안에 있는 평신도의 상황을 기술하면서 무엇보다도 세속은 평신도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자리라고 가리킨다.
평신도들은 세속에 살고 있다. 세속의 온갖 직무와 일, 가정과 사회의 일상 생활에 그들의 존재 자체가 짜여진 것처럼 그 속에 살고 있다. 때문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조건을 단순히 외부적인 환경 구조로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완전한 의미를 찾도록 운명지어진 현실로서 고찰하고 있다. 즉 세속은 평신도들이 자신의 그리스도인 소명을 성취하는 자리가 되고 수단이 된다. 세상 그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도록 운명지어져 있기 때문이다.
성서에 의하면 세상은 하느님의 피조물이며,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이 세상의 최종 운명도 이 계획에 따라 결정된다. 세상은 하느님이 만든 아름다운 피조물이지만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악에 물들여져 있으므로 하느님의 구원을 받고 쇄신되어야 할 실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와 죽음의 세력을 결정적으로 분쇄하였으며 피조물인 세상은 노예상태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세상은 아직도 최후 목표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이 세상이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여기에 세상안의 교회인 평신도의 소명이 자리하는 것이다.
평신도들은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세상에 온 그리스도처럼 진리의 증인이 되도록 세상에 파견되었으므로 생활의 증거와 말씀의 선포로 자신의 임무를 다함으로써 세상의 성화와 구원을 위하여 불린 것이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세속 안에서의 생활을 통하여 자신의 풍요로운 존엄을 드러내고 실천한다. 또 평신도는 사제와 수도자가 관여할 수 없는 광대한 분야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풍요로운 존엄을 드러내고 실천한다. 또 평신도는 사제와 수도자가 관여할 수 없는 광대한 분야에서의 다양한 활동을 통하여 이 세상 한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불리웠다. 비오 12세는 평신도를 ‘그리스도의 제 일선의 사절단’이라 하였다. 오늘날에 평신도야말로 교회의 최전선에 서 있다. 그들을 통해서만 교회가 지닌 생명의 역동성이 인간 사회 전체에 드러내어질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백성으로 모여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살아있는 지체를 이루는 평신도들은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는 도구요 증인으로서의 소명을 다하도록 불림받은 것이다. 그래서 교회헌장에서는 평신도를 가리켜 “평신도들의 특별한 사명은 평신도를 통해서만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는 그 장소와 환경 속에 교회를 현존케 하고 활동케 하는 그것이다”(교회헌장 33항)라고 하였다.
2) 평신도의 신원(身元)과 사명(使命)
평신도의 신원과 그 사명에 대한 이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해서 그 실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졌다. ‘평신도를 위한 공의회’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평신도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는 교회를 하느님 백성으로 보는 교회헌장 2장에서 찾아볼 있다. 여기서 교회를 교계제도(敎階制度)와 동일시하던 종래의 입장을 극복하고 하느님 백성 전체는 본질적으로 동등한 관계에 놓여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평신도는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예언직과 사제직과 왕직에 참여함으로써 교회와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의 백성 전체의 사명을 완수하는 도구요 증인으로 불린 것이다.
공의회는 이처럼 평신도직을 그리스도론에 입각하여 이해하면서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이 교계적 구분을 벗어나 참된 평등 속에 있음을 주장한다. 그것은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다 함께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평신도가 축성(祝聖)된 자로 서술되어 있으며 바로 이 때문에 사명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장 특징적인 발전은 이 축성과 사명의 연관을 재발견하고 긍정한 데 있을 것이다. 공의회는 또한 세례성사로 인하여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덕에의 소명을 받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평신도의 신원과 사명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위한 평등성의 원천인 세례성사의 은총과 존엄성 안에서 그리스도인 각자에게 부여되는 성덕에의 소명에서 보다 명확히 드러날 것이다.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구원사명을 수행하도록 불리웠으며 이러한 부르심은 성직자, 평신도, 수도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보편적 부르심이다. 평신도가 교회의 일부기능만을 수행하고 부수적 역할을 이행하는 것으로 사명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평신도의 본질과 임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모든 평신도들은 세례에서 흘러나오는 하나의 존엄성으로 인하여 각자 예언자요 사제요 왕이신 그리스도의 삼중 사명에 참여함으로써 성직자들과 남녀 수도자들과 더불어 교회의 사명에 대한 책임에 동참해야 한다.
가. 평신도의 예언직
말씀을 밝히 알리는 예언직은 하느님 계시의 궁극적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어서 완성되었다. 예언자 중의 예언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영광을 완전히 드러내실 종말 때까지 성직계 뿐만 아니라 평신도를 통해서 당신의 예언직을 성취하신다. 그리스도께 결합되어 성령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 평신도들은 교회의 초자연적 신앙의 인식에 참여하며 또한 말씀의 은총에 참여한다. 평신도들은 가정과 사회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복음의 힘과 그 새로움을 빛내도록 부름받고 있다. 이 복음의 선포, 즉 생활의 증거와 말로써 평신도가 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일반 상황 중에서 그리스도를 알리는데 평신도 예언직의 독특성이 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것이 예언직의 내용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백성 전체와 각자는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 15)고 하신 주의 명령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하고 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나 그리스도께서 설교뿐 아니라 그들의 업적과 생활을 통하여 하느님의 구원의지를 선포한 것처럼 신약의 백성도 말씀과 실천 생활로써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하는 것이다.
평신도 예언직은 세례 그 자체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예언자적 사명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각인시키며 이를 통하여 마침내 모든 피조물을 하나로 모아 새롭게 하시는(골로 1, 18-20 참조)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는 일이 곧 평신도의 예언직이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신앙 생활과 신앙 고백을 주저치 않고 결부시킬 때에 예언자가 되는 것이며 이 세상을 다스리는 암흑의 세력과 악신들을 거슬러(에페 6, 12) 싸움으로써 세속 생활 구조에 있어서도 자신의 희망과 미래의 영광을 현시대의 반대 속에서도 인내로이 용기 있게 표명하도록 부름받고 있다.
나. 평신도의 사제직
평신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획기적인 조치는 평신도의 사제직에 대한 언급이라 하겠다. 공의회 이전에 사제직은 성직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이해하였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일반 사제직을 논의하는 가운데 평신도 또한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실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고 언명하였다.
모든 하느님의 백성, 즉 성직계와 평신도는 하느님의 백성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한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성세를 받음으로써 신비체의 일원이 되고 공동 명의로 그리스도 사제직의 일원이 된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영혼의 특성으로 하느님을 공경하도록 지명되었고, 따라서 그들의 조건에 따라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한 몫을 차지한다. 이와같이 물과 성령의 도유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 평신도의 사제직을 일반사제직이라 한다. 평신도들의 일반사제직과 직무사제직은 정도와 본질에 있어서 구별된다고는 하지만 서로 관련되어 있으며 각기 특수한 모양으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유일한 사제직에 참여하는 것이다.
평신도들은 왕다운 사제직의 힘으로 성체 봉헌에 참가하고 성사들의 배령과 기도와 감사와 거룩한 생활의 증거와 자아포기와 행동적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일상 생활로써 이 사제직을 수행한다.
다. 평신도의 왕직
평신도들의 왕직 수행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안에서 죄의 지배를 극복하려는 영적인 투쟁 안에서 이루어진다. 왕직은 자기 자신을 바쳐 모든 형제 자매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평신도들이 왕직에 참여한다는 말은 왕답게 봉사한다는 말이고, 왕답게 행동한다는 것은 자유인으로서 결단을 내린다는 뜻이다. 평신도는 하느님께로부터 왕으로 불리웠으며 이는 평신도들이 그리스도의 왕적 자유를 얻게 되어 자아포기와 성스러운 생활로써 죄의 지배를 이기고 그리스도께 봉사하여 겸손과 인내로써 사람들을 그리스도 왕께로 인도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세상을 섬기며 세상에 봉사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께 봉사하는 것은 바로 왕권으로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
평신도들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각인시키고 모든 피조물을 그 본래의 가치로 회복시키도록 부름받고 있다. 평신도들은 인류의 진정한 행복과 선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기야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권한 행사에 참여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나라를 평신도를 통하여 넓히시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이상 하느님 나라가 평신도의 국적이며 그리스도의 왕권의 본질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마르 10, 45) 그리스도의 섬김에 있다.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는 평신도들의 왕도(王道)는 십자가상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께서 취하고 걸으신 그 왕도, 즉 십자가의 왕도, 사랑의 왕도이다. 바로 평신도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희망과 사랑의 표지요 원천으로서 세상의 모든 분야에 현존하게 되는 것이다.
3) 평신도의 권리와 의무
평신도들은 모든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영적 보화를, 특히 하느님의 말씀과 성사의 도움을 사목자들에게서 풍부히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평신도들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 안의 형제들로서의 자유와 신뢰를 가지고 이 모든 필요와 소망을 사목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겠다. 평신도들은 자신이 향유하는 지식과 능력과 자격에 따라 교회의 이익을 위한 일에 대하여 스스로의 의견을 밝힐 권리가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그럴 의무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언제나 교회가 그 목적으로 설립한 기구를 통해서 솔직하고 대담하고 지혜롭게 의견을 밝힐 것이며, 그러나 성무를 수행함으로서 그리스도를 대행하는 성직자들에게 대한 존경과 사랑을 결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평신도들은 죽기까지 순명하심으로써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아들다운 자유의 복된 길을 열어 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거룩한 목자들이 스승과 통치자로서 교회 안에서 결정하는 사항을 그리스도교적 순종으로 기꺼이 받아들여야 하겠다. 또한 사목자들은 책임을 지고 우리 영혼을 돌보고 있으므로 그들이 한탄하는 일이 없이 기꺼이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평신도들은 그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 바치기를 잊지 말 것이다.
거룩한 목자들은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지니고 있는 품위와 책임을 인정하고 향상시켜 줄 것이다. 기꺼이 그들의 의견을 참작하고, 그들을 믿고 교회에 봉사할 일들을 그들에게 맡기며, 행동의 자유와 여유를 그들에게 남겨줄 뿐 아니라 오히려 자발적으로 일을 착수할 수 있도록 그들을 격려할 것이다. 평신도들의 창의와 요청과 소망을 자부적(慈父的) 사랑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존중할 것이다. 모든 사람이 현세 국가에서 누리고 있는 정당한 자유를 사목자들은 인정하고 존중할 것이다.
평신도와 사목자들의 이같은 가정적(家庭的) 교류에서 우리는 교회의 허다한 선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평신도들의 책임감이 커지고 정열이 강해지며, 보다 쉽게 사목자들 사업에 평신도들이 협력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또 사목자들은 평신도들의 경험에서 도움을 받아 영신 사정이나 현세 사정에 있어서 보다 명백하고 보다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교회전체가 모든 지체들의 힘을 합하여 현세의 사명을 보다 효과적으로 완수하게 될 것이다.
또한 평신도 각자는 세속에 대하여 예수의 부활과 생명의 증인이어야 하고 살아 계신 하느님의 표지이어야 한다. 다함께 또는 각기 자기 몫을 따라 영신적 열매를 맺음으로써 세상을 길러 주고, 주께서 친히 복음에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선포하신 청빈의 정신을 가진 사람, 온순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의 정신을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 한 마디로, “그리스도 신자들은 육신 안에서의 영혼의 역할을 세속 안에서 완수해야 하겠다.”
2. 성직자
1) 직무의 계승
예수는 ‘봉사하시는 분’으로서 당신 사도들 가운데 계셨고, 동시에 권위를 가진 분으로서 작은 무리의 중심에 계셨다. 같은 모양으로 사도들에게도 하느님 백성의 종들인 동시에 당신의 권위 있는 대리자가 되는 책임을 지우셨다. 복음서는 이 직무의 부여를 “내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8, 18)하는 말씀으로 서술하고 있다. 구약성서적 배경에서 매고 푼다는 것은 공동체를 다스리고 또 문제를 결정하는 권위를 의미한다. 최후만찬 중에 예수께서는 또한 “나를 기념하여 이 예식을 행하라”(루가 22, 19)하는 명령을 사도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부활 후에는 사도들에게 성령을 불어넣으시고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할 채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 23)하고 말씀하셨다. 다스리고 가르치고, 주님의 표징들을 집행하는 것, 이것들은 사도들의 권위로써 하는 것이다.
신약성서에서는 사도들이 자기들의 사목 직무를 계승시키도록 배려한 것이 엿보인다. 사도들은 이미 자신들의 후계자들을 준비시키는 일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의 ‘원로’들에게 이렇게 권고한다. “여러분은 늘 자신을 살피며 성령께서 맡겨주신 양떼들을 잘 돌보시오. 성령께서는 여러분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값을 치루고 얻으신 당신의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습니다”(사도 20, 28). 사도 바오로는 디모테오에게 신앙을 전해주는 사명을 맡긴다. “그대는 많은 증인들이 있는 데서 내가 들려준 것을 믿음직한 사람들에게 전하시오. 그러면 그들도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2디모 2, 2).
사도적 계승은 옛 교부들에게 있어서 가톨릭 신앙의 보증이며 기초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면 주교들의 계승이 베드로에게서 출발하여 중단없이 이어져 온 것은 교회가 참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사도직 직무와 기능이 인간의 주도권이나 법적 가치를 지닌 단순한 권한을 통해서만 역사 안에서 계승될 수는 없다. 하나의 ‘권한’이 하느님으로부터 와서 실제로 행사되려면 그것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에게서 와야 한다. 이 때문에 신품성사는 사도들의 시대때부터 안수예식과 더불어 거행되어 왔다. “그대가 선물로 받은 그 거룩한 직무, 곧 원로들이 그대에게 안수하며 예언해 준 말씀을 통해서 그대에게 맡겨진 직무를 등한시하지 마시오”(1디모 4, 14).
신품성사에 의해 부여되는 권한은 다른 서임된 직무들과 무관한 개인의 독점물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머리이시며 그분이 주시는 성령의 선물은 하나의 몸 곧 한 ‘단체’에 전해지는 것이다. 오늘의 교회에는 신품성사가 세 가지 교계적 계층 혹은 품으로 구성되는데, 주교품, 사제품, 부제품이다.
2) 주교
주교는 사도들의 후계자이며 지역교회의 목자로서 교회를 하느님의 말씀으로써 돌보며 성사들로써 양육하고 교회를 인도한다. 주교는 신품성사의 충만한 은총으로 말미암아 자기에게 맡겨진 “지역교회에 있어서 일치의 볼 수 있는 원천이며 기초”(교회헌장 23항)가 된다. “주교들은 하느님을 대리하여 양무리를 맡아 그 목자로서 교리의 스승, 거룩한 제사의 사제, 교회의 행정관이 되는 것이다”(교회헌장 20항). 주교와 오늘의 교회가 갖는 관계는 사도들이 초대교회 공동체와 갖던 관계와 같다.
개별적으로 주교는 지역교회의 머리 역할을 맡으며 주교단으로서는 전체 교회와 그 사명을 책임진 자들이다. 주교단은 교회내의 계승과 하느님의 뜻에 의하여 사도단을 계승한 것인데 이 주교단의 으뜸은 베드로의 후계자이며 로마의 주교인 교황이다. 이 수위권은 베드로를 사도단의 우두머리로 세우신 그리스도의 명백한 원의에서 유래된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에 주시고자 하셨던 또 다른 주요한 은사를 강조하는데, 그것은 교회가 신앙과 도덕의 가르침을 선포하는 데 그르침이 없도록 해주는 성령의 특별한 보살핌이다.
교회 교도권의 무류성(無謬性)은 주교들 각자에게가 아니라 교황과 일치되어 있는 주교단 전체에게 주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교들이 지역적으로 전세계에 흩어져 있을지라도 그들 상호간에, 그리고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되어 있으면서 신앙과 도덕의 분야에서 명백하고도 최종적인 결정에 다같이 동의할 때 그르침이 없다는 것이다.
3) 사제
교회 초기부터 주교와 더불어 또 다른 직무자들이 등장하였다. 이들 가운데는 특별한 역할을 맡은 자들이 있었는데 ‘장로’ 또는 ‘원로’라 불리는 사제들이다. 이들은 늘 사도들 가까이 있으면서 그들과 함께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교회를 이끌어 가는 이들이다.
사제는 하느님과 형제들을 위하여 전적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신품성사를 통해 사제는 머리이시며 대사제이신 그리스도를 닮게 되며 그리스도와의 깊은 일치와 거룩한 생활로 인해 사제는 그리스도의 산 도구로서 그분을 대행하는 것이다. 완전한 목자적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양무리의 사표(師表)가 되어 교회를 보다 큰 성덕으로 이끄는데 있어서 사목자의 성성이 실현되는 것이다. 사제의 독신생활은 모든 이에게 봉사할 수 있도록 불림을 받은 사람인만큼 이에 적합한 생활양식, 즉 자기 목숨을 무조건, 전적으로 바쳐 자유로이 봉사하는 생활을 반영하는 것이다.
사제의 특은과 함께 임무를 띠고 교회내에 현존하는 것은 성령에 의해 생겨난 다른 모든 은사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다음 말씀에 따라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실에 근거한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요한 15, 16).
사제의 주요 임무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활동하시는 성체성사를 집전하고 그리스도의 신비를 선포하며 신자들의 기도를 자기 희생과 합치시켜 성부께 바쳐드리는 일이다. 이리하여 하느님의 가족을 모으고 아버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교회를 세상 안에 건설하는 것이다. 사제들은 주교와의 친밀한 일치 속에서 자기 직무를 수행하는데 그들은 주교에 의해 안수로써 축성되어 신자들 가운데 파견된 이들이며, 사제 직무에 있어서 직접적이며 으뜸가는 주교의 협력자들이다.
4) 부제
부제의 직무도 성령의 선물이다. 부제라는 직명은 ‘봉사’라고 하는 희랍어에서 나온다. 그의 임무는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가난한 자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전례 거행을 거들어줌으로서 하느님과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고무시키는 것이다. 교회 초기부터 사도들은 최초의 보조자들을 선정하고 안수하여 교회의 물질을 관리하고 성사집전을 돕고 전도사로 활약하게 하였다(사도 6, 1-7; 8, 26-40). 이들은 사제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봉사직을 위하여 안수를 받은 것이다. 부제는 전례거행에서 주교나 사제를 보좌하고 장엄하게 세례성사를 집전하고, 성체를 보관하고 분배하며 혼인식과 장례식을 주관하고 준성사를 집전한다.
3. 수도자
교회는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구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 안에 계속적으로 현존하시는 사실을 증거하는 표지이다. 그런데 현세의 교회를 구성하는 인간들은 시간 안에 끊임없이 진화하는 역동적 존재이다. 따라서 현세 교회는 역사성을 띠고 있으므로 인간 역사의 흥망성쇠 가운데 성장하고 있으므로, 그 품안에 안고 있는 모든 인간들의 실패와 성공, 비애와 환희, 죄악과 덕행을 함께 지고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종점에서 만물을 갱신하실 때까지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면서 순례하고 있다. 교회의 이러한 자의식을 종말론적 의식이라 한다.
인간은 미래의 희망을 앞당기고 싶어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말의 완성을 기다리면서 전진하는 현재의 교회는 완성된 교회의 모습을 어떤 방법으로라도 현재의 인간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이러한 희망의 표지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수도자들이다. 즉 수도자는 청빈, 정결, 순명의 3대 서원을 통하여 자신을 오로지 하느님께 봉헌하여 복음적 권고를 실천하면서 교회의 성성(聖性)의 표지가 되고, 완성되었을 때의 교회의 모습을 미리 증거하는 신자이다. 수도생활의 의미를 개인적인 완덕의 신분의 차원에서만 보지 않고 교회의 종말론적 완성의 증인이라고 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은 그들의 위치와 사명을 더 깊고 근본적인 면에서 재인식시킨다. 교회가 세상 안에 존재하지만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수도자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의 것이 아님을 복음적 권고의 실천으로 증명하기 때문에 수도자는 교회의 종말론적 성격의 증인이 된다. 교회의 종말론적 성격의 증인으로서 수도자의 임무는, 교회의 3대 임무인 예언직과 사제직과 왕직 중에서 특히 예언직에 깊이 참여하고 있다.
수도생활은 지상의 사업을 넘어서 세말에 완성될 교회의 모습, 즉 하느님 나라의 영광과 영생을 미리 이 지상에서 증거하는 생활이기 때문에, 지상생활에 얽매인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진정한 인생의 목적과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일깨워주는 호소요 표지인 것이다. 수도생활은 자아포기와 현세 사물에 대한 애착심의 포기와 타인을 위한 사랑의 희생 등을 통하여, 이 지상의 것이 아무리 좋더라도 하느님 나라의 선에 비기면 아무것도 아님을 일깨워준다. 이것은 결코 현세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천상 가치의 위대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수도자 신분은 교계적 구조의 일부는 아니기 때문에, 성직자와 평신도의 사이에 위치하는 중간 상태가 아니다. 성직자나 평신도 양면에서 이와같은 수도성소를 찾을 수 있다(교회헌장 43항, 44항). 수도신분은 하느님 나라의 탁월성을 특수한 모양으로 밝혀주며 그리스도의 위대한 능력과 성령의 능력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복음적 권고를 서원하는 수도신분은 교회 생명과 성성에 요지 부동하게 속하는 것이다(교회헌장 44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