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아퀴나스의 은총이론-토마스의 체계적 이론: 자연과 초자연

 

제10장 토마스 아퀴나스의 은총이론


10. 1. 토마스의 체계적 이론: 자연과 초자연


그리스도의 은총에의 충만성에 관해서 논하고 있는 Compendium theologiae ad Fratrem Reginaldum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은총에 관한 그의 이론의 매우 치밀한 이론을 몇 페이지 안에서 드러내고 있다. 그는 한 피조물이 어떻게 하느님의 선물을 더욱 더 나누게 되고 또 어떻게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되는 가를 설명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매우 다양한 문맥 안에서 은총의 신학을 소개하고 있음을 그의 신학대전에서 볼 수 있다. I-II에서 6문항, 109-113문에서 은총에 관해 다루고 있다.




        109문: 은총의 필요성, 110문: 은총은 어떻게 성립되는가, 111문: 은총의 구분, 112문: 은총의 주체, 113문: 은총의 효과, 114문: 공로를 다루고 있다.




        109문: 은총의 필요성


        1항: 하느님이 우리에게 이성을 주고 보존하며 그것을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는 신앙의 빛, 저세상에서는 영광의 빛 없이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다.


        2항: 원죄 이전의 인간은 그 본성에 적합한 선을 얻기에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초자연적 선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범죄 이후에는 마치 병자처럼 초자연적 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자연적인 선을 위해서도 충분한 힘을 지닐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이중의 도움이 필요하다. 치유하는 은총과 작용하는 은총(이끌어주는 조력 은총 이외에도).


        3항: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온전한 본성 상태에서는 가능하였다. 물론 초자연적 질서로까지 고양되지는 못했지만 아직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모든 사물에서도 그렇듯이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때의 인간에게는 이끌어 주는 은총(gratia movens)만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부패된 본성 상태에 있는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치유하는 은총(gratia sanans)이 필요하다.


        4항: 은총 없이도 모든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범죄 이전의 인간은 할 수 있었지만 범죄 이후의 인간은 ‘치유하는 은총’없이 가능하지 않다. 신의 초자연적인 사랑은 범죄 이전의 인간조차도 가능하지 않았다.


        5항: 범죄 이전의 인간도 은총 없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의 본성적 능력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6항: 선을 행하고 이와 함께 하느님을 직관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성화은총(gratia sanctificans)이다. 그러나 그것을 얻기에 합당할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는 선한 생각들을 자극하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의지를 제일 먼저 움직이는 것은 목적인데, 여기서 그 목적은 자연적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므로 어떤 특별한 움직임(동인)이 필요하다.


        7항: 범죄로부터 다시 일어설 수 있기 위해서도 은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하느님이 성화은총을 주고 의지를 올곧게 교정하고 죄의 해악을 치유하기 위한 영벌을 용서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도 더욱 은총이 필요하다.


        8항: 온전한 본성 상태 속에서는 인간은 보호해 주는 하느님의 섭리 때문에 사죄들과 경죄들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회복된 본성 상태 속에서도 인간은 사죄들과 경죄들을 피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경죄들을 모두 다 피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범죄 상태 속에서 인간은 경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사죄에 대해서도 너무도 나약하기 때문에 죄를 범하지 않고 오려 견뎌 나갈 수 없다. 왜냐하면 죄악들의 무게가 그를 자꾸 잡아 끌어 내리기 때문이다.


        9항: 죄로부터의 억제는 소극적인 부분이다. 적극적인 부분은 선행을 행하고 악을 예방하는 일이다. 그러나 탐욕과 무지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의인들도 현실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필요로 한다.


        10항: 의인이 모든 유혹을 거슬러 은총의 상태에 항구하게 남아 있기 위해서는 특별한 질서의 현실적인 은총이 필요하다. 그것은  ‘궁극적인 인내심(perseverantia finalis)’의 은총이다.


이 글은 카테고리: catholicdictionary3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토마스 아퀴나스의 은총이론-토마스의 체계적 이론: 자연과 초자연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10장 토마스 아퀴나스의 은총이론

    10. 1. 토마스의 체계적 이론: 자연과 초자연

    그리스도의 은총에의 충만성에 관해서 논하고 있는 Compendium theologiae ad Fratrem Reginaldum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은총에 관한 그의 이론의 매우 치밀한 이론을 몇 페이지 안에서 드러내고 있다. 그는 한 피조물이 어떻게 하느님의 선물을 더욱 더 나누게 되고 또 어떻게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가게되는 가를 설명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매우 다양한 문맥 안에서 은총의 신학을 소개하고 있음을 그의 신학대전에서 볼 수 있다. I-II에서 6문항, 109-113문에서 은총에 관해 다루고 있다.


            109문: 은총의 필요성, 110문: 은총은 어떻게 성립되는가, 111문: 은총의 구분, 112문: 은총의 주체, 113문: 은총의 효과, 114문: 공로를 다루고 있다.


            109문: 은총의 필요성

            1항: 하느님이 우리에게 이성을 주고 보존하며 그것을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다. 이 세상에서는 신앙의 빛, 저세상에서는 영광의 빛 없이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다.

            2항: 원죄 이전의 인간은 그 본성에 적합한 선을 얻기에 충분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초자연적 선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범죄 이후에는 마치 병자처럼 초자연적 선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자연적인 선을 위해서도 충분한 힘을 지닐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이중의 도움이 필요하다. 치유하는 은총과 작용하는 은총(이끌어주는 조력 은총 이외에도).

            3항: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온전한 본성 상태에서는 가능하였다. 물론 초자연적 질서로까지 고양되지는 못했지만 아직 부패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모든 사물에서도 그렇듯이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때의 인간에게는 이끌어 주는 은총(gratia movens)만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부패된 본성 상태에 있는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치유하는 은총(gratia sanans)이 필요하다.

            4항: 은총 없이도 모든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범죄 이전의 인간은 할 수 있었지만 범죄 이후의 인간은 ‘치유하는 은총’없이 가능하지 않다. 신의 초자연적인 사랑은 범죄 이전의 인간조차도 가능하지 않았다.

            5항: 범죄 이전의 인간도 은총 없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그의 본성적 능력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6항: 선을 행하고 이와 함께 하느님을 직관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성화은총(gratia sanctificans)이다. 그러나 그것을 얻기에 합당할 준비를 갖추기 위해서는 선한 생각들을 자극하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의지를 제일 먼저 움직이는 것은 목적인데, 여기서 그 목적은 자연적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므로 어떤 특별한 움직임(동인)이 필요하다.

            7항: 범죄로부터 다시 일어설 수 있기 위해서도 은총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하느님이 성화은총을 주고 의지를 올곧게 교정하고 죄의 해악을 치유하기 위한 영벌을 용서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도 더욱 은총이 필요하다.

            8항: 온전한 본성 상태 속에서는 인간은 보호해 주는 하느님의 섭리 때문에 사죄들과 경죄들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회복된 본성 상태 속에서도 인간은 사죄들과 경죄들을 피할 수 있다. 그렇지만 경죄들을 모두 다 피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범죄 상태 속에서 인간은 경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사죄에 대해서도 너무도 나약하기 때문에 죄를 범하지 않고 오려 견뎌 나갈 수 없다. 왜냐하면 죄악들의 무게가 그를 자꾸 잡아 끌어 내리기 때문이다.

            9항: 죄로부터의 억제는 소극적인 부분이다. 적극적인 부분은 선행을 행하고 악을 예방하는 일이다. 그러나 탐욕과 무지가 남아 있기 때문에 의인들도 현실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필요로 한다.

            10항: 의인이 모든 유혹을 거슬러 은총의 상태에 항구하게 남아 있기 위해서는 특별한 질서의 현실적인 은총이 필요하다. 그것은  ‘궁극적인 인내심(perseverantia finalis)’의 은총이다.

guest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