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신적 기원-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대외활동

 



6. 선교의 신적 기원




선교는 보내다(αποστελλω)에 기원을 둔 것으로, 파견되고, 알리고, 교회를 건설하는 의미뿐 아니라 삼위일체적인 신적인 친교를 나눔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요한3,16-17). 삼위일체적 사랑의 분출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기에, 삼위일체적 사랑의 분출이 선교의 기원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구원과 사랑이라는 기쁜 소식의 확장과 나눔으로 이해되는 오늘의 선교는, 그리스도인이 만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 및 내적 쇄신과 변화, 그리고 친교를 모든 사람과 나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그네길을 가고 있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니 그것은 성부의 계획을 따라 교회가 성자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서 그 기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선교2). 공의회는 교회의 신비를 관상하고 ‘교회와 세상의 관계’라는 개방적인 관점을 택함으로써 선교활동에 대한 신학적 고찰과 구체적인 지시를 가능하게 하였다.




1.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대외활동




교회의 선교활동의 동기를 단순히 예수의 선교명령(마태28,18)에서 찾는 것은 구세사적 의미에서 볼 때 너무 피상적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요한17,18)하신 말씀을 따라 삼위일체적이고 그리스도론적인 토대에서부터 이해해야 한다. 전통적 그리스도교는 삼위일체 사이의 상호 인정과 철저한 결속 안에서 강렬한, 하느님 안에서의 통교를 Missio란 단어(파견, 선교, 전달)로 묘사하려 했다.1) 선교교령은 교회의 선교활동이 하느님의 원천적인 사랑에 의한 하느님의 외향적 파견(Missio ad extra; 구원경륜적 삼위일체: economic Trinity) 안에 근본적으로 그 기초를 두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이 파견들은 하느님 자신 안에서의 대내활동 즉 성부는 성자를 파견하시고, 성자는 성부로부터 파견되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Missio ad intra; 내재적 삼위일체: immanent Trinity)하신 것이 원초적 선교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2). 말씀이 사람이 되시고 그리스도의 전 생애(부활의 신비, 성령의 강림)가 교회와 세상 안에 계속되는 이 파견(선교)은 인간을 한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 당신 전부를 우리에게 내어 주시는 사랑의 유출이요 동시에 하느님 자신이 사랑 자체이심을 드러내어 보이시는 계시이고 당신의 생명(친교)에 참여하도록 하시는 초대이다. 이 신학적, 명상적, 삼위일체적인 선교는 사도직의 의미를 16-17세기의 지리적, 조직적 개념으로 축소시킬 수 없는 것으로, 인격적이고 공동체적인 그리스도교 생활 양식을 제시한다.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이 성자와 성령을 파견하신 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써 자신을 인간들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창조와 구원과 성화는 역사 안에서 자신을 양도하는 것으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무상의 구원으로 부르신다(구원의 보편성; 선교3).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1디모2,4).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보편성을 띠고 하느님의 원천적 사랑으로부터 소사 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을 통하여 구체화되고 현실화되며(선교2, 3), 교회 안에서 열매를 맺으며 계속되고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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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6. 선교의 신적 기원


    선교는 보내다(αποστελλω)에 기원을 둔 것으로, 파견되고, 알리고, 교회를 건설하는 의미뿐 아니라 삼위일체적인 신적인 친교를 나눔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다(요한3,16-17). 삼위일체적 사랑의 분출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기에, 삼위일체적 사랑의 분출이 선교의 기원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구원과 사랑이라는 기쁜 소식의 확장과 나눔으로 이해되는 오늘의 선교는, 그리스도인이 만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 및 내적 쇄신과 변화, 그리고 친교를 모든 사람과 나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그네길을 가고 있는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니 그것은 성부의 계획을 따라 교회가 성자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에서 그 기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선교2). 공의회는 교회의 신비를 관상하고 ‘교회와 세상의 관계’라는 개방적인 관점을 택함으로써 선교활동에 대한 신학적 고찰과 구체적인 지시를 가능하게 하였다.


    1.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대외활동


    교회의 선교활동의 동기를 단순히 예수의 선교명령(마태28,18)에서 찾는 것은 구세사적 의미에서 볼 때 너무 피상적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이 사람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요한17,18)하신 말씀을 따라 삼위일체적이고 그리스도론적인 토대에서부터 이해해야 한다. 전통적 그리스도교는 삼위일체 사이의 상호 인정과 철저한 결속 안에서 강렬한, 하느님 안에서의 통교를 Missio란 단어(파견, 선교, 전달)로 묘사하려 했다.1) 선교교령은 교회의 선교활동이 하느님의 원천적인 사랑에 의한 하느님의 외향적 파견(Missio ad extra; 구원경륜적 삼위일체: economic Trinity) 안에 근본적으로 그 기초를 두고 있음을 언급하면서, 이 파견들은 하느님 자신 안에서의 대내활동 즉 성부는 성자를 파견하시고, 성자는 성부로부터 파견되시고,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발출(Missio ad intra; 내재적 삼위일체: immanent Trinity)하신 것이 원초적 선교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2). 말씀이 사람이 되시고 그리스도의 전 생애(부활의 신비, 성령의 강림)가 교회와 세상 안에 계속되는 이 파견(선교)은 인간을 한없이 사랑하시는 하느님 당신 전부를 우리에게 내어 주시는 사랑의 유출이요 동시에 하느님 자신이 사랑 자체이심을 드러내어 보이시는 계시이고 당신의 생명(친교)에 참여하도록 하시는 초대이다. 이 신학적, 명상적, 삼위일체적인 선교는 사도직의 의미를 16-17세기의 지리적, 조직적 개념으로 축소시킬 수 없는 것으로, 인격적이고 공동체적인 그리스도교 생활 양식을 제시한다.

    인간을 위하여 하느님이 성자와 성령을 파견하신 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써 자신을 인간들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창조와 구원과 성화는 역사 안에서 자신을 양도하는 것으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무상의 구원으로 부르신다(구원의 보편성; 선교3).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 되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1디모2,4).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보편성을 띠고 하느님의 원천적 사랑으로부터 소사 나와 예수 그리스도의 파견과 성령의 파견을 통하여 구체화되고 현실화되며(선교2, 3), 교회 안에서 열매를 맺으며 계속되고 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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