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 Appellation

  항소  抗訴   Appellation

  법률적으로 송사가 발생했을 경우, 그 시비를 가리기 위해서 상급심에 탄원을 제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법정이 상급심에 해당하는가라는 물음을 둘러싼 논쟁은 교회 내에서 두 가지 측면에서 진행되어 왔다.


  첫 번째 측면은 5세기 초 북아프리카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건을 통해 발단되었다. 북아프리카에서 어떤 사제가 비도덕적인 생활 때문에 교구 주교로부터 면직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제는 즉시 교황 조시모(Zosimus)에게 사건의 해결을 청원하기에 이르렀다. 교황은 사건의 진상을 자세하게 알아보지도 않고서 주교에게 사제를 복권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주교는 교황의 요구에 불복하였다. 하지만 418년에 개최된 아프리카 전체 주교 회의는 성직자들에게 국외의 법정에 상소하는 것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교황 첼레스티노 1세 역시 이 사건에 관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인 사제가 자신의 주교를 거슬러 교황에게 다시금 상소를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문제는 개별적인 차원의 사안에 머물지 아니하고 상급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 발전되었다. 교황은 ꡒ로마가 상소를 심의할 수 있는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ꡓ고 주장한 반면, 420년 카르타고에서 소집된 시노드에 참석한 아프리카의 주교들은 ꡒ자신들이 상급심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ꡓ고 주장하였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침공하는 재난으로 말미암아 생각보다 일찍 종식되었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교황이 주교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로 귀착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사고가 발달됨으로써 교황에게 최고의 법정으로서의 역할이 위임되었다.


  상급심에 대한 논쟁을 둘러싼 두 번째 측면은 훨씬 나중에 등장하였다. 두 번째 측면은 공의회 지상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로써 ꡒ주교 또는 교황에게 최고 결정권이 귀속되는가ꡓ라는 물음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이제는 공의회가 교황보다 더 우위에 있는 최고 법정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므로 교황을 반대하여 공의회에 상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교황들과 후에 개최되었던 공의회들은 공의회 지상주의를 분명하게 배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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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항소  抗訴   Appellation

      법률적으로 송사가 발생했을 경우, 그 시비를 가리기 위해서 상급심에 탄원을 제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법정이 상급심에 해당하는가라는 물음을 둘러싼 논쟁은 교회 내에서 두 가지 측면에서 진행되어 왔다.

      첫 번째 측면은 5세기 초 북아프리카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건을 통해 발단되었다. 북아프리카에서 어떤 사제가 비도덕적인 생활 때문에 교구 주교로부터 면직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제는 즉시 교황 조시모(Zosimus)에게 사건의 해결을 청원하기에 이르렀다. 교황은 사건의 진상을 자세하게 알아보지도 않고서 주교에게 사제를 복권시킬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주교는 교황의 요구에 불복하였다. 하지만 418년에 개최된 아프리카 전체 주교 회의는 성직자들에게 국외의 법정에 상소하는 것을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교황 첼레스티노 1세 역시 이 사건에 관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인 사제가 자신의 주교를 거슬러 교황에게 다시금 상소를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문제는 개별적인 차원의 사안에 머물지 아니하고 상급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 발전되었다. 교황은 ꡒ로마가 상소를 심의할 수 있는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ꡓ고 주장한 반면, 420년 카르타고에서 소집된 시노드에 참석한 아프리카의 주교들은 ꡒ자신들이 상급심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ꡓ고 주장하였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침공하는 재난으로 말미암아 생각보다 일찍 종식되었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교황이 주교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는가 없는가 하는 문제로 귀착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교황의 수위권에 대한 사고가 발달됨으로써 교황에게 최고의 법정으로서의 역할이 위임되었다.

      상급심에 대한 논쟁을 둘러싼 두 번째 측면은 훨씬 나중에 등장하였다. 두 번째 측면은 공의회 지상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로써 ꡒ주교 또는 교황에게 최고 결정권이 귀속되는가ꡓ라는 물음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되지 않았다. 이제는 공의회가 교황보다 더 우위에 있는 최고 법정으로 인정되었다. 그러므로 교황을 반대하여 공의회에 상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하지만 교황들과 후에 개최되었던 공의회들은 공의회 지상주의를 분명하게 배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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