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록과 수난기 ,폴리카르푸스 순교록,비엔과 리용공동체의편지,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 수난기

 

순교록과 수난기

4.2.1. 「폴리카르푸스 순교록」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푸스의 사망 연도는 순교록에서도 결정적인 단서를 제시하지 않는다. 순교록은 스미르나의 공동체가 필로멜리움의 공동체와 다른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에 보내는 글과 인사말로 시작한다. 그 다음 서술에 관한 신학적 의도와 방법을 소개한다. 곧, 「폴리카르푸스 순교록」은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을 격려하기 위하여 폴리카르푸스가 복음에 따라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배교시키기 위해 행해진 온갖 고문, 위협, 설득, 약속을 의연히 견디어낸 순교자들에 대한 찬미와 박해에서 배교한 사람들을 경고하는 내용이 뒤따른다.

이러한 배경에서 「폴리카르푸스 순교록」은 실제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폴리카르푸스는 공동체의 권유에 따라 도시 밖의 농가로 피신하였으며, 그에 대한 수색이 계속되자 은신처를 다시 옮겼다. 그러나 어떤 노예가 고문에 못이겨 그가 머무르는 곳을 누설함으로써 추적자들이 그를 체포하려고 몰려왔다. 이때 그는 친절한 주인처럼 그들을 맞이하였으며 그들을 대접하고 두 시간 동안 물러나 기도하였다. 치안관은 경기장으로 가는 길에 배교하도록 설득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 하늘에서 소리가 울리며 폴리카르푸스를 격려하였으며, 소송은 일반적인 신문처럼 시작되었다. 전집정관은 그의 이름을 묻고 나서 보통 하듯이 그를 배교시키려 하였으며, 마침내 황제의 수호신에게 맹세할 것을 명령하였다. 폴리카르푸스는 오히려 전집정관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르치려 하였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였다. 고문, 죽음, 그밖의 위협적인 수단도 폴리카르푸스를 배교시킬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고발자들을 영원한 지옥불로 위협하였다. 그 다음에 이교인과 유다인은 화형을 위한 장작더미를 준비하였다. 불이 그의 몸을 태우지 못하자 전집정관은 사형집행인에게 단도로 그를 찔러 죽이게 하였다. 그의 시신은 유다인의 부추김으로 화장되었으나, 그리스도인들이 유골을 모아 경건하게 매장하였다. 편지의 결론은 순교자를 찬미하고 그의 본보기를 따를 것을 권유하면서 끝난다.

콘젤만은 결론에 이어지는 연도에 관한 진술과 기도를, 캄펜하우젠이 이름 붙인 이른바 “복음서-편집자”의 글로 돌리고 있다. 여기서는 먼저 열두 순교자에 관한 보고를 전하는데 폴리카르푸스의 순교가 정점을 이룬다. 편집자는 폴리카르푸스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신학사상, 곧 복음에 따라 그리스도를 본받음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이와 달리 부쉬만과 의견을 같이하는 데한트슈터는 본문 전체의 편집적 일치를 주장한다. 이 경우에는 21장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첨가되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폴리카르푸스의 태도와 순교 당시 일어난 놀라운 사건들 및 순교 과정의 신학적․영적 의미에서 순교자 보고의 전형적 요소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두드러진 반유다적 기술은 「가-피오니우스 순교록」에서만 나타나듯이 예외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4.2.2. 「비엔과 리용 공동체의 편지」

폴리카르푸스가 순교한 지 10년 뒤 비엔과 루그두눔의 갈리아 공동체에 박해가 일어났다. 이 사실은 공동체들이 “아시아와 프리기아의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 수 있으며, 이들의 편지는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남아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 대다수가 분명히 소아시아 출신이었기 때문에, 편지는 아마도 그들의 모공동체에 보내진 것 같다.

편지는 수신인에 관한 통례적인 내용으로 시작되며, 그 다음 박해에 앞서 일어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일반적인 집회금지를 보고한다. 오뎅에 따르면, 177년 4월 초에서 8월 3일까지 일어난 순교에 관한 서술은 순교를 악마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해석한다. 그러고 나서 난폭한 군중들의 괴롭힘, 고위 관리가 광장에서 행한 신문, 순교자의 고백, 고문 기구로 위협하는 내용이 뒤따른다. 그 다음 피고인들은 소송을 담당한 최고 재판관이 도착할 때까지 감옥에 갇혔다. 고발 내용은 무신론과 제신을 숭배하지 않은 것이었다. 몇몇 사람은 배교하였으며, 게다가 그리스도인에 대한 대중적인 중상을 거짓 증언하였다. 이 중상에 관해 편집자는 요한복음 16장 2절을 인용하면서 주석한다.

1,16-63 단락은 네 명의 주요 인물, 곧 비엔의 부제 상투스, 갓 세례받은 마르투스, 아탈루스, 블란디나와 이름은 모르지만 순교의 고난을 함께한 사람의 순교에 관하여 설명한다. 모든 사람이 신앙을 고백하였으며, 이때문에 배교하거나 범행을 시인하도록 며칠 동안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고문을 받은 뒤 감옥에서 죽었으며, 그들 가운데에는 90세가 넘은 리용의 주교 포티누스도 있었다. 그러나 고문으로 생긴 사람들의 상처는 불가사의하게 치유되었다. 배교자들은 순교자들의 확고부동한 증언에 영향을 받고, 그들이 배교하였지만 자신들에게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자 다시 개종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에게 일반적으로 부과된 벌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편집자는 순교의 의미와 가치를 성서에 기반을 두고 신학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이 모든 과정을 묵시적으로 예언된 동물의 박해로 해석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참수형이 선고되자마자 처형되었다. 그러나 순교자들의 시신은 온전히 남아 있지 않았다. 박해자들은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개에게 먹이로 주었으며, 남은 시신은 그리스도인의 부활에 대한 희망을 없애려고 화장하여 론 강에 재를 뿌렸다.

편지는 박해가 끝난 뒤의 상황을 간략히 서술하면서 끝난다. “순교자”는 그리스도와 순교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경칭이었기 때문에, 박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순교자”라는 명칭을 단호히 거부하고, 단지 “고백자들”로 불리기 원하였다. 이때문에 두 개념은 이후 일반적으로 구분되어 사용되었다. 고백자들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동정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이러한 선례는 뒤에서 일어난 박해, 특히 250/51년 데치우스 황제가 일으킨 박해 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곧, 고백자들의 수난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배교를 대신 속죄하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는 데치우스 황제가 일으킨 박해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심을 강하게 하기 우해 편지를 전체적으로 개작하였음을 시사한다.



4.2.3.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 수난기」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 수난기」는 순교에 관한 가장 감동적이고, 이후 수백년 동안 순교 보고서의 전형이 된 작품이다. 이 기록은 형식에서 후대의 모든 순교 보고서의 원형이 되고, 널리 퍼져 이 두명의 성인을 공경하는 토대가 되었으며, 그들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로마의 성찬기도에 실려 있다. 수난기는 북아프리카의 도시 투부르보의 상류 가정 출신인 비비아 페르페투아라는 스물두살의 젊은 부인, 젊고 만삭인 여자 노예이자 세례지원자인 펠리치타스, 또 다른 세례지원자인 남자 노예 레보카투스, 사투루스와 세쿤둘루스라는 두 남자의 순교에 관하여 보고한다. 수난기에 따르면 이들은 in natali Getae Caesa-ris에 순교하였다.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이 날은 황제가 즉위한 날이 아니라 태어난 날이다. 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그가 태어난 해를 203년으로 추측한다.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 수난기」는 21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난기는 페르페투아와 사투루스의 말 및 요한의 묵시록과 「헤르마스의 목자」를 강하게 상기시키는 묵시록적 요소들과 순교자 보고를 결합하기 때문에 문학적으로 독특한 작품이다. 편집자는 먼저 순교에 관한 숙고로 서문을 시작한다. 이러한 숙고는 몬타누스주의와 유사한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저자를 테르툴리아누스로 추측하기도 하였다. 이전의 순교자들이 보여준 본보기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확증과 신자들의 교화를 위한 의미를 지녔지만 여기서는 성령의 새로운 활동, 새 예언, 환시를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다음으로 순교자들의 이름과 가족 상황이 사실적으로 기술되고, 첫번째 주요부에서는 페르페투아의 자전적 보고가 1인칭 형식으로 이어진다.

페르페투아의 아버지가 그녀를 배교시키려고 세 차례나 설득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일, 광장에서 행한 신문, 그리스도인이라는 그녀의 고백, 야수형 선고가 이부분의 뼈대를 이룬다. 한편 페르페투아가 감옥에서 체험한 세 가지 환시는 매우 독특하고 주목할 만하다. ①한 마리의 용이 야곱의 사다리 밑에서 사다리로 올라가려는 모든 사람을 위협한다. 그러나 사투루스 다음으로 페르페투아는 겁먹지 않고 용의 머리를 사다리의 첫 발판으로 삼아 딛고 올라가 낙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달콤한 우유를 건네주는 목자의 영접을 받는다. 환시는 그녀가 사투루스 다음에 고통을 받고 순교를 견디어내는 것으로 끝난다. ② 페르페투아의 남동생인 디노크라테스는 일곱 살 때 얼굴에 암이 생겨 죽었다. 페르페투아는 고통스럽게 죽은 동생을 보고 날마다 그를 위해 기도하여 마침내 동생은 치유되고 구원받았다. ③ 순교하기 전날 그녀는 원형경기장에서 자신이 악마와 싸워 승리하는 환시를 보았다. 이는 그녀에게 순교로 얻은 승리의 표징으로 생각되었다. 11-13번째 단락은 페르페투아의 환시와 비슷한 사투루스의 하늘 환시를 싣는다. 이 환시에서 그는 이전에 사망한 순교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환시에 관한 보고는 14번째 단락에서 끝난다.

편집자는 15-21번째 단락에서 페르페투아의 지시에 따라 성인들의 순교 보고를 끝낸다. 펠리치타스는 순교하기 위하여 아기를 빨리 낳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여 8개월째에 조산하였다. 그녀는 순교의 위협을 받고 채찍질을 당하고 야수형을 받았지만, 동물들이 그녀를 해치지 않자 결국 참수당하였다. 사투루스는 모든 동물이 그를 두려워하여 무러서자 표범을 자극하여 자신을 물어뜯게 하였다. 그는 죽어가면서 자신의 피에 반지를 담근 뒤, 어떤 군인에게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고 말하며 반지를 건네 주었다. 19세기에 니콜라스 비제만 추기경은 여러 언어로 번역된 대중소설 「파비올라 또는 카타콤바의 교회」에서 사투루스를 작품의 주인공 판크라티우스의 본보기로 삼았다. 이 순교 보고서는 사투루스를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 때 로마에서 순교한 판크라티우스와 혼동한 것이다. 이때문에 이후부터 성화에서는 표범이 판크라티우스의 발치에 함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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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순교록과 수난기

    4.2.1. 「폴리카르푸스 순교록」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푸스의 사망 연도는 순교록에서도 결정적인 단서를 제시하지 않는다. 순교록은 스미르나의 공동체가 필로멜리움의 공동체와 다른 모든 그리스도교 교회에 보내는 글과 인사말로 시작한다. 그 다음 서술에 관한 신학적 의도와 방법을 소개한다. 곧, 「폴리카르푸스 순교록」은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을 것을 격려하기 위하여 폴리카르푸스가 복음에 따라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배교시키기 위해 행해진 온갖 고문, 위협, 설득, 약속을 의연히 견디어낸 순교자들에 대한 찬미와 박해에서 배교한 사람들을 경고하는 내용이 뒤따른다.

    이러한 배경에서 「폴리카르푸스 순교록」은 실제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폴리카르푸스는 공동체의 권유에 따라 도시 밖의 농가로 피신하였으며, 그에 대한 수색이 계속되자 은신처를 다시 옮겼다. 그러나 어떤 노예가 고문에 못이겨 그가 머무르는 곳을 누설함으로써 추적자들이 그를 체포하려고 몰려왔다. 이때 그는 친절한 주인처럼 그들을 맞이하였으며 그들을 대접하고 두 시간 동안 물러나 기도하였다. 치안관은 경기장으로 가는 길에 배교하도록 설득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경기장에 들어설 때 하늘에서 소리가 울리며 폴리카르푸스를 격려하였으며, 소송은 일반적인 신문처럼 시작되었다. 전집정관은 그의 이름을 묻고 나서 보통 하듯이 그를 배교시키려 하였으며, 마침내 황제의 수호신에게 맹세할 것을 명령하였다. 폴리카르푸스는 오히려 전집정관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르치려 하였고,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였다. 고문, 죽음, 그밖의 위협적인 수단도 폴리카르푸스를 배교시킬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고발자들을 영원한 지옥불로 위협하였다. 그 다음에 이교인과 유다인은 화형을 위한 장작더미를 준비하였다. 불이 그의 몸을 태우지 못하자 전집정관은 사형집행인에게 단도로 그를 찔러 죽이게 하였다. 그의 시신은 유다인의 부추김으로 화장되었으나, 그리스도인들이 유골을 모아 경건하게 매장하였다. 편지의 결론은 순교자를 찬미하고 그의 본보기를 따를 것을 권유하면서 끝난다.

    콘젤만은 결론에 이어지는 연도에 관한 진술과 기도를, 캄펜하우젠이 이름 붙인 이른바 “복음서-편집자”의 글로 돌리고 있다. 여기서는 먼저 열두 순교자에 관한 보고를 전하는데 폴리카르푸스의 순교가 정점을 이룬다. 편집자는 폴리카르푸스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신학사상, 곧 복음에 따라 그리스도를 본받음을 중심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이와 달리 부쉬만과 의견을 같이하는 데한트슈터는 본문 전체의 편집적 일치를 주장한다. 이 경우에는 21장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첨가되었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폴리카르푸스의 태도와 순교 당시 일어난 놀라운 사건들 및 순교 과정의 신학적․영적 의미에서 순교자 보고의 전형적 요소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두드러진 반유다적 기술은 「가-피오니우스 순교록」에서만 나타나듯이 예외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4.2.2. 「비엔과 리용 공동체의 편지」

    폴리카르푸스가 순교한 지 10년 뒤 비엔과 루그두눔의 갈리아 공동체에 박해가 일어났다. 이 사실은 공동체들이 “아시아와 프리기아의 형제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알 수 있으며, 이들의 편지는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남아 있다. 공동체의 구성원 대다수가 분명히 소아시아 출신이었기 때문에, 편지는 아마도 그들의 모공동체에 보내진 것 같다.

    편지는 수신인에 관한 통례적인 내용으로 시작되며, 그 다음 박해에 앞서 일어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일반적인 집회금지를 보고한다. 오뎅에 따르면, 177년 4월 초에서 8월 3일까지 일어난 순교에 관한 서술은 순교를 악마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해석한다. 그러고 나서 난폭한 군중들의 괴롭힘, 고위 관리가 광장에서 행한 신문, 순교자의 고백, 고문 기구로 위협하는 내용이 뒤따른다. 그 다음 피고인들은 소송을 담당한 최고 재판관이 도착할 때까지 감옥에 갇혔다. 고발 내용은 무신론과 제신을 숭배하지 않은 것이었다. 몇몇 사람은 배교하였으며, 게다가 그리스도인에 대한 대중적인 중상을 거짓 증언하였다. 이 중상에 관해 편집자는 요한복음 16장 2절을 인용하면서 주석한다.

    1,16-63 단락은 네 명의 주요 인물, 곧 비엔의 부제 상투스, 갓 세례받은 마르투스, 아탈루스, 블란디나와 이름은 모르지만 순교의 고난을 함께한 사람의 순교에 관하여 설명한다. 모든 사람이 신앙을 고백하였으며, 이때문에 배교하거나 범행을 시인하도록 며칠 동안 잔혹한 고문을 받았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고문을 받은 뒤 감옥에서 죽었으며, 그들 가운데에는 90세가 넘은 리용의 주교 포티누스도 있었다. 그러나 고문으로 생긴 사람들의 상처는 불가사의하게 치유되었다. 배교자들은 순교자들의 확고부동한 증언에 영향을 받고, 그들이 배교하였지만 자신들에게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자 다시 개종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에게 일반적으로 부과된 벌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편집자는 순교의 의미와 가치를 성서에 기반을 두고 신학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이 모든 과정을 묵시적으로 예언된 동물의 박해로 해석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참수형이 선고되자마자 처형되었다. 그러나 순교자들의 시신은 온전히 남아 있지 않았다. 박해자들은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개에게 먹이로 주었으며, 남은 시신은 그리스도인의 부활에 대한 희망을 없애려고 화장하여 론 강에 재를 뿌렸다.

    편지는 박해가 끝난 뒤의 상황을 간략히 서술하면서 끝난다. “순교자”는 그리스도와 순교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경칭이었기 때문에, 박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순교자”라는 명칭을 단호히 거부하고, 단지 “고백자들”로 불리기 원하였다. 이때문에 두 개념은 이후 일반적으로 구분되어 사용되었다. 고백자들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동정하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다. 이러한 선례는 뒤에서 일어난 박해, 특히 250/51년 데치우스 황제가 일으킨 박해 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곧, 고백자들의 수난은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배교를 대신 속죄하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는 데치우스 황제가 일으킨 박해 당시의 어려운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심을 강하게 하기 우해 편지를 전체적으로 개작하였음을 시사한다.


    4.2.3.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 수난기」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 수난기」는 순교에 관한 가장 감동적이고, 이후 수백년 동안 순교 보고서의 전형이 된 작품이다. 이 기록은 형식에서 후대의 모든 순교 보고서의 원형이 되고, 널리 퍼져 이 두명의 성인을 공경하는 토대가 되었으며, 그들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로마의 성찬기도에 실려 있다. 수난기는 북아프리카의 도시 투부르보의 상류 가정 출신인 비비아 페르페투아라는 스물두살의 젊은 부인, 젊고 만삭인 여자 노예이자 세례지원자인 펠리치타스, 또 다른 세례지원자인 남자 노예 레보카투스, 사투루스와 세쿤둘루스라는 두 남자의 순교에 관하여 보고한다. 수난기에 따르면 이들은 in natali Getae Caesa-ris에 순교하였다.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이 날은 황제가 즉위한 날이 아니라 태어난 날이다. 학자들은 전통적으로 그가 태어난 해를 203년으로 추측한다.

    「페르페투아와 펠리치타스 수난기」는 21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난기는 페르페투아와 사투루스의 말 및 요한의 묵시록과 「헤르마스의 목자」를 강하게 상기시키는 묵시록적 요소들과 순교자 보고를 결합하기 때문에 문학적으로 독특한 작품이다. 편집자는 먼저 순교에 관한 숙고로 서문을 시작한다. 이러한 숙고는 몬타누스주의와 유사한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저자를 테르툴리아누스로 추측하기도 하였다. 이전의 순교자들이 보여준 본보기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확증과 신자들의 교화를 위한 의미를 지녔지만 여기서는 성령의 새로운 활동, 새 예언, 환시를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다음으로 순교자들의 이름과 가족 상황이 사실적으로 기술되고, 첫번째 주요부에서는 페르페투아의 자전적 보고가 1인칭 형식으로 이어진다.

    페르페투아의 아버지가 그녀를 배교시키려고 세 차례나 설득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일, 광장에서 행한 신문, 그리스도인이라는 그녀의 고백, 야수형 선고가 이부분의 뼈대를 이룬다. 한편 페르페투아가 감옥에서 체험한 세 가지 환시는 매우 독특하고 주목할 만하다. ①한 마리의 용이 야곱의 사다리 밑에서 사다리로 올라가려는 모든 사람을 위협한다. 그러나 사투루스 다음으로 페르페투아는 겁먹지 않고 용의 머리를 사다리의 첫 발판으로 삼아 딛고 올라가 낙원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녀는 달콤한 우유를 건네주는 목자의 영접을 받는다. 환시는 그녀가 사투루스 다음에 고통을 받고 순교를 견디어내는 것으로 끝난다. ② 페르페투아의 남동생인 디노크라테스는 일곱 살 때 얼굴에 암이 생겨 죽었다. 페르페투아는 고통스럽게 죽은 동생을 보고 날마다 그를 위해 기도하여 마침내 동생은 치유되고 구원받았다. ③ 순교하기 전날 그녀는 원형경기장에서 자신이 악마와 싸워 승리하는 환시를 보았다. 이는 그녀에게 순교로 얻은 승리의 표징으로 생각되었다. 11-13번째 단락은 페르페투아의 환시와 비슷한 사투루스의 하늘 환시를 싣는다. 이 환시에서 그는 이전에 사망한 순교자들을 만났다고 한다. 환시에 관한 보고는 14번째 단락에서 끝난다.

    편집자는 15-21번째 단락에서 페르페투아의 지시에 따라 성인들의 순교 보고를 끝낸다. 펠리치타스는 순교하기 위하여 아기를 빨리 낳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여 8개월째에 조산하였다. 그녀는 순교의 위협을 받고 채찍질을 당하고 야수형을 받았지만, 동물들이 그녀를 해치지 않자 결국 참수당하였다. 사투루스는 모든 동물이 그를 두려워하여 무러서자 표범을 자극하여 자신을 물어뜯게 하였다. 그는 죽어가면서 자신의 피에 반지를 담근 뒤, 어떤 군인에게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고 말하며 반지를 건네 주었다. 19세기에 니콜라스 비제만 추기경은 여러 언어로 번역된 대중소설 「파비올라 또는 카타콤바의 교회」에서 사투루스를 작품의 주인공 판크라티우스의 본보기로 삼았다. 이 순교 보고서는 사투루스를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 때 로마에서 순교한 판크라티우스와 혼동한 것이다. 이때문에 이후부터 성화에서는 표범이 판크라티우스의 발치에 함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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