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교황청의 아비뇽 시대(1305-1377)
14세기부터 교회는 교황권이 약화되는 위기에 처하였고 이는 종교분열의 외적 원인이 되었다.
1305년 프랑스 태생 고트가, 클레멘스5세로 교황에 선출되었으나 프랑스 국왕 필립4세와 정교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로마행을 연기하며서 교황청의 아비뇽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후에도 이탈리아 정국의 불안정, 사회 소요, 로마 시민의 반교황봉기로 교황들의 아비뇽 체류는 70여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이러한 교황청의 아비뇽 장기 체류에 대해 경건한 신앙인들은 통탄하여 혹평을 하며, 아비뇽 교황의 ‘바빌론 유수(幽囚)’라고 표현하였다. 7명의 아비뇽 교황들은 프랑스인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교황이 프랑스의 주교로 과소평가되었고 교황권의 보편성이 상실되었다. 더우기 아비뇽 교황들은 부족한 재정을 매우기 위해 성직록을 더없이 남용해고 선불과 수수료를 요구하고, 징벌과 파문으로 취협하는등 그야말로 묘한을 내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물론 교황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으니 교황청을 화려하게 건립하는 등 쓸데없는 재정을 팽창시켜 놓은 것이 더 문제였다. 어쨌든 지나친 세금징수는 교회를 불안케 하고 전반적이 격분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친족을 등용하는 이른바 족벌주의는 교회의 명성을 더없이 더럽혔다.
일부 교황들은 교회 재산과 영토를 사유화하고 교회의 주요 직책을 그의 가족들에게 분배하기도 하였다.

2-16. 교황청의 아비뇽 시대(1305-1377)
14세기부터 교회는 교황권이 약화되는 위기에 처하였고 이는 종교분열의 외적 원인이 되었다.
1305년 프랑스 태생 고트가, 클레멘스5세로 교황에 선출되었으나 프랑스 국왕 필립4세와 정교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로마행을 연기하며서 교황청의 아비뇽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 후에도 이탈리아 정국의 불안정, 사회 소요, 로마 시민의 반교황봉기로 교황들의 아비뇽 체류는 70여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이러한 교황청의 아비뇽 장기 체류에 대해 경건한 신앙인들은 통탄하여 혹평을 하며, 아비뇽 교황의 ‘바빌론 유수(幽囚)’라고 표현하였다. 7명의 아비뇽 교황들은 프랑스인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 특히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교황이 프랑스의 주교로 과소평가되었고 교황권의 보편성이 상실되었다. 더우기 아비뇽 교황들은 부족한 재정을 매우기 위해 성직록을 더없이 남용해고 선불과 수수료를 요구하고, 징벌과 파문으로 취협하는등 그야말로 묘한을 내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물론 교황청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으니 교황청을 화려하게 건립하는 등 쓸데없는 재정을 팽창시켜 놓은 것이 더 문제였다. 어쨌든 지나친 세금징수는 교회를 불안케 하고 전반적이 격분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친족을 등용하는 이른바 족벌주의는 교회의 명성을 더없이 더럽혔다.
일부 교황들은 교회 재산과 영토를 사유화하고 교회의 주요 직책을 그의 가족들에게 분배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