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스테파노 1세 교황 Stephan I. 254~257
254년 5월 12일부터 시작된 교황 스테파노 1세의 재임 기간 중에는 박해가 없었기에 교회는 외견상으로는 조용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발생하였다. 이단자 세례 거행 문제를 둘러싸고 쟁론이 발생하였다. 이단자가 유효하게 세례를 줄 수 있는지, 아니면 이단자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이 가톨릭 교회로 개종할 때 다시 교회에서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 하는 문제가 논쟁의 초점이었다.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노는 255년과 256년에 열린 두 차례 시노드에서 재세례를 주장하였고, 이에 반해 스테파노 교황은 치프리아노에게 보낸 서간에서 재세례를 격렬히 반대했다(교황이 보낸 이 서간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이에 답변하는 편지에서(현재 남아 있다), 치프리아노는 교황이 명령조로 말한다고 신랄하게 비난하였고 아프리카 교회의 실천을 변호했다. 치프리아노는 무엇보다도 스테파노의 ‘건방지고 사리에 맞지 않는’처사 때문에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교황은 서간에서 마태오 복음 16장 18절을 근거로 하여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분명히 주장했다. 교황 스테파노는 로마 주교좌가 베드로좌이며 베드로의 수위권에 동참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 논쟁으로 말미암아 아프리카 교회와 로마 교회 사이에는 불화가 조성되었고, 이 불화는 이제 막 시작하는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로 종식되었다. 교황 스테파노 1세와 치프리아노는 257년 8월에 서거하였다.

25. 스테파노 1세 교황 Stephan I. 254~257
254년 5월 12일부터 시작된 교황 스테파노 1세의 재임 기간 중에는 박해가 없었기에 교회는 외견상으로는 조용했다. 하지만 교회 안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발생하였다. 이단자 세례 거행 문제를 둘러싸고 쟁론이 발생하였다. 이단자가 유효하게 세례를 줄 수 있는지, 아니면 이단자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이 가톨릭 교회로 개종할 때 다시 교회에서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 하는 문제가 논쟁의 초점이었다. 카르타고의 주교 치프리아노는 255년과 256년에 열린 두 차례 시노드에서 재세례를 주장하였고, 이에 반해 스테파노 교황은 치프리아노에게 보낸 서간에서 재세례를 격렬히 반대했다(교황이 보낸 이 서간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 이에 답변하는 편지에서(현재 남아 있다), 치프리아노는 교황이 명령조로 말한다고 신랄하게 비난하였고 아프리카 교회의 실천을 변호했다. 치프리아노는 무엇보다도 스테파노의 ‘건방지고 사리에 맞지 않는’처사 때문에 무시당했다고 느꼈다. 교황은 서간에서 마태오 복음 16장 18절을 근거로 하여 로마 교회의 수위권을 분명히 주장했다. 교황 스테파노는 로마 주교좌가 베드로좌이며 베드로의 수위권에 동참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이 논쟁으로 말미암아 아프리카 교회와 로마 교회 사이에는 불화가 조성되었고, 이 불화는 이제 막 시작하는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로 종식되었다. 교황 스테파노 1세와 치프리아노는 257년 8월에 서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