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1. 하느님은 누구이신가?
여러분은 하느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몇 사람의 견해를 듣는다.)
네, 하느님에 대하여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으나 구체적으로 설명을 요구하면 대답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느님을 오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아는데는 몇가지 방법이 있는데 자연이나 피조물 또는 양심을 통해서 드러내시는 간접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과 행적을 통해 드러내시는 직접 계시가 있습니다. 전에 말씀 드렸듯이 계시란 하느님께서 스스로 드러내 보이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오해들』- 하느님에 대하여 우리는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1) 우선 우리는 하느님을 윌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는 무관한 존재로 몰아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2) 하느님은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과거나 미래의 존재일뿐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役事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3) 하느님은 다른 존재보다 좀 더 위대하거나 능력있는 존재 정도로, 인간 이성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문제나 해결해 주는 해결사 정도로 생각합니다.
4) 하느님을 모든 거룩한 존재의 총체라고 생각하여 하느님과 다른 존재 사이에는 전체와 부분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오해들에 대하여 성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 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알아 봅시다.

1.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하느님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일하신 하느님(신명 6, 4); 창조주 하느님(창세 14, 19); 초월자 하느님(예레 32, 18; 이사야 55, 8-9; 시편 134, 5-7); 무한하고 영원하신 하느님(예레 23, 22-23); 이스라엘을 부르시는 하느님(출애 4, 22); 계약의 하느님(출애 19, 5-6); 에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키는 하느님(출애 3, 8); 가나안 땅을 주시는 하느님(여호 1, 11); 왕국을 세우게 하시는 하느님(사무엘 상 (7, 8-16); 예언자를 보내시어 이스라엘을 가르치신 하느님(열왕 상 17, 14)등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언제나 가까이 계시는 분으로 하느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2.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하느님
그러면 신약성서에서는 하느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이세상에 외아들을 구세주로 보내신 하느님(갈라 4, 4);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룩하신 하느님(요한 14, 10);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시어 들어 높이신 하느님(에페 1, 20); 모든 믿는이에게 성령을 보내신 하느님(사도 2, 33; 요한 7, 39);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마태 6, 9; 로마 1, 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신 하느님(에페 1, 5-6) 등 많은 설명으로 하느님에 대한 것을 성서는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처럼 용서(마태 6, 14-15)와 자비(루가 6, 36)로 서로 사랑을 나누며 그분의 자녀된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

3. 사랑이신 하느님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을 엄한 심판주로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고통을 위로하시고, 잘못을 용서하시며,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시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실만큼 인간을 사랑해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위로하시고,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는 자상하신 아버지가 바로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루가 15, 11-32 잃었던 아들의 비유 참조)

4. 창조주 하느님
하느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 설화는 믿음의 진리를 계시합니다. 사람은 훌륭한 건축물이나 그림, 조각 등을 보면 그것을 만든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그러면 신비한 자연과 이 세상 만물을 누가 만드신 것일까요? 창세기 1장 1절에 있는 기록을 보면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하고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다고 선언합니다. 창조란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無에서 有를 창조하신 천지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느님의 천지창조』 史話 (영화 “천지창조”를 보여줄 것)
창세기 1장-2장에 기록된 창조에 관한 기록을 살펴 봅시다.
첫 째 날: 빛과 어두움을 갈라 밤과 낮이라 부르셨다.
둘 째 날: 창공 위와 아래 물을 갈라 창공을 하늘이라 부르셨다.
셋 째 날: 땅이 드러난 곳을 뭍이라하고, 물을 바다라고 부르시고 풀과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넷 째 날: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 해로 하여금 낮을 지키게 하시고, 달과 별을 두어 밤하늘을 비추게 하셨다.
다섯째날: 바다에는 물고기가 살게 하시고, 창공에는 새가 날아 다니게 하셨다.
여섯째날: 땅에는 들짐승이 살게 하시고,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당신 모상대로 마드시어 세상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
일곱째날: 하느님은 이 모든 것을 만드시고 쉬셨다. (안식일 즉 공휴일을 창조하신 하느님)

창조설화를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보면 단순한 설화로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한 듯이 보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설화를 통해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창조설화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첫 째 하느님은 창조주시다.
하느님은 온세상을 무로부터 창조하시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 본질과 성격에 따라 각각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둘 째 창조된 모든 것은 좋은 것이다.
하느님은 창조된 모든 것을 “보시기에 좋더라.” 고 하셨습니다.
선하신 하느님의 피조물은 모두 좋은 것입니다.
셋 째 사람은 하느님의 창조물이다.
피조물인 인간에게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임을 말씀하시며, 하느님의 생명과 지혜와 사랑을 나누어 받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에 맞게 세상 만물을 관리할 책임자로서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넷 째 선하게 창조된 만물은 본래 목적대로 선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창조의 목적에 어긋나게 사용될 때 그것은 악을 유발하고, 축복이 저주로 바뀌게 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창조된 세계는 하느님이 지배하십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그분의 섭리에 따라 질서있게 일정한 목적 아래 계속적 창조를 이루어갑니다.

그러므로 창조란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써 이 세상은 창조주의 선하심과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서가 보여주려는 것은 과학적이거나 역사적 진리가 아닙니다. 성서는 신앙의 진리를 보여 줍니다. 즉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가?”가 아니라 “이 세상은 누가 있게 하였는가?”를 말하고자 합니다. 창세기의 창조설화는 창조 방법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원인을 밝혀 줍니다. 이 창조 설화는 고대 근동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세계관에 입각해서 쓰여졌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요약한다면 하느님에 대한 개념은 각기 다르다는 것과 하느님에 대한 오해들, 하느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사랑의 하느님이시며,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당신의 외아들로 하여금 세상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시고, 그의 부활을 통해 죄인 조차도 구원의 삶에로 초대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때문에 우리를 창조하시고, 사랑 때문에 우리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은 우리 삶을 뉘우치고 사랑이신 그분께 응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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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1. 하느님은 누구이신가?
    여러분은 하느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몇 사람의 견해를 듣는다.)
    네, 하느님에 대하여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으나 구체적으로 설명을 요구하면 대답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하느님을 오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아는데는 몇가지 방법이 있는데 자연이나 피조물 또는 양심을 통해서 드러내시는 간접 계시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말씀과 행적을 통해 드러내시는 직접 계시가 있습니다. 전에 말씀 드렸듯이 계시란 하느님께서 스스로 드러내 보이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오해들』- 하느님에 대하여 우리는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1) 우선 우리는 하느님을 윌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는 무관한 존재로 몰아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2) 하느님은 우리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과거나 미래의 존재일뿐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役事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3) 하느님은 다른 존재보다 좀 더 위대하거나 능력있는 존재 정도로, 인간 이성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문제나 해결해 주는 해결사 정도로 생각합니다.
    4) 하느님을 모든 거룩한 존재의 총체라고 생각하여 하느님과 다른 존재 사이에는 전체와 부분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오해들에 대하여 성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 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알아 봅시다.

    1.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하느님
    구약성서에서는 하느님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살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일하신 하느님(신명 6, 4); 창조주 하느님(창세 14, 19); 초월자 하느님(예레 32, 18; 이사야 55, 8-9; 시편 134, 5-7); 무한하고 영원하신 하느님(예레 23, 22-23); 이스라엘을 부르시는 하느님(출애 4, 22); 계약의 하느님(출애 19, 5-6); 에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키는 하느님(출애 3, 8); 가나안 땅을 주시는 하느님(여호 1, 11); 왕국을 세우게 하시는 하느님(사무엘 상 (7, 8-16); 예언자를 보내시어 이스라엘을 가르치신 하느님(열왕 상 17, 14)등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과 언제나 가까이 계시는 분으로 하느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2.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하느님
    그러면 신약성서에서는 하느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이세상에 외아들을 구세주로 보내신 하느님(갈라 4, 4);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룩하신 하느님(요한 14, 10);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시어 들어 높이신 하느님(에페 1, 20); 모든 믿는이에게 성령을 보내신 하느님(사도 2, 33; 요한 7, 39); 우리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마태 6, 9; 로마 1, 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으신 하느님(에페 1, 5-6) 등 많은 설명으로 하느님에 대한 것을 성서는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것처럼 용서(마태 6, 14-15)와 자비(루가 6, 36)로 서로 사랑을 나누며 그분의 자녀된 의무를 지켜야 합니다.

    3. 사랑이신 하느님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을 엄한 심판주로서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고통을 위로하시고, 잘못을 용서하시며, 인간을 너무나도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시고,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실만큼 인간을 사랑해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인간의 슬픔과 고통을 위로하시고,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는 자상하신 아버지가 바로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루가 15, 11-32 잃었던 아들의 비유 참조)

    4. 창조주 하느님
    하느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 설화는 믿음의 진리를 계시합니다. 사람은 훌륭한 건축물이나 그림, 조각 등을 보면 그것을 만든 작가가 누구인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그러면 신비한 자연과 이 세상 만물을 누가 만드신 것일까요? 창세기 1장 1절에 있는 기록을 보면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하고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다고 선언합니다. 창조란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존재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無에서 有를 창조하신 천지의 창조주이십니다.

    『하느님의 천지창조』 史話 (영화 “천지창조”를 보여줄 것)
    창세기 1장-2장에 기록된 창조에 관한 기록을 살펴 봅시다.
    첫 째 날: 빛과 어두움을 갈라 밤과 낮이라 부르셨다.
    둘 째 날: 창공 위와 아래 물을 갈라 창공을 하늘이라 부르셨다.
    셋 째 날: 땅이 드러난 곳을 뭍이라하고, 물을 바다라고 부르시고 풀과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넷 째 날: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 해로 하여금 낮을 지키게 하시고, 달과 별을 두어 밤하늘을 비추게 하셨다.
    다섯째날: 바다에는 물고기가 살게 하시고, 창공에는 새가 날아 다니게 하셨다.
    여섯째날: 땅에는 들짐승이 살게 하시고,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당신 모상대로 마드시어 세상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
    일곱째날: 하느님은 이 모든 것을 만드시고 쉬셨다. (안식일 즉 공휴일을 창조하신 하느님)

    창조설화를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보면 단순한 설화로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한 듯이 보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설화를 통해 계시하시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창조설화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첫 째 하느님은 창조주시다.
    하느님은 온세상을 무로부터 창조하시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 본질과 성격에 따라 각각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둘 째 창조된 모든 것은 좋은 것이다.
    하느님은 창조된 모든 것을 “보시기에 좋더라.” 고 하셨습니다.
    선하신 하느님의 피조물은 모두 좋은 것입니다.
    셋 째 사람은 하느님의 창조물이다.
    피조물인 인간에게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귀한 존재임을 말씀하시며, 하느님의 생명과 지혜와 사랑을 나누어 받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에 맞게 세상 만물을 관리할 책임자로서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넷 째 선하게 창조된 만물은 본래 목적대로 선하게 사용되어야 합니다.
    창조의 목적에 어긋나게 사용될 때 그것은 악을 유발하고, 축복이 저주로 바뀌게 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창조된 세계는 하느님이 지배하십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계는 그분의 섭리에 따라 질서있게 일정한 목적 아래 계속적 창조를 이루어갑니다.

    그러므로 창조란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으로써 이 세상은 창조주의 선하심과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서가 보여주려는 것은 과학적이거나 역사적 진리가 아닙니다. 성서는 신앙의 진리를 보여 줍니다. 즉 “이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가?”가 아니라 “이 세상은 누가 있게 하였는가?”를 말하고자 합니다. 창세기의 창조설화는 창조 방법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원인을 밝혀 줍니다. 이 창조 설화는 고대 근동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세계관에 입각해서 쓰여졌다는 것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를 요약한다면 하느님에 대한 개념은 각기 다르다는 것과 하느님에 대한 오해들, 하느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사랑의 하느님이시며,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당신의 외아들로 하여금 세상의 죄를 대신하여 죽게 하시고, 그의 부활을 통해 죄인 조차도 구원의 삶에로 초대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때문에 우리를 창조하시고, 사랑 때문에 우리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은 우리 삶을 뉘우치고 사랑이신 그분께 응답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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