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권 제 2장 힐카누스가 어떻게 파르티아인들에게 풀려나 헤롯에게로 돌아왔는지, 그리고 아나넬이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알렉산드라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하여

 


제 2 장



힐카누스가 어떻게 파르티아인들에게 풀려나 헤롯에게로 돌아왔는지, 그리고 아나넬이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알렉산드라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하여



 1. 파르티아인들에게 포로로 잡혀갔던 힐카누스가 풀려나다



  대제사장 힐카누스(Hyrcanus)가 파르티아인[㈜ 고대. 14권. 13 : 10(366)과 전쟁. 1권. 13 : 11(273)을 보라.]들에게 포로로 잡혀있을 때, 헤롯이 왕위를 차지하였다는 말을 들었으며 포로에서 풀려나 헤롯에게 다시 오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파르티아의 장군들인 바르자프라네스(Barzaphranes)와 파코루스(Pacorus)는 처음에는 대제사장이었다가 나중에 왕이 된 힐카누스와[㈜ 더 정확하게, 힐카누스(Hyrcanus)는 율리우스 가이사(Julius Caesar)의 법령<고대. 14권. 10 : 2(191)>에 의해 통치자(ethnarch)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대중에 의해 왕으로 간주되어진 것 같다. 참).고대. 14권. 8 : 5(143) 각주 224.] 헤롯의 형 파사엘(Phasael)을 포로로 잡아 파르티아로 데려갔다. 파사엘은 감금당해 있는 수치를 견딜 수 없어서 치사하게 사는 것보다 영광스런 죽음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이미 언급[㈜ 고대. 14권. 13 : 10(367)<고대. 5권. 10 : 4(368)에 있는 교체된 이야기와 함께>.]한 것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 힐카누스는 헤롯과 좋은 관계로 유지되기를 바라다



  그러나 힐카누스가 파르티아에 잡혀왔을 때, 파르티아 왕 프라아테스(Phraates)는 이미 그가 명문가 출신임을 듣고 그를신사적으로 대우했다. 그래서 왕은 그를 결박에서 풀어주고 바벨론에서[㈜ 티그라스(tigris)의 셀류케이아(Seleuceia)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는 고대. 18권. 9 : 8(373)에서 온 것 같다.] 살게 했는데 거기는 유대인들이 아주 많았다. 유브라데까지 거주하는 모든 유대집단이 그랬던 것처럼 이 유대인들도 힐카누스를 대제사장과 왕으로서 그를 존경하였는데, 이것은그가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헤롯이 왕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듣고 힐카누스는 아직도 헤롯을 향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새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는 헤롯이 곤경에 빠졌을 때와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에 처해 있었을 때 헤롯을 그 위험과 모든형벌에서 구해 주었었는데,[㈜ 참). 고대. 14권. 9 : 5(177).] 헤롯이 그 호의를 기억하고 있기를 기대하였다.[㈜  cavrto\” ojpomnhsqhvsesqai는 투키디데스(Thucydides), I. 137. 2에 표현되어 있다.] 헤롯에게[㈜ 다른 본문에는\’그(힐카누스)에게 가려고 애쓰는 유대인들에게.\’ ]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유대인들과 그 문제를 상의했다. 그러나 그들은 힐카누스를 그들과 함께 머무르게 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만일 힐카누스가 함께 머문다면, 그들은 전처럼 그를 좋은 통치자로 여길 것이고 대제사장과 왕에게 드렸던 것보다 더 큰 존경을 그에게 드릴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말한 것 중에서 힐카누스가 결심하도록 한 더 큰 이유는 육체적인 불구 때문에 거기에서는[㈜ 유대(Juodea)에서.] 그가 대제사장이될 수 없다고 한 것이었는데, 그는 이전에 안티고누스에 의해 상처를 입어[㈜ 그가 그의 귀를 물어뜯거나 잘라냈을 때, 참). 고대. 14권. 13 : 10(366) 주587)] 불구자가 되어 있었다.\’그들이 평민이었을 때 은혜를입었다고 해서 나중에 왕이 된 그들에게 전과 같은 호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운명의 여신이 그들을 너무 많이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라고 유대인들이 힐카누스를 설득하였다.[㈜ 다른 본문에는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을  변화시킨다.\’ ]



 3. 헤롯은 힐카누스가 유대로 돌아오도록 초대하다



  유대인들이 그의 유익을 위하여 이렇게 설득했는데도 힐카누스는 떠나고 싶어했다. 헤롯 또한 힐카누스에게 편지하여, 그라아테스(Phraates)와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은 힐카누스와 자신이 공동으로 왕권을 갖는 길을 막지 않기를 원한다면서 힐카누스를 설득하였다. 왜냐하면 지금이 자신을 양육해주고 또 구출해준 힐카누스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최적기일 뿐만 아니라, 힐카누스가 보답을 받을 최적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이와 같이 헤롯은 힐카누스에게 편지하고, 또 자기의 대사인 사라말라(saramalla)[㈜ 힐카누스와 헤롯 측근의 매우 부유한 친구. 참). 고대. 14권. 13 : 5(345)와 전쟁. 1권. (259).] 편으로 많은 선물을 프라아테스에게 보내면서 자신의 은인에게 자신의 호의가 전달되는 최선의 길을 열어주도록 요청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헤롯의 열망은 자신이정당한 권리로써 그 나라의 지배자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가 뒤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서둘러 힐카누스를자기 지배아래 두고자 했으며, 사실은 그를 아주 제거하려 했다. 그리고 그를 제거하는 일은 훗날에 성취하였다.[㈜ 라이나흐(Reinach)는 데스티논(Destinon)의 견해를 인용한다(\’Quellen,\’ p.110). 그의 견해는 여기서 두개의 자료가 결합되었다는 것인데, 첫째 것은 다메섹의니콜라스(Nicolas of Damascus)에게서 온 것이고, 두 번째 것은 헤롯에게 적의가 있는 저자에게서 온 것이다.]



 4. 힐카누스가 유대로 가다. 헤롯은 아나넬을 대제사장에 임명하다



  파르티아 왕의 허가와 보장을 얻고 유대인들의 비용을 대어힐카누스가 유대로 돌아왔을 때, 헤롯은 그를 최고의 경의로 영접하고 공개 석상에서 최고의 자리를 주었다. 또한 잔치석상에서는 상석에 앉혔는데 이 모든 행위는 힐카누스를 속이는 속임수 였다. 헤롯은 그를 자기 아버지라고[㈜ 존칭의 칭호로서, 이런 존칭은 힐카누스가 헤롯 부인의 조부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부르고 모든 수단을 다하여 자신의 음모를 의심치 못하게 노력하였다. 헤롯은 또한 정권을 굳게 하기 위해 다른 일도 했는데[㈜ 다른 본문에는 \’그도 또한 다른 것들을 바꾸었다. \’  ] 이 일 때문에 자기 집안 내에서 반역이 발생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느님의[㈜  다른 본문에는 \’사람들의\’ .] 대제사장을 훌륭한 사람으로 임명하는 것을 피하고자 바벨론에서 무명의 제사장[㈜3 : 1(40)에 의하면, 아나넬(Ananel)은 대제사장의 가족이었다.] 아나넬(Ananel)을[㈜ 히브리어로는 \’ananel.. Klausner, \’HBS\’, iv. 12는 대제사장과 함께 그를 미쉬나, \’Parah\’ iii. 5.에서 \”애굽인 하나멜\”(\’anamel)이라 불렀다. 제사장의 일가(一家)가 헤롯이 믿지 않으려 했던 하스몬 일가보다 더 많은 특권을 지녔기 때문에 헤롯이 그를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그는 제안한다.] 불러다가 대제사장직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5. 알렉산드라가 클레오파트라에게 호소하다



  그러자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 왕의[㈜ 힐카누스의 동생 아리스토불루스 Ⅱ세(Aristobulus Ⅱ). 따라서 알렉산드라(alexandra)는 그의 사촌 알렉산더와 결혼을 하였다. 알렉산더는 주전 49년 폼페이(Pompey)의 일당들에 의해 그의 아버지와 함께 살해되었었다.] 아들인 알렉산더(alexander)의 부인이며, 알렉산더의 두 자녀들을 기른 힐카누스의 딸 알렉산드라(Alexandra)는 이 모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라고[㈜ 아리스토불루스 Ⅲ세. 전쟁. 1권.22 : 2(437)에 따르면 그의히브리 이름은 요나단(Jonathan)이다.] 불리우는빼어난 미모의 아들과 헤롯과 결혼한 마리암메(Mariamme)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이 알렉산드라는, 자기 아들이 살아있는데도 대제사장직이 외국에서 불러온 사람에게 돌아감으로써자기 아들이 당한 수모로 인해 괴롭고 슬퍼졌다. 그래서 알렉산드라는 어떤 가수의 도움으로 클레오파트라(Cleopatra)에게 편지를 보내 자기 아들이 대제사장직을 얻도록 안토니에게 청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6. 안토니의친구 델리우스는 알렉산드라의 자녀들을 칭찬하다.



  안토니가 이 청원의 승낙을 주저하고 있었는데, 그의 친구 델리우스(Dellius)가[㈜ 퀸투스 델리우스(Quintus Dellius). 이는 앞서 고대. 14권. 15 : 1(394)<병행구는 전쟁. 1권. 15 : 3(290)>에서 언급되었다. Dio Cassius, xlix. 39는 그를 안토니의 \’사랑하는 자\’ 또는 \’총애받는 자\'(paidikav )라고 묘사하고 있다. 악티움(Actium) 전투 전에 그는 안토니를 버리고 옥타비안(Octavian)에게로 탈주했다. 그리고 후에 안토니가 파르티아(Parthaian)를 원정한 역사를 기록하였다. 호레이스(Horace)는 Ode(ii. 3)의 서두인 \’Aequam memento rebus I arduis\’에서 그를 \’moriture Delli\’  로 설명하고 있다.] 다른 일로 유대에 왔다가 아리스토불루스를 보고 그 아이의 큰 키와 준수함, 그리고 그에 못지 않은 왕비 마리암메의 미모에 감탄하고[㈜ 다른 본문에는 \’~와 사랑에 빠졌다.\’ ] 이처럼 아름다운 자녀를 둔 어머니인 알렉산드라를 칭찬하였다. 알렉산드라가 델리우스와 대화를 하게 되었을 때, 델리우스는 알렉산드라의 자녀 아리스토불루스와 마리암메의 초상화를 그리게 해서 안토니에게 보내라고 했다.[㈜ 전쟁. 1권. 22 : 3(439)에 의하면 마리암메(Mariamme)는 애굽에 있는 안토니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보낸 것에 대해 자신의 적들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이야기의 다른 본문인지 아니면 다른 경우를 언급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여기 관련된 사건은 주전 36년 또는 35년에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종종 아르메니아(Armenia)에 대한 안토니의 침공 이전(주전 34년)이라고도 한다. 물론 결론이 없지만, 자세한 연대기 논쟁에 관해서는 Schurer, \’GJV\’, I. 362 주 3과 Otto, \’Herodes\’, pp.40-41을 보라.] 이는 안토니가 그것을 보면 그녀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라는 그의 말에 솔깃하여 그 말대로 안토니에게 초상화를 보냈다. 델리우스 또한 안토니에게 이 아이들이야 말로 사람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신이나 다른 어떤 것에게서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고 과찬을 하였다. 이렇게 한 델리우스의 의도는 안토니를 부추겨 그들과 호색적인 향락에 빠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에 안토니는 유대 분봉왕 헤롯의 부인인 마리암메를 부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또 그렇게 한다면 그로 인해 아내 클레오파트라가 비난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가장 예의바른 태도로 알렉산드리아의 아들 아리스토불루스를 불렀으며 동시에 덧붙이기를 어렵지않다면 꼭 와달라고 부탁했다. 이 편지를 받은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 같은 준수하고 인생의 절정기에 있는 사람을 안토니에게 보낸다는 것은 자신에게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아리스토불루스는 불과 16세이고[㈜ 고대. 15권. 3 : 3(51)을 보라. 여기서 아리스토불루스는 그가 대제사장었을 때 17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고대. 15권. 3 : 3(56)에서는 그가 대제사장된 1년후 18살에 죽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17번째 생일 이후 곧 대제사장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지체높은 가문출신이었으며, 안토니는 로마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그래서 얼마든지 안토니는 아리스토불루스를 정사의 대상으로 욕보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이 허락하는 한 그러한 쾌락에 공공연하게 탐닉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리스토불루스를 그에게는 특히 보낼 수 없었다. 그러므로 헤롯은 안토니에게\’만일 이 소년이 이 나라를 떠난다면 모든 사람이 전쟁과 소란 상태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정부가 바뀌고 다른 왕[㈜ Klausner, HBS\’\’, iv. 13은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가 대제사장으로 임명되기 이전이라기보다 그 이후에 헤롯은 안토니에게 이 편지를 썼다고 생각한다.]이 들어서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는 요지의 답장을 띄웠다.



7. 헤롯과 알렉산드라는 일시적으로 화해하다



  헤롯은 안토니에게 이같이 변명하고, 자기의 장모 알렉산드라와 아리스토불루스를  불명예스럽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한편 그의 아내 마리암메는 헤롯에게 자기 동생을 대제사장직에회복시켜 줄 것을 간절히 요구했다. 헤롯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는데, 만일 그녀의 동생 아리스토불루스가 대제사장직을 차지하게 되면 유대를 떠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헤롯은 그의 모든 친구들을 불러 모아, 장모 알렉산드라가 은밀히 그의 왕권을 탈취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말했다. 즉 그는 그녀가 클레오파트라를 이용하여 정권을 빼앗으려 했으며 안토니를 이용해서는 자기 대신 아리스토불루스에게 정권을 넘기려 했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는 알렉산드라의 이러한 목적은[㈜ 다른 본문에는 \’계획\’ (plan).] 불의한 것이라고 하며, 그것은 자기의 딸이[㈜ 헤롯의 왕비로서 마리암메(Mariamme).] 가지고 있는 권위 또한 빼앗는 것이 되고, 그로 인해 국가가 혼란에 빠지게 되며 헤롯 자신도 큰 고통을 당하고 큰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헤롯은 그녀의 사악한 계획들을 알면서도 의로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아리스토불루스가 너무 어려서 아나넬에게 주었던 대제사장직을 이제 아리스토불루스에게 주겠다고 말했다. 헤롯이 이 말을 할 때는 생각없이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여자들과[㈜ 알렉산드라(alexandra)와 마리암메(Mariamme).] 자기가 자문을 구하던친구를 속이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지혜를 짜낸 것이다. 알렉산드라는 이 예기치 않았던 약속을 얻은 기쁨과 그녀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엎드려 울며 다음과 같이 변명하였다. \'(대)제사장 건에 대해서는 내 아들이 당하고 있는 수치 때문에 깊은 관심을 가졌었고 대제사장직을 얻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왕권에 대해서는 어떤 시도도 한 적이 없으며 그런 제안이 들어온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나는 내 아들의 권위에 만족하며, 왕이 정권을 잡고 탁월한 능력으로 다스리기 때문에 내 모든 가족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왕의 호의에 황공할 따름이며 아들에게 준 이 명예를 감사히 받겠습니다. 앞으로는 완전히 왕에게 복종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가문이 귀족이라는 것 때문에 행동이 자유분방하여 너무 경속하고 건방지게 행동했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녀가 헤롯에게답변한 요지이다. 그녀는 이런 말로[㈜ spoudaiovteron h[ qa\’sson의 의미는 확실치 않다 ; 허드슨(hudson)은 \’majoricum studio quem antea\’ 로 번역했다. 휘스톤-실레토(Whiston-Shilleto)는 그 구절을 빠뜨리고 있다 ; 라이나흐(Reinach)는 그 의미를 모르겠다고 한다.위의 번역은 포스트(L. A. Post)의 것이다.] 서로 감정을 풀고 헤롯과 화해를 하게 되었으며 표면적으로는 모든 의심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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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권 제 2장 힐카누스가 어떻게 파르티아인들에게 풀려나 헤롯에게로 돌아왔는지, 그리고 아나넬이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알렉산드라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하여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제 2 장


    힐카누스가 어떻게 파르티아인들에게 풀려나 헤롯에게로 돌아왔는지, 그리고 아나넬이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알렉산드라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하여


     1. 파르티아인들에게 포로로 잡혀갔던 힐카누스가 풀려나다


      대제사장 힐카누스(Hyrcanus)가 파르티아인[㈜ 고대. 14권. 13 : 10(366)과 전쟁. 1권. 13 : 11(273)을 보라.]들에게 포로로 잡혀있을 때, 헤롯이 왕위를 차지하였다는 말을 들었으며 포로에서 풀려나 헤롯에게 다시 오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파르티아의 장군들인 바르자프라네스(Barzaphranes)와 파코루스(Pacorus)는 처음에는 대제사장이었다가 나중에 왕이 된 힐카누스와[㈜ 더 정확하게, 힐카누스(Hyrcanus)는 율리우스 가이사(Julius Caesar)의 법령<고대. 14권. 10 : 2(191)>에 의해 통치자(ethnarch)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대중에 의해 왕으로 간주되어진 것 같다. 참).고대. 14권. 8 : 5(143) 각주 224.] 헤롯의 형 파사엘(Phasael)을 포로로 잡아 파르티아로 데려갔다. 파사엘은 감금당해 있는 수치를 견딜 수 없어서 치사하게 사는 것보다 영광스런 죽음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우리가 이미 언급[㈜ 고대. 14권. 13 : 10(367)<고대. 5권. 10 : 4(368)에 있는 교체된 이야기와 함께>.]한 것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 힐카누스는 헤롯과 좋은 관계로 유지되기를 바라다


      그러나 힐카누스가 파르티아에 잡혀왔을 때, 파르티아 왕 프라아테스(Phraates)는 이미 그가 명문가 출신임을 듣고 그를신사적으로 대우했다. 그래서 왕은 그를 결박에서 풀어주고 바벨론에서[㈜ 티그라스(tigris)의 셀류케이아(Seleuceia)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이는 고대. 18권. 9 : 8(373)에서 온 것 같다.] 살게 했는데 거기는 유대인들이 아주 많았다. 유브라데까지 거주하는 모든 유대집단이 그랬던 것처럼 이 유대인들도 힐카누스를 대제사장과 왕으로서 그를 존경하였는데, 이것은그가 만족할 만한 것이었다. 헤롯이 왕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을듣고 힐카누스는 아직도 헤롯을 향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새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는 헤롯이 곤경에 빠졌을 때와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에 처해 있었을 때 헤롯을 그 위험과 모든형벌에서 구해 주었었는데,[㈜ 참). 고대. 14권. 9 : 5(177).] 헤롯이 그 호의를 기억하고 있기를 기대하였다.[㈜  cavrto” ojpomnhsqhvsesqai는 투키디데스(Thucydides), I. 137. 2에 표현되어 있다.] 헤롯에게[㈜ 다른 본문에는’그(힐카누스)에게 가려고 애쓰는 유대인들에게.’ ]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유대인들과 그 문제를 상의했다. 그러나 그들은 힐카누스를 그들과 함께 머무르게 하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만일 힐카누스가 함께 머문다면, 그들은 전처럼 그를 좋은 통치자로 여길 것이고 대제사장과 왕에게 드렸던 것보다 더 큰 존경을 그에게 드릴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말한 것 중에서 힐카누스가 결심하도록 한 더 큰 이유는 육체적인 불구 때문에 거기에서는[㈜ 유대(Juodea)에서.] 그가 대제사장이될 수 없다고 한 것이었는데, 그는 이전에 안티고누스에 의해 상처를 입어[㈜ 그가 그의 귀를 물어뜯거나 잘라냈을 때, 참). 고대. 14권. 13 : 10(366) 주587)] 불구자가 되어 있었다.’그들이 평민이었을 때 은혜를입었다고 해서 나중에 왕이 된 그들에게 전과 같은 호의를 기대한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운명의 여신이 그들을 너무 많이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라고 유대인들이 힐카누스를 설득하였다.[㈜ 다른 본문에는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을  변화시킨다.’ ]


     3. 헤롯은 힐카누스가 유대로 돌아오도록 초대하다


      유대인들이 그의 유익을 위하여 이렇게 설득했는데도 힐카누스는 떠나고 싶어했다. 헤롯 또한 힐카누스에게 편지하여, 그라아테스(Phraates)와 그곳에 있는 유대인들은 힐카누스와 자신이 공동으로 왕권을 갖는 길을 막지 않기를 원한다면서 힐카누스를 설득하였다. 왜냐하면 지금이 자신을 양육해주고 또 구출해준 힐카누스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최적기일 뿐만 아니라, 힐카누스가 보답을 받을 최적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이와 같이 헤롯은 힐카누스에게 편지하고, 또 자기의 대사인 사라말라(saramalla)[㈜ 힐카누스와 헤롯 측근의 매우 부유한 친구. 참). 고대. 14권. 13 : 5(345)와 전쟁. 1권. (259).] 편으로 많은 선물을 프라아테스에게 보내면서 자신의 은인에게 자신의 호의가 전달되는 최선의 길을 열어주도록 요청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헤롯의 열망은 자신이정당한 권리로써 그 나라의 지배자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위치가 뒤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서둘러 힐카누스를자기 지배아래 두고자 했으며, 사실은 그를 아주 제거하려 했다. 그리고 그를 제거하는 일은 훗날에 성취하였다.[㈜ 라이나흐(Reinach)는 데스티논(Destinon)의 견해를 인용한다(‘Quellen,’ p.110). 그의 견해는 여기서 두개의 자료가 결합되었다는 것인데, 첫째 것은 다메섹의니콜라스(Nicolas of Damascus)에게서 온 것이고, 두 번째 것은 헤롯에게 적의가 있는 저자에게서 온 것이다.]


     4. 힐카누스가 유대로 가다. 헤롯은 아나넬을 대제사장에 임명하다


      파르티아 왕의 허가와 보장을 얻고 유대인들의 비용을 대어힐카누스가 유대로 돌아왔을 때, 헤롯은 그를 최고의 경의로 영접하고 공개 석상에서 최고의 자리를 주었다. 또한 잔치석상에서는 상석에 앉혔는데 이 모든 행위는 힐카누스를 속이는 속임수 였다. 헤롯은 그를 자기 아버지라고[㈜ 존칭의 칭호로서, 이런 존칭은 힐카누스가 헤롯 부인의 조부이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부르고 모든 수단을 다하여 자신의 음모를 의심치 못하게 노력하였다. 헤롯은 또한 정권을 굳게 하기 위해 다른 일도 했는데[㈜ 다른 본문에는 ‘그도 또한 다른 것들을 바꾸었다. ‘  ] 이 일 때문에 자기 집안 내에서 반역이 발생했다. 왜냐하면 그는 하느님의[㈜  다른 본문에는 ‘사람들의’ .] 대제사장을 훌륭한 사람으로 임명하는 것을 피하고자 바벨론에서 무명의 제사장[㈜3 : 1(40)에 의하면, 아나넬(Ananel)은 대제사장의 가족이었다.] 아나넬(Ananel)을[㈜ 히브리어로는 ‘ananel.. Klausner, ‘HBS’, iv. 12는 대제사장과 함께 그를 미쉬나, ‘Parah’ iii. 5.에서 “애굽인 하나멜”(‘anamel)이라 불렀다. 제사장의 일가(一家)가 헤롯이 믿지 않으려 했던 하스몬 일가보다 더 많은 특권을 지녔기 때문에 헤롯이 그를 선택하였을 것이라고 그는 제안한다.] 불러다가 대제사장직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5. 알렉산드라가 클레오파트라에게 호소하다


      그러자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 왕의[㈜ 힐카누스의 동생 아리스토불루스 Ⅱ세(Aristobulus Ⅱ). 따라서 알렉산드라(alexandra)는 그의 사촌 알렉산더와 결혼을 하였다. 알렉산더는 주전 49년 폼페이(Pompey)의 일당들에 의해 그의 아버지와 함께 살해되었었다.] 아들인 알렉산더(alexander)의 부인이며, 알렉산더의 두 자녀들을 기른 힐카누스의 딸 알렉산드라(Alexandra)는 이 모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는 아리스토불루스(Aristobulus)라고[㈜ 아리스토불루스 Ⅲ세. 전쟁. 1권.22 : 2(437)에 따르면 그의히브리 이름은 요나단(Jonathan)이다.] 불리우는빼어난 미모의 아들과 헤롯과 결혼한 마리암메(Mariamme)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이 알렉산드라는, 자기 아들이 살아있는데도 대제사장직이 외국에서 불러온 사람에게 돌아감으로써자기 아들이 당한 수모로 인해 괴롭고 슬퍼졌다. 그래서 알렉산드라는 어떤 가수의 도움으로 클레오파트라(Cleopatra)에게 편지를 보내 자기 아들이 대제사장직을 얻도록 안토니에게 청원해줄 것을 요청했다.


     6. 안토니의친구 델리우스는 알렉산드라의 자녀들을 칭찬하다.


      안토니가 이 청원의 승낙을 주저하고 있었는데, 그의 친구 델리우스(Dellius)가[㈜ 퀸투스 델리우스(Quintus Dellius). 이는 앞서 고대. 14권. 15 : 1(394)<병행구는 전쟁. 1권. 15 : 3(290)>에서 언급되었다. Dio Cassius, xlix. 39는 그를 안토니의 ‘사랑하는 자’ 또는 ‘총애받는 자'(paidikav )라고 묘사하고 있다. 악티움(Actium) 전투 전에 그는 안토니를 버리고 옥타비안(Octavian)에게로 탈주했다. 그리고 후에 안토니가 파르티아(Parthaian)를 원정한 역사를 기록하였다. 호레이스(Horace)는 Ode(ii. 3)의 서두인 ‘Aequam memento rebus I arduis’에서 그를 ‘moriture Delli’  로 설명하고 있다.] 다른 일로 유대에 왔다가 아리스토불루스를 보고 그 아이의 큰 키와 준수함, 그리고 그에 못지 않은 왕비 마리암메의 미모에 감탄하고[㈜ 다른 본문에는 ‘~와 사랑에 빠졌다.’ ] 이처럼 아름다운 자녀를 둔 어머니인 알렉산드라를 칭찬하였다. 알렉산드라가 델리우스와 대화를 하게 되었을 때, 델리우스는 알렉산드라의 자녀 아리스토불루스와 마리암메의 초상화를 그리게 해서 안토니에게 보내라고 했다.[㈜ 전쟁. 1권. 22 : 3(439)에 의하면 마리암메(Mariamme)는 애굽에 있는 안토니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보낸 것에 대해 자신의 적들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이것은 위에서 말한 이야기의 다른 본문인지 아니면 다른 경우를 언급한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어쨌든 여기 관련된 사건은 주전 36년 또는 35년에 있었음에 틀림이 없다. 종종 아르메니아(Armenia)에 대한 안토니의 침공 이전(주전 34년)이라고도 한다. 물론 결론이 없지만, 자세한 연대기 논쟁에 관해서는 Schurer, ‘GJV’, I. 362 주 3과 Otto, ‘Herodes’, pp.40-41을 보라.] 이는 안토니가 그것을 보면 그녀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라는 그의 말에 솔깃하여 그 말대로 안토니에게 초상화를 보냈다. 델리우스 또한 안토니에게 이 아이들이야 말로 사람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신이나 다른 어떤 것에게서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고 과찬을 하였다. 이렇게 한 델리우스의 의도는 안토니를 부추겨 그들과 호색적인 향락에 빠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에 안토니는 유대 분봉왕 헤롯의 부인인 마리암메를 부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또 그렇게 한다면 그로 인해 아내 클레오파트라가 비난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가장 예의바른 태도로 알렉산드리아의 아들 아리스토불루스를 불렀으며 동시에 덧붙이기를 어렵지않다면 꼭 와달라고 부탁했다. 이 편지를 받은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 같은 준수하고 인생의 절정기에 있는 사람을 안토니에게 보낸다는 것은 자신에게 안전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아리스토불루스는 불과 16세이고[㈜ 고대. 15권. 3 : 3(51)을 보라. 여기서 아리스토불루스는 그가 대제사장었을 때 17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고대. 15권. 3 : 3(56)에서는 그가 대제사장된 1년후 18살에 죽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17번째 생일 이후 곧 대제사장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지체높은 가문출신이었으며, 안토니는 로마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그래서 얼마든지 안토니는 아리스토불루스를 정사의 대상으로 욕보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권력이 허락하는 한 그러한 쾌락에 공공연하게 탐닉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리스토불루스를 그에게는 특히 보낼 수 없었다. 그러므로 헤롯은 안토니에게’만일 이 소년이 이 나라를 떠난다면 모든 사람이 전쟁과 소란 상태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정부가 바뀌고 다른 왕[㈜ Klausner, HBS”, iv. 13은 헤롯은 아리스토불루스가 대제사장으로 임명되기 이전이라기보다 그 이후에 헤롯은 안토니에게 이 편지를 썼다고 생각한다.]이 들어서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는 요지의 답장을 띄웠다.


    7. 헤롯과 알렉산드라는 일시적으로 화해하다


      헤롯은 안토니에게 이같이 변명하고, 자기의 장모 알렉산드라와 아리스토불루스를  불명예스럽게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한편 그의 아내 마리암메는 헤롯에게 자기 동생을 대제사장직에회복시켜 줄 것을 간절히 요구했다. 헤롯도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는데, 만일 그녀의 동생 아리스토불루스가 대제사장직을 차지하게 되면 유대를 떠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헤롯은 그의 모든 친구들을 불러 모아, 장모 알렉산드라가 은밀히 그의 왕권을 탈취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말했다. 즉 그는 그녀가 클레오파트라를 이용하여 정권을 빼앗으려 했으며 안토니를 이용해서는 자기 대신 아리스토불루스에게 정권을 넘기려 했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는 알렉산드라의 이러한 목적은[㈜ 다른 본문에는 ‘계획’ (plan).] 불의한 것이라고 하며, 그것은 자기의 딸이[㈜ 헤롯의 왕비로서 마리암메(Mariamme).] 가지고 있는 권위 또한 빼앗는 것이 되고, 그로 인해 국가가 혼란에 빠지게 되며 헤롯 자신도 큰 고통을 당하고 큰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헤롯은 그녀의 사악한 계획들을 알면서도 의로운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면서, 아리스토불루스가 너무 어려서 아나넬에게 주었던 대제사장직을 이제 아리스토불루스에게 주겠다고 말했다. 헤롯이 이 말을 할 때는 생각없이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여자들과[㈜ 알렉산드라(alexandra)와 마리암메(Mariamme).] 자기가 자문을 구하던친구를 속이기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지혜를 짜낸 것이다. 알렉산드라는 이 예기치 않았던 약속을 얻은 기쁨과 그녀가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엎드려 울며 다음과 같이 변명하였다. ‘(대)제사장 건에 대해서는 내 아들이 당하고 있는 수치 때문에 깊은 관심을 가졌었고 대제사장직을 얻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왕권에 대해서는 어떤 시도도 한 적이 없으며 그런 제안이 들어온다 해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제 나는 내 아들의 권위에 만족하며, 왕이 정권을 잡고 탁월한 능력으로 다스리기 때문에 내 모든 가족이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왕의 호의에 황공할 따름이며 아들에게 준 이 명예를 감사히 받겠습니다. 앞으로는 완전히 왕에게 복종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가문이 귀족이라는 것 때문에 행동이 자유분방하여 너무 경속하고 건방지게 행동했다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그녀가 헤롯에게답변한 요지이다. 그녀는 이런 말로[㈜ spoudaiovteron h[ qa’sson의 의미는 확실치 않다 ; 허드슨(hudson)은 ‘majoricum studio quem antea’ 로 번역했다. 휘스톤-실레토(Whiston-Shilleto)는 그 구절을 빠뜨리고 있다 ; 라이나흐(Reinach)는 그 의미를 모르겠다고 한다.위의 번역은 포스트(L. A. Post)의 것이다.] 서로 감정을 풀고 헤롯과 화해를 하게 되었으며 표면적으로는 모든 의심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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