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적 요소들

나. 뉴 에이지 운동의 위험적 요소들




   뉴 에이지 운동은 개인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자기를 경험하는 인간의식의 확장을 강조하는데, 이 의식의 팽창을 위해 인간의 호기심과 생명력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나 추구한다.  예컨대 몰아경을 경험하기 위해 약물이나 마약을 통해 황홀경의 의식에 도달할 수 잇다고 하는데, 이는 결코 합리화 될 수 없다.  많은 청소년들, 마약 중독자들이 생겨 사회적인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진정한 새세대를 이루겠다는 그들의 사상과는 정반대 현상,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뉴 에이지는 기본 관점(신관, 인간관, 구원과, 그리스도관, 종교관, 역사관, 윤리관 등) 들에서 살펴 보았듯, 결국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들과는 정면적으로 반대된다.  범신론으로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영적 스승정도로 보고, 인간들도 깨달음을 위해 노력하면 예수와 같아진다는 것이다.  종교도 그 종교의 진리성보다는 초월적인 면을 강조하기에, 수많은 종교들을 혼합하여 밀교형식으로 만들어 버리고, 실제 사랑․봉사․희생 등 실천적 측면에서는 거의 소극적이며, 종교적 실천은 실제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뉴 에이지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제멋대로 해석한다.  예컨대 루가 22장 10절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예수는 물동이를 메고 가는 사람의 길을 준비하는 예언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미래에는 아콰리우스나 아콰리안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것이다.  또한 뉴에이지에서 말하는 우주적 에너지로 남을 치유하여 구원하는 것은 자연적으로 이러한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원시종교나 샤머니즘의 마법이나 마술의 실행과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뉴 에이지의 ‘모성적 하느님’이라는 하느님 개념은 기존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나쁜 행위에 대한 벌을 안받고, 고통과 두려움을 당하지 않으려는 신적의지와의 만남에서 파악된 개념이다.  즉 이는 인간이 삶의 의미와 즐거움으로 되돌아가려는 인간의 기본욕망이 깔려 있다.  그래서 성적인 문란, 온갖 쾌락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 하느님 자리에 다른 영들을 대치하는 강신술, 영매사상에서 육체이탈이라는 개념으로 자기 중심적인 자유로운 결단으로 죄악감을 느끼지 않는 욕망대로의 삶으로 모순에 빠진다. 


   뉴 에이지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남으로써 계속 자신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윤회사상(輪廻思想) 즉 ‘환생(還生)’을 주장한다.  이는 불교나 힌두교에서 처럼 ‘벌’의 결과가 아니기에, 뉴에이지의 환생은 인간이 행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된다.  그래서 이 환생의 개념은 많은 현대인들에게 목숨을 경시여겨 자살을 시도하게 하고, 그것이 자기실현이라고 믿는 거짓 믿음에서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다. 


   뉴 에이지 운동의 침투현상에 있어서 의식, 문화, 체계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사상에 빠져들 수 있기에 올바를 이해와 판단이 필요하다.  특히 영화, 출판, 예술, 상품 등과 같은 쉽게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대중매체의 방법으로 어린이에서 노약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젖어들 수 있기에 매우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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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나. 뉴 에이지 운동의 위험적 요소들


       뉴 에이지 운동은 개인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자기를 경험하는 인간의식의 확장을 강조하는데, 이 의식의 팽창을 위해 인간의 호기심과 생명력을 자극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나 추구한다.  예컨대 몰아경을 경험하기 위해 약물이나 마약을 통해 황홀경의 의식에 도달할 수 잇다고 하는데, 이는 결코 합리화 될 수 없다.  많은 청소년들, 마약 중독자들이 생겨 사회적인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진정한 새세대를 이루겠다는 그들의 사상과는 정반대 현상,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뉴 에이지는 기본 관점(신관, 인간관, 구원과, 그리스도관, 종교관, 역사관, 윤리관 등) 들에서 살펴 보았듯, 결국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들과는 정면적으로 반대된다.  범신론으로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영적 스승정도로 보고, 인간들도 깨달음을 위해 노력하면 예수와 같아진다는 것이다.  종교도 그 종교의 진리성보다는 초월적인 면을 강조하기에, 수많은 종교들을 혼합하여 밀교형식으로 만들어 버리고, 실제 사랑․봉사․희생 등 실천적 측면에서는 거의 소극적이며, 종교적 실천은 실제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뉴 에이지는 하느님의 말씀인 성서를 제멋대로 해석한다.  예컨대 루가 22장 10절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예수는 물동이를 메고 가는 사람의 길을 준비하는 예언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미래에는 아콰리우스나 아콰리안으로 나타나는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것이다.  또한 뉴에이지에서 말하는 우주적 에너지로 남을 치유하여 구원하는 것은 자연적으로 이러한 에너지를 사용함으로써 원시종교나 샤머니즘의 마법이나 마술의 실행과 아무런 차이가 없게 된다.   

       뉴 에이지의 ‘모성적 하느님’이라는 하느님 개념은 기존 유대교나 그리스도교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나쁜 행위에 대한 벌을 안받고, 고통과 두려움을 당하지 않으려는 신적의지와의 만남에서 파악된 개념이다.  즉 이는 인간이 삶의 의미와 즐거움으로 되돌아가려는 인간의 기본욕망이 깔려 있다.  그래서 성적인 문란, 온갖 쾌락을 부정하지 않는다. 또 하느님 자리에 다른 영들을 대치하는 강신술, 영매사상에서 육체이탈이라는 개념으로 자기 중심적인 자유로운 결단으로 죄악감을 느끼지 않는 욕망대로의 삶으로 모순에 빠진다. 

       뉴 에이지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남으로써 계속 자신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윤회사상(輪廻思想) 즉 ‘환생(還生)’을 주장한다.  이는 불교나 힌두교에서 처럼 ‘벌’의 결과가 아니기에, 뉴에이지의 환생은 인간이 행한 행동의 결과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된다.  그래서 이 환생의 개념은 많은 현대인들에게 목숨을 경시여겨 자살을 시도하게 하고, 그것이 자기실현이라고 믿는 거짓 믿음에서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다. 

       뉴 에이지 운동의 침투현상에 있어서 의식, 문화, 체계를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한 사상에 빠져들 수 있기에 올바를 이해와 판단이 필요하다.  특히 영화, 출판, 예술, 상품 등과 같은 쉽게 일반인들이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대중매체의 방법으로 어린이에서 노약자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젖어들 수 있기에 매우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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