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급 편에는 3일간의 어둠이 있었고 이스라엘에게는 3일간의 광명이 있었으니,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오시면 사탄편은 흑암이요, 하늘편은 광명으로 갈라진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애급의 장자와 육축의 맏것을 모조리 쳤으나, 이스라엘은 양의 피로써 이것을 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사탄편에 있어서의 장자는 가인의 입장이었으므로 이것을 쳐서, 아벨의 입장인 차자로 하여금 장자의 입장을 복귀케 하기 위함이었다. 이 재앙도 역시 장차 예수님이 오시면, 당초에 장자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섭리노정을 먼저 출발한 사탄편은 망하고, 차자의 입장인 하늘 편은 예수님의 피의 대속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모세는 또 애급에서 많은 재물을 취해 가지고 나욌는데(출애굽기 12장 35~36절22)), 이것도 장차 있을 예수님의 만물복귀를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재앙의 이적을 내리실 때마다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으니(출애굽기 10장 27절23)), 그 이유는 첫째, 바로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어, 하나님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고(출애굽기 10장 1~2절24)), 둘째로는 바로로 하여금 있는 힘을 다하여서 이스라엘 민족을 붙잡다가 할 수 없이 단념하게 하심으로써, 자기의 무력함을 깨닫고 이스라엘이 애급을 떠난 후에도 그들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째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로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하여 애급에 대한 미련을 끊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모세가 애급인을 쳐 죽이는 것으로써 그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를 도리어 불신하였기 때문에, 이 노정은 출발도 해 보지 못한 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2차노정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은, 그 ‘출발을 위한 섭리’로서 보여주신 3대기적과 10재앙을 보고, 모세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진정한 이스라엘의 영도자라는 것을 믿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 위에서 아벨의 입장을 확립한 모세를 믿고 따르는 입장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드디어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일시적으로 이와같이 모세에게 순종굴복하였다고 해서 그것으로 곧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섭리노정에 사탄이 침범하여, 오랜 섭리의 기간을 사탄에게 내주었던 것이므로, 모세에 대하여 가인의 입장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기간’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이 광야노정의 전 기간을 두고 순종과 굴복으로 모세를 믿고 따라가지 않고서는 ‘타락성을 벗기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순종하여 광야노정을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민족적인 실체기대>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제2차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그 1차 때보다도 더 큰 은사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불신 때문이었으므로, 제2차 노정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이 세워야 할 탕감조건은 더 가중되었던 것이다. 즉 제1차 노정에 있어서는 그들이 모세를 믿고 따르기만 하였더면, 블레셋의 곧은 길로 인도되어 야곱의 하란노정기간수인 21일간이면 가나안 복지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그런데 제2차 노정에 있어서는 출애굽기 13장 17절25)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같이, 만일 그들이 블레셋땅의 곧은 길로 인도되면 전쟁을 보고 두려워함으로써, 제1차 노정 때와 같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 애급땅으로 되돌아갈까 염려하시어, 하나님은 그들을 이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홍해를 건너고 시내광야를 돌아 21개월 걸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노정을 취하게 하시었다.
이와 같이 되어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21개월 광야노정을 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와같이, 이 노정이 어떻게 장차 오실 예수님을 중심한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본보기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모세에게 굴복한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애급땅에서 희생을 드릴 것을 허락했을 때에, 모세는 “그리함은 불가하나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것은 애급사람의 미워하는 바이온즉 우리가 만일 애급사람이 보는 데서 희생을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대로 하려 하나이다(출애굽기 8장 26~27절26))라는 말로써 바로를 속여 3일 동안 자유를 얻어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나왔다. 이 3일기간은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헌제를 위하여 사탄분립에 소요된 기간이었기 때문에, 그 후 이것은 섭리노정을 출발할때마다 사탄 분립에 필요한 탕감기간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야곱이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려 할 때에도, 라반을 속이고 하란을 떠나 사탄을 분립한 3일기간이 있었다(창세기 31장 19~22절27)). 이왁 마찬가지로 모세에게도 그가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하여서는, 바로를 속이고 자유행동을 취하여 사탄을 분립하여 3일기간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후일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사탄분립을 위한 3일기간이 있은 후에야 영적 복귀섭리의 출발을 하시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도 되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장정 60만명이 라암셋을 출발한 것은 정월 15일이었다(출애굽기 12장 6~37절28), 민수기 33장 3절29)).
이스라엘 민족이 3일기간을 뜻맞게 세워 숙곳에 이른 후에는, 하늘이 은사를 내리시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앞길을 인도하셨다(출애굽기 13장 21절30)). 모세노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 낮(양)의 구름기둥은, 장차 이스라엘 민족을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으로 인도할 예수님을 표시하고, 밤(음)의 불기둥은 여성신으로서 그들을 인도할 성신을 상징했던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지팡이로 홍해를 가름으로써 이것을 육지와 같이 건넜으나, 그드르이 뒤를 추격해 오던 애급의 병거는 다 수장되어 버리고 말았었다(출애굽기 14장 21~28절31)). 이미 위에서 논한 바와같이 바로 앞에 선 모세는 하나님을 상징하였고(출애굽기 7장 1절32)), 모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실 예수님을 상징하였다. 그러므로 이 기적은 장차 예수님이 오실 때에, 사탄은 예수님을 따라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걷는 신앙자들의 뒤를 추격할 것이지만, 지팡이의 사명자로 오시는 예수님이 철장으로(요한계시록 2장 27절33), 시편 2장 9절34)) 그들 앞에 가로놓인 이 고해의 세상을 치면, 이 고해도 평탄한 길로 갈라질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의 갈 길은 열리고 추격하는 사탄은 멸망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전편 말세론에서 이미 밝힌 바와같이, 철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7장 15절35)에는 이 죄악세상을 ‘물’로 비유하였다. 우리가 이 세상을 고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통념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건너서 애급을 떠난지 제2월 15일에 신광야에 이르렀다(출애굽기 16장 1절36)). 이때부터 하나님은 그들이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만나와 메추리를 내려 먹이셨으니(출애굽기 16장 35절37)), 이것은 장차 예수님의 살(만나)과 피(메추리)를 모든 인간에게 주실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 48절38)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너희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신광야에서 떠나 르비듬에 장막을 쳤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시어 호렙산의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그들에게 먹이셨다(출애굽기 17장 6절39)). 고린도전서 10장 4절40)에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으니, 이 행사는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생명수 샘물로(요한복음 4장 14절41)) 모든 사람을 살리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모세가 다음에 시내산에서 받게 되는 두 석판도 예수와 성신을 상징하지만, 반석은 석판의 뿌리가 되므로 이것은 또한 하나님도 상징한다. 모세가 석판의 뿌리가 되는 반석을 쳐서 샘물을 내어, 이스라엘 민족을 먹여 살린 터전이 있기 때문에, 이 터전 위에서 모세가 석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법궤와 성막을 지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여호수아가 르비듬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손을 내리면 패하였다. 그러므로 아론과 훌은 돌을 쌓아 모세를 그 위에 앉히고, 그의 손을 내려지지 않도록 좌우에서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앞에서 싸운 여호수아는 아말렉왕과 그 백성을 쳐서 승리하였다(출애굽기 17장 10~13절42)). 이것도 장차 예수께서 오실 때에 되어질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으니, 여호수아는 예수를 믿는 신앙자를, 마말렉은 사탄세계를, 그리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고 서 있는 것은 그 앞에서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쳐서 멸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예수님과 성신의 3위신을 모신 신앙자들은, 그 앞에 오는 모든 사탄을 멸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애급 편에는 3일간의 어둠이 있었고 이스라엘에게는 3일간의 광명이 있었으니, 이것은 장차 예수님이 오시면 사탄편은 흑암이요, 하늘편은 광명으로 갈라진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애급의 장자와 육축의 맏것을 모조리 쳤으나, 이스라엘은 양의 피로써 이것을 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사탄편에 있어서의 장자는 가인의 입장이었으므로 이것을 쳐서, 아벨의 입장인 차자로 하여금 장자의 입장을 복귀케 하기 위함이었다. 이 재앙도 역시 장차 예수님이 오시면, 당초에 장자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섭리노정을 먼저 출발한 사탄편은 망하고, 차자의 입장인 하늘 편은 예수님의 피의 대속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모세는 또 애급에서 많은 재물을 취해 가지고 나욌는데(출애굽기 12장 35~36절22)), 이것도 장차 있을 예수님의 만물복귀를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재앙의 이적을 내리실 때마다 바로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셨으니(출애굽기 10장 27절23)), 그 이유는 첫째, 바로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어, 하나님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고(출애굽기 10장 1~2절24)), 둘째로는 바로로 하여금 있는 힘을 다하여서 이스라엘 민족을 붙잡다가 할 수 없이 단념하게 하심으로써, 자기의 무력함을 깨닫고 이스라엘이 애급을 떠난 후에도 그들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세째로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로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하여 애급에 대한 미련을 끊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제1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모세가 애급인을 쳐 죽이는 것으로써 그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었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를 도리어 불신하였기 때문에, 이 노정은 출발도 해 보지 못한 채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제2차노정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은, 그 ‘출발을 위한 섭리’로서 보여주신 3대기적과 10재앙을 보고, 모세야말로 하나님이 보내주신 진정한 이스라엘의 영도자라는 것을 믿게 되었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민족적인 믿음의 기대> 위에서 아벨의 입장을 확립한 모세를 믿고 따르는 입장에 서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드디어 제2차 민족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되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일시적으로 이와같이 모세에게 순종굴복하였다고 해서 그것으로 곧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이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타락성을 벗기 위한 탕감조건’을 세우는 섭리노정에 사탄이 침범하여, 오랜 섭리의 기간을 사탄에게 내주었던 것이므로, 모세에 대하여 가인의 입장이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러한 ‘기간’을 민족적으로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이 광야노정의 전 기간을 두고 순종과 굴복으로 모세를 믿고 따라가지 않고서는 ‘타락성을 벗기위한 민족적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순종하여 광야노정을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민족적인 실체기대>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제2차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는, 그 1차 때보다도 더 큰 은사로써 ‘출발을 위한 섭리’를 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의 불신 때문이었으므로, 제2차 노정에 있어서의 이스라엘 민족이 세워야 할 탕감조건은 더 가중되었던 것이다. 즉 제1차 노정에 있어서는 그들이 모세를 믿고 따르기만 하였더면, 블레셋의 곧은 길로 인도되어 야곱의 하란노정기간수인 21일간이면 가나안 복지로 들어갔을 것이었다. 그런데 제2차 노정에 있어서는 출애굽기 13장 17절25)에 명시되어 있는 바와같이, 만일 그들이 블레셋땅의 곧은 길로 인도되면 전쟁을 보고 두려워함으로써, 제1차 노정 때와 같이 다시 불신으로 돌아가 애급땅으로 되돌아갈까 염려하시어, 하나님은 그들을 이 길로 인도하시지 않고 홍해를 건너고 시내광야를 돌아 21개월 걸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노정을 취하게 하시었다.
이와 같이 되어 모세를 중심한 이스라엘 민족은 21개월 광야노정을 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미 위에서 논술한 바와같이, 이 노정이 어떻게 장차 오실 예수님을 중심한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본보기가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기로 하자.
모세에게 굴복한 바로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애급땅에서 희생을 드릴 것을 허락했을 때에, 모세는 “그리함은 불가하나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는 것은 애급사람의 미워하는 바이온즉 우리가 만일 애급사람이 보는 데서 희생을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되 우리에게 명하시는대로 하려 하나이다(출애굽기 8장 26~27절26))라는 말로써 바로를 속여 3일 동안 자유를 얻어가지고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여 나왔다. 이 3일기간은 바로 아브라함이 이삭헌제를 위하여 사탄분립에 소요된 기간이었기 때문에, 그 후 이것은 섭리노정을 출발할때마다 사탄 분립에 필요한 탕감기간이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야곱이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려 할 때에도, 라반을 속이고 하란을 떠나 사탄을 분립한 3일기간이 있었다(창세기 31장 19~22절27)). 이왁 마찬가지로 모세에게도 그가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하기 위하여서는, 바로를 속이고 자유행동을 취하여 사탄을 분립하여 3일기간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은 후일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사탄분립을 위한 3일기간이 있은 후에야 영적 복귀섭리의 출발을 하시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도 되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장정 60만명이 라암셋을 출발한 것은 정월 15일이었다(출애굽기 12장 6~37절28), 민수기 33장 3절29)).
이스라엘 민족이 3일기간을 뜻맞게 세워 숙곳에 이른 후에는, 하늘이 은사를 내리시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의 앞길을 인도하셨다(출애굽기 13장 21절30)). 모세노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한 낮(양)의 구름기둥은, 장차 이스라엘 민족을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으로 인도할 예수님을 표시하고, 밤(음)의 불기둥은 여성신으로서 그들을 인도할 성신을 상징했던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지팡이로 홍해를 가름으로써 이것을 육지와 같이 건넜으나, 그드르이 뒤를 추격해 오던 애급의 병거는 다 수장되어 버리고 말았었다(출애굽기 14장 21~28절31)). 이미 위에서 논한 바와같이 바로 앞에 선 모세는 하나님을 상징하였고(출애굽기 7장 1절32)), 모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는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실 예수님을 상징하였다. 그러므로 이 기적은 장차 예수님이 오실 때에, 사탄은 예수님을 따라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걷는 신앙자들의 뒤를 추격할 것이지만, 지팡이의 사명자로 오시는 예수님이 철장으로(요한계시록 2장 27절33), 시편 2장 9절34)) 그들 앞에 가로놓인 이 고해의 세상을 치면, 이 고해도 평탄한 길로 갈라질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의 갈 길은 열리고 추격하는 사탄은 멸망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전편 말세론에서 이미 밝힌 바와같이, 철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17장 15절35)에는 이 죄악세상을 ‘물’로 비유하였다. 우리가 이 세상을 고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러한 통념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홍해를 건너서 애급을 떠난지 제2월 15일에 신광야에 이르렀다(출애굽기 16장 1절36)). 이때부터 하나님은 그들이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만나와 메추리를 내려 먹이셨으니(출애굽기 16장 35절37)), 이것은 장차 예수님의 살(만나)과 피(메추리)를 모든 인간에게 주실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6장 48절38)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너희 조상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신광야에서 떠나 르비듬에 장막을 쳤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시어 호렙산의 반석을 쳐서 물을 내어 그들에게 먹이셨다(출애굽기 17장 6절39)). 고린도전서 10장 4절40)에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으니, 이 행사는 장차 메시아가 오셔서 생명수 샘물로(요한복음 4장 14절41)) 모든 사람을 살리신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모세가 다음에 시내산에서 받게 되는 두 석판도 예수와 성신을 상징하지만, 반석은 석판의 뿌리가 되므로 이것은 또한 하나님도 상징한다. 모세가 석판의 뿌리가 되는 반석을 쳐서 샘물을 내어, 이스라엘 민족을 먹여 살린 터전이 있기 때문에, 이 터전 위에서 모세가 석판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따라서 법궤와 성막을 지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여호수아가 르비듬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손을 내리면 패하였다. 그러므로 아론과 훌은 돌을 쌓아 모세를 그 위에 앉히고, 그의 손을 내려지지 않도록 좌우에서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 앞에서 싸운 여호수아는 아말렉왕과 그 백성을 쳐서 승리하였다(출애굽기 17장 10~13절42)). 이것도 장차 예수께서 오실 때에 되어질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으니, 여호수아는 예수를 믿는 신앙자를, 마말렉은 사탄세계를, 그리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붙들고 서 있는 것은 그 앞에서 여호수아가 아말렉을 쳐서 멸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한 예수님과 성신의 3위신을 모신 신앙자들은, 그 앞에 오는 모든 사탄을 멸할 수 있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