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3.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유대인들은 세례요한이 세운 믿음의 기대 위에서, 그를 메시아와 같이 믿고 따르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요한복음 1장 19절1), 누가복음 3장 15절2)), 그들은 구약시대를 청산하고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새로운 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전편 제4장 제2절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같이,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고서도 그를 의심하는 데 이르렀고(마태복음 11장 3절3)), 또 자기가 엘리아로 왓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부인하여(요한복음 1장 21절4)),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반하는 처지에 서게까지 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세례요한은 실체기대를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를 떠나게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타락성을 벗기위한 세계쩍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이 실체기대를 이루지 못하게 됨에 따라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이것도 모세 때와 같이 2차 내지 3차까지 연장되게 되었던 것이다.




          Ⅱ.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ㄱ.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심


세례요한은 완성한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복귀한 아담형의 임물이었다. 그러므오 세례요한은 그 때까지의 섭리역사 위에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왔다 간 모든 중심인물들이 다하지 못하였던 사명을 완전히 이루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기대 위에서 믿고 따르는 유대민족을 인도하여, 전체적인 섭리의 기대와 함께 예수님께 인계해 드린 후, 믿음과 충성으로 그를 따르고 모셔야 했던 것이다.


 세례요한은 자기도 모르고 행한 일이었지만,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것은(마태복음 3장 16절5)),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쌓아온 모든 것을 예수님 앞에 인계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세례요한은 점점 예수님을 의심하고 배신하는데 이르렀으므로, 세례요한을 메시아와 같이 믿고 따르던(누가복음 3장 15절6)) 유대인들은 자연히 예수님을 불신하는 처지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전편 제4장 제2절). 따라서 세례요한이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위하여 세웠던 믿음의 기대는 사탄의 침범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기 대문에 할 수 없이 예수님 자신이, 세례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함으로써,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을 하시면서 사탄을 분립하신 것은, 바로 세례요한의 대신 입장에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영광의 주로 오셔으므로, 원칙적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고린도전서 2장 8절7)). 그러나 그의 앞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던 세례요한(요한복음 1장 23절8), 누가복음 1장 75절9))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당했어야 할 고난을 예수님 자신이 당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면서도 세례요한 대신으로 복귀섭리 노정을 출발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자기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16장 20절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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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3.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의 실패

     유대인들은 세례요한이 세운 믿음의 기대 위에서, 그를 메시아와 같이 믿고 따르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에(요한복음 1장 19절1), 누가복음 3장 15절2)), 그들은 구약시대를 청산하고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새로운 노정을 출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전편 제4장 제2절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같이,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증거하고서도 그를 의심하는 데 이르렀고(마태복음 11장 3절3)), 또 자기가 엘리아로 왓으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부인하여(요한복음 1장 21절4)), 유대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막았을 뿐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배반하는 처지에 서게까지 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세례요한은 실체기대를 세우는데 있어서의 아벨의 위치를 떠나게 되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타락성을 벗기위한 세계쩍인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이 실체기대를 이루지 못하게 됨에 따라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조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어, 이것도 모세 때와 같이 2차 내지 3차까지 연장되게 되었던 것이다.


              Ⅱ.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

            1. 믿음의 기대

      ㄱ. 예수님이 세례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심

    세례요한은 완성한 아담으로 오신 예수님 앞에, 복귀한 아담형의 임물이었다. 그러므오 세례요한은 그 때까지의 섭리역사 위에서, 믿음의 기대와 실체기대를 복귀하기 위하여 왔다 간 모든 중심인물들이 다하지 못하였던 사명을 완전히 이루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를 세워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기대 위에서 믿고 따르는 유대민족을 인도하여, 전체적인 섭리의 기대와 함께 예수님께 인계해 드린 후, 믿음과 충성으로 그를 따르고 모셔야 했던 것이다.

     세례요한은 자기도 모르고 행한 일이었지만, 요단강에서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것은(마태복음 3장 16절5)),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쌓아온 모든 것을 예수님 앞에 인계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세례요한은 점점 예수님을 의심하고 배신하는데 이르렀으므로, 세례요한을 메시아와 같이 믿고 따르던(누가복음 3장 15절6)) 유대인들은 자연히 예수님을 불신하는 처지에 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전편 제4장 제2절). 따라서 세례요한이 제1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위하여 세웠던 믿음의 기대는 사탄의 침범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기 대문에 할 수 없이 예수님 자신이, 세례요한의 사명을 대신하여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함으로써, 제2차 세계적 가나안 복귀노정을 출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을 하시면서 사탄을 분립하신 것은, 바로 세례요한의 대신 입장에서 믿음의 기대를 탕감복귀하시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영광의 주로 오셔으므로, 원칙적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고린도전서 2장 8절7)). 그러나 그의 앞길을 곧게 하기 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났던 세례요한(요한복음 1장 23절8), 누가복음 1장 75절9))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례요한이 당했어야 할 고난을 예수님 자신이 당하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메시아이시면서도 세례요한 대신으로 복귀섭리 노정을 출발하셨던 것이기 때문에, 베드로에게 자기가 메시아라는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밝히지 말라고 당부하셨던 것이다(마태복음 16장 20절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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