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바티칸공의회의이해-교회적관점(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배경)

 

2. 배경


중세 이래로 교회 하면 성직자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평신도는 공식적인 가르침에서 무시되는 경향이 있었고, 그곳에는 평신도를 속인(俗人)으로 생각해 왔다(예를 들면 수도자와 대조를 이루는). 평신도는 가끔 교회 안에서 제2급 시민으로 간주되었다.


19세기에 교회의 정치적 권력의 약화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평신도가 세속 사회 속에서 교회를 대리할 수 있는 힘있는 존재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신학의 재생은 각 구성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공의회 안건 마련에도 도움을 주었다(교회헌장의 배경 참조).


성직자와 평신도의 협력도 교회가 대중의 교육에 관계하면서 자라기 시작했다. 가톨릭 신자들이 특정한 분야와 전문적인 분야에서 성숙한 지원과 ‘가톨릭 액션’을 위해 서로 단결하도록 권장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청년 그리스도교 노동자나 레지오 마리애 같은 새로운 운동들이 옛 단체들과 나란히 성장했다. 어찌되었거나 ‘평신도’가 관련된 모든 일들은 엄격히 통제되었다. 교회와 교회의 전통을 유지하는데 있어서는 신자들의 능력을 조금 알아주는 지도자들도 있었다. 평신도 조직들이 정치 조직화되리라는 염려가 있었다. 더구나 당시의 기질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가끔 온정주의적 접근을 부추겼는데 이는 그 당시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20세기가 전개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교육과 기술이 사회에 대변혁을 일으켰다; 식민주의는 시들해지고, 민주주의가 일반화되었다. 모든 직업에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역할이 이차적이거나 파생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변화를 위한 또 하나의 긴급한 사목적인 이유는 교회의 확장과 사제의 부족에서 왔다. 평신도의 참여는 세계 곳곳의 매일 매일의 교회의 전교사업에 긴급히 필요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공동책임을 느껴야 될 필요성이 대두 됐다.


20세기 동안, 어떤 교황들과 신학자들(이브 꽁가르 같은)은 평신도의 역할에 대한 신학적인 토대를 검토했고, 그로 말미암아, 어느 면에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사실들을 따라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신도교령이 쓰여질 때 참고할 선례가 없었고, 원본이 완성되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 가정 사도직


평신도교령 11항과 12항에서는 가정 사도직의 다양한 국면을 정의하고 있다.


‧버려진 어린이들의 입양


‧나그네를 환영


‧학교 운영을 도움


‧청소년들을 돕고 인도함


‧결혼 준비를 도움


‧결혼한 부들을 윤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도움


‧노년에 대한 대비, 노인들에게 생필품뿐 아니라 경제발전의 혜택을 공평히 나눔


‧청소년들이 열의를 가지고 사회와 문화면에서 그들의 역할을 다하고 동시대의 사도가 되도록 고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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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공의회의이해-교회적관점(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배경)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2. 배경

    중세 이래로 교회 하면 성직자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평신도는 공식적인 가르침에서 무시되는 경향이 있었고, 그곳에는 평신도를 속인(俗人)으로 생각해 왔다(예를 들면 수도자와 대조를 이루는). 평신도는 가끔 교회 안에서 제2급 시민으로 간주되었다.

    19세기에 교회의 정치적 권력의 약화는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평신도가 세속 사회 속에서 교회를 대리할 수 있는 힘있는 존재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신학의 재생은 각 구성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공의회 안건 마련에도 도움을 주었다(교회헌장의 배경 참조).

    성직자와 평신도의 협력도 교회가 대중의 교육에 관계하면서 자라기 시작했다. 가톨릭 신자들이 특정한 분야와 전문적인 분야에서 성숙한 지원과 ‘가톨릭 액션’을 위해 서로 단결하도록 권장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청년 그리스도교 노동자나 레지오 마리애 같은 새로운 운동들이 옛 단체들과 나란히 성장했다. 어찌되었거나 ‘평신도’가 관련된 모든 일들은 엄격히 통제되었다. 교회와 교회의 전통을 유지하는데 있어서는 신자들의 능력을 조금 알아주는 지도자들도 있었다. 평신도 조직들이 정치 조직화되리라는 염려가 있었다. 더구나 당시의 기질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가끔 온정주의적 접근을 부추겼는데 이는 그 당시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20세기가 전개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 교육과 기술이 사회에 대변혁을 일으켰다; 식민주의는 시들해지고, 민주주의가 일반화되었다. 모든 직업에서 사람들은 자기들의 역할이 이차적이거나 파생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서는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에 참가하게 되었다.

    변화를 위한 또 하나의 긴급한 사목적인 이유는 교회의 확장과 사제의 부족에서 왔다. 평신도의 참여는 세계 곳곳의 매일 매일의 교회의 전교사업에 긴급히 필요했다. 성직자와 평신도의 공동책임을 느껴야 될 필요성이 대두 됐다.

    20세기 동안, 어떤 교황들과 신학자들(이브 꽁가르 같은)은 평신도의 역할에 대한 신학적인 토대를 검토했고, 그로 말미암아, 어느 면에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 사실들을 따라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신도교령이 쓰여질 때 참고할 선례가 없었고, 원본이 완성되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 가정 사도직

    평신도교령 11항과 12항에서는 가정 사도직의 다양한 국면을 정의하고 있다.

    ‧버려진 어린이들의 입양

    ‧나그네를 환영

    ‧학교 운영을 도움

    ‧청소년들을 돕고 인도함

    ‧결혼 준비를 도움

    ‧결혼한 부들을 윤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도움

    ‧노년에 대한 대비, 노인들에게 생필품뿐 아니라 경제발전의 혜택을 공평히 나눔

    ‧청소년들이 열의를 가지고 사회와 문화면에서 그들의 역할을 다하고 동시대의 사도가 되도록 고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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