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I.서론

현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드물지 않게 “예수가 아직 교회안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아주 극소수일지라도 사람들은 ‘교회는 죽었고, 거기에는 하느님도 예수 그리스도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W. Schweitzer,“가난한 자들의 신학”, 비판과 전망 제54호(서울:한국신학연구소,1986),
p.175 에서 인용.
이런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와 우리의 신학, 즉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 사로 잡혔던 우리 신학에게 던지는 질문인 것이다. 같은 책, p.176 참조.
더욱 한국교회 현실을 돌이켜 볼때, 아직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이 본 논문 제 3 장 ‘하느님 백성’에서 자세하게 다룰 것이나, ‘적응과
쇄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교회가 자기 자신을 ‘하느님 백성’이라고
표현한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교회안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성직자는 마치 교회의 군주처럼 군림하고 평신도는 성직자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믿는 이른바 성직주의(Clericalismus)가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또한 가난한 교회를 부르짖던 교황 요한 23세의 호소와는 다르게 한국교회는 가난한 사람을 등진 채 점점 중산층화 되어 가고 있으며, 부자들이 중심이 되는 부유한 교회로 탈바꿈해 가고 있다. 이에 자연적으로 노동자, 농민 등의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소외되고 자신들이 설 땅을 점차 잃어가고 있으며 교회를 떠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2000년 가까운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16세기 종교분열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향하여 취해온 태도는 한마디로 방어적이며 호교적이었다. 정하권,「교회론I」(왜관:분도출판사,1979), pp.148-156 참조.
그 결과 세상에 대한 교회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거나 상실되었고, 사회안에서 교회는 하나의 ‘게토’(Ghetto)로 전락하는 양상이다. 즉 교회는 세상의 ‘탈그리스도교화’에 대응하여 교회와 세상, 聖과 俗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이원화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세속화(Secularizatio)등의 급박한 상황에 대한 교회의 이러한 안일한 적응방식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왜곡할 뿐 아니라, 현실에 대처해 나가는데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신학자들 안에 싹텄다. 위의 책, pp.157-175 참조.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적응과 쇄신’(Aggiornamento)라는 기치를 내걸고, 안으로는 교회의 쇄신을 부르짖고, 밖으로는 세상과 타종교에 대한 새로운 적응을 추구한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였다.
한편, 한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구체화하고 심화하는 움직임이 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 일각에서 일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민중신학이다. 이형기,「해방신학 및 민중신학이 지향하는 교회의 사회참여」 (서울:성지출판
사,1990), pp.108-118 참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몇몇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국민중의 현실에 눈을 뜨고 그들의 현실에 동참하게 되면서 민중의 눈으로 성서와 세계를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전개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민중신학이다. ‘다원주의적 세계교회’(Polyzentrische Weltkirche)로 옮아가는 상황에서,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구원의 메세지와 고유한 문화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신학의 정립은 시급한 일이다.7) 사목헌장 44항, 58항 참조.
더욱이 한국사회만이 가지는 고유한 정치, 경제,사회, 문화적 여건을 감안해 볼 때 차츰 자리를 잡아 나가는 민중신학을 균형있게 키워 나가는 일은 한국 신학자들의 과제라 할 것이다.
본 논문은 먼저 역사속에 예수의 모습, 특히 민중으로서의 예수의 모습을 살펴본 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을 대변해 주는 ‘하느님 백성’과 민중신학의 ‘민중’을 연결하여 정리함으로써 한국교회 현실에 대한 제안을 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백성’과 ‘민중’의 상호 관련성을 밝힘으로써 “예수가 아직 교회안에 있는가? ” 라는 질문에 해답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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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I.서론

    현대를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드물지 않게 “예수가 아직 교회안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는다. 아주 극소수일지라도 사람들은 ‘교회는 죽었고, 거기에는 하느님도 예수 그리스도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W. Schweitzer,“가난한 자들의 신학”, 비판과 전망 제54호(서울:한국신학연구소,1986),
    p.175 에서 인용.
    이런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와 우리의 신학, 즉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에 사로 잡혔던 우리 신학에게 던지는 질문인 것이다. 같은 책, p.176 참조.
    더욱 한국교회 현실을 돌이켜 볼때, 아직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이 본 논문 제 3 장 ‘하느님 백성’에서 자세하게 다룰 것이나, ‘적응과
    쇄신’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교회가 자기 자신을 ‘하느님 백성’이라고
    표현한 사실에 주목할 수 있다.
    교회안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성직자는 마치 교회의 군주처럼 군림하고 평신도는 성직자에게 봉사해야 한다고 믿는 이른바 성직주의(Clericalismus)가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또한 가난한 교회를 부르짖던 교황 요한 23세의 호소와는 다르게 한국교회는 가난한 사람을 등진 채 점점 중산층화 되어 가고 있으며, 부자들이 중심이 되는 부유한 교회로 탈바꿈해 가고 있다. 이에 자연적으로 노동자, 농민 등의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소외되고 자신들이 설 땅을 점차 잃어가고 있으며 교회를 떠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2000년 가까운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16세기 종교분열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향하여 취해온 태도는 한마디로 방어적이며 호교적이었다. 정하권,「교회론I」(왜관:분도출판사,1979), pp.148-156 참조.
    그 결과 세상에 대한 교회의 역할은 점차 축소되거나 상실되었고, 사회안에서 교회는 하나의 ‘게토’(Ghetto)로 전락하는 양상이다. 즉 교회는 세상의 ‘탈그리스도교화’에 대응하여 교회와 세상, 聖과 俗을 철저하게 구분하는 이원화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세속화(Secularizatio)등의 급박한 상황에 대한 교회의 이러한 안일한 적응방식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왜곡할 뿐 아니라, 현실에 대처해 나가는데 역부족이라는 인식이 신학자들 안에 싹텄다. 위의 책, pp.157-175 참조.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적응과 쇄신’(Aggiornamento)라는 기치를 내걸고, 안으로는 교회의 쇄신을 부르짖고, 밖으로는 세상과 타종교에 대한 새로운 적응을 추구한 것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였다.
    한편, 한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구체화하고 심화하는 움직임이 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 일각에서 일어났는데, 그것이 바로 민중신학이다. 이형기,「해방신학 및 민중신학이 지향하는 교회의 사회참여」 (서울:성지출판
    사,1990), pp.108-118 참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몇몇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국민중의 현실에 눈을 뜨고 그들의 현실에 동참하게 되면서 민중의 눈으로 성서와 세계를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전개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민중신학이다. ‘다원주의적 세계교회’(Polyzentrische Weltkirche)로 옮아가는 상황에서,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구원의 메세지와 고유한 문화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신학의 정립은 시급한 일이다.7) 사목헌장 44항, 58항 참조.
    더욱이 한국사회만이 가지는 고유한 정치, 경제,사회, 문화적 여건을 감안해 볼 때 차츰 자리를 잡아 나가는 민중신학을 균형있게 키워 나가는 일은 한국 신학자들의 과제라 할 것이다.
    본 논문은 먼저 역사속에 예수의 모습, 특히 민중으로서의 예수의 모습을 살펴본 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을 대변해 주는 ‘하느님 백성’과 민중신학의 ‘민중’을 연결하여 정리함으로써 한국교회 현실에 대한 제안을 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 백성’과 ‘민중’의 상호 관련성을 밝힘으로써 “예수가 아직 교회안에 있는가? ” 라는 질문에 해답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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