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대한 그리스도론적 고찰

 

Ⅰ. 문제제기 및 논문의 목적




19세기-20세기를 걸쳐 무수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생활을 윤택 시켜 왔다. 이는 인간이 생명의 연장․편리한 생활․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반면 이러한 외적인 성장과 풍요의 이면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인간을 위협하게 되었다. 즉, 물질만능․자본(돈)중심의 사고․이기주의 등이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인간의 심성을 파괴하였으며,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인류 공동체의 삶을 괴롭히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선악의 기준에 대한 모호한 삶의 태도와 이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 무엇보다 인간소외현상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으로서 참 행복에로 불리움 받은 존재이며, 누구나 존엄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앞서 살펴본 현대사회의 상황 속에서 많은 위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현실에서 참 행복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필요한 ‘무엇’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며, 신앙인은 그것을 당연히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풍요로운 세상 속에서의 인간 존엄성 위협은 신앙인에게 그리스도의 삶, 특히 당신 자신을 철저히 ‘비우심’으로서 인류구원을 위해 행하신 그분의 가난한 삶에 주목케 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자기비움인 가난의 삶을 통해서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난에 대한 그리스도의 삶과 실천에 대한 정리는 많은 것을 신앙인에게 공감하게 해 줄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전제해야 할 것은 첫째, 예수께서는 당시 사회 속에서 소외되고 죄인으로 여겨지던 모든 이들을 ‘가난한 이’라고 부르면서 하느님 나라를 약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신앙인만이 가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앙인의 시작과 끝에서 항상 예수께서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가지를 전제 할 때에 가난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이 가능할 것이다. 이를 토대로 예수를 통해 본 ‘자기비움’ 즉, 가난의 의미를 고찰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물질이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물질과 자본을 대체할 수 있는 정신적 가치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신앙인의 대답은 단연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분의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둘째, ‘어떻게’ 즉 방법상의 문제이다. 현대의 상황에 비추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 중 가난에 대한 주목을 통해서 인간존엄성 회복을 위한 적절한 삶의 태도와 정신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가난이란 말은 다의적이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즉 단순히 물질적 빈곤만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런 오해를 제거하면서 차원이 높은 그리스도의 가난에 대해서 알아보고, 세상의 소외받는 이들의 인간존엄성 회복을 위한 실천적인 삶의 방식을 현재에 맞게끔 도출해 보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방향정립을 토대로 가난에 대한 그리스도론적 고찰을 통해 가난이라는 현상을 이해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신앙인의 구체적인 삶과 실천을 도출해 보는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다. 물론 당연히 가난에 대한 성서적 관점을 근본으로 해서 그리스도론적 이해로 나아갈 것이다. 또한 교회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가난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시대에 맞게끔 해석하고 적용해왔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나아가 교회가 제시한 실천적인 방법과 그 적용의 문제도 아울러 고찰해 보게 될 것이다. 단, 여기서는 가난의 문제를 앞서 보았듯이 현대 사회에서 부딪치게 되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와의 관계 속에서 고찰하게 될 것이다. 그래야만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가난한 이들에 대한 태도가 구체적인 실천적 의미로 현대의 신앙인에게 다가오기를 희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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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대한 그리스도론적 고찰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Ⅱ.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


    구약성서1) 창세기 1장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고, 피조물 중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간만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받도록 부르셨다.2)

    신약성서에서는 특히 사도 바오로의 그리스도론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논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시며 만물에 앞서 태어나신 분이십니다’(골로 1,15). 여기서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의 중개자로 나타난다. 고린토2서 3장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서 하느님의 모상이 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3) 결국 아담의 죄의 결과로 이러한 모상성에 상처입은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종말에야 비로소 모상성의 완전한 회복에 이르게 된다. 하느님은 내세에서도 현세에서도 우리의 하느님이다. 따라서 종말의 궁극적 완성을 지향하는 현세에서는 이러한 모상성은 인간존엄성의 구현의 문제로 등장한다고 할 수 있겠다.


    1. 인간의 존엄성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고, 현세의 삶에서 하느님께 응답토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인간 존엄성의 근본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러한 각 개인은 육체와 영혼을 지닌 인격이라는 품위를 지니고 있으며, 자유로이 자신을 내어주고 다른 인격들과 친교를 이룰 수 있다.4) 아울러 인격5)의 존중은 인간의 존엄성에서 비롯하는 권리에 대한 존중을 내포한다. 투명한 사회 속에서의 인간 존중은 결국 공동선의 문제이며 구원에 관한 문제에로 연결되어 있다.


    2. 구원에의 초대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은 같은 본성과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모든 사람들은 하느님의 구원에 참여하도록 초대를 받았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동등한 존엄성을 누린다.”6) 여기서 “구약과 신약의 하느님의 모습이라는 개념을 종합해 보면,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라 할 때에는 인간이 지성과 자유의지를 받아서 창조되었다는 사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구세주의 구속 공로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니는 구속된 자라는 의미를 아울러 포함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참으로 하느님의 모습이 되려면 ‘새로운 인간’(에페 4,24; 골로 3,9-10; 2고린 5,17참조)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7)


    2.1. 다양한 전제들


    구원과의 연관 속에서 인간에 대한 존중은 다음과 같은 원칙을 존중함으로써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다. 첫째 개인은 이웃을 또 하나의 자신이라고 생각해야하고, 둘째 이웃의 생활과 그 생활을 인간답게 영위하기에 필요한 수단을 고려해야 한다. 끝으로 이웃을 형제로 보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8)


    2.2. 물질에의 초연함


    예수 그리스도께 자신을 내어맡기는 인간은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게 된다. “부자 자캐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물질적으로 가난한 다른 이들과 재산의 반을 나눔으로써 자발적으로 가난해져 그들과 동일한 처지에서 벗이 되었고, 이러한 인격적인 결합으로 그들과 일치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도 벗으로서 일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는 구원, 즉 생명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물질을 나눔으로써 가난해져 버린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게 되었던 것이다.”9)

    현대의 물질만능 사회의 한 켠에는 빈곤과 연관된 인간소외라는 역설적 상황이 도사리고 있다. 빈곤은 단순한 물질적 결핍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위협하는 비인간적인 처참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물질적 이익을 초월하는 ‘자캐오’와 같은 행동은 ‘우정’이나 ‘사회적 사랑’이라는 원리를 포함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인 다운 형제애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바이다. 이러한 사회․경제적인 문제들은 인간상호간의 연대성의 도움으로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며10) 나아가 물질에 대한 초연함은 정신적 가난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자 내적 초연함의 표지로서 종교적 가치를 지니게 해 줄 수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빈곤과 연관된 인간 존엄성의 문제는 ‘가난’이라는 단어에 주목함으로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은 대단히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단순히 물질적인 초연함을 넘어 “하느님이 주시는 은혜를 더욱 자유로이 받아들이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 더 완전하게 봉사하도록 해주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11)


    2.3. 마음의 가난


    “가난에는 행복을 주는 정신적 가난이 있다. 마태오 복음서의 ‘마음이 가난한 사람’(마태 5,3) 즉 청빈의 정신으로 생활하는 자들은 행복을 누린다고 한 것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한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지상 재물에 대해 정신적으로 초연할 것을 요구하신 것은, 그들이 진정한 보물을 갈망하고 찾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마태 6,24참조).”12) 마음의 가난은 “신뢰하는 믿음과 인내하는 겸손으로 하느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자신을 개방하게 한다. 그런데 물질적 가난은 이 마음의 가난을 얻기 위한 확실한 길이 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부요하셨지만 여러분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고 가난해지심으로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움’(2고린 8,9)에 참여하는 것을 그 원칙과 목표로 삼아야 한다.”13)

    빈곤의 문제 인간소외를 발생시킨다. 물질이 우상화되는 현대에서는 더욱 그러하기에 인간존엄성 회복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를 ‘가난’이라는 문제에 집중시켜 보고자 한다. 예수는 가난한 인간의 모습을 택하셨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신 분이다. 성서가 이를 증언한다. 따라서 이런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탕으로 현대사회의 인간 존엄성의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가난 문제와 가난한 이들과의 연대의 문제를 통해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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