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희망 5리. 주보는 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1906년 홍천면 결운리(決雲里)에 강원도 횡성군 풍수원(豊水院)본당 소속의 공소(公所)가 설립된 후 몇 해 만에 송정리(松亭里, 現 花村面 松亭里)에 공소가 설립되었는데 두 공소 신자들은 옹기업을 주로 하고 있었다. 1923년 6월 송정공소가 본당으로 승격, 초대 본당주임으로 황정수(黃貞秀, 요셉) 신부가 부임, 당시 신자가정은 24가구였다. 1925년 6월 2대 김(金, 루수) 신부가 부임, 현 성당터를 매입하여 성당건물을 신축하였다. 1936년 3대 심재덕(沈載德, 마르코) 신부가 본당을 송정리에서 홍천으로 옮겼다. 4대 김영식(金永植, 베드로) 신부를 거쳐 1938년 5대부터 아일랜드의 성 골룸바노회 소속의 넬리간(Neligan, 干) 신부(∼1942년), 6대 게라티(Geraghty, 池) 신부(1942∼1945년), 7대 매긴(Maginn, 陳) 신부(1945. 8. 15∼1947년), 8대 크로스비(P. Crosbie, 趙) 신부(1947∼1950. 6. 29)가 본당을 맡았다. 1950년 6.25 동란이 일어나자 크로스비 신부는 퀸란(Quinlan, 具) 주교와 함께 북한 공산군에 강제납북되어 3년간 수용소에서 고초를 겪은 후 본국에 강제송환되었다. 1954년 8월 크로스비 신부는 다시 한국에 들어와 그해 8월 10대 주임으로 홍천본당에 부임, 당시 결운, 송정, 내촌면(乃村面)의 물걸리(物傑里) 3개 공소이던 것을 15개 공소로 늘리고, 12동의 공소강당을 신축하는 등 교세확장에 크게 힘썼다. 크로스비 신부는 1961년 7월에 일단 전임했다가 1962년 10월까지 이번에는 12대 주임으로 부임했으며, 그 당시 본당의 교세는 3,713명을 헤아렸다. 1972년에 부임한 14대 주임 김정식(도마) 신부는 1976년 8월 화촌면의 성산(城山)공소를 본당으로 승격 분리시키면서, 성산본당 관할 구역으로 송정, 두촌면(斗村面)의 철정(喆亭), 역내(驛內), 두촌, 장남(長南), 내촌면 등의 공소가 흡수되고, 홍천본당 관할로는 홍천읍, 결운공소, 동면(東面)공소만이 남게 되었다. 1982년 16대 주임 이정행(요한) 신부가 부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 바오로 수녀회원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신자수는 2,075명(1984년 현재), 공소는 2개소이다.
홍제동본당 [한] 弘濟洞本堂
서울대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그리스도왕. 1941년 중림동(약현)본당 관할의 공소로 발족, 1949년 9월 홍제원본당으로 승격, 초대 본당사제로 한도준(韓道俊, 마태오) 신부가 부임하였다. 6.25동란으로 성당이 파괴되어, 수복후의 교우들은 중림동본당으로 미사 참례를 하였다. 1956년 성당 복구공사 완공, 1958년 2월 2대 박병윤(朴炳閏, 토마스) 본당신부가 부임하여 새 성당 터(현 본당 대지)를 마련하고, 그해 8월에 당산동 본당신부로 전출하였다. 이때부터 서대문본당의 이석충(李錫忠, 요한) 신부가 홍제동본당 주임신부를 겸임, 1961년 콘세트 성당이 완공되었다. 1962년 7월 김덕명(金德明, 요셉)신부가 3대 본당사제로 부임함으로써 겸직본당에서 전담본당으로 복귀하였다. 1967년 7대 이용선(李容善, 베드로) 신부가 부임, 그해 가을에 새 성당 건축에 착수했다가 문제가 생겨서 중단, 1969년 9월 8대 조창희(趙昌熙, 베네딕토) 주임신부 때에 새 성당이 완공되었다. 9대 주임사제로 부임한 이석충 신부는 1975년 분도학교를 설립, 불우한 아이들에게 중학교과정을 야간에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현재 관할구역은 홍제 1, 2, 3, 4동, 홍은 1, 2, 3동 일원이며, 본당주임은 10대 김승훈(金勝勳, 마티아) 신부, 신자 수는 7,057명(1983년 현재)이다.
홍정호 [한] 洪正浩
홍정호(?∼1801). 순교자. 홍필주(洪弼周, 필립보)의 가까운 친척으로 가족과 함께 주문모(周文謨) 신부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고 1801년 신유(辛酉)박해로 체포되어 7월 2일(음 5월 22일) 8명의 교우와 함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斬首)형으로 순교하였다.
홍정하 [한] 洪正河 [관련] 대동정로
홍정하(?∼?). 영조(英祖) 때의 처사(處士)로 ≪대동정로≫(大東正路) 권5(券之五)와 권6(卷之六)에 수록되어 있는 ≪증의요지≫(證疑要旨)의 저자. (⇒) ≪대동정로≫
홍재영 [한] 洪梓榮
홍재영(1779∼1839). 순교자. 세례명 프로다시오. 충청도 예산(禮山) 출신. 홍낙민(洪樂敏)의 아들. 홍봉주(洪鳳周)의 부친. 그의 부친이 입교하자 가족 전부가 함께 입교하여 천주교인의 가정을 이루었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부자가 함께 체포되자 부친은 순교하였으나 그는 심한 고문에 못 이겨 배교하여 광주(光州)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그는 전날의 배교를 회개하여 더욱 열심히 신앙을 지켜 나갔다. 그의 부인이 유배지로 그를 찾아왔을 때, 자식들의 신앙심을 북돋아 줄 것을 당부하였고, 1832년에 대사령(大赦令)이 내려 그를 석방하려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순교하기를 고집하였다. 그리하여 1840년 1월 4일(음 1839년 11월 30일) 전주 감영에서 60세로 참수치명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