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교회 유적지. 순교자 묘소 소재지. 여러 사람이 함께 묻혔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한테’라고 했는데, ‘한테’는 경상도 사투리로 ‘함께’라는 말이다. 한테가 변하여 한티로 불리는 이곳은 천혜의 요새로 기호지방의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와 정착한 신앙공동체 마을이다. 성인 다블뤼(Daveluy, 安敦伊) 주교가 40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던 곳도 이곳이며, 1868년 포졸들에게 습격당해 쑥밭이 된 교우촌도 이 마을이다. 이 마을에 살던 수백 명의 교우들이 잡혀가 순교했으며, 그 중 서태순(요하), 이 곤자가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되어 있다. 현재 한티 마을 입구에는 성가양로원이 세워져 있고, 이곳에서 순례의 길을 시작한다. 1983년 이 곳에는 순례자의 집이 건립되었다. 경북 칠곡군 동명면 득명동에 위치.
한정흠 [한] 韓正欽
한정흠(1755∼1801). 순교자. 세례명은 스타니슬라오. 전라도 김제(金堤)의 가난한 양반집에서 출생. 전주(全州)의 먼 친척인 유항검(柳恒儉)의 집에서 유항검의 아들을 가르치며 살았고 유항검의 인도로 입교하였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가 일어나자 이 해 3월 유항검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감영(全州監營)과 포청(捕廳)에서 신문을 받은 뒤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다 1801년 8월 26일(음 7월 18일) 출신지 김제에서 참수당해 순교하였다.
한이형 [한] 韓履亨
한이형(1799∼1846). 성인(聖人). 축일은 9월 20일. 회장. 세례명 라우렌시오. 충청도 덕산(德山)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나 14세 때 입교하였고, 21세 때 교우 처녀와 결혼한 뒤 경기도 양지(陽智)의 은이 마을로 이사해 살았다. 원래 정직하고 헌신적인 성격에다 뛰어난 덕행과 모범적인 신앙생활로 인해 앵베르(Imbert, 范世亨) 주교의 입국 후 회장으로 임명되어 전교와 자선사업에 힘을 쏟았다. 그러던 중 1846년 5월 김대건(金大建) 신부가 체포되고 병오(丙午)박해가 일어나자 가족들을 피신시킨 뒤 혼자 집을 지키다가 체포되었고 체포된 그 자리에서 포졸들에게 심한 매를 맞고 서울로 압송되었다. 압송될 때 이미 상처투성이의 몸이라 포졸들이 말에 태워 가려 했으나 한사코 거절하고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산을 오르는 예수를 묵상하며 백리가 넘는 길을 맨발로 끌려갔다. 포청에서도 체포될 때와 마찬가지로 심한 매와 형벌을 받았으나 이겨내고 9월 20일 최후로 곤장 70도를 맞은 후 6명의 교우와 함께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한원서 [한] 韓∼
한원서(1836∼1866). 성인(聖人). 축일 9월 20일. 세례명 베드로(요셉으로도 전해진다). 일명 재권. 충청도 진잠(鎭岑)에서 태중교우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착한 모범을 따라 열심히 수계, 진잠 지방의 회장으로 활동했고, 박해를 피해 전주 대성동으로 이사한 후로는 아무 직책 없이 헌신적으로 교회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1866년 병인(丙寅)박해가 전라도 지방에까지 미치게 되어 이 해 12월 5일 대성동을 습격한 포졸들에게 정문호 · 손선지 등과 함께 체포되었다. 부친이 친구를 통해 석방 교섭을 벌이는 한편 옥까지 찾아와 배교할 것을 간청했으나 거절한 뒤 12월 13일 5명의 교우와 함께 전주 서문 밖 숲정이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68년 10월 6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한영이 [한] 韓榮伊
한영이(1784∼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바르바라. 성녀 권진이(權珍伊)의 모친.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혼기에 이르러 권진사(進士)라는 외교인 양반의 후처로 들어가 딸 권진이를 두었고, 남편이 임종대세를 받고 죽으면서 남긴 천주교를 믿으라는 유언에 따라 딸과 함께 입교하였다. 그 뒤 신앙생활을 위해 집을 나와 교우들의 집에 몸 붙여 살다가 1839년 기해(己亥)박해가 일어나자 7월 17일 딸 그리고 이경이(李瓊伊)와 함께 체포되어 12월 29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 중이던 교황 요한 비오로 2세에 의해 마침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