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겸손
결혼 [한] 結婚 [영] marriage
1. 사회적 제도로서 ① 의의 : 결혼은 남녀가 부부관계를 맺는 행위 또는 부부관계에 있는 상태로서 보통 전자의 뜻으로 사용된다. 결혼은 혼인 당사자의 성적 심리적 경제적인 결합을 뜻하는 중요한 행위이지만, 사회적으로는 그 사회의 기초적 구성단위인 가족과 가정을 형성하는 단서가 되며, 더 나아가서는 종족 보존의 중요한 기능도 가진다. 그러므로 모든 사회가 어떤 형태로든지 결혼을 승인하고 이에 대하여 법적인 규제를 하는데, 그 형태는 각 사회의 경제적 종교적 민족적 요소에 따라 다르다.
② 형태 : 일반적으로 네 가지 형태가 인정된다. ㉮ 일부일처혼 : 문명사회의 원칙으로 되어 있는 1남 1녀의 결혼이다. 한 쌍의 남녀와 그 자녀들은 인간사회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집단인 핵가족을 형성한다. ㉯ 일부다처혼 : 1인의 남편이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리는 혼인이다. 이 혼인의 형태는 남성의 성적 욕구보다는 노동력을 강화하려는 경제적인 요인이 크다. 제2, 제3의 아내들도 정식결혼에 의한 아내이며 단순한 애인과는 구별된다. ㉰ 일처다부혼 : 이 형태는 매우 드물다. 여자가 아주 부족한 곳에서 여자가 어느 남자와 결혼하면, 남편의 남동생들의 공동 아내가 되었다. ㉱ 다부다처혼 : 이 형태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로서 시베리아의 추크치족이나 호주의 디에리족 등의 경우도 개인적 부부관계가 어느 특정 집단 전체에 확대되었음에 불과하다.
2. 성소로서 : 모든 사람들은 혼인에도 불렸으니 하느님의 명령, 즉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창세 1:28)는 말씀은 아담 안에서 모든 민족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만 자연적인 명령일 뿐 아니라 신구약과 유태인, 그리스도교 전통, 그 밖의 종교적 의식 속에서도 자연적 및 초자연적인 신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혼하는 사람은 그리스도 신비체의 거룩함과 초자연적인 기능에로 특별히 불린 생활양식이나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다. 사제성소와 수도성소와 비슷하게 “그리스도 신자 부부는 그 신분의 의무와 존엄성을 위하여 특수한 성사로 견고케 되는 것이니 말하자면 축성되는 것이다. 이 성사의 힘으로 신자 부부는 혼인과 가정의 임무를 수행하며 그들의 전 생애를 신·망·애 삼덕으로 채워 주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충만하여 날로 더욱 자기 완성과 상호 성화에 전진함으로써 공동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된다.”(사목헌장 제48항)
3. 결혼의 목적 ① 성서와 교부들 : 창세기 1:26-28에서는 남녀의 결합이 자녀 출산이라는 관점에서 명백히 서술된다. 반면에 창세기 2:18-24에서는 남녀의 성본능과 결혼문제가 개인 자신의 행복과 개인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예언자들의 설교는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계약관계를 표현하기 위하여 혼인의 상징을 택함으로써 부부애를 간접적으로 찬양한다(호세 1-3장, 예레 2:2, 3:1-13, 이사 54:4-8, 에제 16, 23장). 공관복음서(마태 22:30, 루가 20:34-36)에서는 자녀 출산이 함축적으로 결혼의 주요한 목적으로 나타난다. 혼인에 관한 교부들의 주된 관심사의 하나는 혼인의 신성함을 옹호하는 데 있었다. 유스티노(100?~163/7)는 자녀를 얻기 위해서 혼인한다고 하였고, 이레네오(140?~202)는 인류 번식을 위하여 제정된 혼인제도를 옹호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글레멘스(150?~215)는 자연 출산이 혼인의 주요 목적이며 부부상조는 제2차적인 목적이라 하였다. 오리제네스(183?~245)는 부부행위는 자녀 출산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고,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하느님은 자녀 출산을 목적으로 혼인을 제정하셨는데 이제는 인류번식이 충분히 이루어졌기에 정욕을 치료하는 것이 혼인의 주요 목적이라고 하였다. 아우구스티노(354~430)는 자녀 출산, 부부의 상호 신의 및 혼인의 성사성이라는 혼인의 삼선설(三善設)을 논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혼인의 선들은 엄밀한 의미에서 혼인의 목적이라 할 수는 없고 자녀 출산만이 혼인의 목적으로 간주될 수 있다.
② 중세의 스콜라학파 : 초기 스콜라학파의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원죄를 전후로 하는 혼인제도와 혼인의 이중목적을 논한다. 라온의 안셀모(1050?~1117)는 혼인의 목적을 자녀 출산, 간음을 피하는 것과 부부애의 증진이라고 본다. 생 빅톨의 푸코(?~1141)는 혼인의 주된 목적은 부부애이며 인류의 번식은 이 목적에 추가되었다고 보지만, 부부애에 대한 그의 개념은 다분히 신비적이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전통적인 견해들을 종합하여 혼인의 목적에 관한 종합적인 이론을 전개한다. 자연은 종의 향상과 보존을 추구하며, 종의 선은 개체의 선보다 우위를 차지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을 근거로 혼인의 제1차 목적은 자녀 출산과 교육이라 하고 그 이외의 것들은 제2차적 목적이라고 본다. 그의 이와 같은 제1차적,제2차적 목적론은 후대에 고전적인 혼인의 목적론이 된다.
③ 교황들의 가르침 : 교황 비오 11세는 1930년 12월 31일자의 회칙 <정결한 혼인>(Casti connubii)에서 자녀 출산과 교육이 혼인의 제1차적 목적이라 천명하고 부부애와 상호 부조 등은 제1차적 목적에 종속되는 제2차적 목적임을 강조한다. 비오 12세도 1951년 10월 29일 이탈리아 조산원들에게 이와 비슷한 의견을 말씀하신다. 바오로 6세는 1968년 7월 25일자의 회칙 <인간의 생명>에서 혼인의 목적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다만 간접적으로만 다룬다. “부부는 그들에게 독립적이며 고유한 자신을 서로 주고 받음으로써 서로 자기를 완성하려는 인격의 교류를 이루며 새로운 생명의 창조와 교육을 위하여 하느님과 협조하는 것이다.”(제8항). “부부행위는 비록 부부가 뜻하지 않은 이유 때문에 임신이 안 될 것을 미리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부부의 결합을 표시하고 견고케 하는 목적을 내포하는 것이므로 언제나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어떠한 부부행위든지 인간생명을 출산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바이다.”(제11항).
④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 : 혼인의 목적에 관한 가르침은 특히 사목헌장 48~50항에 잘 나타나 있다. 혼인의 목적에 관하여 전통적으로 사용되던 표현인 제1차적 목적 및 제2차적 목적이라는 문구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공의회는 이러한 표현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 “혼인제도의 창설자이신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 가지 가치와 목적을 부여하셨기 때문이다.”(제48항) 라는 표현은 나타나고 있으나 이들 여러 가지 가치와 목적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열거하지는 않는다. 또한 이들 가치와 목적들 간의 서열도 정하고 있지 않다. 다만 “이 모든 가치와 목적은 인류 존속, 가정 구성원의 인격 향상과 영원한 운명, 가정 자체와 온 인류사회의 존엄성과 영속성, 평화와 행복 등에 극히 중요한 것이다.”라고만 부언한다. 그러나 공의회 문헌에도 여러 곳에서 전통적인 견해를 엿볼 수 있다. 즉 “혼인제도와 부부애는 본연의 성격상,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로써 부부애는 절정에 달하고 흡사 월계관을 받아 쓰는 셈이다.”(사목헌장 48항). “혼인과 부부애는 그 성격상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한다. 과연 자녀들은 혼인의 가장 뛰어난 선물이며 부모의 행복을 위해서 크게 이바지한다”(사목헌장 제50항).
4. 본질적 특성 : 결혼의 본질적 특성은 단일성(單一性)과 불가해소성(不可解消性)이다. 이 특성들은 세례를 받은 사람들의 결혼에 있어서는 성사(聖事)에 의하여 특별히 강화된다. 이들은 자연법과 실정적 신법이 결혼에 있어서 필연적으로 요청하는 특성들이다.
① 단일성 : 결혼의 단일성이라 함은 타(他)의 결합을 배제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합을 말한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다른 제2의 혼인을 허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완전 단일’이라 하고, 선행하는 결혼이 정당하게 해소됨으로써 새로이 다른 혼인을 맺는 경우는 ‘불완전 단일’이라고 한다. 혼인은 어디까지나 부부간의 인격공동체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혼인제도는 일부일처이어야 한다는 것이 하느님께서 원래 바라신 뜻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일부다처혼은 인간윤리의 성숙과 함께 폐기되어 왔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주께서는 이 사랑(부부애)을 당신 은총으로 특별히 고쳐 주시고, 완성하시고, 높여 주셨다. … 서로의 신의로 보장되고, 특히 그리스도의 성사로 성스럽게 된 이 사랑은, 역경과 순경에 몸과 마음이 갈릴 수 없도록 충실하며 온갖 간통이나 이혼에서는 거리가 먼 것이다. 서로의 완전한 사랑 속에서 남편이나 아내에게 평등하게 인정해야 할 인격적 존엄성은 주께서 확인하신 혼인의 단일성을 밝혀 준다”(사목헌장 제49항).
② 불가해소성 : 혼인은 원래 나눌 수 없는 공동체로 제정되었다. 모세가 유태인들에게 이혼장을 써주면 이혼할 수 있다고 했던 것(신명 24:1-3)은 그들의 마음이 완고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혼인의 원칙을 원상으로 회복시키고 혼인의 불가해소를 선언하셨다(마태 10:10-12, 19:6, 마르 10:6). 이에 대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혼인제도와 부부애는 본연의 성격상,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하고 있으며 그로써 부부애는 절정에 달하고 흡사 월계관을 받아 쓰는 셈이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는 혼인계약으로써 ‘이미 둘이 아니요 한 몸이 되었으니'(마태 19:6) 인격과 행위의 깊은 결합으로써 서로 도와주고 서로 봉사하며 이로써 자신들의 결합의 의의를 체험하며 날로 더욱 깊게 한다. 이 깊은 일치는 인격과 인격의 상호 교환이므로, 자녀의 행복이 요구하듯이, 부부의 완전한 신의와 그 일치의 불가해소성을 강요한다.”
5. 그리스도교 혼인의 특성인 성사로서 : 혼인은 본질적으로 거룩한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께 그 기원을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인류의 존속을 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자 사이의 혼인은 그리스도에 의하여 성사의 품위가 주어졌다. 이에 대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주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의 천상 원천에서 솟아나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를 모델삼아 구성된 이 다각적 사랑에 풍부한 당신 축복을 내리셨다. 일찍이 하느님께서 사랑과 충실의 계약으로써 당신 백성을 도와 주셨듯이, 지금은 인류의 구세주이신 교회의 정배께서 혼인성사로써 신자 부부를 도우러 오신다. 그들과 함께 계시며 당신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부부도 역시 서로의 애정과 변치 않는 충실로 서로 사랑하도록 도와주신다. 진정한 부부애는 하느님의 사랑에 흡수되어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과 교회의 구원활동으로 지배되고 풍요해진다.
이리하여 부부는 효과적으로 하느님께로 인도되고 부모의 숭고한 임무수행에 있어서 도움과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 부부는 그 신분의 의무와 존엄성을 위하여 특수한 성사로 견고케 되는 것이니 말하자면 축성되는 것이다. 이 성사의 힘으로 신자 부부는 혼인과 가정의 임무를 수행하며 그들의 전 생애를 신망애 삼덕으로 채워 주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충만하여 날로 더욱 자기 완성과 상호 성화에 전진함으로써 공동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게 된다.”(사목헌장 제48장). 혼인계약을 맺는 사람들은 신랑과 신부이므로 이들만이 성사의 집행자가 될 수 있다. 세례받은 양당사자가 혼인을 참으로 맺고자 한 때에는 혼인의 성사성에 대한 불인식이나 착오가 있었다 하더라도 성사적이 되며, 따라서 유효한 혼인을 맺을 의사를 가진 때에는 묵시적으로나마 성사를 받을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교회법 제1099조 참조). 혼인성사에 있어서 질료와 형상을 구분하는 문제는 간단하게 보이지 않는다. 통설에 의하면 혼인성사의 원인(遠因)은 육체에 대한 권리이고 근인(近因)은 안전한 생활, 평생공동체의 예비행위로서 서로가 의사를 주고 받음에 있어서 사용하는 언어와 표시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형상은 서로가 자신을 주고 받음을 표시하는 언어와 표시인 것이다. (金正男)
[참고문헌] W. La Due, Conjugal Love and the juridica structure of christian marriage, Jurist 34, 1974, pp.36~67 / G. Lesage, The consortium vitae conjugalis: nature and applications, St. Can 6, 1973, pp.99~113 / J. Ratzinger, Zur Theologie der Ehe, Th Q 149, pp. 53~74 / E.J., Kilmartin, When is Marriage a Sacrament?, TS 34, 1973, pp.275~286 / D, O’Callagham, Die Sakramentalitat der Ehe, Conc.(D) 6, 1970, pp.348~352 / E. Rosser, Zur Problematik des Willens zur Unaufloslichkeit der Ehe in dogmatisches Sicht. Ehe-Sakrament in der Kirche des Herrn, Hrsg V.K. Reinhardt u. H. Jedin, Berlin 1971.
결핵요양원 [한] 結核療養院 [영] Tuberculous Sanatorium
결핵환자의 구호와 요양을 위해 설립된 기관. 한국 천주교회는 대구 결핵요양원 등 3개의 결핵요양원을 설립, 운영하고 있다.
결정론 [한] 決定論 [라] Determinismus [영] determinism [독] Determinismus
모든 사건들은 인과율(因果律)이라는 빈틈없는 법칙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일반적인 철학적 명제다. 인간의 이른바 자유로운 행위를, 인과율의 절대적인 적용을 기초로 삼아, 행위자에게 비의존적인 외면적 내면적 요인의 필연적인 결과로 보는 입장의 주장이다. 결정론에 따르면, 주어진 어떤 특정 조건들의 군(群) 아래에서는 오직 한 가지의 결과만이 가능하다. 이 명제는 어떤 자유의지의 개념도 배제한다. 종교사적으로 볼 때, 결정론은 큰 역할을 해 왔다. 결정론은 한편에 있어서, 운명론적인 이슬람교에서처럼, 종교의 윤리적인 해석을 결정하였고, 다른 한편에서, 신적인 섭리와 인간적인 자유에 관한 문제의 근본적 해명에 대한 자극을 주어 왔다. 성 바울로에서 시작되어, 아우구스티노를 거쳐 스콜라학에 이르는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서도 매한가지였다. 그리스도교 신학은, 트리엔트 공의회(The Council of Trient) 이후의 시대에, 이 결정론 문제의 해결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몇 개의 학파로 갈라졌으며, 이단설(異端說)의 기원에 있어서도 문제를 일으키는 촉매가 되었다.
인간의 각 개인의 자유의지적인 결단을 긍정하지 않고, 따라서 인간의 책임성이나 공로와 죄과를 부정하는 결정론은, 그리스도교 윤리 뿐 만 아니라, 일반 사회윤리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종교적인 사고를 빠뜨리고 예사로이 넘어간다는 점에서 이 결정론은 근대철학의 지배적인 견해이기도 하다. 결정론에는 다음 다섯 가지 기본적인 연구법이 있다.
① 물리학적 결정론 : 인간까지 포함한 자연 내의 모든 것들은 침해될 수 없고 변함이 없는 자연법들에 따라서 행동한다는 주장. 홉스(Thomas Hobbes, 1588~1679)가 이 철학을 주창하였다. ② 심리학적 결정론 : 모든 인간의 행위는 우연한 요소들에 의하여, 즉 행위자의 선행적 개인적인 발전과 아울러 행위에 선행하는 관념 및 동기와의 강제적인 작용에 의하여 추진된다는 주장. 스키너(B.F. Skinner)가 이러한 입장에 대한 최대의 대변자이다. ③ 논리학적 결정론 : 인간들의 마음들이란 마치 기다란 두 개의 토막나무 틈에 가로 구멍을 파서 그 구멍 안에 죄인의 두 발목을 넣고 자물쇠로 채우던 형구(形具)인 차꼬[着錮]로 채운 것처럼 고정된 것이어서, 마음에 의하여 아무 것도 변경시킬 수 없다는 주장. 이는 숙명론(宿命論)과 동일하다. ④ 윤리학적 결정론 : 지식이 선택을 좌우한다는 주장.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선을 알고 있다면, 그는 자동적으로 선을 따르게 된다는 입장이다. ⑤ 신학적 결정론 :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절대적으로 하느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주장. 이 설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만물은 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절대적인 신성이 그에게 그런 마음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느님이 전지전능하다는 이 결정론으로부터 선지(先知)와 예정에 대한 관념들이 생겨났다. 선지와 예정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하느님은 모든 것을 미리 알고 목적을 세우며, 자신의 영원하고 불변하며 착오가 없는 의지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한다고 본다. 이런 입장은 루터나 칼빈의 신학에 나타나고 있다.
[참고문헌] J. Lindworsky, Der Wille, Aufl. 2, 1923; Willensschule, Aufl. 12, 1927 / Bostroem, Storungen des Willens(Bumke, Handbuch der Geisteskrankheiten, 1928중) / Jules Payot, L’education de la volonte, Paris 1975 / J.D. Douglas, ed., 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Grand Rapids: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74.
결의론 [한] 決疑論 [라] casuistica [영] casuistry [독] Kasuistik
결의론은 가장 넓은 의미로서는 보편적인 규범을 정확하게 적용하기 어려운 특정한 경우에 있어서 옳고 그른 것을 결정하는 기술을 뜻한다. 그리스도교 세계에 있어서 도덕가들은 본론(本論)이 전제하는 가정들에 따라서 결의론의 표제 밑에 반드시 취급돼야 할 여러 가지 문제들을 취급해 왔었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세계에서도 유태인의 율법에 대한 엄격한 관심과 스토아(stoa)철학자들에게서 받아들인 양심관념이 일반적인 의무규정의 예외적 환경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행동지침을 제공 못하는 경우를 당할 때, 무언가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각성시켰다. 그리하여 중세의 스콜라(schola)철학에서 이 같은 연구가 행하여졌다. 결의론은 마침내 종교상 윤리상의 일반적인 규범과 의무가 충돌하는 것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 적용하는 윤리학의 한분야로 성장하였다. 그리스도교의 역사 속에서 결의론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제기되어 왔는데, 하나는 과거에 과오를 저지른 죄에 대한 책임을 평가하는 문제요, 다른 하나는 의무규정이 모호한 때에 어떻게 행동지침을 제시해야 하느냐는 문제였다. 첫째 경우에는, 교회로부터 축출시켜 마땅한 죄의 한계가 어디까지냐 하는 문제였고, 두 번째의 경우는 거짓이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상황이란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를 그 예로 들 수가 있다. 이런 것들을 결정하는 문제가 바로 결의론적으로 판단되어야 할 문제들이었다. 가령 17세기에 가톨릭, 개신교, 성공회 교회들이 직면했던 문제들 가운데는, 만약 국가나 사회의 안정이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양심과, 반체제 인사들이나 교회의 자유가 유린될 때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이 있었다. 의무들이 상충될 때 그리고 상충되는 두 의무를 다 이행함이 마땅하다고 양심이 요구할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이 결의론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문제였다. 왜냐하면 양쪽에 다같이 타당한 도덕적인 요구를 양립시킬 수 없을 때, 양심은 혼란을 일으키게 되기 때문이다.
결의론의 문제는 한 특정 행동이 윤리적으로 정당한지 부당한지 모호할 때 생긴다. 전제 정부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이 빈발하는 현대의 상황들은, 자유를 얻기 위한 거짓, 속임, 테러행위가 정당한 것인가, 특히 무저항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는 복음서의 교훈의 입장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이 폭력과 강권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야기시켜 준다. 결의론은 흔들리는 양심에 확신을 갖도록 도와 줄 뿐만 아니라, 어떤 행동이 그 자체로서 옳은가 그른가를 규명해 주기도 한다. 또한 보편적인 규범을 일률적으로 적용시킬 수 없는 환경을 바로 보게 해 주는 구실도 한다. 결의론은 이렇게 혼란을 일으키는 문제들과 심사숙고 끝에 이루어진 행위들의 도덕성에 대한 의문을 다루는 이외에도, 이미 저질러진 행위를 승인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문제도 다룬다.
도덕적 판단을 내릴 경우의 판단기준은 행위의 객관적인 모습, 즉 예를 들면 사람을 살해했느냐 아니면 생명을 살렸느냐는 문제 이외에도, 범죄 또는 덕행을 증가시킬 수 있는 환경이었느냐, 감소시킬 수 있는 환경이었느냐 하는 환경의 문제도 고려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서, 예를 들면 살인은 더 나쁜 악을 방지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증거인멸을 위한 것일 수도 있고, 절도를 위한 것일 수도 있으며, 반면에 남의 생명을 구해주는 행위로 인도적인 동기에서 나올 수도 있고, 공범을 살려 두기 위한 동기에서 나올 수도 있으므로, 행위의 주된 목적이 무엇이고 동기가 무엇이었느냐도 문제 삼게 되었다. 이같이 동기에 따라 행위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것은 그리스도교의 윤리학에 이바지한 공헌이지만, 그것만이 유일한 표준이 될 때 그것은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교리, 이를테면 마키아벨리(N.B. Machiavelli)나 난봉꾼이 결의론을 역이용하여 엉뚱한 이론을 정당화시키게 된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상 설명을 간추리면, 결의론은 일반적 보편적인 규범이 있는 곳으로부터 논리를 전개하며, 그런 다음에 여러 가지의 예외 또는 정상 또는 수정의 필요성을 감안하여 필요한 경우 규범의 무제약적인 엄격함에서부터의 이탈, 즉 예외의 경우가 어느 정도 용인될 때 결의론에 대한 언급이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은 너무나 독특하여 일상적인 보편적 규범이나 인정된 예외적인 범주들에도 넣을 수 없기 때문에, 전혀 조정하거나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들이 있는데, 이런 문제는 결의론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들이다. 어디까지나 규범, 분류 가능한 예외들, 분류될 수 없는 독특한 문제들, 즉 이상 세 개의 도덕적 실재들을 구별하는 것이 결의론의 임무이다. 규범을 수정?적용해야 할 예외적인 경우나 또는 판결에 따를 수 없는 독특한 문제들이 있음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격주의가 저지르는 폐단이다. 그러나 또한 결의론적인 고려만이 전부가 아니고, 그 뒤에 규범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예들 들어 굶주려 죽게 된 사람이 한 조각의 빵을 훔칠 수도 있으나 그의 정직성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원칙)과 예외적인 경우를 보편적 도덕규범의 근거로 유용하려는 것은 방종주의를 장려하는 위험이 따른다. 결의론은 잘 운용되면 보다 많은 자비를 실천할 수 있게 되며, 일반화된 지식의 결함도 메워주므로 필요악을 훨씬 더 극복하게 되리라고 본다.
[참고문헌] William Perkins, The Whole Treatise of the Cases of Conscience, Works, Ⅱ, 1603 / J.P. Gursy, casus conscientiae, ed. 4, 1891 / A. LehmKuhl, Casus Conscientiae ed. 4, 1913 / J. Mausbach, Die katholsiche Moral und ihre Gegner, Aufl. 5, 1921 / K.E. Kirk, Introduction to Casuistry, 1927 / M. Pribilla, “Klugheit und Kasuistik,” Stimzeit 133, 1938 / R. Egenter, “Kasuistik als Christliche Situationsethik”, Munch ThZ 1, 1950 / E. Hamel, “Valeur et limites de la casuistique” Science ecclesiastiques 11, 1959 / Genicot and Salmans, Casus Conscientiae, various editions, 1959 / Eduard Hamel, S.J., Loi Naturelle et Loi du Christ, 19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