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arez, Francisco de(1548~1617). 스페인의 스콜라학파(學派)의 지도적 신학자, 예수회 회원. 교황 베네딕토 14세에 의해 ‘우수박사’(Doctor eximius) 칭호를 받았다. 스페인의 그라나다 태생. 1564년 예수회 회원이 되고, 살라망카의 예수회학원에서 철학을(1564~1566년), 살라망카의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세고비아의 예수회 학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1571~1574년), 발라돌리드(Valladolid), 세고비아, 아빌라의 예수회학원에서 신학을 가르쳤다(1574~1576년). 다시 발라돌리드에서 삼위일체론 · 천사론 · 창조론을 강의했고(1576~1580년), 로마의 예수회 학원에서 신학대전(新學大全)을, 알칼라의 예수회학원에서 탁신론(託身論)과 성사론(聖事論)을 강의하였다. 그 뒤 살라망카에서 고백성사에 관해 강의했고(1593~1594년), 이어서 ≪형이상학적 토론≫(Disputationes metaphysicae)을 완성, 출판하였다. 포르투갈의 코임브라 대학 교수로 있던 1597년부터 1616년까지는 그의 가장 활동적인 시기였다.
성총논쟁(聖寵論爭)에서 그는 아베다뇨(Alonso de Avendano)의 반대론에 대한 해답을 집필함으로써 이에 개입했으며, 또한 그는 이 논쟁에서 주니가(Juan de Zuniga)에게 보내는 메모를 썼는데, 이것은 1594년에 출판되었으나 후에 스페인의 종교재판에 의해서 압류당하였다. ≪Varia opuscula theologica≫(1599) 및 ≪효과적 성총의 참뜻≫(De vera intelligentia auxilii efficacis, 1655)도 이 논쟁에서 집필한 그의 저서이다. ≪법률≫(De legibus)은 16세기 스페인 신학에서 얻어진 자연법적 · 국제법적 · 국가철학적 인식의 집대성이고, ≪영국 국교회의 오류에 대한 가톨릭 신학의 호교론≫(Defensio fidei catholicae adversus Anglicanae sectae errores, Coimbra 1613)은 교회정책적 의의를 지닌다. ≪수도생활에 대하여≫(De virtute et statu religionis, 4권)는 수도생활 및 예수회 회칙에 관한 뛰어난 저서이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원칙에 입각해서 독자적인 신학체계학설을 전개하였다. 그의 논설의 특징은, 사용한 자료들을 많이 인용하고, 교설(敎說)을 전개할 때 그 역사를 중요한 요인으로서 강조한 점이다. 그의 학설에서는, 본질과 실재(實在)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 속에 있으며, 가능유(可能有)와 현실유(現實有)로 구별되어 있지 않다. 지성(知性)은 개체(個體)에 대해 일종의 생래(生來)의 직감을 갖고 있다. 제일질료(第一質料)는, 이것을 순전한 가능유라고 해석한 토마스의 경우보다도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개체화의 원리는 질료가 아니라, 이 존재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은혜와 자유의지의 관계에 대해 ‘상응주의’(congruism)란 명칭으로 알려져 있는 입장을 취하여 토마스설에서보다도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였다. 수아레스야말로, 신에게서 부여받은 왕권(王權)에 대립되는 것으로서 근대 그리스도교 철학자들 사이에서 전개되어 온 자연권, 만민법(law of nations), 헌법에 관한 철학적 근원임이 인정되고 있다. 수아레스의 원칙에 의하면, 국가에 있어서의 통치권은 신의 의지가 그 기원(起源)이다. 그러나 누가 이 권력을 행사하느냐 하는 것은 신약성서 시대부터 인민에 의해서 결정되어 왔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H. Rommen, Die Staatslehre des Suarez, 1927 / Recasens Siches, La filosofia del derecho de Suarez, Madrid 1927 / J. Gummersbech, Unsundlichkeit und Befestigung in der Gnade, mit besonderer Berucksichtigung des Suarez, 1933 / F. Stegmuller, Zur Gnadenlehre des jungen Suarez, 1933 / J. Seiler, Der Zweck in der Philosophie des Suarez, Innsbruck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