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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in, Edith(1891~1942). 가르멜회 수녀, 철학자, 교육학자. 수도명은 십자가의 데레사베네딕타. 폴란드 브레슬라우의 유태인 가정에서 대어났다. 소녀시절에 유태교 신앙을 잃고,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괴팅겐대학에서 현상학(現象學)의 창시자 후설(E. Husserl)의 제자로 있으면서 스콜라철학에 현상학적 방법을 적용하였다. 이 때 후설의 제자였던 셸러(Max Scheler)를 통해 가톨릭과 접촉, 수년간 번민 끝에 성녀 아빌라의 데레사의 자서전을 읽고 가톨릭으로 개종(改宗), 1922년에 세례 받았다. 후설의 조수직 포기하고 독일 라인란트지방의 쉬파이에르에 있는 도미니코 재속(제3) 수도회 수녀들이 경영하는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 시절에 가톨릭 철학을 연구하기 시작, 토마스 아퀴나스의 논문을 번역하기도 하였다.
l932년 뮌스터의 가톨릭교육학원 강사로 초빙되었으나 나치스의 반유대정책 때문에 이듬해에 해임되었다. 1933년 쾰른에서 가르멜수도회에 입회, 이곳에서 지난 수년간 집필해 오던 ≪유한한 존재와 영원한 존재≫(1950)를 완성, 이 저술에서 시타인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특히 현상학에 대한 현대적 견해로서의 종합을 시도하였다. 1938년 나치스의 반유대 정책이 더욱 가혹해지자, 수도회에서는 시타인을 네덜란드의 엑트(Echt)에 있는 가르멜회로 전임시켰다. 그러나 마침내 게시타포에게 체포되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 가스실에서 살해당하였다
1908년 프랑스 부르군드지방 시토(Citeaux)에서 성 로베르토(St. Robertus de Molesme, ?~1111)가 설립한 수도원에서 시작된 수도회. 회의 이름은 모원의 지명에서 비롯되었다. 성 베르나르도(St. Bernardus de Clairvaux)의 기여로 크게 발전하였으며, 곧 서부유럽으로 확산되어 13세기 중엽에는 680여 개의 소속대수도원들이 있었다.
은수적(隱修的)인 수도회의 생활양식으로 교회, 제구(祭具), 제의(祭衣) 등이 매우 소박하며 성 베네딕토의 회칙을 기초로 한 규범을 준수하여 단식, 침묵, 단순노동 등이 매우 엄격하게 준수되었다. 1119년 교황 갈리스도(Callistus) 2세에 의해 인가된 ‘사랑의 헌장’(Charta Caritatis)이 회헌이 되었으며 이런 시토의 규정들은 다른 중세수도원들, 특히 의전수도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17세기에 시토회에 각 국가단위의 구심점들이 형성되자 시토에 있는 수도원은 국외 시토회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초기의 엄격한 회칙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운동이 시작되어 이것은 라 트라프(La Trappe)의 수사들에 의해 실현되었다. 1902년 레오(Leo) 13세 때 트라피스트회는 시토회에서 ‘엄률 시토회’로 분리하여 독립하였고, 이전의 시토회는 ‘성 시토회’로 존속하였다. 1898년 시토 대수도원이 복구되었을 때 엄률을 채택하였으며 로마에 거주하는 시토의 아빠스는 엄률시토회의 총장이 되었다. 현재 11개 수족에 1,318명의 회원이 있다(1983년 교황청연감).
1870년 성녀 엘리자벳 앤 시튼(Elizabeth Ann Seton) 수녀에 의해 미국에서 창립된 수녀회. 1960년 한국 진출 1956년 교황청 직속 수녀회로 되면서 교황청의 인준을 받았다. 겸허 · 소박 · 사랑을 하나로 구체화시킬 수 있는 교육사업을 중요한 사업으로 하고 있다. 당시 광주 교구장 헨리(Henry) 주교의 초청으로 목포에 처음 4명의 수녀가 내한하였다. 1961년 강진의 금릉중학교를 인수하기 위해 강진으로 이전하여 1962년 3월 금릉여자중고등학교를 개교하였다. 1965년 한국인 첫 지원자를 받았고, 1972년 수련소가 한국 내에 설치되었다. 1973년 6월 한국지부로 승격하였다. 1979년 2월 목포 연동본당으로 처음 본당활동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같은 해 11월 광주 근교에 수련원을 증축하였다. 1981년에는 지체부자유자를 위한 특수학교인 은혜국민학교를 개교하였다. 현재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에 소재한 본원을 비롯하여 4개의 본원 및 특수학교 1개교, 중고등학교 1개교에서 한국지부장 아녜스(Agnes) 수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히브리어 성서에서 성가라고 불리며 정전으로 인정된 150개의 노래들의 모음이다. 불기타 성서에서 이들의 명칭을 시편이라고 하였다.
1. 제목 : 시편의 제목들은 칠십인역 성서 이전에 붙여진 것들로 이들은 시편의 저자와 음악적 표기법 및 고대인들의 생활상에 대한 정보까지도 종종 제공해준다. 그러나 이들은 성서의 일부가 아니며 역사적 가치도 거의 지니고 있지 않다.
2. 원문과 역문 : 시편의 히브리어 역은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으므로 현대의 성서 번역은 고대의 역본들을 고려에 넣는 동시에 추리에 의존하기도 해야 한다. 불가타 성서에서 발전된 구 라틴어 역본과 성 예로니모가 쓴 세 개의 역본들에 이르는 라틴어역의 역사는 본문비판의 분야뿐만 아니라 교회 저술가들과 전례의 해석에서 중요하다. 1945년, 교황청 성서연구소(Pontifical Biblical Institute)의 예수회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정밀한 ‘라틴어역’은 라틴전례기도서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으나 미사경본에서는 아직도 구 라틴어역과 성 예로니모의 역본들이 사용되고 있다. 시편 40:14, 71:19, 88:52, 105:48, 150편에 나타나는 영광송의 존재로 보아 시편이 저작 시기에 따라 다섯 개의 책으로 분류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시편 1-40, 41-71, 72-88, 89-105, 106-150) 이는 모세오경을 모방한 듯하다. 일부 시편의 제목들은 저자들의 성명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41-48편은 코어(Core)의 아들들이 쓴 것이고, 72-82편은 아사프(Asaph)가 쓴 것이다. 시편 3-40편의 대부분과, 50-64편, 67-70편, 137-144편 등 다른 많은 시편들도 이들의 제목에 의해 다윗이 쓴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밖에 119-133편은 순례의 노래(sir hamma‘alot)이며, 103-105편, 110-116편, 134편, 145-150편 등은 알렐루야 시편이다 일부 시편이 시편집(Psalter)의 변형된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이전의 몇몇 시편모음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이 시편 모음들이 어떤 상황 하에서 만들어졌는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현재의 형태와 같은 시편집들이 마카베오시대 이전인 기원전 3세기에 이미 존재 했었던 것 같다.
3. 문학 유형에 따른 분류 : 시편에의 가장 올바른 접근 방법은 군켈(H. Gunkel)이 그의 주석서(1926)와 입문서(1933)에서 설정한 시편의 문학적 유형에 따른 분류법에 의해 이를 연구하는 것이다. 군켈의 뒤를 이어 슈미트, 모빙켈(S. Mowinkel), 웨스터만(C. Westermann) 등이 시편을 다듬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군켈은 시편을 고대 근동의 비교 문학의 견지에서 분석했으며 성가와 애가와 감사의 시편들을 문체의 특성에 의해 분류하였다. 최근에 모빙켈 같은 이들은 시편의 전례적 기원에 관심을 기울여 왔는데, 이는 현재 시편 해석의 정도(正道)로 간주되고 있다. 사실, 대부분의 시편이 전례행위를 위하여 씌어진 것이지 문학으로서 씌어진 것은 아니다. 일부 시편들은 정확히 분류하기 어렵지만 다음과 같은 분류방식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① 성가시편 : 성가시편(8, 28, 32, 64)은 보통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도입부분은 하느님을 찬미하고 기뻐하고 환호하는 내용이며, 본문을 찬미하는 이유를 기록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창조, 구원의 역사 또는 야훼의 속성에서 연유된 것들이며, 이러한 부분들로부터 우리는 구약성서 신학의 풍요로운 보고를 발견하게 된다. 끝부분은 도입부분과 비슷하다. 시편 44, 46, 74, 82, 85, 130편 등은 예루살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시온의 노래’라고 불리기도 한다. 시편 46, 92, 98편은 야훼의 ‘왕위에 오르심’을 기리는 시편들로 특히 창조에 의해 명백해진 야훼의 왕되심을 기념하고 있다.
② 애가시편 : 애가는 개인적인 것이 있고 집단적인 것이 있다. 개인적인 애가는 시편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데, 예를 들어 시편 3, 5, 7, 16, 21편 등이 있다. 도입부는 보통 야훼에게 도와달라는 호소로 시작되는데, 야훼는 종종 ‘나의 하느님’, ‘나의 바위’와 같은 비유로 묘사된다. 본문은 호소하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고 있는데, 예를 들어 질병이나 죽음의 위협, 노쇠, 특히 적들에 대한 것 등이며 이들은 반복되는 호소에 의해 중단되기도 한다. 그 다음에는 야훼가 개입하기를 청하는 데 대한 일련의 근거들이 나타나는데 야훼의 정의, 야훼의 충실하심 또는 작가의 무고함이나 그의 야훼에 대한 믿음 등을 들고 있다. 감사의 제사에 대한 맹세도 매우 자주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대개 하느님이 그의 호소를 들어 주셨으리라는 것에 대한 시편 작가의 화답으로 끝을 맺는다. 슈미트는 7편이나 34편과 같은 일부 애가들은 부당하게 비난받은 사람들의 기도로서 따로 분류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은 자신이 받고 있는 부당한 비난들로부터 구제받기 위해 성전을 찾아온 사람의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신앙을 주체로 한 일부 애가들은 ‘신앙의 시편’으로 따로 분류될 수 있다(시편 10, 15, 22, 26, 40, 61, l30).
집단적 또는 국가적인 애가는 전쟁에서의 패배와 같은 국가적인 재난을 당한 경우에 쓰여졌다. 집단적 애가의 구조는 개인적 애가와 비슷한데, 도움을 호소한 후에 비탄과 호소의 근거 및 야훼의 도움을 청하는 주제로 되어 있다.
③ 감사의 시편 : 감사의 시편은 구원에 대한 보답으로 감사의 제물(toda)을 바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성가와 같이 도입부에 이어 시편 작가가 구조된 재난을 기술하고 이어 구원자로서의 야훼를 찬미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종종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다른 사람들이 배워야 할 교훈적인 말들이 첨가되기도 한다(시편 17, 29, 40, 114-115). 123편은 국가적인 감사의 시편에 속한다.
④ 제왕시편 : 제왕시편은 애가시편이나 감사의 시편 등과 같이 다양하게 분류될 수는 없으나, 왕의 결혼(44), 대관식(2)과 같은 국왕과 관련된 특수한 상황을 노래하고 있다. 시편 2, 17, 19, 20, 44, 71, 88, 100, 109, 143:1-11이 이에 속한다. 이 시편들은 국왕의 통치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는 하나, 나단이 다윗왕에게 했던 예언(2사무 7:1-29)의 견지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즉, 왕의 통치는 다윗 왕조와 맺은 메시아의 언약들과 관련해서 기술되고 있으며, 왕은 이 언약들이 실현되는데 대한 보증인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제왕 시편들에서 언급되고 있는 전세계에 미치는 통치나 번영과 같은 국왕의 광범위한 권리들을 정당화해 주는 데 이 권리들은 야훼의 세계통치 및 야훼와 다윗 왕조간의 계약에 의해 뒷받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의 궁극적인 왕이기는 하지만 제왕시편들이 직접적으로 메시아적인 것은 아니다. 초기의 제왕시편들이 보존되었고, 바빌론 유배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었다는 사실은 제왕 시편들이 메시아적 견지에서 재해석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⑤ 역사시편 : 역사시편은 구원 역사에 대한 내용을 노래한 것으로 시편 77, 104편과 같이 대화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시편들이 씌어졌던 상황은 특별히 알려진 것이 없으며, 이들은 거의 어떤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다.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성가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단순한 찬미 이상이며, 교훈적 목적을 다분히 포함하고 있다(시편 77: 1-8).
⑥ 지혜시편 :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지혜서와 비슷한 문학형태를 지니는 시편. 이들이 정확히 몇 편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왜냐하면 애가시편이나 감사의 시편 등 다른 많은 시편들도 지혜시편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시편 24:8-14, 91:7-9). 그러나 지혜시편으로 확실히 분류되는 시편들도 있는데, 이들은 권선징악, 선과 악의 대비,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및 행위에 대한 실제적인 훈계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시편 1, 31, 33, 36, 48, 111, 127).
⑦ 전례시편 : 여기서 ‘전례’라는 용어는 일부 특정한 시편들의 특징을 가리키는데, 예를 들어 화자가 바뀐다든지 예언들이 나타나는 경우이다. 이러한 분류는 다소 독단적이기는 하나, 그만큼 가치가 있다(시편 14,23). 원래 이들은 더욱 복잡한 상황하에서 씌어진 것이었을 것이나 현재와 같이 간단한 명칭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예언적 전례’도 빈번히 사용되는 용어 중의 하나이다. 시편만이 예언적 교의의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나 시편에는 주목할 만한 문체적 특성을 지닌 예언들이 나타나고 있다.
4 성서외적인 시편들과 그 영향 : 근세기에 들어서면서 발견된 고대 근동의 문학서들은 시편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는데 특히 시편이 씌어지게 된 배경, 문학형태, 운율 및 어휘 등에 대한 연구에 큰 빛을 던져주었다. 팔켄슈타인(A. Falkenstein), 폰 조덴(W. von Soden), 비덴그렌(G. Widengren) 등의 학자들이 메소포타미아와 이스라엘의 문학형태를 비교 연구하였는데, 이들은 아크나톤(Akhnaton)의 아톤의 노래(Song of Aton)와 시편, 103편간의 유사점을 밝혀내기도 하였다. 알브라이트(W.F. Albright), 고든, 진스버그(H. Ginsberg) 등이 고대 우가르의 신화와 시편간의 관계를 연구하였는데, 이들 사이의 유사성은 매우 산발적이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시편은 우가르 신화보다 오래된 가나안문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 뒤 가나안인들에 의해 우가르의 영향력이 이스라엘의 전해졌다고 추정되는데, 시편 28편과 68편은 우가르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시편과 성서외적 시편들간의 유사성을 시편 저자의 맹목적인 모방의 결과라고 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들과 문학적인 문화유산을 함께 나누고 있었으며, 시편 저자들이 이들 중에서 이스라엘의 문학과 종교에 일치되는 요소들을 흡수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시편에는 이 모든 유사성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독특한 신앙이 날카롭게 표출되고 있다.
5. 시편의 신학 : 시편의 신학을 평가함에 있어 다음의 두 가지 사실이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첫째 시편의 노래들은 약 700년 이상의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이므로 이들은 이스라엘의 지속적이고 심오한 야훼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둘째, 시편은 교의의 전례적 표현이다. 비록 예언자나 학자들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시편의 교의는 예언적 교의나 지혜적 교의와는 별개의 교의이다. 그러나 시편의 노래들 속에서 체계적인 구약성서의 신학을 발견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① 시편신학의 특징 : 시편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창조와 구원의 역사이다. 역사의 하느님은 자연의 하느님이며, 창조주는 구세주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주제로부터 야훼의 특성 즉, 그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 전지전능하심 및 자신의 언약에 대한 충실하심 등이 나타난다. 이 특성들은 정적(靜的)인 상태에서 기술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역사 안에서의 하느님의 행위를 체험하면서 발견한 것들이며 이들은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례생활에서 적극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시편 신학의 따뜻하고 생동감있는 성격은 체험을 통한 기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통과 악의 엄청난 신비와 정의와 하느님의 응징 사이에서 괴로워하였다(시편 72). 셰올(Sheol)이라고 불리는 지하세계에서의 황폐한 생활이 죽음에 직면한 보통사람들에게 주어진 슬픈 운명이었다. 시편의 극히 일부(시편 48, 72)만이 하느님과의 복된 생활을 위한 길이 있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시편 저자들이 하느님의 실재를 체험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시온은 하느님의 거처이기 때문이다.
② 저주의 시편 : 저주의 시편은 다른 어느 시편들보다 기도가 생생하고 강렬하다(시편 103:35, 138:19-24). 애가시편에 거의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저주되는 ‘적들’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이론들이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어느 한 이론만으로 시편의 저자들이 기술한 ‘적대적인 세력들’이나 ‘저주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밝혀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적들’은 시편 저자의 개인적 경험이나 윤리적 평가의 견지에서 기술된 것이 아니라 전례행위를 통해 그들 위에 하느님의 정의가 내려야 할 무신론자들로서 기술되고 있다. 이들은 하느님의 적이며 따라서 저주의 시편은 이들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심의 표현이라기보다 전체적인 입장에서 하느님에게 대항하는 적대자들을 응징해 주실 것을 전례를 통해 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편에 나타나는 저주들은 하느님에 대한 충성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다(시편 138: 19-24).
결론적으로 시편의 신학은 야훼에 대한 믿음과 신뢰의 신학이며,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이스라엘 사람들의 개인적 경험 속에 나타난 하느님의 구원행위가 전례를 통한 회고에 의해 발전되어 온 것이다.
[참고문헌] E.J. Kissane, The books of Psalms, vol, 2,Westminster, Md, 1953-l954 / G. Castellino, Libro dei Salmi, Rome l955 / S.O. Mowinckel, The Psalms in Israel’s Worship, vol.2, Nashville 1962 / A. Ringgren, The Faith of the Psalmists, Londeon 1963 / A. Weiser, Psalms: A Commentary, Philadelphia l962 / R. de Langhe, Ses Origines, ses problemes, son influence, Louvain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