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한] 原祖

인류(人類)의 시조(始祖), 즉 아담과 하와를 뜻한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원시종교 [한] 原始宗敎

글자 그대로 원시 미개종족이 신봉했던 종교를 가리킨다. 이들 종교가 왜 발생하였고,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원시시대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유품이나 회화, 상징적인 기록을 통해서 살펴보면 원시인들은 불가사의한 자연 현상에 대한 두려움이나 사냥과 농경생활에서 풍성한 수확을 비는 마음 등에서 종교적인 의식을 거행한 듯하며, 모든 생물이나 무생물에도 인간과 같이 영혼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 애니미즘(animism)이나 마나이즘(manaism), 어떤 사물에 특별한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는 주물숭배(呪物崇拜, fetishism), 특정한 동식물을 자기 씨족의 조상신의로 숭배한 토테미즘(totemism), 인간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여 종족의 은인이나 영웅에게 제사지낸 조상숭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원시종교는 가족이나 씨족, 혹은 부족의 단결과 공동체 형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생활규범이 되었다. 현재의 원시 종교에 대한 연구는 필리핀 제도의 네그리토족(族), 미크로네시아와 폴리네시아의 여러 부족, 뉴기니의 파푸아인(人), 오스트레일리아의 아룬터족, 벵골만의 안다만도민(島民), 인도 중남부의 골인(人)과 파리아인, 서인도의 카리브인, 콩고 중부의 피그미족과 부시맨, 라틴 아메리카 남단의 야가족과 그보다 조금 높은 수준에 있는 사모아인, 하와이인, 소련 내의 몽고인, 스리랑카의 베다인, 아프리카 중남부의 반투족, 에스키모 및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종교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원시장 [한] 元~

元~(1732~1783). 순교자. 세례명 베드로. 충청도 홍주(洪州) 응정리(鷹井里)의 부유한 양민(良民) 가정에서 태어났다. 1788년 경 천주교를 알게 되자 사촌형 원 야고보와 함께 입교할 뜻을 품고 1년간 집을 떠나 여기저리를 떠돌면서 교리를 배워 익혔다. 그 후 집에 돌아와 가족, 친척, 이웃에게 전교, 그들을 입교시켰고, 착한 표양과 애긍시사로 인근 교우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러던 중 1792년 사촌형 원 야고보 대신 체포되어 홍주 아문(衙門)에서의 혹독한 형벌과 고문으로 1793년 1월 26일(음 1792년 12월 17일) 옥사, 순교하였다. 사촌형 원 야고보도 1799년 덕산(德山) 관아에서 장하치명(杖下致命)하였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원선시오 [관련] 빈첸시오

⇒ 빈첸시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원산본당 [한] 元山本堂

1887년 함경남도 원산시(咸鏡南道 元山市)에 창설되어 1949년 폐쇄된 본당. 원산교구 주교좌 본당. 주보는 예수 성심. 원산본당은 함경도의 첫 본당으로 1886년 한불조약(韓佛條約)이 체결된 후 선교사들의 자유로운 선교활동에 의해 창설되었다. 파리 외방전교회의 드게트(V. Deguette, 崔東鎭)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원산에서 5리 정도 떨어진 광석동에 부임하여 사목했으나 1889년 공소순방 중 장티푸스에 걸려 사망하자 이듬해 5월 마라발(J. Maraval, 徐若瑟)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1892년 샤르즈뵈프(S. Chargeboeuf, 宋德望) 신부가 부임, 1894년까지 사목했고 샤르즈뵈프 신부 후임으로 브레(A. Bret, 白類斯) 신부가 부임, 성당기지를 매입하여 사제관을 짓고 성당신축을 준비하던 중 총기오발 사건이 일어나 1895년 브레 신부는 원산을 떠나고 후임으로 베르모렐(J. Vermorel, 張若瑟) 신부가 부임하였다. 베르모렐 신부는 간도지방의 첫 교우인 김영렬(金英烈, 요한)에게 성세 성사를 주어 김영렬로 하여금 간도 지방에 복음을 전파케 하였다. 1896년 브레 신부가 다시 6대 주임으로 부임했으나 1908년 병사(病死)하자 라리보(A. Larribeau, 元亨根) 신부가 잠시 사목하다가 1910년 프와오(V. Poyaud, 表光東) 신부가 부임, 1920년 원산교구가 설정될 때까지 사목하였다.

1920년 8월 5일 원산교구가 설정되고 초대 교구장에 사우어(B. Sauer, 辛) 주교가 임명되자 원산본당은 원산교구로 이관되고 동시에 주교좌 성당이 되었는데 이때의 총교우수는 268명(한국인 258명, 일본인 10명)이었다. 원산교구로 이관된 후 에카르트(A. Eckardt, 玉) 신부가 부임하여 1921년 빈민아동 교육을 위해 해성(海星)학교를 설립했고, 이어 로트(L. 깨소, 洪) 신부와 시미트(C. Schmid, 金) 신부가 사목을 담당하였다. 1925년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가 원산교구에 진출, 원산교구에 진출, 원산을 근거로 활동하게 되자 동회의 수녀들에 의해 본당내에 야학, 시약소, 노인과 아동을 위한 교리강습소, 해성유치원 등을 개설, 운영하였다. 그 후 1930년 로트 신부가 덕원 베네딕토 수도원 원장으로 전임되자, 담(F. Damm, 卓) 신부가 부임, 1949년 본당이 폐쇄될 때까지 사목하였다. 1937년 성당신축이 시작되어 이듬해 대성당이 완공되었고 이를 계기로 다페르나스(C. d’Avernas, 羅) 신부가 보좌로 부임하였다. 그러나 8.15광복 후 북한에 공산정권이 수립되고 교회에 대한 탄압이 가중되어 1949년 5월 9일 교구장 사우어 주교, 덕원 베네딕토수도원 원장 로트 신부, 부원장 실라이허(A. Schleiher, 安) 신부, 덕원신학교 교수 클링사이즈(R. Klingseis, 吉) 신부 등이 체포되고, 이어 5월 11일 본당 주임 담 신부, 보좌 노이기르크(P. Neugirg, 兪) 신부가 체포되고 성당을 포함한 모든 교회재산을 몰수당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어 이후 원산교구의 모든 본당과 함께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폐쇄되기 직전까지 원산본당 관내에는 7개의 공소가 있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