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한] 丁若鏞

정약용(1762∼1836). 실학자(實學者). 세례명 요한. 자는 미용(美鏞), 송보(頌輔), 귀농(歸農), 호는 다산(茶山), 삼미(三眉), 여유당(與猶堂), 사암(俟庵)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다산으로 널리 알려졌다. 정재원(丁載遠)의 사남(四男)이며, 이승훈(李承薰)의 처남이다. 양근(楊根)의 마재[馬峴]에서 출생. 성호 이익(星湖 李瀷)의 학풍을 이어받아 실학(實學)을 집대성하였다. 1789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나 공서파(攻西派)의 탄핵으로 해미(海美)에 유배되었다가 10일만에 풀려 나왔다. 이어서 경기도 암행어사, 동부승지(同副承旨), 병조참의(兵曹參議) 등을 역임하다가 천주교인으로 지목 받아 금정찰방(金井察訪)으로 보외(補外)되기도 하였다. 그 뒤 곡산부사(谷山府使), 병조참지(兵曹參知),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지내고 규장각(奎章閣)의 편찬사업에도 참여하였다. 그러나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하여 유배를 당하였고, 유배지에서 학문연구에 전력하여 실학사상을 집대성하게 되었다.

그와 천주교와의 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그는 1770년 후반부터 천주교 서적을 읽기 시작하였고, 1783년에는 그의 형 정약전(丁若銓)과 함께 양근에서 서울로 향하는 배 안에서 이벽(李檗)과 천주교에 관해 토론하였다. 1784년에는 수표교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직후인 1785년에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이 일어나자 그는 척사(斥邪)의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후 곧 다시 교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 1787년에는 이승훈 등과 함께 서학서(西學書)을 읽었다. 이 일이 정미반회사(丁未伴會事)를 통하여 문제시되고 있음을 보면, 그는 이때에도 신앙을 계속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에 있어서 1791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이다. 이때 진산사건(珍山事件)이 발생하여 윤지충(尹持忠)과 권상연(權尙然)이 죽음을 당하고,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거세게 일어나자 그는 분명히 배교하는 자세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그 후에도 그의 주변에는 중형(仲兄) 정약종(丁若鍾)을 비롯해서 많은 천주교인이 있었으므로 다른 척사론자와는 달리 교회에 대하여 온건한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런데 1797년 그가 다시 서학도(西學徒)를 지목 받자 그는 <자명소>(自明疏)를 올려 이와 같은 비난을 반박하였다. 그리고 1799년에는 ≪척사방략≫(斥邪方略)을 저술하여 천주교에 대한 배격의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고 한다. 한편 1801년에 이르러 신유박해가 발생하자 그는 체포되어 국문을 당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천주교 신자임을 철저히 부인하고, 자신이 알고 있던 천주교 지도자인 권철신(權哲身), 조동섬(趙東暹), 황사영(黃嗣永) 등을 고발하였고, 천주교신도를 색출하려면, 믿음이 약한 노비(奴婢)나 학동(學童)을 신문하여 정보를 밝히도록 제안해서 이것이 채택되기도 하였다. 그는 1801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帛書)사건으로 다시 신문을 받았고, 그 후 강진으로 유배되어 1818년까지 그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1818년 유배지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자신의 배교를 크게 반성하고 자주 대재를 지켰으며 고신극기(古身克己)의 생활을 하면서 외부와의 연락을 묵상과 기도로 살아갔다고 달레(Dallet)의 ≪한국천주교회사≫에서는 전하고 있다. 또한 그는 이 시기에 ≪조선복음전래사≫(朝鮮福音傳來史)를 저술하였고, 이 그른 다블뤼(Daveluy) 신부가 ≪한국천주교회사≫를 저술하기 위한 자료를 수집할 때 입수되어 초기 교회사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 이용된 바 있으나, 그 원본은 1863년 주교댁 화재 때에 소실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가 저술했던 ≪조선복음전래사≫는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 초기 부분에 상당 분량이 인용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그는 1836년 유방제(劉方濟) 신부에게 종부성사를 받고 선종하였다. 그 자신은 ≪목민심서≫(牧民心書), ≪흠흠심서≫(欽欽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를 비롯한 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의 저서들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대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여유당전서≫에 수록된 여러 기록을 통해서 그와 천주교와의 관계를 확실히 밝히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그이 저서에 나타난 기본사상을 분석하여 천주교신앙과 대비해 보는 방법을 통하여, 그와 천주교 신앙과의 관계가 좀 더 확연히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辛酉邪學罪人家煥等推案 / 달레 原著, 崔奭祐 · 安應烈 譯註, 한국천주교회사 / 崔奭祐, 韓國天主敎會의 歷史, 한국교회사연구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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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각백 [한] 鄭牙各伯 [관련] 샤스탕

샤스탕(Chastan) 신부의 한국명. ⇒ 샤스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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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학교 [한] 淨心學校

황해도 장연본당의 두섭공소에서 운영하던 초등교육기관으로 1907∼1911년에 설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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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 [한] 精神分析 [영] psychoanalysis

실용(實用)심리학의 한 분야로서 정신분열(精神分裂) 현상을 진단, 치료, 예방하는 방법 또는 그 과정을 총괄하는 개념이다. 이것이 통상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고 여기에는 감정억압, 퇴행(退行), 반응형성(反應形成), 감정이입(感情移入)등이 포함된다.

정신분석을 시도한 학자들은 많으나 그 중에서도 유명한 학자로는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 그리고 융(Karl Gustav Jung, 1857∼1961)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에서 특히 프로이드에 의하여 개발된 정신질환 치료방법만을 특정하여 정신분석이라고 하는 것이 다수설이다. 프로이드는 1900년 ≪꿈의 해석≫(The Interpretation of Dreams)을 세상에 내어 놓았지만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다가 7년 뒤에야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브륄러(Bleuler)와 융의 흥미를 끌게 되었다. 1910년 국제정신분석협회가 설립된 이래 1964년 현재 30개 가까운 협회가 설립되었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본능을 크게 생존본능(生存本能)관 사망본능(死亡本能)으로 나누고 전자(前者)는 건설적 창조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자기보존본능, 생식본능이 여기에 포함되고, 후자(後者)는 증오의 감정과 같이 파괴적인 성향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는 특히 인간의 생존본능 중에서 성(性) 본능을 중시하고, 그것을 발달단계에 따라 구강기(口腔期), 항문기(肛門期), 생식기기(生殖器期)로 나누고 각 단계마다 인간은 특이한 심리적 성향을 가진다고 보았다. 예컨대 주저하고 수줍어하는 성향이 구강기의 특징인데, 이 단계에서는 모든 관능적 즐거움을 입을 통하여 취한다고 보았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이러한 본능이 충족되지 못할 경우를 본능억압으로 보고, 이 억눌려 있는 심리상태는 개체 자신도 깨달지 못한 채 무의식의 세계에 머물러 있게 된다고 본다. 이 억압심리가 꿈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 꿈을 해석함으로써 그 억압심리를 해소할 수 있다고 본다.

프로이드의 연구 방법에 대하여는 비판적인 입장이 있다. 첫째는 프로이드의 소위 무의식의 세계란 관측 불가능한 영역이라는 것, 둘째는 인간의 정신활동은 의식의 작용인데, 의식의 작용을 말하면서 어떻게 무의식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모순이라는 것이다. 위의 반론에 대하여는 물리학에서도 예컨대 전자장(電磁場)이나 에너지양자(量子) 같은 것은 인간이 실제 관측할 수 없는 것이라는 재반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프로이드는 종교를 사회진화의 한 과정으로 보고 원래 공리적 성격을 가진 것으로 본다. 프로이드는 신의 부재(不在), 무후생(無後生), 무계시(無啓示)를 가정(假定)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추종자들과는 달리 종교를 종국적으로 부인한 것일 아니었다. 그가 유년시의 신경증(神經症)을 극복하지 못한 것에서 종교신앙의 이유를 설명하고, 어른이 된 뒤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억압된 강박 신경증으로 잠재한다는 설명은 과장된 점이 없지 않다.

프로이드의 이론에 대해 가톨릭 교회는 질보그(Zilboorg)가 형성화한 이론인 ‘기계론적 심리 병행론의 오류’(fallacy of psychomechanistic parallelism)를 범하고 있다고 보았다. ‘병행론의 오류’란 두 가지의 행동모형이 동일한 요소행동(要素行動)을 현시(顯示)하거나 또는 두 가지의 다른 행동이 동일한 행동모형으로 귀착될 때에는 그것은 동일한 심리적 구조 때문이라고 가정하는 오류를 말한다. 프롬(Fromm)은 프로이드 자신이 이러한 종류의 추론(推論)이 무용함을 알고 있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프로이드 자신도 종교의 기원에 대한 그의 이론이 신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또한 신의 존재에 대한 문제는 심리학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 형이상학(形而上學)이 취급할 영역인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지금까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에 대하여 찬 · 반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시한 적은 없다. 1961년에 펴낸 신앙교리성성(Holy Office)의 문서는 가톨릭 사제는 정신분석을 시험하거나 이러한 치료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언명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참고문헌] The Encyclopedia of Philosophy, vol.15-16, Macmillan and Free Press, 1972 / New Catholic Encyclopedia, vol.11, MacGraw-Hill,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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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매 [한] 鄭順每

정순매(?∼1801). 순교자. 세례명 바르바라. 정광수(鄭光受)의 누이동생. 여주(驪州) 출신. 천주께 동정을 지키기를 맹세하였으나, 다시 사회에서는 그것이 남의 비난과 화제의 표적이었으므로, 정순매는 하는 수 없이 서울에서 사는 허(許)라는 사람과 혼인했었다고 속여 머리를 얻어, 신앙생활에 전심하였다.

1795년 오빠와 함께 서울로 이사하여 주문모(周文謨) 신부로부터 바르바라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는, 오빠 · 올케와 더불어 신앙을 굳게 지키며 전교에 힘썼다. 1801년 5월 8일(음 4월 6일) 체포되어 여자의 몸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혹독한 고문을 당했으나 끝내 배교치 않자, 여주감옥으로 이송되어 1801년 7월 4일(음 5월 24일) 읍민이 모두 보는 앞에서 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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