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한] 地獄 [라] infernus [영] hell

일반적인 용법으로는, 못 견디게 고통스럽거나 더 없이 참담한 형편이나 환경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극락’(極樂)의 반대말로서, 현세에서 악업(惡業)을 행한 자가 죽어서 가는 곳인데, 염마대왕(閻魔大王)이 다스리며 죄인에게 갖은 고통을 준다는 ‘naraka’(奈落)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큰 죄를 지은 채 죽은 사람의 영혼이 신에게 떠나 악마와 함께 영원히 벌을 받는 곳이며, ‘천당’, ‘천국’의 반대말이기도 하다. 가톨릭 신학상으로 ‘지옥’은 악마건 인간이건 저주받은 자가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을 받는 곳이다. 즉 타락한 천사와, 의식적으로 신의 사랑으로부터 떠난 상태로 죽은 인간이 영원한 벌을 받는 장소와 상태를 지칭한다.

지옥에는 두 가지의 벌이 있다. 하나는 하느님의 지복직관(至福直觀)을 잃어버린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외계의 물질로부터 가해지는 감각적인 고통이다. 지옥의 벌은 영원한 것이다. 이는 최후의 날을 예고한 그리스도에 의한 선언(마태 25:26), 악인은 “악마와 더불어 영원한 벌을 받는다”는 제4차 라테란 공의회(1215년)의 정의(Denz. S 801)에서 명백하다. 지옥의 존재는 하느님의 정의(正義)에 일치하고 있다.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지옥에 떨어지는 자는 하느님으로부터의 은총에 저항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현실적으로 지옥의 벌을 선고하고 있음이다. 선인(善人)이 그 덕행에 대한 보수로서 천국에서 복을 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악에 대한 벌은, 덕에 대한 보상(報償)과 대응되는 것이므로, 내세에 있어서도 죄에 대한 벌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악인이 죽은 뒤에 벌을 받는다는 관념은 각 민족 사이에 있어 왔으며, 이러한 인류공통의 신념은 지옥의 존재에 대한 부수적인 증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성서는 지옥의 벌의 영원성을 뚜렷이 설명하고 있다(묵시 14:11, 19:3, 20:20, 마태 25:46).

대죄(大罪)를 의식적으로 범한 자가 가는 곳이 지옥임에 비하여, 대죄를 모르고 범했거나 또는 소죄(小罪)를 범한 의인의 영혼이, 그 죄를 정화하기 위해 가는 곳은 연옥(煉獄, purgatory)이다. 그런데 ‘정화를 위한 벌’이 연옥에서 가해지는 고통인데 반하여, ‘지옥의 불’(Fire of Hell)은 지옥에 떨어진 자를 괴롭히는 외적인 고통이며, 이는 대상을 다 태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즉 물질적인 불이라면 영혼의 순수한 영적인 실체(實體)에 영향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교리의 영역에서 볼 때, 지옥의 존재는 용인하면서도, 그 벌의 영원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왔다. 그노시스(gnosis)파의 발렌티노(Valentinus)파는, 악인의 영혼이 일정한 벌을 받은 뒤 모조리 없어진다는 설을 신봉하고 있었고, 후기에 와서는 아르노비오(Arnobius)와 소치노(Socinus, 1539∼1604)파도 그러하였다. 또한 오리제네스(Origenes)파를 비롯하여 아우구스티노(A. Augustinus)가 지적한 ‘자비자’(慈悲者)(Misericordes, 神國論)의 주장은, 악마를 포함한 모든 저주받은 자, 적어도 인간의 영혼의 전부가 결국 행복에 도달한다고 보았다. 가톨릭의 입장에서도 히르셰르(J.B. von Hirscher, 1788∼1865), 셸(Herman Schell, 1850∼1906)은 대죄를 범하고 죽은 자는 그들이 지나치게 사악하지 않고 너무 고집 세지 않는 한, 개심(改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참고문헌] J. Sachs, Die ewige Dauer der Hollenstrafe, 1900 / F.X. Kiefl, Die Ewigkeit der Holle, 1905 / A. Lehaut, L’eternite des peines de l’enfer, 1911 / B. Bartmann, Lehrbuch der Dogmatik Ⅱ, Aufl.7, 1928 / M. Carrouges, C. Spicq, G. Bardy, Ch.Ⅴ. Heris, D. Berival, J. Guitton, L’Enfer, Paris 1950 / R. Schnackenburg, God’s Rule and Kingdom, tr. J. Murray New York 1963 / John A. Hardon, S.J., Modern catholic Dictionary, Now York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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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토 [원] Giotto, di Bondone

Giotto, di Bondone(1266∼1337). 이탈리아의 화가, 건축가, 중세의 전통과 상징주의를 완성함과 동시에 독자적인 리얼리즘에 의해 근세 회화의 기초를 만들었다. 피렌체파 회화의 확립자로서 그 명성은 동시대의 시인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치마부에와 대비하여 찬양되었다. 그의 대표작은 파도바의 산타 마리아 아라 아레나 성당의 내부를 장식한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이야기> 37도와 <최후의 심판도> 등의 벽화군(壁畵群)이다. 화면의 간명한 합리적 구성, 인물상의 조형성, 극적 내용이 심리적 표현 등에 획기적인 성과를 보였다.

그의 미술사적 의의는 선배 치마부에의 비잔틴주의를 극복함과 동시에 로마 화파(畵派) 카발리니 등의 영향을 발전시켜, 그리스도교의 교의를 중심으로 종교성과 인간성을 융합한 예술적 표현의 세계로 높인 점이다. 화면은 인물과 공간을 합리적으로 연관시켜 무대적으로 구성하고, 인물상은 조형적으로 형태화되어 각각 마음의 움직임이 개성적으로 표현되었다. 그리하여 정신성과 현실성과의 종합으로 고딕회화를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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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학교 [한] ∼學校

구한말(舊韓末, 1908년) 애국계몽을 위해 천주교가 설립했던 초등교육기관으로 양지(陽智, 현 경기도 용인군) 지방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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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소 [한] 至聖所 [라] Sanctum Sanctorum

라틴어로 ‘가장 거룩한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원래는 계약의 궤를 넣어 두는 곳이었으나, 특별히 신에게 봉헌된 장소로, 침해될 수 없는 은밀한 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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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악과 [한] 知善惡果 [영] tree of knowledge

에덴 동산에 있던 나무를 ‘지혜의 나무’라고 하는데, 이를 옛말로는 ‘선악수’(善惡樹)또는 ‘선악과’(善惡果), ‘지선악과’(知善惡果), 혹은 ‘선악과 나무’라고 지칭하였다. 태초에 하느님이 아담과 ‘하와’(Harwah = Eve)에게 이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일을 금지하였다. 이는, 단지 두 사람의 순종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창세 2:16-17). 그런데 두 사람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었고, 그래서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여, 에덴 동산으로부터 추방되었다(창세 3:23).

‘지선악과’ 또는 ‘선악과’란, 선악을 알게 되었다는 선악과 나무의 열매를 말한다. 만지거나 따먹지 말라는 ‘금단(禁斷)의 열매’를 뱀의 유혹에 빠져 둘이 따먹음으로써, 야훼의 계명을 배반하여 원죄(原罪)를 짓고, 여자는 임신의 고통을, 남자는 일생 일하여 그 소산으로 먹고 살게 하는 저주를 받았다고 한다. 선악과 나무란 바로 이 선악을 알게 되는 열매가 달렸던, 에덴 동산의 실과나무 곧 지혜의 나무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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