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선교회 [한] ∼宣敎會 [영] Convent of the Missionaries of charity

① 1950년 10월 7일 마더 데레사(Mother Theresa) 수녀에 의해 인도 캘커타(Calcutta)에서 창설된 수녀회. 1981년 6월 한국 진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 봉사하는 것을 활동목표로 하는 이 수녀회는 1981년 5월 데레사 수녀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의 초청에 의해 6명의 회원수녀가 처음 내한하였다. 서울 봉천동(奉天洞)에서 1981년 9월 현재의 서울 용산구 산천동으로 이전하여, 무의탁 노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맹인부모와 그 자녀들에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 분원장 래티시아(Laetitia) 수녀 외에 6명의 회원수녀와 한국인 지부장 10명이 활동하고 있다.

② 1963년 마더 데레사 수녀에 의해 인도 캘커타에서 창설된 남자 선교수도회(Missionary Brothers of Charity). 1977년 7월 5일 한국에 진출. 버림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봉사하는 것을 활동 목적으로 하는 이 수도회는 1975년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공산화되어 철수한 후 극동아시아 지역으로의 진출을 모색하던 중 김수환 추기경의 요청으로 2명의 회원수사가 내한하였다. 서강대학교 예수회 신학원 내의 임시숙소에서 1977년 7월 20일 서울 삼선동(三仙洞)에 소재한 국제가톨릭형제회(A.F.I.)의 건물 일부를 빌어 이전하였다. 1979년 10월 한국인 첫 서원식을 가졌고 1980년 2월에는 한국지부에 극동관구 본부를 설치하였다. 1983년 12월말 현재 한국지부장 성낙두 수사 외에 21명의 회원들이 서울 용산 · 남대문 · 중부시장 · 정신박약아 수용소 등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한편 무의탁 중풍환자 등을 수용하여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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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라] amor [영] love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서로 사랑하라” – 신약성서에서 이러한 사랑의 정의가 내려지기 전에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의 신비를 이해하기 위해 자기 나름으로 내린 순진한 인간적 사랑의 개념을 승화시켜야 했으며 이는 십자가를 통하여 실현되었다. 사랑이라는 말은 사실상 서로 다른 성질의 혼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육체적인 동시에 쾌활하며 포용력이 있는 동시에 파괴적이다. 인간은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사랑하는데, 동물, 직장, 동료, 친구, 친척, 자식들 그리고 이성(理性)을 사랑한다. 다윗의 역사, 솔로몬의 아가 등에는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감정들이 잘 나타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 ‘사랑’은 지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이고 애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들에게는 안다는 것이 곧 사랑한다는 것이며 사회에 대한 충성과 친근한 유대관계는 완전히 영성적이고 자유로운 자발성과 합쳐졌다(창세 24:49, 여호 2:12, 룻기 3:10, 스바 7:9). 성서에 기록된 인간은 사랑의 위험성을 무시하지는 않았으나(잠언 15:17), 그들의 사랑의 개념은 종교적 심리학을 넘어서 풍부하고 확고한 인간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사랑은 수많은 질문들을 제기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느님같이 위대하고 순수한 분이 스스로를 낮춰 보잘 것 없고 죄 많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리고 만일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해 준다면 인간은 어떻게 이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가?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가? 여러 종교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그들 나름으로 노력해 왔으며 때로는 한 쪽에 치우친 극단적인 견해를 낳기도 한다. 즉, 하느님과 인간간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으로 추방시키거나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적 영역으로 추방시키거나 하느님의 사랑을 인간적 영역으로 끌어내려 완전히 세속적인 것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성서는 이러한 인간적 고민에 대한 확연한 해답을 주고 있다. 즉, 하느님은 인간과의 사랑의 대화의 문을 열어 주었으며, 그의 사랑의 이름으로 인간들을 구속하고 그들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1. 구약성서에서 : 창조설화(창세 1:2-3)에는 ‘사랑’이라는 용어가 직접 기록되지 않았으나 아담과 하와가 대상이 되고 있는 선하심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암시하고 있다. 하느님은 이들에게 완전한 생명을 주기를 원하셨고 이를 명하심으로써 하느님이 사랑의 대화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아담은 그에게 선물로 주어진 것들에 대해 주인처럼 행세함으로써 죄를 지었으나 사랑의 신비는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풂으로써 더욱 깊어져 그에게 구원의 언약을 하기까지에 이른다(창세 3:15).

하느님은 이교도들 중에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그의 친구가 되게 하셨으며(이사 41:8) 하느님은 그의 사랑을 우정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그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진실한 친구가 된 것이다(창세 18:17). 아브라함이 이렇게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느님의 사랑의 요구들에 응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특히 예언자들에게 개별적 사랑을 쏟으셨고(아모 3:7), 이들을 기쁨으로 채우셨으며 이 예언자들은 야훼의 사랑과 진노의 증인이 되었다(아모 3:2). 하느님은 항상 불충실한 이스라엘의 신랑이며 그의 정열적이고 시기심 많은 사랑은 단지 배은망덕과 배반으로 보상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사랑은 죄보다 강하며 한때 고통을 당하나(호세 11:8) 사랑은 용서하고 이스라엘 민족 안에서 새롭고 뜨거운 사랑으로 되살아난다(호세 2:21, 예레 31:3, 20:22, 에제 16:60-63, 36:26). 신명기 저자는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숭배에 관심을 쏟고 있을 때 그들에게 하느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은혜로우며 이스라엘은 그의 온 마음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함을 끊임없이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사랑은 숭배와 복종을 통하여 표현되며(신명 11:13, 19:9) 값비싼 희생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신명 4:9-28, 30:15-20). 그러나 이는 오직 하느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의 껍질을 벗겨 할례를 베풀어주고 그들이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쏟아 야훼를 사랑하며 복된 삶을 누리게 될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2. 신약성서에서 : 예수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극적인 사랑의 대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예수의 ‘오심’은 무엇보다도 성부의 행위에 의한 것이다. 하느님은 구약성서의 예언들과 언약들에 의하여 자신의 존재를 알려주시고(요한: 1:18), 구원자 메시아이며 그의 외아들인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사랑을 명백히 하셨다(로마 8:39, 요한 3:1, 4:9, 루가 2:11, 마르 1:11, 9:7, 12:6, 요한 3:35, 10:17, 15:9, 골로 1:13). 성부의 사랑은 아무도 침범치 못할 방법으로 그 자신을 표현하며 우리는 새로운 계약의 완성과 인류와 ‘신랑’이신 하느님과의 영원한 결합을 깨닫게 된다.

성부의 아들을 영접함에 있어 인간은 그 자신이 만들어낸 모든 자만심과 오만을 버려야 하며 인간에게 무상으로 주어지는 사랑의 선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로마 5:6, 1요한 4:10-19). 하느님이 이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보내 주셨다(요한 3:16)는 것은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는 완전한 인성 안에서 그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그리고 우리에게 그의 사랑의 열렬하고 진실됨을 이해시키기 위해 오신 하느님이다. 그의 이러한 인성을 통해 인간은 하느님을 사랑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참고문헌] R.O. Johann, The Meaning of Love, Westminster 1955 / J. De Finance, La Motion du Bien, Greg 1958 / G. Gilleman, The Primacy of Charity in Maral Theology, Westminster 1959 / F.E. Crowe, Complacency and Concern in the Thought of St. Thomas, 1959 / C.S. Lewis, The Four Loves, London 1960 / F.D. Wilhelmsen, The Metaphysics of Love, New York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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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한] 使徒行傳 [라] Actus Apostolorum [영] Acts of the Apostles

1. 필자와 독자, 집필장소와 연대 : 루가복음서를 쓴 사람이 사도행전도 집필하였다. 우리는 필자의 이름조차 밝힐 수 없으나 그의 됨됨이는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그는 그리스 어문을 제법 익힌 이방계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리고 사도행전 9:13-28에서 바울로의 개심과 전도활동을 상세히 기술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필자는 전에 바울로가 전도했었던 지역에서 생활하고 집필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지만 그가 바울로의 서간을 입수하여 참고했다는 흔적은 사도행전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 대신 자기가 살면서 집필하던 고장에서 바울로의 생애와 활약에 관한 정보를 열심히 수집한 것 같다. 편의상 이제부터 필자를 루가(Lucas)라 하겠다. 루가복음서의 독자들처럼 사도행전의 독자들 역시 주로 이방계 그리스도인이었었을 것이다. 집필 장소로는 지중해 여러 곳이 거론되고 있으나 바울로의 전도활동 지역들 중 어느 한 곳에서 집필했으리라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집필 연대는 비교적 자세히 밝힐 수 있다. 루가는 복음서를 쓰고 난 다음에 그 후속편으로 사도행전을 썼다(사도 1:1-2). 루가 복음서 집필 상한 연대가 서기 70년이므로(200주년 신약성서 ≪루가복음서≫, 10면), 사도행전도 70년 이후에 집필되었다, 그런가 하면 125년경 베드로 후서가 집필될 무렵에는 이미 사도 바울로의 서간들이 수집되어 널리 알려지고 구약성경과 같은 권위를 지니게 되었는데(베드 3:15-16) 사도행전 작가가 바울로의 서간들을 전연 참고하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그는 아무리 늦어도 125년 이전에 사도행전을 집필했다 하겠다. 학계의 통설에 따라 80-100년에 집필되었다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

2. 사료 : 루가가 복음서를 집필할 때는 마르코 복음서, 예수어록, 특수 사료를 이용하였다(200주년 ≪루가복음서≫, 10-17면 참조). 그러면 사도행전을 집필할 때는 어떤 종류의 사료를 수집, 이용했을까. 구전으로 전해 오던 단편 전승들을 주로 모았을 것이지만 더러는 문헌들도 참고한 것 같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문헌을 수집해서 사도행전 어느 문단에 활용했는지 밝혀내기란 무척 어렵다. 따라서 사도행전 출전문제를 두고 신약학계의 견해가 서로 엇갈리게 마련이다, 아마도 열 두 사도 명단(1:13), 일곱 봉사단 명단(6:1-6), 안티오키아 교회의 교직자 명단(13:1-3), 그리고 예루살렘과 안티오키아 교회 이야기 가운데 일부, 베드로와 바울로 행적 이야기 가운데 일부는 문헌을 참고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바울로가 세 차례에 걸쳐 지중해 동부 지역에서 전도한 사실(13:1-3), 그리고 예루살렘과 안티오키아 교회 이양기 가운데 일부, 베드로와 바울로 행적 이야기 가운데 일부는 문헌을 참고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바울로가 세 차례에 걸쳐 지중해 동부 지역에서 전도한 사실(13:1-21:16),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성전에서 체포된 사실(21:17-36)을 다루는 문단은 일종의 “여행기”를 옮겨 쓴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에 동조하는 주석가들도 많지만(티벨리우스, 큄멜, 필하우어) 반대하는 주석가들도 적지 않다(헨헨, 콘첼만, 플뤼마허). 따라서 지금의 연구단계에서는 결론을 내릴 수 없는 형편이다. 그리고 바울로가 제2차 전도여행 중 터키에서 그리스로 건너간 때부터 생애 말엽에 이르러 로마로 압송된 때까지의 이야기에 ‘우리’가 바울로를 동행했다는 기사가 네 차려나 거듭되는 사실을 유념할 것이다(16:10-17, 20:5-15, 21:1-18, 27:1-28:16). 신약학계 일각에서는 ‘우리’ 기사를 두고 사도행전 필자의 목격담이라고도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바울로를 따라 다니면서 미리 적어 둔 목격담을 사도행전 집필 때 참조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사도행전 필자가 바울로를 동행하지 않은 사실이 분명한 이상, ‘우리’ 기사가 제삼자의 목격담일 수는 있을지언정 필자 자신의 목격담이 아닌 것만은 확실시된다.

3. 편집사상 ① 구조 ㉮ 머리말(1:1-5) : 루가는 요한 세례자의 잉태예고(1:5 이하) 내지 활동초기부터(3:1 이하) 예수께서 부활하신 다음 40일 동안 제지들에게 나타나고 마침내 승천하신 때까지를 소재로 하여 복음서를 집필한 바 있다. 이제 그 후속편으로 예수께 승천하신 때부터 로마에서 복음이 선포되기까지를 소재로 하여 사도행전을 집필했다고 한다.

㉯ 교회 창립준비(1:6-26) :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또한 사도들이 마티아의 보선으로 사도단을 충원하여 교회 창립을 준비한다.

㉰ 교회 창립과 예루살렘 전도(2:1-8, 3장) : 오순절에 성령이 내림으로써 그리스도 교회가 창립된다(2:1-13). 이어서 열두 사도들은 베드로를 대변자로 앞세워 예루살렘의 유태인들에게 예수 사건을 증언한다(2:14-5:42). 동시에 일곱 봉사자들이 사도들에게 협조하다가 모진 박해를 받으며 그들의 대변자인 스테파노는 순교한다(6:1-8:3).

㉱ 사마리아, 유대, 안티오키아 전도(8:4-12:25) : 예루살렘에서의 박해를 피해 뿔뿔이 흩어진 봉사자들이, 특히 필립보가 사마리아와 유대지방에서 전도한다(8장). 바울로는 다마스커스 교회를 박해하러 가다가 갑자기 그리스도인이 된다(9:1-31). 베드로는 유대지방에서 전도한 다음(9:32-43) 가이사리아로 가서 로마군 백부장 고르넬리오 일가를 교회에 받아들인다(10:1-11:18). 일곱 봉사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안티오키아에 교회를 세운다(12:19-26).

㉲ 키프로스, 터키, 그리스 전도(13:1-21, 16장) : 바울로는 대략 36-58년 사이에 주로 키프로스, 터키, 그리스 지방의 이방인들을 상대로 세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전도여행을 한다.

㉳ 로마전도(21:17-28:31) : 바울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체포되어 카이사리아에서 두 해가 넘도록 미결수로 옥고를 치른 다음 마침내 황제의 재판을 받으러 로마로 압송된다. 비록 미결수로서 가택에 연금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를 찾아오는 로마 시민들에게 활발히 전도한다(28:30-31). 그리하여 제국의 수도인 로마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압도된다.

② 예수를 증언하는 교회 : 루가에 의하면, 율법과 예언자들은 구원을 예고했고 예수께서는 그것을 완성하셨다. 이제 교회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룩된 구원을 예고했고 예수께서는 그것을 완성하셨다. 이제 교회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룩된 구원을 온 세상에 증언한다(200주년 ≪루가복음서≫ 해제 18-19면 참조). 교회의 사명을 밝히는 중요한 대목들은 다음과 같다.

“기록되어 있기를,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며,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민족에게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위한 회개가 선포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 일들의 증인들입니다. 두고 보시오. 나는 내 아버지의 약속을 여러분에게 보내겠습니다”(루가 24:46-49).

“여러분은 여러분에게 내릴 성령의 능력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뿐 아니라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들이 될 것입니다”(사도1:8).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오고 가시던 모든 시기에, 곧 요한의 세례부터 시작하여 예수께서 우리를 떠나 올라가신 날까지 우리와 함께 다닌 이 사람들 중에서 하나가 우리와 더불어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21-22).

“요한이 선포한 세례 다음에 갈릴레아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일어났던 일을, 나자렛 출신 예수를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의 기름을 부으시니 그분은 두루 다니며 좋은 일을 해 주고 악마에게 짓눌린 이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유태인들의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들입니다 …”(사도 10:37-39).

위의 네 가지 인용문과 기타 증언에 관한 대목들을 참조하여 증언의 성격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증언의 내용 :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으신 때부터 승천하신 때까지의 예수 사건이다(사도 1:21-22, 10:37-39).

㉯ 증인 자격 : 이승에서 활약하신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 목격한 열두 사도들이야말로 탁월한 증인들이다(1:21-22, 10:37-39). 바울로는 비록 이승의 예수님을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 그는 자신이 보고들은 바를 주로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증인이 된다(22:15, 26:16).

㉰ 증인과 성령 : 증인들은 성령을 받아야만 예수사건의 구원론적 의미를 스스로 파악할 수 있고 또한 남들에게 증언할 수 있다(루가 24:49, 사도 1:8, 2:1-13). 그러므로 성령은 예수 증언의 원동자요, 증인들은 한낱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하겠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들이요, 하느님이 당신께 복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입니다”(사도 5:32) 라는 말은 그런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 증언의 청중 : 증인들은 먼저 예루살렘에서(사도 1-7장), 다음에는 ‘온 유대와 갈릴레아와 사마리아에서’(9:31), 또 그 다음에는 키프로스와 터키와 그리스에서(13-21장), 마침내는 로마에서 증언하게 되는데(28장), 우선은 유태인들을 상대하다가 차츰차츰 이방인들에게로 눈길을 돌린다. 사도행전 필자는 그 까닭을 두 가지로 풀이한다. 곧, 유태인들이 증언을 배척했기 때문이요(7-8장, 13:46, 28:26-28), 아울러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바라시기 때문이라 한다(10-11장, 15:7-8).

㉲ 증언의 효과 : 사도행전은 온통 증언의 효과와 역효과의 기록이라고 하겠다. 필자는 사도들과 바울로의 증언이 올바로 먹혀 들어간 지역 교회들을 가끔 소개하는데, 그는 특히 예루살렘 모교회(1:12-14, 2:42-47, 4:32-35) 및 안티오키아 교회(11:29-30)를 모범적인 교회로 내세운다.

㉳ 증언의 연속성 : 사도행전 필자는 예수와 증인들 간의 연속성, 증인들과 증인들 간의 연속성을 여러 가지 관점으로 강조한다. △ 공간적 연속성 –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났다. 같은 곳에서 성령이 내리고 사도들은 예수사건을 증언하게 된다. △ 시간적 연속성 – 예수부활부터 승천까지의 40일은 예수 시대를 마무리하고 교회 시대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또한 교회 시대는 열두 사도 시대 → 바울로 시대 → 속바울로 시대로 계속된다. △ 예수와 증인들의 연속성 – 열두 사도들은 예수님과 접촉하고(1:21-22, 10:37-39), 바울로는 사도들과 접촉하며(9:28, 15장), 지역교회 지도자들은 바울로와 접촉한다(14:23, 20:1-37). △ 증언 내용의 연속성 – 공간, 시간, 증언자들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증언의 내용은 한결같이 예수님의 품격과 구원사건이다. (鄭良謨)

[참고문헌] K.H. 쉐클레 著, 김영선(외) 譯, 신약성서입문, 분도출판사, 1969 / 콘첼만 著, 안병무(외)譯, 신약성서신학, 한국신학연구소,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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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회 [한] 使徒職會 [라] societates vitae apostolicae [영] societies of apostolic life

사도직회는 인가된 회헌에 따라 수도적 이상(理想)을 향해 형제적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단체를 말한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공식서원을 하지 않으며 그 사회에 맞는 사도직의 수행을 주요목적으로 한다. 교회법이 이들의 생활방식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대 및 단순 수도회나 재속수도회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공식서원을 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다른 수도회와 다르며 공동생활을 한다는 점에서 재속회와 구별된다(교회법 731∼746조 참조). 대표적인 예로 교황청의 인가를 받은 성 빈첸시오 애덕 자매회(D.C)가 있는데, 현재 사도직회는 대부분 선교 단체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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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한] 使徒職 [라] apostolatus [영] apostolate

사도적 직무. 이는 그리스도의 첫 제자들인 열두 사도의 직무일 뿐 아니라 그 사도들의 사명을 자기 나름대로 수행하는 모든 그리스도 교인의 직무이기도 하다. 이 말의 어원은 파견, 사명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포스톨래(apostole)인데, 이는 신약성서(로마 1:5, 1고린 9:2, 갈라 2:8)에서 12사도의 직무뿐 아니라 베드로나 바울로의 직무에 한정하여 사용한 것은(사도 1:25) 후기에 와서의 일이다. 12사도 직무내용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고 교회 건설에 기초가 되는 일이었다. 이 직무는 안수와 파견을 통하여 계승되는데, 이처럼 직무를 계승한 자들은 그 직무의 성질에 따라 단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예수와 그 사도의 사명을 구현한다(요한 20:21). 평신도의 사도직 활동을 사도직이라 부른 것은 19세기 중엽의 일이다.

사도직은 본시 그리스도의 직무이며(1고린 1:1)모든 그리스도 교인은 그 직무에 참여한다. 교계적 사도직은 신품성사에 의하여, 평신도 사도직은 성세성사와 견진성사에 의하여 참여한다(요한 4:14, 7:38, 로마 6: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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