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 [한] 服事 [영] Altar boy [프] servant du missionnaire

미사, 성체강복식, 혼인성사, 성체성사 등을 거행할 때 집전하는 사제를 도와 의식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사람으로 보미사라고도 불렀다. 원래 이 일은 하급 제 3급에 속하는 시종직(侍從職, acolythus)을 받은 자가 담당하였으나 이 성품이 폐지된 이후는 평신도인 복사가 이 일을 하게 되었다. 9세기부터 시종직의 일을 복사가 대행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마인츠(Mainz) 공의회는 “모든 성직자는 미사를 원활하게 진행시키기 위해서 서간경과 독서를 하거나, 미사 응답송을 부를 성직자나 소년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음이 이를 입증해 준다. 그러므로 복사는 성소(聖召)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기보다는 업무 때문에 생겨난 직책을 담당하는 자라고 보는 편이 좋다. 복사의 선출은 본당 단위로 이뤄지며, 총명하고 신앙심 깊은 10-11세의 소년이 그 대상이 된다. 복사는 중백의(中白衣, Surplice)를 입는다. 우리 나라의 초대교회에 있어서 복사의 역할은 상당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미사를 보조하는 역할 이외에도 프랑스 선교사의 한국어 교사, 길 안내자, 번역가, 하인의 역할까지 모두 복사가 담당하였고, 아예 선교사와 함께 숙식을 같이 하기도 하였다. 성인 황석두(黃錫斗, 루가) 같은 이가 초대교회 복사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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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성인 [관련] 수호성인

어떤 직업, 장소, 국가, 개인 특정한 성인을 보호자로 삼아 존경하며, 그 성인을 통하여 하느님께 청원하며, 하느님의 보호를 받는다. 이 성인을 수호성인, 혹은 주보성인(主保聖人), 보호성인(保護聖人)이라 한다. 수호성인을 모시는 관습은 2개의 교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 하나는 모든 성인의 통공(1고린 12:8,13)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 나라의 구성원들은 각자가 특수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1고린 13:18 · 28-30)는 바울로의 가르침이다.

수호성인을 세우는 관습은 순교자의 묘지 위에 성당을 건립하고 그 순교자를 수호성인을 모시는 일이 많았던 사실에서 비롯한다. 그리하여 3세기경까지는 순교자만이 성당의 수호성인이 될 수 있었으나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공인된 이후에는 증거자, 주교, 선교사, 성당의 창설자, 신비(예를 들면 삼위일체, 십자가, 구세주) 등도 성당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이처럼 수호성인의 관습은 성인 공경의 한 형태로 생겨난 것이었다.

한 개인이 수호성인을 모시는 관습은 이 보다 늦게 생겨났다. 그러나 4세기초에는 그리스도교적인 이름이나 성서적인 이름을 세례명(christian name)으로 선택하는 일이 상당히 널리 퍼져 있었다. 이것은 세례명으로 선택한 성인을 따라 살겠다는 의지임과 동시에 이름을 바꿈에 따라 그 사람도 변화한다는 성서의 내용에 의거한 것이다. 즉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시몬이 베드로로, 사울이 바울로로 개명(改名)한 사례가 그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예수나 그리스도는 세례명으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리스나 스페인에서는 예외다.

한편 직업이나 단체에 대한 수호성인도 있다. 이것은 교황에 의해 결정되는데, 예컨대 요셉

은 교회, 알로이시오는 청년과 학생, 빈첸시오 아 바울로는 자선단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는 출판단체, 어린 예수의 성 데레사는 세계포교의 수호성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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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권 [영] patronage [포] padroado [한] 保護權

15세기 이래 포르투갈과 스페인 이대(二大) 가톨릭 식민지 국가들에게 부여되었던 포교상의 특권. 근세에 들어와 신대륙(新大陸)이 발견되면서부터, 로마 교황청은 해외의 포교사업을 대부분 포르투갈 및 스페인의 왕실(王室)에 위임하였다. 이 두 나라는 그 당시 강대국으로서 이 임무 수행의 권력과 수단을 지니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포교 열의도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한 보상책과 장려책으로 두 나라는 통상 및 토지 획득의 독점권뿐만이 아니라 모든 교회 직위에 대한 보호권까지도 획득하였는데, 1493년 5월 3일 및 4일의 대교서(大敎書)에 의해서 보호권은 해외의 전지역에서 항구적인 효력을 지니게 되었다. 이는 교회법상 일종의 특권이었는데, 그러나 교구의 수립이나 선교사의 파견 등 실천을 통한 포교를 전제조건으로 한 것이었다.

스페인은 필리핀(Philippines) 군도와 아메리카(America) 등지에서 이 의무를 다했으나, 포르투갈은 1600년 이후 국력의 쇠퇴로 아시아 등지에서의 의무수행이 불가능해지고, 한편 1622년 로마 교황청에 포교성성(布敎聖省)이 설립됨으로써 포교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로마는 포르투갈의 기존권리를 그대로 용인하면서, 다만 대목(代牧)이나 선교사를 파견하여 포르투갈의 포교사업을 도우려는데 그쳐, 1576년 마카오에 이어 1690년에 새로이 중국 북경과 남경에 보호권 교구가 설립되기까지 그 특권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포르투갈은 로마 교황의 대교서를 내세워, 로마 교황청에 의해 파견된 대목과 대립하여 분쟁을 일으키고 포교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였다. 특히 서남(西南) 아시아 및 중국에서 이 싸움은 더욱 심했는데 프랑스의 파리 외방전교회와의 마찰이 자주 일어났다.

1792년 조선 교회가 포르투갈 보호권 교구인 북경 교구장 구베아(Gouvea) 주교에게 위임됨으로써 조선 교회는 포르투갈 보호권에 속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북경의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보호권만을 고집하고 선교사의 파견 등 보호권에 따른 의무는 이행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도리어 조선 교회 발전에 지장이 되었다. 1831년 조선 대목구가 설정된 이후에도 북경교구는 조선에 대한 보호권을 계속 고집하였고 그래서 초대 조선대목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를 위시하여 조선에 입국하려는 프랑스의 성직자들이 만주 등에서 심한 천대를 받아 조선 입국의 어려움을 더욱 겪는 고통까지도 받았다. 그러므로 이 보호권을 포르투갈 영토에 한정케 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져 1838년 고아(Goa)의 이교를 초래케 하기도 하였다. 그 뒤 1928년 및 1929년의 협정에 의거하여 비로소 항구적인 질서가 확립되어 오늘날, 고아 등 몇몇 포르투갈 식민지에 한해 아직도 보호권 교구가 존속하고 있지만 1950년 7월 18일 로마 교황청과의 협약에 의거, 포르투갈은 포교상 포교권하의 여러 교구에 대한 임명권을 포기하였다.

[참고문헌] A. Da Silva Rego, Le Petronage Portugais de l’Orient : Apercu historique, Lisbon 1957 / J. Godinho, The Padroado of Portugal in the Orient. 1454-1860, Bombay 1924 / 崔奭祐, 朝鮮敎區 設定의 敎會史的 意味, 敎會史硏究, 제4집, 韓國敎會史硏究所,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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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논쟁 [한] 普遍論爭 [라] Controversia de universalibus [독] Universalienstreit

실재계(實在界)에 대한 보편 개념의 관계, 즉 우리의 추상적이며 보편적인 인식과 우리의 인식밖에 있는 사물과의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의 문제에 관한 논쟁을 ‘보편논쟁’이라고 지칭한다. 이 문제의 일반적인 인식론적 및 형이상학적인 의의에서 본다면, 결코 중세에 한정된 특수문제가 아니고, 도리어 모든 중요한 철학체계에 있어서 보편 문제의 구명이 뒤따르고 있음을 때때로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신학적 철학적인 논쟁은 주로 고대 및 중세철학 전(全)시기에 걸쳐 성행하였으며, 근세에는 독단론과 경험론의 대립, 현대에는 전체주의와 개인주의의 대결 형태로 이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고도 보겠다.

‘보편’이라는 라틴어 ‘universale’는 보편적, 보편자(普遍者), 보편성 등으로 쓰이는데, 어떤 부류의 모든 사물에 공통된 성질을 가리킬 때 보편이라고 보지만, 그 중 몇 개의 사물에만 고유한 성질을 말할 때의 ‘특수’도 하나의 부류로 볼 수 있으므로, 보편과 특수와의 관계는 상대적이다. 그래서 철학사상 보편과 특수에 대하여 많은 갈래의 사고방식이 있으며, 잘못된 양극단론은 보편을 초월적인 실재라고 보는 입장과, 보편을 단순히 주관적인 것이라고 보는 입장을 낳게 한다. 본디 인간의 사고는 다소 비슷한 개체들을 하나의 군(群)으로 모아 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개체들을 하나의 일반사고 아래 표현하거나, 또는 하나의 명칭으로 나타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렇듯 다양성 가운데에서도 하나의 통일성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보편’이라고 하며, 이러한 보편의 정확한 본질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주요한 세 가지 견해가 있다.

① 극단적 실재론(extreme realism) : 스콜라학파의 초기에는 보편은 개체들에 앞서서 즉 ‘개체들 이전의 보편자’(universale ante rem)로서 실재한다는 플라톤적인 실재론이 우세하였고 19세기의 에리우제나(Johannes Scotus Eriugena), 11세기의 안셀모(Anselmus) 등은 모두 극단적인 실재론의 대표자였다. 이는 한정된 사고 안에 있는 보편의 개념들과는 별도로, 또는 그 보편들의 종류에 귀속된 개체들 내에서 그러한 보편들을 감지하는 것과는 별도로 존재하고 있는 어떤 사물들 또는 본질들 즉 현대용어로는 객관적 가미들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보편’이라는 주장이다. ② 유명론(唯名論, nominalism) 또는 명사설(名辭說, terminism) : 이 설은 보편들은 그들 자체 내에서는 아무런 실재(實在)도 갖고 있지 않으며, 보편들의 종류에 속하는 개체적인 일원들 사이에는 아무런 실재적인 유사점도 없고, 인간의 사고 안에서 보편들이라고 생각되는 그런 개념들에 아무런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11세기의 로셸리누스(Roscelinus)가 보편은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며, 실재하는 것은 개체들뿐이라고 하여, ‘개체들 뒤의 보편자’(universale post rem)라는 관점에서 보편을 인간이 만들어낸 이름으로만 보는 유명론이 나왔다. 14세기에는 오캄(William of Occam)에 의하여 유명론이 다시 나타났는데, 이는 근세 초기의 영국의 유물론(唯物論)의 선구적인 구실을 하였다. 이 설은 개체의 실재만 인정하므로, 삼위일체의 교의가 성립되지 않는 까닭에, 그리스도 교회의 입장에서는 이를 이단으로 배척하였다. ③ 중도적 실재론(moderate realism) : 보편 자체들 안에는 아무런 실제적 및 실질적인 보편들이 없지만, 인간의 이지(理智) 속에는 실질적인 보편개념들이 있으며, 이 개념들은 사물의 진정한 종류들에 속한 개체들의 실재적인 유사점들 내부에 하나의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보편은 천차만별한 개체들에 내재하는 본질적인 것에 뿌리박고 있다는 의미에서 ‘개체들 속에 있는 보편자’(universale in re)라고 부른다. 13세기의 알베르토(Albertus Magnus),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중도적 실재론의 견해를 두드러지게 주장하였다. 이 설은 보편이 개체들 안에 그 형상(形相)으로서 실재한다고 보아,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완화된 실재론으로서, 보편은 신의 정신 속의 ‘이데아’로서는 개체들에 앞서고, 형상으로서는 개체들 속에, 추상적인 마음속의 개념으로서는 개체들 뒤에 있다는 설이다. 이 중도적 실재론은 가톨릭 철학에 있어 널리 용인된 가르침으로 존속되어져 왔고 20세기에 와서는 보편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새로운 종합이 앞으로 기대되고 있다.

[참고문헌] R.I. Aaron, The Theory of Universals. Oxford 1952 / H.H. Price, Thinking and Experience. Cambridge, Mass. 1953 / D.F. Pears, Uniuersals, Logic and Lrmguage ser., ed. A.G.N. Flew, New York 1953 / カトリツク大辭典, 日本富山房, 5刷 1954 / A. Quinton, Properties and Causes, Proceedings of the Aristotelian Society. 1958 / R.G. Miller, Realistic and Unrealistic Empiricisms, New Schol 35,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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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창학교 [한] 普彰學校

평양교구 순천본당의 선원면(仙院面) 교우들이 1909년 설립한 초등교육기관. 1911년 이후 일제의 탄압을 받아 폐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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