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렬(?~1931). 간도(間島)지방의 첫 천주교인. 세례명 요한. 함경북도 온성(穩城) 출생. 어려서부터 한학(漢學)을 공부, 초시(初試)에 합격하였으나 곧 회의를 느끼고 오직 진리탐구에만 전념, 강도의 벽지인 서학대(棲鶴臺)에 은거하여 도학자(道學者) 김이기(金以器)에게 사사(師事)하였다. 1895년 스승 김이기가 동학당으로 몰려 체포되어 회령(會寧)감옥에서 옥사할 때 참다운 진리는 천주교에 있다는 유언을 듣고 즉시 천주교에 대해 알려고 남하, 원산에 이르러 베르모렐(Josephus Vermorel, 張若) 신부를 찾아가 천주교에 대한 토론 끝에 3주일 동안 세례준비를 한 수 1896년 성신강림절에 영세, 입교하였다. 영세 후 많은 성물과 성서를 갖고 서학대로 돌아가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에게 전교, 1896년 가을에 친척 2명을 원산으로 데리고 가 입교시켰고, 이어 1897년 초봄 ‘북관(北關)의 12종도(從徒)’로 불리는 12명의 예비자를 원산으로 인도하여 입교시켰다. 그 후 다시 간도로 돌아가 교우촌을 세우고 전교에 힘써 간도지방 천주교 발전의 초석을 닦았다.
김연이 [한] 金連伊
김연이(?~1801). 순교자. 세례명 유리안나. 주문모(周文謨) 신부에게 영세, 입교하여 강경복(姜景福) 등 주로 궁녀(宮女)들과 모임을 갖고 활동하다가 1801년 신유(辛酉)박해로 체포되어 그해 7월 2일(음 5월 22일) 강완숙(姜完淑, 골룸바)을 비롯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당하여 순교하였다.
김여삼 [한] 金汝三
김여삼(?~?).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의 밀고자(密告者). 4형제의 3남으로 충청도에서 태어났다. 형제가 모두 교우로 박해를 피해 서울로 이주한 후로는 형제들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냉담, 불량배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같은 고향 출신 교우 이안정(李安正) 등 많은 교우들을 위협, 금품을 갈취하였을 뿐 아니라 당시 총회장 최창현(崔昌顯)을 비롯 많은 교우들을 밀고하였다.
[참고문헌] 黃嗣永帛書.
김업이 [한] 金業伊
김업이(1774~1839). 성녀(聖女). 축일은 9월 20일. 세례명 막달레나. 어려서 천주교를 알게 되어 입교하였다. 항상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며 수정(守貞)을 원했으나 모친의 반대로 교우청년과 결혼했고, 중년에 이르러 남편과 자식을 모두 잃고는 친정으로 돌아와 노모를 봉양하며 애고개(지금의 아현동)에서 망건을 만들어 생계를 꾸려 나갔다. 그러던 중 1836년 10월 한아기(韓阿只) · 김아기(金阿只) 등과 천주교 서적을 숨긴 죄로 체포되어 포청과 형조에서 매우 가혹한 형벌과 고문을 받았으나 모두 이겨 내고 형조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형집행이 연기되어 3년을 옥살이하다가 마침내 1839년 5월 24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8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1925년 7월 5일 교황 성 비오 10세에 의해 복자위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訪韓)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의의 반열에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