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부터 교회는 유대의 관습과 별도의 법에 따라 죽은 이들을 매장해 왔다. 육신은 ‘성령의 성전'(the Temple of the Holy Spirit)이라는 관념에 따라 매우 소중히 다루어졌으며, 박해와 순교가 계속되던 시대에 그리스도 교도들의 매장 관례는 더욱 상징적이고 종교적인 것이 되었다. 초대 그리스도 교도들의 묘지는 대부분 로마에 있는데, 특히 순교자들의 묘지는 축성된 장소로 공경되고 있다. 로마의 교회법은 교회마다 따로 묘지를 소유할 것과 묘지의 축성 의식과 관리에 대해 자세히 규정해 놓고 있다. 교회마다 따로 교회묘지가 있는 것이 정식이나 그렇지 못할 경우 그 지역 공동묘지의 일부를 할애해서 교회묘지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신자들의 단체나 가족이 따로 그들의 묘지를 소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묘지의 관리는 각 교구의 책임으로 되어 있으며 관리인을 두도록 하고 있다.
교회론 [한] 敎會論 [라] ecclesiologia [영] ecclesiolosy
교회론은 신학의 한 부분으로 신학과 관련된 교회에 대한 학문적인 설명을 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 역사와 발전 : 교회는 신학적 체계적 연구의 대상이 되기 수 세기 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교회론이 신학의 한 부분으로 등장한 것은 교회사에 있어서 대체로 후반기의 일이다. 사도시대와 교부시대에는 교회신학의 체계적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중세의 스콜라 신학자들도 《신학대전》에서 교회에 대해 따로 항목을 두어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신약성서의 저자들 및 학자들은 교회의 신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였으며, 특히 그리스도론과 구원론을 결부시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양상들을 연구하였다. 스콜라 이전의 교회론은 추상적이라기보다는 상징적 언어로 표현되고 있으며 교회의 가견적 성사적 생활 속에서 구현되고 매개되는 신비의 내적 실재를 강조하고 있다. 위대한 스콜라 신학자들은 명상적 신학에 치중한 나머지 성서와 교부들의 풍요한 상징주의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그들의 관점은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었다. 아우구스티노의 뒤를 이은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의 머리됨과 그의 신성과 구원자적 역할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교의신학의 영역에 교회가 정식 항목으로 채택되어 쓰여졌을 때 이것은 결정적인 역사적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파리의 요한은 《국왕과 교황의 권력론》(De potestate regia et papali)에서 교황 보니파시오 8세와 필립 4세[美王] 사이의 알력을 교권(敎權)과 속권(俗權)간의 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중세말기에는 교회의 권위와 중재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마르틴 루터의 프로테스탄트 개혁에서 절정에 달하여 사제와 교회 내의 권위 등 교회의 눈에 보이는 모든 권위를 부인하기에 이른다. 그 당시 가톨릭계 신학자들은 교회의 외적인 면들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었으며, 그들은 주로 눈에 보이는 교계제도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 후 수 세기에 걸쳐 교회가 예정론, 갈리카니즘, 18세기 합리주의 등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동안 교회론은 호교론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19세기가 시작되면서 눈에 보이는 교회의 구조를 성서와 교부들 사이에 나타난 신비의 확고한 이해와 조화시켜 더욱 완벽한 것으로 만들려는 새로운 교회론이 대두되었다. 이러하 교회론 부활운동의 중심이 된 곳은 독일 튀빙겐대학의 신학부인데 묄러(J.A. Mohler)가 주축이 되고 있었다. 그의 교회론은 공동체와 은총생활의 내적 실현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이러한 교회론 운동은 로마의 예수회 신학자들에 의해 더욱 활발해졌는데 이들 중에는 페로네(G. Perrone), 파살리아(C. Passaglia) 등이 있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를 준비하면서 교회에 대한 헌장의 초안이 슈라더에 의해 씌어졌는데, 그 첫 부분에서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비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는 그 몸의 머리라는 사도 바울로의 가르침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이 정의는 많은 교부들의 반대에 부딪혔으며 통과된 현장에서는 교회를 ‘눈에 보이는 사회’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전자의 견해가 그 영향력을 더해 가고 있었으며 세계대전 중에는 신비체의 신학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진 시기였다. 1943년 비오 12세는 ‘신비체에 관한 회칙’에서 신비체 교리를 확인하면서 일부의 지나친 신비주의를 경계하였다. 그 후 20년 동안 교회 일치운동과 성서적 복고운동의 영향을 받은 현대 가톨릭 교회론은 크게 진보하였다. 이러한 연구 및 조사 결과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 에 나타나 있다.
2. 현황 : 위 문헌에는 많은 현대 교회론적 조사 결과들이 실려 있으나 교회의 복잡한 실재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문제들이 밝혀져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의 예를 들면 주교공동성의 정확한 성격과, 주교단의 권위와 교황의 권위와의 관계, 지역 교회의 신학적 발전의 중요성, 로마와 관련을 맺고 있지 않은 교회들의 교회의 성격, 교회와 비그리스도교들과의 관계, 세계 속에서의 교회의 선교 임무 등을 들 수 있다. 무엇보다도 현대 교회론은 내적 실재와 외적 실재와의 일치를, 이들 둘 사이의 차이점을 혼동하는 일 없이 한 신비의 상호 보완적인 면으로서 가능한 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교회의 성사적 성격을 밝히는 데 주력해야 한다. 교회론은 성서 및 교부시대의 풍요한 내용들을 고려하는 한편 후에 발전된 교회 자체의 고유한 성격과 임무를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G. Thils, Les Notes de l’Eglise dans l’apologetique catholique depuis la reforme, Gembloux 1937 / F.M. Braun, Aspects, nouveaux du probleme de l’Eglise, Fribourg 1942 / S. Jaki, Les Tendances nouvelles de l’ecclesiologie, Rome 1957 / C. Arevalo, Some Aspects of the Theology of the Mystical Body of Christ in the Ecclesiology of Giovanni Perrone, Carlo Passaglia and Clemens Schrader, Rome 1959 / Y.M.J. Congar, Consideration historique sur la rupture du XVI dans ses rapports avec la realisation catholoque de l’unite de chretiens en dialogue, Paris 1964 / 정하권, 교회론 I, 분도출판사, 1979.
교회력 [한] 敎會曆 [라] annus ecclesiasticus [영] ecclesiastical calender
전례력(典禮曆, annus liturgicus) 혹은 성력(聖曆, annus sacer)이라고도 하며 성주간과 성인들의 축일을 날짜순으로 배열하여 작성한 교회의 연력(年曆)이다. 교회력의 구성은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에 따라 매년 1월 1일에 시작되어 12월 31일로 끝나는 일반 연력과 달리 교회력은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 첫 주의 일요일에 시작되고, 성탄절, 부활절을 거쳐 성신강림 마지막 주의 토요일로 끝난다. 교회력의 기준은 교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부활절로, 이에 따라 대림 첫 주의 일요일도 일정하지 않고, 대개 사도 성 안드레아의 축일인 11월 30일경이 된다.
초대 교회에서의 교회력은 지방적인 특색이 강하여 교구마다 고유한 교회력에 따라 전례를 집행하였는데, 이러한 현상은 1568년 교황 비오 5세에 의해 교회력이 정비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비오 5세는 여러 지역마다 서로 다른 성인의 축일을 정비하고 그 가운데 87명의 성인만을 교회가 기념해야 할 성인으로 지정하였다. 그 뒤 계속하여 새로운 성인이 탄생하면서 교회력은 다시 복잡해졌고 최종적으로 정비된 것은 1969년 교황 바오로 6세 때의 일이다.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거룩한 전례에 관한 헌장>(102-111항)을 통하여 확인한 바의 원칙에 따라 교회력을 재편하였다.
교회건축 [한] 敎會建築 [라] architectura ecclesiastica [영] ecclesiastical architecture
그리스도교 교회건축의 대상은 첫째로 성당, 경당, 묘이며 둘째 미사와 간접적으로 결부되는 것, 그 중에서도 수도원, 신자의 회관, 종교적 여러 단체의 회관, 사제관 등이다. 성당은 신자의 미사를 위한 집회소로 이 목적을 위해 건축 역시 전례적 지도의 법칙에 따라야 된다. 제1의 법칙은 공동성이다. 모든 신자는 전례의 가장 깊은 의미, 즉 공동체로서 기도한다. 성 바울로는 신자를 그리스도의 신비체라고 부름으로써 이 공동체의 본질을 말하였다. 따라서 신자를 위한 성당건축은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몸인 영적 본질성의 물질적 모습의 구상(具象)이어야 한다. 그 통일성은 신자의 신비에 충만한 통일의 상징이라야 된다. 그래서 공간의 통일이라는 관념은 교회건축에 있어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 전례적 기도의 제2의 법칙은 객관성이다. 전례의 공통적 기도는 오로지 하느님께 돌리고, 하느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이다. 하느님께 돌린다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시간적인 변화를 훨씬 초월하고 시공(時空)을 초월한 하느님의 객관적 존재를 의미한다. 교회건축은 인간의 기도의 목적인 하느님의 영원한 존재의 질서를 어떤 형태로 인간에게 가깝게 해야 된다. 교회건축이 구상하는 공간의 통일은 건물에 의해 둘러싸인 신자를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감싸 주는 하느님의 존재의 통일과 같은 모습이어야 한다. 그 건물은 스스로 정역학(靜力學)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은 전례의 한 면에 불과하다.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간과 공간 속에 살고 있다. 그는 하느님의 초절적(超絶的) 존재를 본원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고 다만 그것을 찾아 접근할 따름이다. 인간은 그 도상에 있는 것이므로 전례는 아주 순수한 존재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동역학적(動力學的) 성질을 갖는다.
이렇듯 교회건축은 두 가지의 모순으로 대립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나타난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몇 세기를 통한 교회건축의 내면적 과제였다. 교회건축은 전례적 생활과의 결합 속에 최고이며 최후의 작품을 지향하지만 인간의 작품이라는 한계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교회건축은 그것을 구현해야 되는 – 신자의 신비적 통일, 하느님의 영원한 존재, 인간의 영혼 구제의 구상화 – 완전성을 표현할 수는 없다. 인간의 예술은 하느님의 무한한 존재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흐린 거울을 들여다 보는 것과 같이 어렴풋이 접근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하자, 로마 제국에도 장려(壯麗)한 교회가 잇따라 건설된 이래, 이상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많은 예술적 활동이 계속되어 왔다. 바실리카식 교회, 집중식 교회, 비잔틴 양식,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 등 끊임없이 발전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