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2 [한] 敎會 [라] paroecia, parochia [영] parish [관련] 본당

가장 작은 교회단위로서 주임신부가 상주하는 지역, 즉 본당(本堂)을 가리킨다. 한국 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본당이란 용어를 사용해 왔으나 현대에 이르러 교회를 공식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 ‘명동본당’이라 부르던 것을 지금은 ‘천주교 명동교회’ 또는 ‘명동천주교회’로 부른다. 그러나 아직도 일반 신자들 사이에서는 교회라는 용어보다는 본당이란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 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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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1 [한] 敎會 [라] Ecclesia [영] Church

1. 명칭: 구약성서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야훼의 백성'(Qahal Yahwe)이라고 부른 것을 70인역 그리스성서가 ‘하느님의 백성'(ekklesia tou theou)이라고 번역하였다. 신약성서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단체를 구약의 하느님의 백성의 계승자라는 의미로 Ecclesia로 부른 것이 라틴어와 라틴계통 현대어의 어원이 되었다. 결국 교회란 하느님의 백성이란 뜻이다.

2. 교회의 기원: 그리스도교 신자단체가 출현한 것은 그리스도 기원후의 역사적 사실이지만,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경륜으로서 교회는 우주창조에서 부터 암시되고, 구약시대를 통하여 오랫동안 준비되고 그리스도로 인하여 설립되고 세상종말에서 완성되는 신비이다(교회헌장 2). 그래서 교회의 기원을 논하자면 단순히 현세 교회의 출현만을 고려할 수 없고 하느님의 구원의 경륜의 실현으로서 교회 기원을 생각하게 된다.

① 교회의 준비 단계: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들이 하느님께 의합한 백성이 되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데 있다. 인간들이 범죄하여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였지만, 하느님은 구원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셨다(창세 3:15, 9:16). 하느님은 인간역사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어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창세 12:1-9) 그의 후손을 통하여 구세사(救世史)를 전개할 것을 약속하셨고(창세 15:1-7, 17:1-8) 아브라함은 구원의 약속을 조건 없이 믿음으로써(창세 12:4, 15-7) 모든 신앙인의 표본이 되었다(갈라 3:7-9).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양의 피로써 구원되어 해방된 것은(출애 12:1-4) 그리스도의 피로써 이루어질 구원의 상징이며(1고린 5:7, 루가 22:15-20),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고 계약을 맺어(출애 20:7-17)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음은(출애 19:5-6, 신명 7:1-6) 신약의 하느님의 백성의 예표(豫表)가 된다(1데살 2:12, 1베드 2:9-10). 이스라엘이 약속된 땅에 들어가서 왕을 세웠는데 다윗왕은 야훼의 영이 머무르는 이스라엘의 목자로 축성되어 그의 왕권이 영구하리라는 보장을 받았으나(2사무 7:5-16) 그들은 계약에 충실하지 않아서 망국의 비운을 맞았다(2열왕 25,2, 역대 36:17-21). 바빌론 유배 생활을 통하여 그들은 정화되고 그들의 민족적 현세적 구원관은 보편적 영성적 구원관으로 승화되어 갔다.

이사야, 예레미아, 에제키엘 등 대예언자들은 야훼께 충실한 ‘남은 사람들'(이사 4:2-3, 예레 5:18, 에제 5:3) 중에서 메시아가 출현하여 이스라엘과 만백성을 구원할 것이며(이사 49:5-6), 메시아는 충실한 야훼의 종으로서 야훼의 말씀을 전하고(이사 42:3) 학대와 고난을 받고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당함으로써(이사 53:4) 세상을 구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야훼의 고난받는 종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시한다. 그 후로 이스라엘 중에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의 실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②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창립: 예수는 당신의 강생으로써 하느님 나라가 지상에 왔음을 설파하셨다(마태 12:28, 루가 16:16). 새로운 하느님의 나라는 정신적 해방이며(마태 1:21, 마르 1:15), 예수의 피로써 맺는 새로운 계약의 나라이며(루가 22:20), 만민을 포함하는 것이며(마태 8:11, 요한 12:32), 작은 씨앗으로 출발하여(마르 4:30-32) 선인과 악인을 포함하여 자라나(마태 13:24-30) 세상 종말에 완성되어(마르 9:47, 루가 13:25-30)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루가 12:32, 마태 25:31-46, 마르 10:29).

이러한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 자신을 통하여 실현된다. 그는 구약을 완성하려 오신(마태 5:17) ‘사람의 아들'(다니 7:13-28, 마태 26:64)이며 그리스도이시며(마르 14:61-62) 백성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죽으실 것이다(마태 16:21-23). 그는 무수한 기적으로 하느님의 능력이 세상에 왔음을 증거하고(루가 11:20, 마태 12:28) 그것을 믿지 않는 유태인들을 책망하셨다(마태 11:20-24). 예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는 영신적이면서 현세에서는 성장하는 백성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12지파를 상징하는 12명 사도들을 선택하시고(마르 3:13-19) 그들 중에서 베드로를 특히 간택하시어 그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실 것을 약속하셨다(마태 16:15-19). 최후의 만찬석에서 예수는 성체성사와 신품성사를 세우시고 당신의 피로써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실 것을 다짐하시고(루가 22:20, 1고린 11:25) 마침내 십자가상의 죽음으로써 인간구원의 대업을 이루셨다(루가 23:43, 요한 19:30). 그리고 그는 부활하여 ‘주님이요 그리스도이시며 영원한 대사제로서'(사도 2:36, 히브 5:6) 하느님의 나라를 확립하시고,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도록 사도들에게 권한을 주어 천하에 파견하셨다(마르 16:15-17, 마태 28:19-20, 루가 24:47, 사도 1:8).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빠스카 신비에서 탄생한 것이다(교회헌장 3).

주께서 약속하신대로 성령이 강림하시어 사도들이 진리를 깨닫고 용감히 선포케 하셨으며(사도 2:14-36) 믿는 이들은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사도 22:1-36)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다. 성령의 강림은 교회의 창립을 완성하고 세상에 선포하였으며 항상 교회에 계시면서 교회를 인도하신다(교회헌장 4).

3. 교회의 본성 : 성서는 한 번도 교회가 무엇이라고 정의한 일이 없지만,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포도원, 건축, 목자와 양떼, 야훼의 짝이라는 표현과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개념으로 교회를 묘사하였고, 바울로는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이미지를 즐겨 사용하였다.

①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이다 : 구약의 백성이 계약으로 야훼께 맺어진 백성인 것처럼 하느님의 모든 구원의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으니(2고린 1:20)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은 그리스도의 성혈(1고린 11:25)과 성령의 힘(2고린 3:6) 으로 새로운 계약을 맺은 하느님의 백성이다(1베드 2:9).

이 백성은 구약의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성령의 자유를 얻은(갈라 4:7) 자녀이고, 누구든지 신앙으로 구원되는 보편적 백성이다(에페 2:15, 로마 10:12). 또 이 백성은 현세에서 성장하여 세말에 완성될 것이므로(1고린 15:28, 묵시 2:3) 세상의 복음화를 위하여 계속적으로 파견되는 백성이다(로마 10:14-15, 1고린 9:16-18). 이 백성의 으뜸은 그리스도이시고(에페 1:22, 골로 1:18), 백성의 신분은 하느님의 자녀이며(로마 8:15), 법률은 사랑의 계명이며(요한 13:34-35), 이 백성의 목적은 하느님 나라의 구현이다(마태 6:33). 이를 위하여 이 백성은 사도단을 계승하는 주교단에 의하여 인도되고 여러 가지 봉사직에 의하여(1고린 12:27-28) 유기적 조직체로 형성되어 있다. 사람은 성세성사(1고린 12:13)와 성체성사(1고린 11:23-26)로 이 백성에 가입하여 그리스도의 구세사업에 참여한다. 그리스도의 예언직에 참여하여 구원의 진리를 선포하고(교회헌장 9), 그 사제직에 참여하여 자신과 세상을 성화하고(교회헌장 10, 11), 그의 왕직에 참여하여 복음적 원리가 세상에 실현되도록 노력한다(교회헌장 31, 36).

현세에서 순례하는 하느님의 백성은 세속의 유혹(묵시 13:11-17)과 박해를 당하지만(요한 15:18-23, 묵시 13:1-10) 믿음과 사랑으로 시련을 극복하고 세속을 이긴다(1요한 4:15-17, 5:1-5). 그리하여 세말에 이르러 모든 수고를 그치고 하느님의 본질을 직관하는 완전한 친교에 들어갈 것이다(묵시 22:3-4). 그러나 현세의 교회와 내세의 교회는 유일한 교회의 두 가지 양상(樣相)에 불과하다. “교회는 두 가지 상태를 가지고 있다. 현세에서는 은총의 상태에 있고, 내세에서는 영광의 상태에 있을 것이다”(St. Thomas, In Col. c. 1, lect. 5).

②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이다 :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개념만으로는 교회의 신비를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다.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이 되려면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갈라 3:26-29). 신앙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세례로써 예수와 일치한 모든 사람은 서로 한 몸이며(갈라 3:26-29) 성체와 성혈을 영하는 우리는 한 몸이고(1고린 10:16-17) 그리스도의 지체이다(1고린 6:15-17).

신자들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되어 그리스도의 몸이 되며(1고린 12:12-14, 골로 1:18, 에페 1:23)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에페 1:22, 골로 2:19, 에페 4:15-16).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성령과 은총을 받아서(에페 4:11-12, 5:18, 골로 2:19) 믿음과 인식에 있어서 일치하고 성숙한다(에페 3:19, 4:13). 이리하여 머리이신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 구원의 경륜을 펴시고(에페 2:15-16) 만물을 다스리신다(에페 1:22-23).

이 신비체의 신적 생명의 원리는 성령이시다. 성령은 신자들을 신앙에로 부르시고(갈라 3:2-3),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고(1고린 2:10-14, 로마 8:15), 진리를 믿고 가르치는데 오류가 없도록 인도하시고(요한 16:13-15, 1요한 2:20 · 27, 2디모 1:14), 그들을 그리스도와 일치시키시며(로마 8:9, 1고린 6:17, 필립 2:1) 여러 가지 직무와 은사를 주시어(1고린 12:4-11, 로마 12:6-8) 교회를 다스리신다. 그래서 토마스는 성령의 역할을 심장에 비유하였고(S. Theol, III. q8, a. 1, ad 3), 아우구스티노는 영혼에 비유하였으며(Sermo. 267:4), 신비체 회칙(n. 55)과 교회헌장도 성령을 교회의 혼이라 한다(교회헌장 7). 교황 비오 12세는 ‘신비체 회칙’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에서 첫째가 되시고 우리와 같은 인간성을 가지심으로써 신자들의 공동체의 머리가 되시고 당신이 가진 영수은총(領首恩寵)을 지체에게 나누어 주시어 지체인 교회가 그리스도의 광명과 거룩함과 생명을 누리게 하신다고 설명하고 있다(신비체 회칙 35, 45, 47, 48). 그러나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는 물리적 윤리적 일치가 아니고, 개체는 여럿이지만 영신적 생명은 하나인 신비스러운 일치다.

4. 교회의 구조와 조직 :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의 장(場)이요 만남의 수단이기 때문에 그 구조는 신적(神的)인 면과 인간적인 면을 아울러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구조는 어떤 형태의 조직으로 구현될 것이니 교회는 사도단 위에 위계적(位階的)으로 조직되어 있다.

① 교회 구조의 양면성 :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것처럼 신적인 면과 인간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아리아니즘, 네스토리아니즘은 교회의 불가시(不可視)한 면을 배격하였고,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부인하는 도세티즘은 교회의 가시성(可視性)을 배격하였다. 교회는 하느님께서 설립하시고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는 계시진리를 가지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은총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불가시적 · 신적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신자들의 공동체요 신자들을 인도하는 가시적 제도와 방법을 가지고 있으니 가시적 · 인간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교회의 본질은 하느님과 인간의 친교(親交)의 신비이지만, 이 신비는 역사 안에 인간들로 구성된 공동체로서 나타난다.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고백하고 전파하는 말씀의 공동체요, 칠성사를 통하여 인간을 성화(聖化)하는 성사적 공동체이며, 위계적으로 조직된 사랑의 공동체로서 하느님과 인간에게 봉사한다. 그래서 교회는 변하지 않는 은총과 신앙의 신적인 구조로서는 역사를 초월하고, 가변적인 인간의 구조로서는 영고성쇠(榮枯盛衰)의 역사에 속한다.

교회의 은총과 신앙과 윤리가 거룩하고 인간을 성화하므로 거룩한 백성이지만(출애 19:6, 에페 5:25-27, 1베드 2:9), 이 백성 안에는 잡초와 나쁜 고기가 섞여 있기 때문에(마태 13:24-30, 47-50), 성인들로 구성된 교회를 주장하는 몬타니즘 · 도나티즘 · 얀세니즘을 이단으로 배척한다. 교회는 거룩하면서도 항상 정화되어야 한다(교회헌장 8). 구원의 진리에 대한 인간들의 인식과 실천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교회의 모든 인간적 제도나 방법은 불완전하다. 그래서 교회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서 복음을 선포하는 제도와 방법을 경신하고 활동을 현실에 맞게끔 계속해서 연구 조정하여야 한다(일치교령 6).

② 교회의 위계적 조직 : 교회는 그리스도의 뜻에 의하여 사도단의 후계자인 주교단에 의하여 사목되고, 모든 신자들이 응분의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서열로써 조직되어 있다. 이러한 교회조직을 교계제도(敎階制度, Hierarchia)라고 한다. 주께서 12사도를 선택하시고(루가 6:13-16) 그들에게 권한을 주어서 세상에 파견하셨기 때문에(마르 16:15, 마태 28:19-20) 사도들은 주의 이름으로(사도 4:17) 말씀의 직무(사도 2:42)와 성사의 직무(사도 8:14-17)와 사목의 직무(1고린 4:14-21)를 수행하였고, 바울로는 “여러분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여기며 하느님의 심오한 진리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합니다”(1고린 4:1) 하였다.

사도들의 후계자 문제를 명시적으로 주께서 명하신 성서귀절은 없지만 교회와 더불어 계속되어야 할 이 직무의 성격 때문에(교회헌장 20) 사도들은 강론 · 감독 · 보조자 등을 선정하여 그들에게 사목직무를 안수(按手)로써 전하여 주었다(1디모 4:14, 사도 20:28, 1베드 4:2, 디도 1:5, 2:15). 사도들이 별세함에 따라서 사도들의 협력자들은 그들을 계승하였고, 초대 교회의 글레멘스, 이냐시오, 이레네오, 테르툴리아노, 치프리아노 등의 증언에 의하면 초기에는 집단지도 체제였으나 차츰 일정 지역에 정주(定住)하는 단일지도체로 발전하였다. 교계제도가 오늘의 형태로(주교, 신부, 부제) 확립되기까지 1세기 이상의 발전과정을 거쳤다.

다른 한편 그리스도는 베드로를 사도단의 으뜸으로 세우셨고(마태 16:18-19, 루가 22:31-32, 요한 21:15-17), 베드로는 초기 교회에서 사도단의 단장으로서 행세하였다(사도 1:15, 2:14, 4:8, 10:24-48, 15:7-22). 그리고 베드로는 그의 활동의 후기를 로마에서 보내고 거기서 순교하였기에(64년), 로마의 주교가 베드로를 계승하여 주교단의 으뜸인 교황이 되었다. 이렇게 교회는 교황을 단장으로 하는 세계 주교단에 의하여 사목되고, 주교단은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교도권(敎導權)과 성사로써 신자들은 성화하는 신품권(神品權)과 신자들을 다스리는 통치권(統治權)으로써 교회를 사목한다. 그리고 교황이 교황의 직권을 가지고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선언할 때와, 주교단이 교황과 함께 이러한 선언을 할 때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절대로 그르치지 않는다[無謬性].

주교의 직무를 보좌하는 하위 성직자(신부, 부제)도 있다. 신부는 신부품을 받아서 주교의 감독하에 주교의 사목직을 보필하고, 부제는 부제품을 받아서 주교 · 신부를 보필하는데, 신부와 부제는 그런 권한을 신부품 · 부제품을 통하여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지만, 그 권한의 행사에 있어서는 주교의 통치권에 종속되어 있다(교회헌장 28, 29). 주교 · 신부 · 부제의 신품을 받지 아니한 모든 평신자는 세속 가운데서 세속사물을 관리하면서 세상의 복음화를 위하여 신앙생활을 영위한다(교회헌장 31). 성직자나 평신자 중에서 청빈 · 정결 · 순명의 서원(誓願)을 하고 자신을 오로지 봉헌하여 거룩함을 증거하고 완성된 교회의 모습을 미리 보여 주는 신자를 수도자라 한다. 이렇게 교회의 구성원을 직무상으로는 성직자와 평신자로 구분하고 생활형태상으로는 수도자와 비수도자[在俗人]로 구분할 수 있다.

5. 교회의 사명과 직능 : 교회의 사명은 세말까지 모든 인간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만들고 그들을 통하여 세상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 수렴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1고린 15:18, 교회헌장 17). 따라서 교회의 사명은 만인과 만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인 것이고, 보편적이므로 유일한 길이다.

① 교회는 보편적 구원의 길이다 :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전하라”(마르 16:15)하신 파견의 말씀은 교회로 하여금 주님의 구원사업을 계속하라는 뜻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그리스도의 사업을 계속하는 활동을 복음화(福音化)라 한다. 교회의 복음화 활동의 대상은 모든 인간이다. 교회는 처음부터 민족종교가 아니고 모든 종족과 문화를 포용하는 보편적 종교로서 출발하였다. 묵시록은 하느님의 백성이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사람들’(묵시 7:9)이라 하였다. 1세기말에 이냐시오는 교회의 보편성을 강조하여 처음으로 우리 교회를 ‘가톨릭 교회’라 불렀다(Ep. Smyrn. 8:2). 교회의 사명이 보편적이므로 “교회는 어떠한 민족이나 국가에도, 또 어떠한 특수 생활형태나 고금의 어떠한 관습에도 불가분의 배타적 관계로 얽매이지 않는다”(사목헌장 58). 그러면서도 같은 이유 때문에 교회는 “어느 민족의 현세적 재보도 감소시키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여러 민족들의 재능과 보화와 관습들 중에서 좋은 것을 촉진하고 수용하여 그것을 정화하고 강화하며 높인다”(교회헌장 13). 그래서 교회는 특정 문화를 초월하면서도 모든 문화에 내재(內在)하며, 다양성 안에서 통일을 유지하고, 모든 분파주의를 배격하면서 동시에 폐쇄적 획일주의를 반대한다. 교회의 복음화의 대상은 인간 뿐 아니라 인간의 업적과 그 존재상황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교회는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와 인간사회의 모든 영역이 인간의 구원에 이바지할 수 있게 복음화하려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상활 중에서 특히 윤리적 차원이 개재된 사회와 문화의 복음화를 도외시하고서는 구체적인 인간의 구원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② 교회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 교회가 모든 사람의 구원의 길이라면 동시에 유일한 구원이 길이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하나이며 … 희망도 하나이다. 주님도 한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인 하느님도 한 분이시다”(에페4:3-6). 바울로는 교회가 하나일 수밖에 없는 내적 이유를 성부 · 성자 · 성령의 일치에 두고, 구체적 이유를 하나의 신앙과 하나의 세례와 하나의 몸이라고 지적한다. ㉮ 동일한 신앙 : 그리스도교의 계시는 각자의 양심에 부어준 것이 아니고 교회에 맡겨 주신 공식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계시를 선포하는 기관이 성서와 성전(聖傳)이므로 각자는 “성서의 어떤 예언도 임의로 해석해서는 안 되며”(1베드 1:20) 성서의 보관자인 교회의 성전이 해석하는 바에 의하여 모든 신자들은 동일한 신앙을 견지한다(신학대전 π-π, q. 5, p. 3). ㉯ 동일한 예배 : 예배는 가장 현저한 신앙고백이다. 교회의 예배인 전례는 인간 구원의 원천인 그리스도의 빠스카 신비를 성사적 방법으로 기념하고 재현하므로, 동일한 전례를 통하여 신자들은 같은 믿음 · 희망 ·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특히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와 신자들 사이에, 그리고 신자들 상호간의 일치의 근본이 된다. “우리가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닙니까. 빵은 하나이고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1고린 10:16-17). ㉰ 동일한 사랑의 봉사 : 교회는 같은 신앙과 같은 예배에 의하여 같은 은총을 누리고 동일한 교계제도의 봉사를 받아서 하나인 사랑의 공동체를 이룬다. 교계제도는 공동체의 일치를 유지시키는 사랑의 봉사 체계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같은 신앙과 예배를 가지면서도 사랑의 봉사제도가 제대로 공동체에 봉사하지 못하거나 교인들이 교계의 지도를 따르지 않으면 교회는 분열되었던 것이다.

③ 교회의 직능 : 주께서는 교회가 그 사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직능을 부여하셨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마태 28:19-20). 이 말씀은 이미 사도시대의 교회가 자신에게 주어진 가르치는 직능(예언직)과 사람을 성화하는 직능(사제직)과 다스리는 직능(왕직)을 자각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 교도권(예언직) : 바울로에 의하면 교회의 첫째 임무가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로마 10:14). 교회가 가르치는 복음은 그리스도의 계시이므로 교회는 계시에 다른 내용을 가감할 수 없고, 다만 계시된 것을 해설하여 가르칠 따름이다. “교도권은 …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고 전해진 것만을 가르친다.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하게 보존하며 성실하게 진술하고 신앙의 유산에서 믿을 것으로 제시된 것을 알아내는 것이다”(계시헌장 10).

교회는 교황과 주교단을 통하여 구원의 진리를 유권적으로 교시하는데, 교황이 교좌(Ex cathedra)에서 선언할 때와 주교단이 공의회를 통하여 선언할 때는 장엄 교도권이라 하고, 장엄 교도권으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것을 선언하면 그 가르침은 그르칠 수 없다. 주교들의 일상적인 유권적 가르침을 통상 교도권이라 한다. 또 교회는 교리의 해설 · 격려 · 권고 등으로 구성되는 설교를 통하여 가르치고, 계시의 학문적(신학) 연구와 교수를 통하여 복음을 선포한다. 그리고 유권적으로 가르치는 성직자가 아닌 일반 신자들도 자기 나름대로 복음을 선포할 중대한 의무를 지고 있다.

㉯ 신품권(사제직) : 사제직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하느님의 은총을 사람에게 전하고 사람들의 정성을 하느님께 바치는 직책이다. 그리스도는 신약의 중개자인 대사제이며(히브 5:5-10) 그의 신비체인 교회도 이 사제직에 참여하고 있다. “하느님은 …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다”(2고린 5:8). 그래서 우리는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백성이다”(1베드 2:9-10).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재생(再生)과 성령의 도유(塗油)로 축성되어 영적인 건물과 거룩한 사제가 된다”(교회헌장 10). 모든 신자들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연결하는 사제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것을 공통 사제 직이라 한다. 공통 사제직을 가지고 있기에 모든 신자들은 성사배령과 기도와 선행과 희생으로 하느님께 영적인 제사를 드리고 이 세상을 거룩하게 할 수 있다. 신품성사를 받은 성직자들은 유권적으로 철성사를 위시한 전례를 집전하여 신자들에게 필요한 은총을 전달하고, 특히 미사성제와 전례적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예배하는 제사를 드리고, 신자들과 함께 사제적 백성을 형성하는 공격 사제직을 수행한다(교회헌장 10, 사제교령 2). 이러한 직위적 사제직은 성직자들이 받은 신품권으로써 수행하며, 다른 이에게 신품성사로써 신품권을 전달하여 공적 사제직을 계속시킨다.

㉰ 통치권(왕직) :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아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에페 1:22-23). 교회를 통하여 만물을 완성시키려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라면 교회도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사도들은 신자들이 지켜야 할 규정을 세우고(사도 15:6-29, 1고린 11:1-34) 위반자를 징계하였다(사도 5:1-11, 1디모 1:20). 이러한 통치권은 입법 · 사법 · 행정을 포함하는 것이고 교도권과 신품권을 지탱하는 권한이다. 신품성사를 받아 교계제도에 참여한 성직자들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역할에 참여하고 있어서 유권적으로 교회를 다스린다. 그러나 하위 성직자들은 주교에게 종속되어 통치권을 행사한다. 성직자들의 이 통치권(협의의 사목권)을 교회법적 통치권이라 한다. 성직자를 포함한 모든 신자들은 그들의 신앙인다운 생활과 증거로써 이 세상 모든 인간 생활에 그리스도의 복음적 원리가 실천되도록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을 사회참여라 하며, 교회의 사회참여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왕직에 참여하는데서 우러나는 권리요 의무이다. (鄭夏權)

[참고문헌] Y. Congar-H. Kung, Eglise, in Encyclopedie de la foi, t. 1 / Y. Congar, Sainte Eglise, Paris 1963 / L. Cerfaux, La theologie de l’Eglise suivant S. Paul, Paris 1965 / G. Philips, L’Eglise et son mystere au 2 Concile du Vatican, Paris 1967 / H. Kung, Die Kirche, Freiburg 1967 / P. Faynel, L’Eglise, Paris 1970 / 정하권, 敎會論Ⅱ, 분도출판사, 1979,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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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밖에 구원없다 [한] 敎會~救援~ [라] extra Ecclesiam nulla salus [영] outside the Church no

교회의 유일성을 표현하는 신학 격언, 모든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유일하고 보편적인 중개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면 그의 신비체인 교회도 보편적이며 인간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 아닐 수 없다. 이론상 자명한 이 사실이 실제로는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즉 ①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신다. ② 교회는 유일한 구원의 성사이므로 누구나 이 교회에 속해야 한다. ③ 그러나 이 교회가 구원의 제도로서는 한계가 있어서 모든 사람을 다 포섭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하느님의 뜻은 무의미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이 신학 격언을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많은 혼란을 초래하였으며, 특히 이교(離敎)와 열교(裂敎) 현상은 이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교회가 하나일 수밖에 없도록 하는 내적 이유는 하느님의 의도와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교의 설립과 일치의 원리이신 성령의 작용에 있으며, 교부들은 교회의 유일성을 강조하여 마지않았다. 이냐시오, 이레네오, 오리제네스, 치프리아노 등 교부들이 교회의 유일성을 표현하는 신학 격언을 사용했을 때 그들은 구원의 유일한 수단으로서의 교회와 인간 각자의 구원의 문제를 구별하지 아니하고 이 말을 하고 있다. 특히 니체아 공의회(325년) 이전 교부들은 배교자들에게 이 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노는 객관적 제도와 주관적 개인의 구원을 구별해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는 개인의 탓없이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였고 또 몸으로는 교회 안에 있으나 실제로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 또 그 반대의 사람도 있다고 여겼다.

중세의 아벨라르, 토마스 기타 스콜라 신학자들은 이미 고의적 무지(無知)와 불가피한 무지의 경우를 구별하지만 순수한 이론에 불과하였다. 15~16세기에 지리상의 발견으로 유럽이나 북아프리카 외에 수많은 인간들이 고도의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음을 발견하였고, 프로테스탄트 혁명의 여파는 인간의 진리 인식이란 개인의 성의나 능력에 좌우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여건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선의(善意)의 오류, 또는 불가피한 무지가 있음을 확인하였고, 이들의 구원문제가 신학적 파제로 등장하면서 ‘교회 밖에 구원없다’는 격언은 개인의 구원문제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고 객관적으로 구원의 기관인 제도로서의 교회에 해당시키려고 하였다. 17세기에는 선의의 오류가 교리문답에도 인정되었고 18~19세기에 팽창한 자유주의 또는 종교적 무관심주의(無關心主義)는 이 격언을 공격하였다.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교도권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종교적 무관심주의를 단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선의의 오류 내지 무지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레고리오 16세는 무관심주의를 배격하였고 비오 9세는 공식문서(Singulari quadam, 1854)에서 처음으로 선의의 무지를 인정하였다. “사도적인 로마 교회 밖에서는 아무도 구원될 수 없으며 … 그러나 불가피하게 참된 종교를 모르는 사람에게 하느님 앞에 이 일에 대하여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도 확실한 이치이다.” 비오 12세는 신비체 회칙에서 “무의식적 지향과 원의로 구세주의 신비체에 관련된 사람”을 지적하였고 피니(Feeney) 사건에 즈음하여 검사성의 훈령은 이것을 부연하였다. “누가 영원한 구원을 얻기 위하여 구성원으로서 사실상(in re) 교회에 합체하지 아니한다 하여도 적어도 원의와 지향으로써(desiderio et voto) 교회와 합체해야 하며, 이 원의는 예비신자처럼 명시적인 것이 아니고 불가피한 무지의 경우에는 묵시적인 것이라도 가능하다.”

이러한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쳐서 교의헌장은 교회에 완전히 합체된 가톨릭 신자와, 불완전하게나마 교회에 결합된 그리스도 신자(갈라진 형제)와, 유일신에 대한 신앙으로 교회에 관련된 유태교도와 회교도의 구원 가능성을 가르치고,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와 교회를 모를지라도 양심적으로 하느님을 향하고 있는 사람들의 구원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교회헌장 14, 15, 16).

역사적으로 발전해 온 이 격언의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그리스도와 교회는 일치하여 있기 때문에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교회와 결합하여야 그리스도와 결합할 수 있다(교회헌장 14). ② 그리스도께서 가톨릭 교회를 세우신 것을 알면서 이 교회에 들어오지 않거나 거기서 나가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없다. 따라서 교회는 모든 종교적 무관심주의를 용인할 수 없다(교회 헌장 14). ③ “교회 안에 완전히 결합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고 교회제도와 교회 안에 마련된 구원의 수단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보이는 교회조직 안에서 교황과 주교들을 통하여 교회를 다스리는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는 사람들이니, 즉 신앙고백과 성사와 교계제도와의 통교(通交) 안에 있는 사람들이다”(교회헌장 14). ④ “그러나 교회에 결합되어 있을지라도 사랑에 항구하지 못하여 교회의 품 안에 몸으로만 머물러 있고 마음으로 머물러 있지 않는 사람은 구원될 수 없다”(교회헌장 14). ⑤ 자기 탓없이 교회에 완전히 결합하지 못한 자 중에 예비신자들은 그 신앙고백과 소망으로써 이미 교회의 자녀이다(교회헌장 14). 그러므로 완전하게 교회에 일치한 자만이 구원된다는 피니의 주장은 배척되어야 한다(검사성성 훈령). ⑥ 불가피한 무지에 의하여 동일한 신앙고백, 동일한 성사 동일한 교계 종속의 3조건 중 그 어느 하나나 두 가지를 갖추지 못한 그리스도 교도들은 갈라진 형제라고 보며 그들에게도 불가피한 무지를 전제로 하여 구원이 가능하다(교회헌장 15). ⑦ 불가피한 무지에 의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여도 참 하느님을 예배하는 유태교인이나 회교도도 교회에 관련되어 있으므로 구원이 가능하다(교회헌장 16). ⑧ 불가피한 무지에 의하여 참으로 참 하느님을 모르고 어떤 방법으로든지 양심적으로 하느님을 찾는 사람에게도 구원은 가능하다(교회헌장 10). 물론 이 경우에도 하느님의 은총의 부여를 전제로 하고 가능한 것이다. 이상의 조항들은 성서의 가르침으로 뒷받침된다. 성서는 단순한 무지를 책하지 않고 고의적인 거부를 단죄한다. “나를 배척하고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따로 있다”(요한 12:48).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25:41, 야고 2:14).

[참고문헌] 鄭夏權, 敎會論 II, 분도출판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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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훈장 [한] 敎皇勳章 [라] Ordines Pontificales [영] papal decoration

교회, 교황청, 사회복지에 대해 공로가 특별히 인정되는 평신도에게 로마교황청이 수여하는 명예의 표지. 주교가 이들을 추천하는데 로마교황청이나 소속 교구에서 그 수여식이 열린다. 이들 훈장에는 남작에서 제후까지 6등급의 작위에 해당하는 훈장 외에 ‘교회와 교황 공로장'(pro Ecclesia et Pontifice), ‘일반 공로장'(Benemerenti) 등의 메달이 있다. 이들 중 6등급의 기사훈장은 ① 그리스도 최고 훈장, ② 비오 9세 훈장, ③ 성 그레고리오 훈장, ④ 성 실베스트르 훈장, ⑤ 금군(金軍) 훈장, ⑥ 성묘(聖墓) 훈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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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특사 [한] 敎皇特使 [라] Legatus Apostolicus [영] Papal Legates

교황의 대리자로 교황에 의해 위임받은 사명과 권한을 가지고 지역교회에 파견되는 성직자를 말한다. 주업무는 교황청에 지역교회의 사정을 알리고 지역교회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직접 간접으로 도우며 교회와 사도좌의 선교활동을 보조하는등 교황청과 지역교회와의 관계를 원할하게 하는데 있다(교회법 제364조). 또한 국제법에 따른 전권사절(全權使節)로서 사도좌와 파견국 당국과의 문제, 즉 정교조약(政敎條約)과 같은 조약체결과 그 실행의 문제등을 처리하기도 한다(교회법 제365조 1항). 교황사절의 기원은 4세기 경부터 공의회나 기타 중요한 업무를 위해 교황이 자신을 대리할 사람을 로마의 성직자나 교황청에 직속된 이탈리아 주교들 중에서 선발하여 파견하던 때부터이다.

8~9세기에는 주요한 주교들에게 상주사절(常住使節, Legati Nati)을 파견하던 일이 일반화 되었으며 교황의 측근자를 파견하는 대신 해당지역의 어떤 주교를 교황의 대리로 임명하기도 하면서 ‘교황대리'(敎皇代理, Vicarii Apostolici)라는 호칭이 생겨났다. 그러나 11세기 특히 13세기부터는 다시 측근자를 사절로 파견하게 되었으며(파견사절, Legati Missi), 상주사절은 교황대리로서의 권한이 없어지고 명의만 남았다. 파견사절에는 교회의 중요한 일을 위해 추기경이 사절로 파견되는 교황전권사절(全權使節, Legatus a Latere)과 특히 15세기 국제법에서 각국 정부에 주재하는 사절을 파견하는 관습이 생기면서 나타난 대사(大使, nuntius 혹은 pronuntius), 공사(公使, inter-nuntius), 그리고 외교관계가 없는 국가에 파견하는 교황특사(敎皇特使, Legatus Apostolicus) 등이 있다. 한국에는 1919년 처음으로 한국교회에 교황사절이 파견되었는데 일본의 교황사절이 겸임하였고, 1947년에 고유한 교황사절이 파견되었다. 1967년에 고유한 교황사절이 파견되었다. 1963년에는 정부와 정식 외교관계를 갖는 교황공사관이 설치되었으며 이것이 1966년에는 교황대사관으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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