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레스 [원] Gorres, Johannes Joseph von

Gorres, Johannes Joseph von(1776~1848). 독일의 가톨릭 저술가. 학생때 합리주의 교육을 받고, 프랑스혁명을 열렬히 지지했으나, 파리 체제 중(1799~1800년) 환멸을 느끼고, 귀국 후 헤르더(J.G. von Herder) 및 셀링(J.W.J. von Schelling)의 영향으로 종교에 관심 가져, 《신앙과 지식》(Glaube und Wissen, 1805)을 저술하였다. 후에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거기서 낭망주의와 접촉하고, 《아시아 신화사(神話史)》(Mythengeschichte der asiatischen Welt, 2권, 1810)를 저작하였다. 나폴레옹 전쟁 뒤, 프로시아의 종교정책에 반발했다가 스트라스부르크로 피신,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1824년). 뮌헨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될링거(J.J.I. von Dollinger), 묄러(J.A. Mohler) 등 가톨릭의 학자들과 교유하며 그 중심이 되었다. 《그리스도교적 신비주의》(Christliche Mystik, 4권, 1836~1842)를 공간(公刊)하였다. 그는 정치나 교회정치에서도 활약하고, 독일 국내에서의 가톨릭 사상 보급에 공헌하였다. 특히 혼종혼(混宗婚) 문제에서 교회입장을 변호했었던 퀼른의 대주교 아우구스트가 프로이센 정부에 의해 체포되던 이른바 ‘퀼른 사건'(1837년) 때 괴레스는 저서 《아타나시오스》(Athanasios, 1837~1838)를 통해 그것을 감동적으로 전세계에 고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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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학교 [한] 廣進學校

충북 청안국 북면(현 충북 괴산군 청안면)에 있던 초등교육기관. 1909년에 설립되었고, 초대 교장에는 장호원(현 감곡) 본당 주일 신부인 부이용(Bouillon, 任加彌) 신부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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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대교구 [한] 光州大敎區

현재 전라남도 지방을 관할하는 교구. 1937년 4월 13일 대구 대목구에서 분리되어 전라남도와 제주도를 관할하는 지목구(知牧區)로 설정되는 동시에, 이미 이 지방에 진출하여 선교를 담당하고 있던 에이레의 성 곰롬바노회에 위임되었다. 전라도 지방에 천주교가 전파된 것은 한국 교회 창설 당시로 소급된다. 즉 한국 교회 창설자의 한 사람인 호남의 사도로 불리는 유항검(柳恒儉)에 의해 일찍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었고, 거듭되는 박해 때마다 많은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1911년에 대구대목구가 조선대목구에서 분할 설정되어 대구대목구에 속하게 되었고, 1937년 전라남북도 지방에 두개의 지목구가 분리 설정되어 광주지목구의 초대 지목(知牧)으로 맥폴린(Owen McPolin, 林) 신부가 임명되었다.

그러나 곧 이어 발발한 2차 세계대전으로, 일제(日帝)는 맥폴린 교구장이 이하 골룸바노회 신부들을 구금하였고 1942년에 교구장 대리로 일본인 와끼다 신부가 임명되었다. 1945년 8.15광복과 더불어 와끼다 교구장은 사임하고 본국으로 귀국하여 다시금 맥폴린 신부가 지목으로 복귀하였다. 그뒤 1949년에 브레난(brennan, 安) 신부가 지목으로 임명되었으나, 6.25동란 중 공산군에게 납치되어 살해되었으므로, 헨리(Henry) 신부가 지목이 되어 광주지목구를 다스렸다. 헨리 지목은 한 때 교구장 대리를 지냈으며, 일찍부터 전남지방에서 전교활동을 하여 많은 성과를 올린바 있었다. 지목으로 취임한 후로는 더욱 교구발전에 노력하였는데, 특히 광주지목구의 관할 지역인 제주도 전교에 힘써 괄목할 성과를 올려, 1956년 8월 21일 제주도의 특수한 사정을 고려하여 감목대리구로 설정하였다.

1957년 1월 21일 광주지목구가 대목구로 승격되자 동시에 헨리 신부는 그 해 5월 11일 미국 보스턴(Boston)에서 성성식(成聖式)을 갖고, 이어 미국 교회에서 많은 원조를 얻어 1962년부터는 광주에 대건신학대학(大建神學大學)을 세우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교세가 나날이 늘어나게 된 광주대목구는, 1962년 3월 10일 교계제도 설정과 동시에 대교구로 승격됨과 아울러 헨리 주교도 대주교로 승품되었다. 1971년에 이르러서는 그동안 감목대리구로 교구를 준비시켜 오던 제주도를 광주대목구에서 분리 독립시켜 그 해 6월 28일에 제주지목구를 설정하는 한편, 광주 대교구의 교구장인 헨리 대주교는 광주 대교구를 한국인 주교에게 넘기고, 자신은 제주지목구의 지목으로 전임하였다. 이에 따라 광주 대교구 교구장에는 전주 교구장이던 한공렬(한공렬) 주교가 대주교로 승품되어 취임하였다. 그러나 한 대주교가 취임한지 얼마 안되어 1973년 3월 7일에 뇌일혈로 서거함으로써, 그 해 11월 7일에 수원(水原) 교구장이던 윤공회(尹恭熙) 주교가 대주교로 승품되어 광주 대교구를 관할하게 되었다.

광주 대교구의 현재 관할지역은 전라남도 일원 1만 2,180.16㎢에 이르며, 1983년 12월말의 교세는 다음과 같다. 신자수 10만 9,186명, 본당수 55개소, 공소 17개소, 한국인 신부 53명, 외국인 신부 31명, 한국인 수사 16명, 외국인 수사 7명, 한국인 수녀 157명, 외국인 수녀 20명, 남자수도단체 8개, 여자수도단체 9개, 병원 2개소, 나병수용소 2개소, 보육원 1개소, 유치원 18개소, 국민학교 1개교, 중고등학교 6개소, 직업학교 1개소, 대학교 개소, 주일학교 55개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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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톨릭대학 [한] 光州~大學 [관련] 대건신학대학

광주 대교구 관구의 신학교. 원 명칭은 대건 신학 대학이였으나 1985년 3월 1일부로 광주 가톨릭대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 대건신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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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한] 廣野 [라] desertum [영] desert

일반적으로 너른 벌판을 가리키는 광야는 구약의 백성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는 길목이었고 하느님의 백성이 탄생하는 장소였다. 거기서 야훼의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는 이스라엘에게 야훼는 만나와 구리뱀으로 은혜를 베풀었으므로 광야는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내는 곳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가 개선하는 곳이기도 하다. 세례자 요한의 시기에는, 광야가 내림할 메시아를 고대하며 회개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는 구약의 백성처럼 광야에서 여러가지 시험을 당했으나 그들과는 달리 그것을 모두 이겨내고 성부께 충실하였다(마태 4:1-11). 그의 지상 생활 중에 예수는 군중을 피하기 위하여 광야로 갔고 한적한 기도의 장소로서 광야를 택하였다. 그러나 광야의 상징을 직접 표현하는 것은 이러한 행위에 있지 않고 일찍이 광야에서 있었을 놀라운 선물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재현된다는데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광야라 할 수 있다. 그 분 안에서 우리는 시련을 이겨내고 하느님과 친교를 가진다. 이처럼 광야라는 장소와 광야의 시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

광야의 상징은 교회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까지 광야에서 살고 있다. 시련을 이겨낸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말씀을 듣고 그의 살과 피를 먹으며 성사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또 수도자들은 광야에 은둔하여 기도하고 수덕에 전심함으로써 광야는 오늘날의 수도원 발생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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