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소 교우들의 지도자로서 공소 교우들을 돌보며 공소에서 본당신부를 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공소회장의 직무로는 예비자 교육, 공소 교우들의 교리교육, 춘추판공(判功) 준비, 교적정리, 공소 재산 관리, 냉담자 권면, 전교(傳敎), 공소예절의 주관 등이 있고 이외에 신부를 대리하여 유아세례(幼兒洗禮), 대세(代洗), 혼인(婚姻) 등의 성사를 집행할 수 있다. (⇒) 회장
공소전 [한] 公所錢 [관련] 교무금
공소 교우들이 공소유지를 위해 내던 헌금. 공소전은 한국교회 초기시대 때부터 시행된 헌금제도로, 공소유지를 위해 거두어져 주로 공소기금 적립과 신부의 공소방문에 따른 비용의 충당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교무금제도가 시행되면서 공소전도 교무금으로 대체되었다. (⇒) 교무금
공소예절 [한] 公所禮節 [관련] 첨례
공소에서 미사 대신 거행되는 전례. 미사예식 중 성찬의 전례가 빠진 미사형식으로, 공소에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주일이나 축일에 그 지역 교우들이 모여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이 예식을 행한다. 공소예절이 생기기까지는 교회에서 성찬 규식과 경문을 따라 첨례를 보았다. (⇒) 첨례
공소 [한] 公所
본당(本堂)보다 작은 교회 단위를 의미하지만, 때때로 공소 교우들의 모임 장소인 강당(講堂)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공소에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기 때문에 미사가 집전되지 못하고 대신에 공소회장을 중심으로 첨례를 보거나 공소예절이 행해지며, 정기적인 신부의 방문을 통해서만 성사(聖事)가 집행된다.
한국 교회에서는 신부가 1년에 두 번 춘추(春秋)로 공소를 방문했기 때문에 이를 ‘춘추공소 때’라 불렀고, 또 신부방문 때 주로 집행되는 성사가 판공성사(判功聖事)였기 때문에 신부가 봄에 방문하는 것을 ‘봄 판공’, 가을에 방문하는 것을 ‘가을 판공’이라 불렀다. 그리고 신부가 공소를 방문하기 전에 공소 방문 일정과 교우들의 유의해야 할 점을 기록한 배정기(排定記)를 미리 공소에 보내는 것이 관례였고, 이에 대해 공소회장은 신부의 방문을 전후하여 공소의 상황을 적어 신부에게 보고하였다.
공세리본당 [한] 貢稅里本堂
충남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에 위치한 대전교구 관할의 이 성당은 조선조 때 아산 · 서산 · 한산을 비롯해서 멀리 충주 · 문의 · 옥천 · 회인 등 40개 고을의 조세(租稅)를 쌓아 두던 공세창고가 있던 곳인데, 1523년(중종 18년)에 개설, 고종 때 폐지, 80간 짜리 창고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1897년 구 본당 건물과 구 사제관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초대 본당신부 드비즈(Devise, 成一論)는 1895년에 부임, 1년 만에 주교단 당가신부로 임명되어 전임, 2대 기낭(Guinand, 陳普安) 신부도 1년 만에 전임, 1897년 6월 드비즈 신부가 3대 본당신부로 다시 공세리에 부임, 1930년까지 34년간 공세리본당의 기반을 굳건히 하고 발전의 터전을 닦아 놓았다. 급히 서둘러 지었던 구 본당 건물이 날로 늘어나는 신자수를 감당하기에 벅차다는 것을 알게 된 드비지 신부는 다년간 절약해 모은 돈으로 성당신축에 착수해 자신이 설계, 중국인 건축기술자들을 지휘 감독하여 마침내 1921년 숙원이던 크고 화려한 성전 건축공사를 마무리지었다. 이 때 현 사제관 건물도 함께 신축하였다. 이 웅장한 성당으로 말미암아 공세리는 일약 아산지방의 명물이 되어 멀리서까지 많은 구경꾼이 몰려왔다고 한다. 드비즈 신부는 공세리본당 산하의 공주공소를 1897년에 본당으로 분리 독립시켜서, 당시 공세리본당의 2대 기낭 신부에게 그 운영을 위촉했으며, 1901년에는 안성공소를 안성본당으로 분리 독립시켰다.
현 강당건물은 9대 이인하(분도) 신부 때인 1956년에 신축, 수녀원 건물은 13대 김동욱(마리아) 신부 때인 1970년에 축성식을 가졌다. 현재 15대 여충구(마르코) 신부가 주임으로 사목하고 있는데, 이 본당의 주소는 성 베네딕토, 신자수는 2,100명(1984년 현재), 관할 공소는 15개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