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이슬 [원] Gogeisl, Antonine

Gogeisl, Antonine(1701~1771). 독일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신부. 중국명은 포우관(鮑友管),자(字)는 의인(義人). 독일 바바리아 지방의 지겐부르크(Siegenburg)에서 태어났다. 1720년 예수회에 입회, 중국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마카오를 거쳐 1738년 북경(北京)에 이르렀다. 1745년 흠천감(欽天監) 부정(副正)으로 임명되어 죽을 때까지 26년간을 봉직하였다. 특히 1766년에는 조선에서 북경에 파견된 동지사(冬至使) 홍대용(洪大容)을 흠천감 감정(監正) 할레르슈타인(Augustin Hallerstein, 劉松齡)과 함께 만나 서학(西學)에 대해 여러차례 토론하기도 하였다. 1771년 10월 북경에서 사망하였다. 저서로 《의상고성》(儀象考成)[Kogler와 共著]이 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계약 [한] 契約 [라] foedus [영] covenant

계약은 맹세에 의해 구속력을 갖게 되는 엄숙한 약속으로 언어의 형식을 취하거나 상징적 행위로 나타나며 이러한 형식이나 행위는 계약 당사자들에 의해 행위자(actor) 가 그의 약속을 실행하도록 구속하는 ‘형식적인 행위'(formal act) 로 인정된다. 계약이 서로 다른 사회, 정치적 집단 사이에서 맺어질 경우 계약 당사자들 간에는, 계약 문헌에 의해 제약을 받는 계약이 생겨나게 되며 계약이 법적 공동체(legal community) 내에서 성립될 경우에는 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의무들이 발생하게 되는데, 계약은 이 새 의무들도 구속하게 된다.

1. 고대의 계약 ① 개념 : 고대의 계약은 그 형태와 발생한 상황이 매우 다양하다. 고대 계약의 역사에는 아직도 밝혀져야할 많은 부분들이 남아 있으나 당시 계약이 고대인들의 행위를 제한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언어에 의한, 또는 상징적인 맹세는 구속력을 갖게 하는 요소들이었다. 그러나 고대에 행해진 모든 맹세가 미래의 행위에 관한 약속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이들이 모두 계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 고대의 계약에 관한 가장 유용하고 광범위한 자료는 청동기 시대 말기 히타이트 제국의 문헌들인데 이 문헌들에는 주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관계 및 북부 시리아의 도시국가들에 대한 메소포타미아의 종주권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② 구조 : 고대 계약의 형식은 현재까지 면밀히 분석되어 왔는데 그 특징적인 요쇼들이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 전문 : 조약 전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이는 …의 말씀이니라.” 그리고 뒤이어 조약을 맺는 군주의 신분, 칭호, 이름, 계보 등이 나온다. ㉯ 서문 : 서문에서는 조약 체결자들간의 이전의 관계를 기술하고 있는데 특히 군주가 속국 또는 봉건제후의 이익을 위해 행한 자비로운 행위를 강조하고 있다. ㉰ 조항 : 이 부분에는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속국 또는 봉건제후가 지켜나가야 할 사항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특히 군사적인 외부조항들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 보관 및 회중낭독 : 계약 조문은 성소에 보관되었으며, 1년중 정해진 날짜에 몇 차례씩 회중 앞에서 낭독되었다. ㉲ 증인들의 명단이 실려있는데 증인으로는 양국의 신(神)의 이름과 자연계의 사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신을 증인으로 세운 것은 계약을 위반할 경우 위반자를 신이 응징해 줄 것이라는 종교적 믿음이 미래의 계약내용 준수를 위한 바탕이 되고있다. ㉳ 축복과 저주 : 이 부분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계약의 증인들이 속국 또는 봉건제후의 복종과 불복종에 대해 각각 내릴 축복과 저주들을 열거하고 있다.

2. 구약시대의 계약 ① 개념 : 구약성서에서 ‘계약’이라는 의미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히브리어 —이며, 이 말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속박’을 의미하는 아카드어 biritu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맹세’라는 뜻의 히브리어 —도 ‘계약’의 동의어로 종종 나타나는데 이는 맹세가 계약을 정식으로 구속하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② 의미 : 구약시대의 계약은 친족관계 이외의 모든 인간관계를 연결하는 기초였기 때문에 당시의 역사와 종교에 있어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 세속적 계약 : 세속적 계약이란 계약 당사자로 야훼가 참여하지 않은 계약을 말한다. △ 종주권 계약(suzerainty) : 종주권에 관한 계약에서 상급자는 하급자를 그가 제안한 의무들로 구속한다. 그 전형적인 예가 사무엘 상 11장 1절로, 야베스길르앗 사람들은 그들을 포위한 나하스에게 그를 섬기겠다고 하며 조약을 맺을 것을 제안한다. 에제키엘 17장 13절에는 바빌론과 제데키아 사이의 종주권 계약 체결에 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용어는 다르게 쓰이고 있으나 호세아 12장 1, 2절의 ‘아시리아와의 흥정’도 일종의 종주권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 평등계약(parity) : 평등계약은 계약 당사자들이 맹세에 의해 서로를 구속하는 계약이다. 평등계약은 다시 두 종류로 나누어지는데 즉, 특별한 의무들이 주어지는 평등계약이 있고, 아무 의무도 부과되지 않고 다만 평화를 유지할 목적으로 맺어지는 평등계약이 있다. 이사악과 아비멜렉 사이의 우호조약은 후자의 경우이다.(창세 26:27-31). △ 보호계약(patron) : 보호계약은 상급자가 하급자의 이익을 위하여 스스로를 구속하는 계약이다. 구약 시대에는 야훼를 구속하는 계약의 전승들 외에 이런 종류의 계약이 존재했었다는 증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 보증계약(promissory) : 보증계약은 계약 당사자들간에 새로운 관계를 성립시키기 위한 계약이 아니라 단순히 계약에 명시된 의무들을 미래에 이행할 것을 보증하기 위한 계약이다. 요시아 왕은 야훼의 전에서 찾아낸 언약법전에 기록되어있는 야훼의 계명과 훈령과 규정을 지켜 그 책에 기록되어 있는 언약을 이루기로 야훼 앞에서 백성들고 함께 서약하였으며(2열왕 23:3), 바빌론 유배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모세에게서 물려받은 법에 따라 주 야훼의 계명과 법령과 규례대로 살기로 서약하고 그것을 어기면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맹세하였다(느헤 10:28-29). 이 계약들은 사실상 모두 일방적인 계약들이었으며, 이들에 의해 아무런 새로운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

㉯ 하느님이 구속받는 계약 : 하느님이 구속받는 계약들 중 가장 오래된 계약은 J전승(창세 15)과 P전승(창세 17:1-14)으로부터 보존되어 온 야훼와 아브라함의 계약이며 그 이후의 계약들 중 다윗 왕조가 영원히 왕위를 계승할 것이라는 하느님과 다윗과의 계약은 가장 큰 중요성을 지닌다(2사무 3:9, 23:5, 시편 89:3·28-29, 110:4).

㉰ 이스라엘이 구속받는 계약 : 아브라함 – 다윗 – 피네하스(Phinehas) – 노아에 이르는 계약적 전승들 외에 이와 대조적인 복잡한(계약) 설화들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형태는 모세로부터 나온 것이며, 십계명이 축소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시대의 계약은 단순한 신학적 개념일뿐만 아니라 히브리인들의 종교적 경외감과 감사(gratitude)를 당시 집단 내의 평화를 유지해 주던 종교적 의무들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초기 이스라엘은 십계명의 계약을 기초로하는 신앙 공동체였으며, 이 계약에서 야훼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청동기 시대 말기 제국의 군주와 봉건제후들 사이의 관계와 유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야훼는 한국가의 왕이라기 보다 왕중왕(king of kings)으로 여겨졌으며, 그는 수많은 백성들을 통치하고 있으나 오직 이스라엘 하고만 계약을 맺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 시나이 계약의 의미와 한계 : 시나이 계약은 구원계획의 본질적인 면모를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하느님은 인간들을 그에게 예배드리고 그의 법의 지배를 받는 공동체를 만드심으로써 그들고 가까워지기를 원하셨으며 계약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에 내려 주신 무상을 선물, 은총이었다. 그러나 시나이계약이 이스라엘에만 국한되고 있음은 성서의 그밖의 부분들에서 명백히 나타나고 있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보편성(universality)과 잘 들어맞지 않는다.그리고 이스라엘을 통한 지상 위에서의 하느님의 왕국건설과 같은 신적 언약의 세속적인 면 또한 계약의 그리스도교적 궁극목표를 위태롭게하는 것이다.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나이 계약은 이스라엘밖의 많은 민족들의 생활에 침투해 들어가 영향을 미쳤으며 이를 통해 계시는 계속 발전되었다.

㉲ 새계약을 향하여 △ 구계약의 와해 : 이스라엘이 야훼께 불충실했기 때문에(예레 22:9) 구계약(ancient pact)이 깨지게 되는데(예레 31:32) 성서에서는 이를 아내의 부정으로 결혼이 실패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에제 16:15-43). 이스라엘은 불충실했던 댓가를 역사를 통해 치러야 했는데 즉, 일련의 국가적인 시련들, 예루살렘의 멸망, 유배, 이산(dispersion) 등을 겪게 된다. △ 새 계약에 대한 언약 : 이 모든 이스라엘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이 약속하셨던 계약의 계획은 변함없이 남아있었다(예레 31:35 이하, 33:20 이하). 호세아는 이를 신부에게 정의와 공평, 한결같은 사랑과 뜨거운 애정, 진실을 예물로 가져오는 약혼자와 이스라엘의 새로운 약혼관계로 비유하였다(호세 2:20-24). 예레미아는 하느님의 법이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새겨질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과 생활태도가 변화될 것이라고 예언하였으며(예레 31:33 이하, 32:37-40), 에제키엘은 시나이와 다윗의 계약을 경신하고, 마음의 변화와 하느님의 영의 은총을 가져올 영원한 계약과 평화의 계약에 대해 예언하기도 하였다(에제 36:26). 새 계약을 만드는 이는 야훼가 ‘인류의 계약’으로 세우셨으며 ‘만국의 빛’이 되신 ‘신비한 종'(mysterious servant)이다.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의 계약에서 불확실하게 암시되었던 새로운 계약에 대한 계획은 ‘야훼의 종’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3. 새 계약 ① 개념 : 신약성서에서 계약의 개념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유일한 단어는 70인역에 매우 자주 나오는 용어인 ‘diaeeke’이다. ‘증언하다’라는 뜻의 ‘marturein’은 계약 형식에서 유래한 말인듯하다. 왜냐하면 ‘증언’은 당시 계약의 가장 중요한 절차였으며 계약이 구속력을 갖게해 주는 요소로써 맹세보다 한층 더 중요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② 의미 : ㉮ 예수에 의한 새 계약의 성립 △ 계약을 뜻하는 diatheke는 4복음서의 최후의 만찬을 기술한 대목에 매우 큰 중요성을 지니고 모두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마르 14:24).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에 마태오는 “죄를 용서해주기 위하여”(마태 26:28)라는 말을 덧붙인다. 루가와 바울로는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루가 22:20, 1고린 11:25)라고 하였으며, 루가만이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예수가 자신을 고통받는 종(이사 53:11 이하)으로 생각했으며 그의 죽음을 속죄제물로 이해했음이 명백해진다. 빠스카의 어린 양이며 계약의 희생제물인 동시에 속죄제물이기도 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예레미야와 에제키엘이 예수의 피를 통하여 인간의 마음이 변화될 것이며 하느님의 영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새 계약’의 약속이 실현된 것이다.

㉯ 새 계약에 대한 그리스도교 사상 △ 바울로의 사상 :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 의해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이된 계약의 주제는 신약의 배경이 되고 있다. 시나이 계약에 명시된 법의 준수를 강요하는 유대주의자(Judaizer)들을 비난하면서 바울로는 율법 이전에 또다른 하느님의 섭리가 존재해 왔는데 이는 아브라함과 하느님 사이에 맺어진 계약으로, 하느님께서 이미 맺어주신 계약이 후에 율법이 생겼다고 해서 소멸되거나 그 약속이 무효가 될 수는 없다고 가르쳤으며, 또한 그리스도는 계약의 완성이며(갈라 3:15-18) 따라서 구원은 그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지 율법을 지킨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치기도 하였다. 구원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구약이 무상의 경륜(gratuitous economy), 즉 하느님이 스스로 설정하신 언약의 경륜에 포함되는 것이며, 신약은 경륜의 절정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 :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약간 다른 관점에서 씌어진 것이지만 계약에 대한 동일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십자가에 의해 사제인 그리스도는 하늘의 성소(sanctuary of heaven)로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그는 영원히 하느님과 우리와의 친교를 위해 중재하고 계신다. 이를 통해 예레미야가 예언했던 새 계약이 성취되는 것이며(히브 8:8-12, 예레 31:31-34) 이는 더좋은 계약의 중재자 즉, 그리스도에 의해 맺어진 보다 나은 계약으로(히브 8:6, 12:24) 처음의 계약과 마찬가지로 피에 의해 맺어진 계약이나(히브 19:20, 출애 24:8) 이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흘리신 그리스도 자신의 피인 것이다(히브 9:11 이하). 유언자가 죽는 순간부터 유언장에 효력이 발생하듯이 예수가 죽음과 동시에 우리는 약속된 유산을 이어받게 된 것이다(히브 9:15 이하). 구약은 상징과 암시에 의한 불완전한 계약으로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을 모호하게 표현하고 있는 반면에 신약은 최고사제이신 예수가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영원히 우리를 거룩하게 해 주셨기 때문에(히브 10:1-22) 완전한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죄악의 씻김과 인간과 하느님의 결합은 모두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된 것으로, 그는 “영원한 계약의 피를 흘려 양들의 위대한 목자가 되신” 것이다(히브 13:20).

[참고문헌] P. Karge, Geschichte des Bundesgedankens im A.T., Munster iW 1910 / A. Jepsen, Untersuchungen zum Bundesbuch, Stuttgart 1927 / H. Cazelles, Etudes sur le Code de l’Alliance, Paris 1946 / M. Noth, Die Gesetze im Pentateuch, Halle 1940 / D.J. McCarthy, Treaty and Covenant, Anal Or21 1963 / R. Smend, Die Bundesformel, Zurich 1963 / L. Perlitt, Bundestheologie im alten Testament, Neukirchen 1969 / K. Baltzer, Das Bundesformular, Neukirchen 1960 / Pierre Buis, La Notion d’Alliance dans l’ancien Testament, Cerf, 1976.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계시 [한] 啓示 [라] revelatio [영] revelation

1. 종교학적 의미 : 계시(啓示)란 말마디는 어원적으로 ‘드러나다’, ‘나타나다’, ‘열어 밝히다'(revelare)라는 동사에서 유래한다. 따라서 ‘계시’란 일반적으로 어떤 ‘감추어져 있는 것’, ‘가려져 있는 것’이 ‘자기를 드러내다’, ‘자기를 나타내다’, ‘자기를 열어 밝히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종교에 있어서 그 토대가 되는 것은 ‘거룩한 것'(聖, Das Heilige)이다. 따라서 종교학적으로 볼 때, ‘계시’라는 개념은 흔히 ‘거룩한 것’이 ‘자기를 드러내다’, ‘자기 자신을 열어 밝히다'(聖顯, Hierophania)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① ‘거룩한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신비'(神秘, Mysterium)이다. 다시 말해서 ‘거룩한 것’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감추어 두고 있다. 어둠의 장막 속에서 자기 자신을 숨겨 두고 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거룩한 것’을 있는 그대로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이 일상 생활에서 접촉하고 있는 사물 또는 사건들은 드러나 있다. 감추어져 있지 않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 모두가 ‘속(俗)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이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속된 것’이며, 또한 ‘속된 것’의 영역에 속한 것들이다. 이와는 달리 ‘거룩한 것’은 그 자체로 자기 자신을 감추어 두고 있다. 어둠 속에서 자기 자신을 숨겨 두고 있다. 우리 인간은 이 ‘거룩한 것’을 결코 직접적으로 있는 그대로 경험하거나 체험할 수 없다.

② 이 ‘거룩한 것’은 때때로 그리고 예외적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일정한 장소, 일정한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을 열어 밝힌다. 그러나 ‘거룩한 것’은 이 때 자기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다른 것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자기 자신을 나타낸다. 다만 다른 것 즉 ‘속된 것’을 매개로 해서만이 자기 자신을 열어 밝혀 준다.

‘거룩한 것’은 때로는 일정한 사물(事物) 즉 나무 · 바위 · 하늘 등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낸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이들 사물을 통해서 ‘거룩한 것’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흔히 오래된 고목나무 앞에서 또는 커다란 바위 앞에서 엎드려 절하는 것은, 그들이 바로 이 나무 또는 바위를 통해서 ‘거룩한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늘을 두려워하고 경천사상(敬天思想)을 갖게 되는 것은, 그들이 바로 하늘을 매개로 하여 ‘거룩한 것’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거룩한 것’은 또한 때때로 일정한 사건 그리고 그 사건과 관련되는 인간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열어 밝혀 준다. 사람들이 흔히 어떤 인간 즉 예언자나 성자(聖者)를 두려워하고 경외(敬畏)하는 것은, 그들이 이러한 예언자나 성자를 통해서 ‘거룩한 것’을 얻어 만나기 때문이다.

③ 이와 같이 ‘거룩한 것’은 그것이 자기 자신을 드러낼 때에는, 언제나 일정한 장소와 일정한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을 한정시키게 된다. 다른 사물이 아닌 바로 이 ‘사물’에, 그리고 다른 사건이 아닌 바로 이 ‘사건’에 제한하여 자기 자신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다른 나무가 아닌 바로 구체적인 이 나무만이 ‘거룩한’ 나무로, 그리고 다른 사건이 아닌 바로 구체적인 이 사건 만이 ‘거룩한’ 사건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또한 다른 사람 아닌 바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이 사람만이 ‘거룩한’ 인간[聖者]으로 인정된다. 이러한 사실은, 또한 이러한 사실에 대한 경험은 역사적으로 일정한 형태의 종교들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 결과로 세상에는 다만 하나의 종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종교들이 존재하게 된다. (鄭達龍)

[참고문헌] M. Eliade, The sacred and the profane, New York 1961 / F. Heiler, Erscheinungsformen und Wesen der Religion, Stuttgart 1961 / G. Van der Leeuw, Phanomenologie der Religoon, T?bingen, 1956 / R. Otto, Das Heilige, Munchen, 1963 / M. Scheler, Vom Ewigen im Menschen, Bern-Munchen 1968 / B. Welte, Religionsphilosophie, Freiburg 1978.

2. 성서적 의미 : 그리스도교의 계시 개념은 여타 종교에서 이해하고 있는 계시 개념과 일치하고 있지 않음을 미리 밝혀 둔다. 성서 안에서는 계시자인 ‘거룩한 것’이 ‘거룩하신 야훼 하느님’으로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즉 성서적 계시는 가장 거룩한 존재자로서의 인격적 신(神)이 자유로이 자기자신을 드러내신다는 데에 그 특색이 있다. 그러나 성서 안에서 ‘계시’를 표현하는 용어는 단일하고 명확하기보다 다양한데, 이는 성서가 계시에 대한 개념 내지 반성보다는 계시의 사실과 그 사건 자체를 더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성서적 계시는 역사적 행위 안에서 완성된다. 왜냐하면 거룩한 하느님은 시간의 제약 안에 들어오셔서 천천히, 점진적으로 인류에게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① 구약성서 : 구약성서는 스스로 추상적 사고단계 내에서 하나의 신을 유출해 내고 있지 않다. 구약성서는 오히려 신이 자신을 스스로 계시하시기를 원하셨을 때에만 비로소 신은 인식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신명 4:32 이하).

하느님의 계시는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실질적인 삶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 생존을 유지하였다. 그래서 하느님은 자신의 이름을(이사 64:1 이하), 자신의 권능을(예레 16:21), 자신의 위대한 일을(하바 3:2), 자신의 도우심(시편 98:2)을 계시하시며, 그것들만이 유일무이한 것임을 알리고 계시다. 그런데 하느님의 계시는 바로 역사 내에서 발생하므로, 인간과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역사는 하느님 계시의 대상이요 수단이 된다. 하느님은 특정 인물들을 통하여(아브라함, 모세, 예언자들) 자신을 계시하시며, 또한 폭풍이나 구름, 기둥, 불기둥, 나무소리, 바람소리 등의 형태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시는데, 이는 하느님이 이 세계 내에서 매개물을 통하여 인간에게 자신을 알리시는 형태들로서, 하느님 계시의 역사 관련성을 표현하고 있다(출애 19:16, 14:24, 2사무 5:24, 1열왕 19:12, 시편 8:4, 19:2). 또한 계약의 궤, 천막, 성전, 하느님의 지팡이, 희생제물 등이 계시의 특정장소로 등장하는 것은 계약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는 역사 내에서의 하느님 의지의 계시를 현시함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동시에 인간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장소가 된다. 즉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시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야훼임을 백성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심이다(예레 31:34, 에제 36:38, 37:28, 이사 43:10).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순수 인간적 지성으로는 깨달을 수 없는 바 역사라 칭하여지는 인간적 성취 안에서 비로소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 내 행위자로서의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 및 온 세계백성을 위한 약속으로 자신을 계시하고 계신다(미가 4:5, 6:3 이하, 예레 11:5, 신명 4:37, 출애 32:13, 이사 41:8 이하, 창세 9:1).

② 신약성서 : 신약성서는 결정적 계시자로서의 예수에게로 집중되어 있다. 계시관에 입각하여 신약성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의 약속이 충만되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요한에게 있어서 예수는 빛이고 진리이며 계시자이다. 그러나 바울로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하느님 신비의 내용-계시된 자-이 된다. 어쨌든 ‘계약’, ‘하느님의 나라’, ‘하느님의 백성’ 등의 신·구약의 근본 개념들은 신약성서의 여러 귀절들을 통하여 결국 구약성서의 옛 계약에서 나타난 하느님의 약속이 구약성서의 하느님 상(像)과 함께 새로운 계약인 그리스도 안에서(에페 3:6) 계시의 충만으로 주어지고 있음을 지시하고 있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이스라엘 역사와 그리스도가 연결됨을 기술하고 있고(로마 9장 이하), 구약의 구절들을 요한복음(3:9)은 아드님의 증거로서 얘기하고,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3:15)는 신앙인들을 아브라함의 유산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러한 신약성서의 진술들은 모두 예수가 구약성서의 약속이 충만된 하느님의 계시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예수는 하느님의 계시이다. 왜냐하면 예수는 구세사 안에서 모든 약속의 충만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부활은 인간의 삶은 원하시는 생활하신 하느님의 자기 계시이다. 하느님은 약속의 말씀과 약속 충만의 업적 사이에서,즉 과거로부터 현재를 뛰어넘어 개방된 미래에로 뻗쳐진 역사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고 계신다. 계시는 예수를 뛰어넘지는 않지만,-바로 예수 안에서 인간의 구원이 존립 가능하므로 인간의 구원을 위해 계속 작용한다. 그러므로 계시는 역사를 위한 하느님의 말씀이고, 충실한 말씀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하느님 말씀의 역사인 것이다.

3. 교의신학적 의미 :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계시는 초세계적인 하느님께서 스스로를 열어 보이시는 것이다. 이러한 계시는 먼저 행위 자체로서의 계시인 능동적 계시(revelatia activa)와 계시된 것을 의미하는 수동적 계시(revelatia passiva), 이중의 측면에서 고찰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초자연적 계시는 본질에 있어서 하느님이 스스로 자신을 인류에게 열어 보이셨다는 데에 존재한다고 천명함으로써, 계시의 개념을 순수 지성적으로 추구하려는 경향을 배척하고 있다. 이 초자연적 계시는 역사적 행위 안에서 일어나고(계시헌장 3항), 계시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에 달한다.

① 하느님의 창조업적인 피조물 안에서 자연적 방법으로 하느님의 계시가 파악되기도 한다(자연적 계시, revelatio naturalis). 그러나 피조물의 자연적 인식가능성을 뛰어넘는 초자연적 계시(revelatio supernaturalis)는 고유의 의미에서 계시라 불려진다.

② 초자연적 계시는 내용적으로 다시 구분될 수 있다. 죽은 후에 영원히 축복받게 되는 인간에게 하느님은 자신을 열어 보이시므로, 이 축복받은 인간은 하느님의 신비를 하느님을 통하여 하느님 안에서 완전히 인식할 것이다. 이러한 계시를 영광의 계시(revelatio gloriae)라 부른다(로마 8:18 이하, 1베드 1:5 참조). 그러나 살아 있는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초자연적 신비가 완전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초자연적 실재인 하느님이 인간에게 말씀하실 때(말씀계시) 하느님의 신비를 표현하는 상상이나 개념들은 유비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 뿐이다. 사도 바울로는 그래서 “우리가 지금은 (하느님을) 거울에 비추어 보듯이 희미하게 본다“(1고린 13:12)고 하였다. 하느님은 초자연적인 말씀계시를 통하여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업적계시로 부르신다. 그러므로 자연적 신인식(神認識)은 구세사와의 맥락 안에서 가능하다. 또한 초자연적 계시는 일반 구세사 전반을 의미하는 일반적 초자연적 계시와 특수한 구세사, 즉 신·구약 성서에 담겨진 내용을 의미하는 특별한 공적 직무적 계시로 구분되기도 한다.

③ 전달되는 진리가 신비로서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때 초자연적 계시라 부른다. 초자연적 말씀계시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일 때 공적 계시(revelatio publica)라 부르고, 다만 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계시는 사적 계시(revelatio privata)라 부른다.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공적 계시의 절정이고 종결임은 신앙의 진리이다. 그리고 공적 계시의 확실한 선포는 마지막 사도가 죽으면서 끝났다는 것은 적어도 신학적으로 확실하다. “로마 교황과 주교들은 … 새로운 공적 계시를 신앙의 유산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없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헌장 25항).

계시의 중계방법에 따라서, 하느님의 사자(使者)에게 직접적으로 내려지는 계시를 직접적 계시(revelatio immediata)라 하고, 하느님의 사자를 통하여 인류에게 중계되는 계시를 간접적 계시(revelatio mediata)라 부른다. 구원의 신비의 초자연적인 공적 계시는 근본적으로 인류를 위한 간접적 계시인 것이다. (朴順信)

[참고문헌] A. Kolping, Fundamentalthelogie I. Theorie der Glaubenswurdigkeitserkenntnis der Offenbarung, Munster 1967 / K. Rahner u.a., Sacramentum Mundi III3 Freiburg i. Br. 1970 / J. Feiner u. M. Lohrer (Hrsg.), Mysterium Salutis, Grundriβ heilsgeschichtlicher Dogmatik, Einsiedeln, 1965(I), 1970(III1) 1969(III2) / L. Volken, Die Offenbarungen in der Kirche. Aus dem Franzos (1961) ubersetzt v.H. Hoefert u.M. Fabian, Innsbruk 1965 / R. Schnackenburg, Offenbarung, II. In der Schrift, in J. Hofer-K. Rahner (Hrsg.), Lexikon fur Theologie und Kirche VII, 1962 / A. Lang, Fundementaltheologie I, Munchen 1967 / 서강대 신학연구소, 현대신학동향, 분도출판사, 1984.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계성학교 [한] 啓星學校

한국 최초의 근대적인 초등 교육기관. 1836년부터 입국하여 선교 활동을 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은 교회에 대한 박해 때문에 활발한 교육 사업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가 1822년 한미수호조약(韓美修好條約)이 체결됨에 따라 조만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될 것을 예견한 블랑(Blanc, 白圭三) 주교가 종현 언덕을 사들이고 이 곳에다 학교를 세웠는데 이것이 계성의 전신이다. 즉 부지를 마련한 블랑 주교는 학교를 세우게 하고 한문, 국어, 교리 등의 초등교육과 신학교에 들어갈 사람들을 위한 예비 교육을 실시케 하였다.

이 학교의 학생 중 최초의 신부는 김성학(金聖學) 신부였다. 그는 1883년 페낭신학교로 유학하여 1897년 서품되었다. 그 뒤를 이어 1884년에는 정규하(鄭圭夏), 한기근(韓基根), 최 바오로, 문 바오로 등 4명이 페낭으로 유학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 1886년의 뮈텔문서는 당시 이 학교의 학생수가 40여명이었음을 알려 준다. 1895년 약현학교가 개설되기 전까지 이 학교는 ‘종현서당’, ‘한문학원’, ‘종현학원’ 등으로 불렸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종현학원이라는 명칭이 가장 적절한 것이다. 그후 약현학교의 개설과 함께 약현학교를 문밖학교, 종현학교를 문안학교라 부르기도 하였다.

1906년부터는 성 바오로수녀회를 초청하여 교육에 박차를 가하였고, 1909년에는 정식으로 학교 설립 인가를 받아 수업연한 4년의 ‘계성학교’라는 이름을 정식으로 사용하였다. 이때 남녀학생을 구별하여 남학교를 ‘계성’, 여학교를 ‘계명’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924년에는 수업연한 6년의 계성보통학교로 교제와 명칭을 변경하였고, 1926년 늘어나는 학생으로 인하여 학교를 증축하였다. 1931년에는 계성심상소학교로, 1938년에는 계성국민학교로 교명이 각각 변경되었다. 1944년 현재의 계성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인 계성여자상업전수학교를 병설하였다. 발전을 거듭해오던 계성국민학교는 6.25동란중인 1951년 25회 졸업생을 배출시킨 후 한때 폐교되었다가 1964년 다시 개교하였다. 1966년 유치원의 병설로 계성학교의 울타리속에는 계성여자중고등학교, 계성국민학교, 계성유치원 등 유아교육에서 고등교육까지 담당하는 학교가 들어서게 되었다. 서울시 중구 명동 2가 소재.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

계성여학원 [한] 啓星女學院

샤르트르 성 바오로수도회에서 설립, 운영하던 교육기관. 고녀(高女) 출신 여학생을 모집하여 가사에 필요한 제반 학과를 교육하였으며 가정과, 연구과 각각 1년씩의 전문 교육을 실시하는 2년제 학교였다. 1927년에 설립되었고 1944년 계성여자상업전수학교(현 계성여자중고등학교)를 설립한다는 조건으로 폐교되었다.

카테고리: 신학자료실 |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