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설 [한] 幸福說 [영] eudemonism

행복(eudaimonia)이 선(善)이고 인생의 궁국적 목적이라고 하는 윤리설. 어떤 상태를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따라 다양한 입장이 있다. 키레네학파, 에피큐로스, 홉즈, 공리주의자들은 행복을 쾌락과 동일시하였지만 이 경우에도 찰나적이고 감각적 쾌락을 행복이라고 보는 입장, 보다 지속적이고 안정적이며 정신적인 쾌락이 행복이라는 입장, 양과 질을 고려한 쾌락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입장 등으로 구별된다. 여기에 비해 플라톤은 쾌락 이외에도 영지(英知), 지식, 지혜를 얻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물과 인간이 지향하는 최고선으로서의 행복은 덕(德)을 쫓아 살아가는 영혼적인 생활이라고 하였다. 한편 희로애락(喜怒哀樂) 등의 정념(情念)에 사로잡히지 않고 마음의 안정을 얻은 상태를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스토아학파의 쇼펜하워, 법열(法悅)의 상태가 가장 행복한 상태라고 주장하는 여러 종교적 입장 등은 쾌락주의의 반대의 입장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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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렬 [한] 行列 [라] processio [영] processions

사제와 신자들이 열을 지어 행진하는 종교의식. 한 성당 안에서 혹은 여러 성당들이 함께 행할 수도 있으며, 성당 내부에서 혹은 성당 밖에서 행할 수도 있다. 행렬은 신(神)에 대한 공식적인 경배행위로, 신 또는 성인(聖人)을 찬미하고, 은총을 구하며 이미 받은 은총에 감사하고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는 것이다. 행렬은 구약시대부터 있어 왔던 것으로 공동체의 신앙 표명(表明)이란 점에서 개개인의 신앙고백과 찬미행사와 구별된다. 동시에 행렬은 공동체의 상호 협력과 단결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신앙고백과 구별된다. 행렬의 예는 주의 봉헌축일의 촛불행렬, 성지주일의 성지행렬, 성체성혈 축일의 성체행렬 등이며, 미사의 입당과 퇴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행렬 때의 음악은 의식의 일부로서 시편 노래, 성가, 기악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발전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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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한] 懈怠 [라] acedia [영] sloth [관련] 칠죄종

모든 죄의 근원이 되는 칠죄종(七罪宗)의 한 가지. 선행(善行)에 게으른 것을 말한다. ‘굳셈’의 반대에 해당된다. (⇒) 칠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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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본당 [한] 海州本堂

소재지는 황해도 해주시 장춘동(黃海道 海州市 長春洞). 황해도 남부에 위치한 해주는 박해시대부터 하느님의 섭리가 여러 형태로 나타난 고장의 하나이다. 그 하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신부가 1846년 황해바다를 통한 선교사들의 조선 입국의 비밀해로 개척을 위해 교우 임성룡(林成龍)의 배를 타고 연평도(延坪島) · 백령도(白翎島)일대를 은밀히 돌아보다가 옹진(甕津) 앞바다의 순위도(巡威島) 근해에서 관헌에게 체포, 해주 감영(監營)에서 문초를 받은 뒤 서울로 압송되어 그 해 9월에 새남터에서 순교한 사실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866년의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해주는 황해도 천주교인들의 순교 중심지로 다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냈다. 이 때 해주옥에서 순교한 17명의 천주교인 중에는 4명의 해주 교우도 포함되어 있었다.

해주군에서는 1898년에 처음으로 대아골, 먹방이[檢丹面 龍峴洞], 염촌 등지에 공소가 개설되었는데 대아골은 장연군(長淵郡) 두섭[道習]본당의 파이아스(Pailhasse, 河敬朝, 가밀로) 신부 관할이고, 먹방이와 염촌은 신천군(信川郡) 청계동(淸溪洞) 본당의 빌렘(Wilhelm, 洪錫九, 요셉) 신부 관할이었다. 1899년 해주에도 빌렘 신부 관할의 공소가 개설되었고 그로부터 13년만인 1912년 9월 빌렘 신부는 청계동본당을 떠나 해주본당의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했으며, 창설 당시의 이 본당은 해주 · 옹진 · 신천 · 재령군 등지의 12개 공소를 관할하였다. 그러나 1914년 빌렘 신부가 본국 프랑스로 떠나게 되자 이 본당은 후임신부를 배정받지 못하여 장연(長淵)본당 관할의 공소로 격하되었다. 1920년 해주공소는 13년 만인 1926년 행주(幸州)본당에서 전교하던 이순성(李順成, 안드레아) 신부를 맞아 다시 본당으로 부활되었다. 1928년 장연본당의 보좌신부로 있던 서기창(徐起昌, 프란치스코) 신부가 3대 본당 주임으로 부임, 2층 벽돌성당 신축공사를 착수,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1929년 5월 서울 혜화동(惠化洞, 柏洞)본당으로 전임되었다. 4대 구천우(具天祐, 요셉) 신부는 1931년까지 2년간 사목하면서 전임자 서 신부가 착수한 성당 신축공사를 완료하였다. 5대 신성우(申聖雨, 마르코) 신부는 1933년까지 사목하면서 해주의 개신교회 찬양대 활동에 자극을 받아 해주고보 학생들을 중심으로 성가대를 발족시켰다. 6대 양덕환(梁德煥, 안드레아) 신부가 1933년 5월에 부임, 그 이듬해 황해도 감목대리 김명제 신부를 초빙해서 신축성당의 축성 미사를 거행하였고, 1936년에는 신축 성당의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였다. 1936년 5월에 부임한 7대 방유룡(方有龍, 레오) 신부는 재임 중 성가대를 크게 육성 발전시켰으며, 1937년에 관할 연백군(延白郡) 일원이 분할되어 연안(延安)본당으로 독립, 1939년에는 옹진(甕津)본당이 분리 독립되었다. 1942년 8대 안학만(安學滿, 루가) 신부가 부임했으나 지병으로 별다른 활동을 못하다가 1944년 4월 별세하였다. 그 후임인 9대 김철규(金哲珪, 바르나바) 신부는 1942년 이래 성직자 부족으로 신부를 배정받지 못하고 있던 옹진 본당신부를 겸임하였다. 8.15 광복 후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끈질긴 포섭공작을 받았으나 거절, 신변의 위협을 느껴 월남하기 위해 청단(靑丹)까지 왔다가 체포되어 해주 형무소에서 수감된 지 42만에 그들에게 협력할 것을 약속하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1947년 9월 김철규 신부는 낚시꾼으로 가장하고 38선 접경인 용당포(龍塘浦)에서 배를 타고 월남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뒤 1948년 연길(延吉)교구 소속 한윤승(韓允勝, 필립보) 신부가 10대 본당사제로 부임하여, 월남하는 성직자 · 수도사 · 평신도들에게 많은 편의를 제공했으며, 공산주의자들이 꾸민 반공 비라 사건의 배후인물로 지목, 1949년 5월 체포되어 15년 징역형을 받고 신의주(新義州) 방면으로 끌려갔다는 풍문이 있었다.

[참고문헌] 黃海道天主敎會史, 한국교회사 연구소,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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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죄경 [한] 解罪經 [관련] 사죄경

⇒ 사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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