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화 [한] 土着化 [영] inculturation

교회가 향토문화와의 전면적인 동일화를 모색하고 그럼으로써 그 본질을 구현해 나가는 과정. 이는 현대신학의 새로운 용어이며, 대단히 풍부하고 복잡하며 따라서 어려운 개념으로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 특히 교회헌장, 사목헌장 및 선교교령에 제시되어 있고 교황 바오로 6세의 <에반젤리이 눈시안디>(Evangelii Nuntiandi)에서 폭넓게 전개되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셨듯이, 교회는 자체의 본질에 속하는 선교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서 선교 대상지역의 주민들을 그리스도교화시키기 위하여 그 지역의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이렇게 적응함으로써 교회가 그 본질을 실현하는 과정이 토착화이다. 그러므로 토착화의 개념이 근거하고 있는 신학이론은 마치 그리스도의 강생(降生)이 구속(救贖)을 위함이요 그리스도의 죽음이 부활을 위함이듯이 토착화는 충만한 그리스도교화를 위함이라는 원리이다.

이 원리에 따라 토착화의 정도는 전면적이어야 한다. 한국 교회의 경우를 예로 들면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이 되신 것과 같이 한국교회는 완전히 한국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죽음, 그분의 인간적인 것과의 실존적인 동일화(同一化)가 전면적이었듯이 교회의 한국 문화와의 동일화도 전면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토착화를 한국적인 것과 그리스도교적인 것 사이에 어떤 ‘균형’을 잡는 과정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은, 마치 그리스도를 인간적인 것과 신적(神的)인 것의 ‘평균’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시간과 공간 안에서의 그리스도 신비의 연장인 교회의 신비는 온전히 인간적인 것(한국적인 것)과 온전히 신적인 것(그리스도교적인 것)이 한 사회 안에 결합되는 그것이다.

토착화의 원리상 그리스도의 죽음이 부활에 선행(先行)하는 강생이 구속에 선행하듯이 토착화는 그리스도교화에 선행해야 한다. 실로 한국의 그리스도교화는 교회가 먼저 한국화하는 거기까지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토착화만 이루어지면 그리스도교화는 자동적으로 달성된다는 뜻이 아니고 한국화는 그리스도교화와 꼭 같이 필요불가결한 것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토착화는 그리스도교화를 위한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무슨 사치나 필요악으로 여겨서는 아니 된다. 이는 마치 그리스도의 강생이 오직 구속의 수단에 불과한 것만이 아니고 그의 죽음의 의미와 가치가 부활에서만 연유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강생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인간과 하나가 되신 사건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그의 죽음은 “벗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요한 15:13) 가장 큰 사랑의 행위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에 고유한 의미와 가치가 있듯이 토착화에도 고유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그리스도교화란 인류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합체되는 것이라 할 때 한국화란 그 합체에 예비적인 것이 아니고 그 합체 자체의 첫 순간이 되는 것이다.

토착화의 분야에 관해서는 교부들이 그리스도 가현론(假現論)에 반대하여 내세운 “취(取)해지지 아니한 것은 구속(救贖)되지 아니한다”는 원리에 따라야 한다. 만일 교회가 강생하여 들어가서 취하여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한국문화의 일면이 있다면 그 일면은 구속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한국문화의 모든 면을 구속하기 위하여 모든 면에 강생해 들어가야 한다. 한국 문화를 구속하는 데 있어서 교회는 한국 문화를 개조(改造)시켜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인들 자신이 개조해 내고 싶어 하는 그러한 문화면에서 개조해야 한다. 그러므로 구속이란 한국문화가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적으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어서 교회가 도와주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한국적이란 것의 일면에는 동서(東西)가 맞부딪치는 데서 독자적인 무엇 즉 철저히 한국적인 동시에 현대적인 어떤 것을 형성해 내는 과정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라면, 교회의 한국화란 교회가 이 투쟁에 참여하여 교회를 철저히 한국적인 동시에 철저히 현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문헌] W.E. Langley, S.J., 土着化의 槪念, 展望 6호, 1660 / New Catholic Encyclopedia, McGraw Hill, 1969 / W.E. Langley, S.J., 그리스도 降生과 敎會 土着化, 展望 9호, 1969 / W.E. Langley, S.J., 聖事의 制定과 土着化의 限界, 展望 17호,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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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특전미사 [한] 土曜特典∼ [관련] 특전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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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주문 [한] 討邪奏文

1801년 신유(辛酉) 박해를 일으킨 조선정부가 신유박해의 전말과 청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의 처형에 대한 변명을 적어 청의 인종(仁宗)에게 보낸 일종의 진정서. 대제학 이만수(李晩秀)가 작성하였다. 1800년 7월 순조(純祖) 즉위 후 수렴청정으로 정권을 잡은 대왕대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는 1801년 1월 11일(음) 공식으로 천주교 금압령을 내리고 이후 300여명의 천주교인을 처형했는데 그 가운데는 청국인 주문모 신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대왕대비는 청국과의 상의없이 주문모 신부를 처형했기 때문에 청국과의 마찰이 생길까 두려워 이해 10월(음) 이만수로 하여금 토사주문을 짓게 하고 10월 27일 동지사(冬至使) 겸 진주사(陳奏使) 조윤대(趙允大)를 청국에 파견, 토사주문과 황사영 백서를 고친 가백서(假帛書)를 청의 인종에게 전달하여 주문모 신부의 처형을 변명하였다. 토사주문의 내용은 조선은 개국 이래 중국에 대해 충성을 다하고, 안으로 유교를 높이 받들어 왔으나 수십년 전부터 사학(邪學)[천주교를 가리킴]이 널리 퍼지게 되어 그 폐해가 크므로 이에 사학을 엄금하고 그 주동이 되는 이승훈(李承薰), 황사영(黃嗣永)을 처형했으며, 주문모는 조선사람인 줄 알고 처형했으나 후에 청국인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이를 청국에 보고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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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교문 [한] 討邪敎文 [관련] 척사윤음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반포된 척사윤음(斥邪綸音). 당시 대제학(大提學) 이만수(李晩秀)가 지었다. 원제목은 토역반교문(討逆頒敎文)이지만 보통 토사교문으로 불린다. (⇒) 척사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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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트서 [한] ∼書 [라] Liber Tobiae [영] Book of Tobit

제2경전에 속하는 토비트서는 유대문학의 보배로운 작품들 중의 하나이다. 당시 고대 근동지방에 널리 유포되어 있던 지혜문학 전승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성서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아 저술된 토비트서는 유배시대 이후 수세기에 걸쳐 전개된 유태교의 인간적이면 종교적인 활발한 움직임을 잘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190년경의 집회서와 유사한 점들이 많고 또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신앙과 경건한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대략 기원전 200년경에 저술된 작품으로 본다.

1. 내용 : 인척관계에 있는 두 유태인 집안이 지금의 이라크와 이란 지방인 니느웨와 엑타파나에 포로로 잡혀가 거기서 생활하게 된다. 두 집안 모두 율법에 충실하면서 허물없이 살아왔는데도 불구하고 크나큰 불행을 겪는다. 동족의 시체를 몰래 매장해주었다는 이유로 첫 번째 집단의 가장인 토비트는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며 설상가상으로 장님이 된다. 또 다른 집안의 외동딸인 사라는 악령에 사로잡혀 부부관계도 맺기 전에 일곱 번씩이나 결혼에 실패한다.

토비트와 사라 이 두 사람이 기도를 들으신 하느님은 대천사 라파엘[‘하느님께서 낫게 하신다’]을 파견하여 그들을 치유하기로 결정하신다. 하느님의 이러한 계획을 알 리 없는 토비트는 단지 아들 토비아의 장래를 보장해 주기 위하여 전에 메대지방에 맡겨 두었던 돈을 찾으러 떠나도록 이들에게 명한다. 인간의 모습을 취하여 나타난 라파엘은 토비아가 마쳐야 할 여행의 길동무가 되어 모험적인 이 여행을 계속 안내하며, 끝내 친척인 사라와 결혼케 함으로써 사라를 구해 낸다. 돌아오는 길에 토비아는 라파엘의 지시를 따라 그대로 행함으로써 연로한 아버지의 눈까지 뜨게 한다. 이렇게 해서 두 집안은 모두 행복을 되찾게 되며, 라파엘은 자신의 정체를 밝힌 뒤 사라진다. 그리고서 감사의 기도와 다가올 구원에 대한 기다림 속에 이 토비트서는 그 끝을 맺는다.

2. 역사성 : 본 설화는 기원전 734∼612년 이스라엘과 아시리아 양국에 공통된 역사 속에 나타나는 사건, 인물, 장소, 시기 등에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얼핏 보기에 완벽한 하나의 역사소설이라는 느낌을 준다(1, 14장). 1:1-2절에 의하면 토비트와 그의 집안은 납달리 지파와 함께 포로로 잡혀 갔다고 한다. 이 시기는 아시리아왕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이스라엘왕 베가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진격하여 이스라엘 북부 지방을 점령했던 733년경일 것이다(1열왕 15:19). 그러나 토비트서를 그 내용만 보고서 이 시대와 관련된 작품으로 보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 설화에 나오는 자료들을 비교 분석해 볼 때, 저자는 자신이 언급하고 있는 왕들을 그저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서술하고 있는 지방들을 실지로 여행해 본 적이 없었던 사람임을 쉽게 결론지을 수 있다. 납달리 지파를 아시리아로 강제 이주시킨 왕은 1:2절이 말하고 있는 바와는 달리 살마네셀이 아니라 선왕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기원전 745~727)였으며, 1:15절에 의하면 산헤립(기원전 704∼681)이 살마네셀의 왕위를 계승한 것처럼 보이나 산헤립의 선왕은 살마네셀이 아니라 사르곤 2세(기원전 722∼705)였다. 또한 엑바타나에서 라게스까지 가려면 이틀이 걸린다고 하나(5:6), 실지로는 그 보다 훨씬 더 걸린다. 따라서 저자가 자신의 작품을 기원전 8세기 또는 7세기의 작품인양 그려 내고 있는 것은 저자의 권위와 작품의 역사성을 부여하고자 함과 동시에, 이 나라 저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 종교적 교훈을 주고자 하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3. 메시지 ① 하느님의 섭리와 천사들 : 문제는 과연 하느님께서 시련 중에 있는 당신 백성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시는가 아닌가 하는 데 있지 않고, 그 관심이 시련들을 통해서 어떻게 펼쳐져 나가는가 하는데 있다. 따라서 토비트와 사라의 기도가 영광의 하느님 앞에 당도하여, 하느님께서 마침내 그 기도를 들어 주시기로 결정하셨다는 대목(3:16-17)과 라파엘 대천사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대목(12:11-15)이 본 설화의 양극을 이루게 된다.

토비트서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에 옮기는 이는 천사다. 토비트서는 유배시대 동안 특별히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아 선보이기 시작한 천사들의 역할이 점차 어떠한 방법으로 발전되어 나왔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의 하나이다. 천사들의 수효는 점점 더 증가하고 이런 저런 이름들이 붙여지며 점차 특수한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그러나 구약성서 어느 곳에서도 토비트서에서처럼 그렇게 인간적인 천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에서, 토비트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인간의 자유를 손상치 않으신다는 신학을 최초로 보여준 작품이 된다.

② 가정과 결혼 : 가정은 한 나라의 정신적 유산이 전승되는 유일한 보고(寶庫)다(1:8, 4:19, 14:3 · 8-9). 따라서 가족간의 친밀감을 돈독케 하는 모든 덕행들, 특별히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1:8, 3:10 · 15, 4:3-4, 6:15, 14:12-13). 한 가정이 형성되는 결정적인 순간은 결혼이며, 이를 통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집안의 앞날이 약속되기도 한다. 이방 민족과의 통혼(通婚) 위험성을 다분히 안고 있던 유배민들에게 있어서 결혼에 대한 가치관은 그만큼 숭고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러한 사실로써 우리는 결혼이 왜 토비트가 아들 토비아에게 내린 행동규범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4:12-13), 더 나아가 토비트서 전체의 중심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③ 자선사업 : 한 집안이 세세대대로 전승시켜야 할 유산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그분의 계명에 충실하는 일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멀리 떨어져 있고 그 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다는 이 현실이 오히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개인적인 의무를 더욱 충실히 수행하도록 종용하게 되었을 것이다. 토비트의 이웃이 아직은 친척 또는 동족으로만 구성되어 있다하더라도(1:3 · 16 · 17, 2:2), 유태인이라면 누구나 상부상조(1:17, 2:2 · 10, 4:16), 정당한 보수지급 (4:14, 5:3 · 7 · 10 · 15, 12:1), 죽은 이들을 묻어 주는 일(1:17-18, 2:3-8) 등의 의무에 충실해야 하나, 이 모든 의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선과 기도이다.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최선의 방법인 자선행위(1:16, 4:7-8 · 16, 14:8-9)는 또한 하느님 은혜에 보답하는 행위이다.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는 보배로운 행위이며 동시에 속죄의 제물,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이 될 수 있다(4:9-11, 14:8-11). 한편 기도는 하느님께만 오로지 충실한 의인들의 신뢰행위이며, 격식에 따른 의무감에서라기보다는 언제든지 하느님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갖추기 위한 기본자세이다(4:19). 실망(3:1-6 · 11-15), 불안(8:5-8), 기쁨(8:15-17) 등 갖가지 상황 속에서 올려지는 이 기도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3:11) 그분께 감사를 드리는 데 그 근본 목적이 있으니,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모든 일은 올바르며, 그분이 보여주시는 길은 참되고 성실하기 때문이다(3:2).

④ 이스라엘 성조들과 옛 예언자들의 삶 : 토비트서의 전체적 분위기는 이스라엘 성조시대의 그것과 같다. 그 옛날 성조 이사악과 야곱의 경우처럼 토비아 역시 여행 중에 자신의 아내를 찾아 얻는다. 다른 이유에서이기는 하나 이스라엘 성조들의 부인들처럼 사라 역시 자식 없는 여인으로 나타나며, 마므레에서의 아브라함처럼 토비트도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의 방문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장면들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사건묘사 비교를 통해서도 상호간에 상당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만남(토비 7:3-4과 창세 29:4-6), 솟구치는 사랑 (토비 6:19과 창세 24:67), 결혼 성립(토비 7:12-13과 창세 24:33 · 50-51) 등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미세한 점까지도 거의 다 창세기를 빌어 묘사하고 있다. 성조들의 유배생활 역시 유배민들을 통해 지속되며(4:12 참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섭리는 그 옛날 성조들에게 있어서처럼 극히 적은 유태인들을 위해서도 계속 작용하며, ‘아브라함의 땅’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이 오기까지 그분의 약속은 세세대대로 전승되어 나간다(14:7).

또한 토비트는 자신과 귀양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동족들의 운명을 옛 예언자들의 정신에 비추어 읽어 나가고 있다. 나탄의 예언을 빌어 예루살렘과 유다왕에 대한 애타는 추억을 서술하고 있으며(1:4), 이국땅에서 외롭게 감수해야만 하는 온갖 불행을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해 아모스가 선포했던 징벌로 이해하고 있다(2:6). 당분간 앞날은 암담하게만 보이기에 혹자는 토비트의 실명(失明)에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그러나 여기 토비아가 있지 않은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어나갈 토비트의 아들 토비아를 통해서 하느님은 그의 눈, 영혼과 육신의 눈을 뜨게 하신다. 이제 토비트 자신이 예언자가 되어 모든 나라를 향해 회개를 호소함과 동시에 구원을 선포한다(13장). (金建泰)

[참고문헌] La Bible de Jerusslem (BJ), 5 edition, Cerf, Paris 1978 / H. Cazelles, Introduction critique a l’Ancien Testament, Desclee, Paris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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