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다 [라] Agatha

성녀. 동정 순교자. 축일을 2월 5일. 시칠리아 섬의 카타니아(Catania) 출신. 데치우스 황제의 박해 때(249-251년) 순교. 전설에 의하면 박해자들은 아가다를 매음굴로 끌고 가 배교를 강요하였으며 이들이 양 가슴을 도려냈을 때 사도 베드로가 나타나 치료하였다 한다. 박해자들의 잔혹행위에 못 이겨 그 이튿날 감옥에서 선종. 공경의 파장(波長)은 곧 시칠리아섬 밖으로 확산, 5세기 이후 절정에 달하였다. 이름이 로마 미사경본에 기록되었고 고대 순교록에 행적이 올랐다. 유해는 콘스탄티노플로 이전된 듯하다. 로마시대에서 2개의 교회가 이 동정 순교자의 이름으로 봉헌되었다. 매장한 해에 폭발한 에트나 화산을 진정시킨 것이 이 순교자의 통공이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중세시대에 특히 남부 독일에서는 빵이나 초 · 과일 · 편지들을 아가다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불에 의한 재난을 막을 수 있다고 믿었다. 카타니아의 수호자이며 주물공, 광부, 산악 안내인 및 간호원의 수호성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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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한] 雅歌 [라] Canticum canticorum [영] Canticle of canticles(Song of songs)

구약성서에서 아가만큼이나 그 주해(註解)를 둘러싸고 논쟁이 심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연애시라는 성격 때문에 기원후 90년경 얌니아 지방에서 개최된 유태교 종교회의 때 아가를 정경으로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적지 않은 논쟁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결국 정경으로 채택되었으며, 70인역엔 이미 본서가 성서의 하나로 속해 있었으므로 초대 그리스도 교회는 아무런 문제없이 아가를 성서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다섯 전례용 두루마리(아가 · 룻기 · 애가 · 전도서 · 에스델) 첫 머리에 자리 잡은 아가는 유태교의 파스카 축제를 위한 전례서로 사용되고 있다.

1. 저자와 저작연대 : 아가는 그 저자로 솔로몬을 가리키고 있으나(1:1), 전도서의 저자와 마찬가지로(전도 1:1) 이는 하나의 전승일 뿐 솔로몬을 아가의 직접적인 저자로 볼 수는 없다. 저자가 구사하고 있는 언어는 솔로몬보다 훨씬 후대에 사용되던 언어이며 게다가 아랍어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아가를 구성하고 있는 자료들 중의 일부가 솔로몬시대와 관련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작품이 완성된 시기는 유배시대 이후로 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 저작연대를 기원전 4세기 초반으로 보고 있으며, 이 시대는 종교적 또는 정치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시기였다. 에즈라와 느헤미아가 바로 이 시기에 개혁을 단행하며, 대략 이 때부터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2. 구조 : 아가는 매우 다양하게 주해되고 있으나 문학유형상 연애시 내지 연애시집이라는 데에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또한 작품 속의 용어와 문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다는 점과 작품의 정점인 제8장을 향하여 작품 전체가 점진적으로 발전되어 나가고 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저자의 단일성도 쉽게 인정할 수 있다. 시인인 저자는 전승된 자료들을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마지막 부분과 조화를 이루도록 작품을 구성해 나가고 있다. 이렇듯 아가는 서로 연관성이 있는 여러 개의 시들로 엮어진 작품이며, 비교적 후기에 첨가된 8:8-14절을 제외한다면 그외 작품 전체는 단 한 사람의 저자의 손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주지하면서 아가를 몇 개의 시집으로 나누어 보기로 하자.

제명(題名)과 머리말 1:1-4, 제1집 1:5-2:7, 제2집 2:8-3:5, 제3집 :3:6-5:1, 제4집 5:2-6:3, 제5집 6:4-8:5, 끝말 8:6-7, 부록 8:8-14.

3. 주해 : 수세기 동안 아가는 다양한 방법으로 주해되어 왔으나 아직 어떤 주해방법도 의견의 일치를 얻지 못하고 있다. 여기선 대표적인 주해방법 두 가지만을 소개하려 한다.

① 우의적(寓意的)인 주해방법 : 기원후 1세기경에 시작된 주해방법으로, 유태교도들은 물론 초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거북하게 했을 본 작품의 연애시적인 성격이 제기하는 문제점들을 다소 극복해 줄 수 있었음직한 방법으로 본다. 본 주해방법은 선남선녀간의 관계를 역사적인 측면과 신비적인 측면에서 우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방법이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다음 두 가지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다. 우선 역사의 한 순간 전개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의 대립 관계이다. 기원전 8세기말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사마리아가 멸망되기 직전 남 유다의 히즈키아왕과 이들에게 적대감을 품었던 유다 백성과의 관계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다음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다. 유배로부터 귀환이라는 역사의 단면을 통해서 볼 수도 있고, 이스라엘 백성의 전 역사 또는 교회의 전 역사를 통해서도 이러한 관계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간의 관계, 하느님과 이스라엘 또는 교회와의 관계를 선남선녀와의 관계로 묘사하면서 완전한 결합을 희망한 시집으로 아가를 받아들일 수 있다.

신비적인 측면에서도 다음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그리스도와 교회, 그리스도와 인류라는 전체성 안에서, 또 하나는 하느님 또는 그리스도와 인간의 영혼, 성령과 마리아, 그리고 솔로몬과 지혜라는 개별성 안에서 아가의 연애시적인 성격을 우의적으로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우의적인 주해방법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보다 먼저 아가 자체가 호세아 · 예레미야 · 에제키엘서와는 달리 그 어느 곳에서도 우의적인 작품임을 시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난점은 작품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나 지명까지도 우의적으로 해석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가능한 일인가?

② 자의적(字意的)인 주해방법 : 우의적 주해방법을 견지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하더라도 현대 성서주해 경향은 자의적인 주해로 흐르고 있다. 본 주해방법은 아가를 남녀간의 사랑을 노래한 단순한 시 또는 시집으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 아마 이러한 관점은 성서에 합당치 못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성서의 참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오판일 것이다. 성서는, 두 말할 것도 없이,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러나 누구를 위한 하느님의 말씀이란 말인가. 하느님 자신의 만족을 채우기 위한 말씀은 아닐 것이다. 성서는 분명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들을 위한 말씀이다. 그분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으며, 결혼을 통하여 절정을 이루게 될 상호간의 숭고한 사랑을 그들에게 선물로 주셨다. 인간은 하느님께서 주신 다른 선물들처럼 이 사랑을 남요할 수도 있으나, 사랑 그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며, 하느님은 친히 이를 선한 것으로 선포하셨다(창세 1:31). 성서가 실로 인간들을 위한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인간적 사랑 역시 성서로부터 특별한 관심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말 할 수 있다. 따라서 아가는 그 자체로서 남녀간의 숭고한 사랑을 노래한 아름답고 훌륭한 성서다.

우의적 주해방법이나 자의적 주해 방법 모두 그 나름대로 신학적 깊이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아가의 작품대상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또한 연애와 성(性)에 관한 모든 것을 비성서적으로 속단하는 태도로, 아가의 자의적 주해방법을 무조건 무시해버려서도 안되며, 이와는 반대로 주해에 있어 더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된다고 해서 우의적 주해방법을 경시하는 태도도 지양해야 한다. 아가가 남녀간의 숭고한 사랑을 노래한 연애시 또는 연애시집임을 인정하면서도, 한편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그리스도와 교회, 또는 이스라엘 백성 즉 교회 구성원 상호간의 결집을 희망하며 노래한 작품으로 아가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신앙인의 자세라고 본다. (金建泰)

[참고문헌] R. Tournay, Le Cantique des cantiques, coll. Lire la Bible, 9, Cerf, Paris 1967 / W. Harrington, Record of the Promise(The Old Testament), The Priory Press, Chicago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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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뚜스 [관련] 상투스

⇒ 상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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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한] 十字軍 [영] crusades [독] Kreuzzuge [프] croisades

그리스도교를 수호하고 성지(聖地)를 탈환하기 위해 서방교회의 원정군이 행한 중세 최대의 군사원정. 13세기 중엽부터 원정군들이 입은 옷에 십자가가 그려 있다하여 이렇게 불려지게 되었다.

1. 동기 : 직접적 동기는 1071년 셀주크 터키족이 지중해 동해안에 진출하여 성지를 점거하고 순례자들을 박해한 사건과 터키군의 위협을 받은 비잔틴 황제가 교황에게 세 차례나 군사적 도움을 요청한데 있다. 1096년 11월 클레르몽(Clermont) 교회회의에서 교황 우르바노(Urbanus) 2세는 이 원정을 제창하였고, 여기에 강화된 교황권, 성지에 대한 오랜 관심, 그리고 동방과의 무역을 원하는 이탈리아 상인들의 야심 등의 요인이 결합되어 원정이 시작되었다. 대사(大赦)를 받고 전사할 경우 순교자의 칭호를 얻는다는 데서 참가자들은 크게 고무되었으며 또한 영토에 대한 기대와 유럽의 인구 압력 등으로 귀족과 농민들이 대규모로 참여하게 되었다.

2. 경과 : 실제적 원정시기는 1096년부터 원정이 끝내 실패하고 최후의 라틴령(領)이었던 아크르(Acre)가 함락당한 1291년까지이나 보통 동부 유럽으로 진출한 오스만터키족과의 니코폴리스(Nicopolis) 접전을 최후로 하여, 원정을 속개시키는데 실패한 비오(Pius) 2세가 서거한 1464년을 원정이 완전히 끝난 해로 본다.

제1차 원정(1096~1099년) : 동방세계를 구하고 성지를 탈환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안티오키아 함락(1098년), 예루살렘 탈환(1099년)에 성공. 지휘관 고드프리(Godfrey)가 ‘성묘(聖墓)의 수호자’로 임명되고 향후 20년간 안티오키아, 트리폴리, 예루살렘, 에데사를 잇는 라틴령이 성립되었다.

제2차 원정(1147~1149년) : 이슬람 세력의 반격으로 에데사가 함락(1144년)되면서 시작. 예루살렘에 이르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제3차 원정(1184~1192년) : 붉은 수염의 프리드리히(Friedrich) 황제, 영국왕 리처드(Richard) 1세, 프랑스의 필립(Philipp) 2세 등이 참가하였으나 예루살렘 재탈환에는 실패하였다.

제4차 원정(1202~1204년) : 원래의 의도를 벗어나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라틴제국을 세웠다(1204년). 이 탈선으로 동 · 서 교회의 분열이 조장되고 이슬람 세력에 대한 동방세계의 방위력이 결정적으로 약화되었다.

제5차 원정(1217~1221년) : 시리아에 남아 있는 프랑크왕국 소유지를 방위하려고 노력, 2차의 대규모 이집트 원정이 모두 실패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술탄’(Sultan)을 개종시키기 위해 중동으로 여행을 떠났다.

제6차 원정(1228~1229년) : 프리드리히 2세가 협상을 통해, 군사적으로 다시 한 번 예루살렘을 회복하였다.

제7차(1248~1254년) 및 8차(1270년) 원정이 모두 실패함으로써 실제적 원정은 모두 끝났다. 서방에서는 차츰 십자군 원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조성되고 비폭력적인 설교를 통해 이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려는 운동이 일어났으며 유럽 자체 내에서는 이교도 문제, 즉 스페인의 무어인, 이교 슬라브인, 프랑스 남부의 알비시(市)의 이단 등 더 현실적인 문제들이 다가왔다.

3. 결과 : 이 원정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봉건제도에 묶여 있던 유럽사회에 정치적 · 경제적 · 종교적으로 새 바람을 불러 일으켜 근대로 넘어가게 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대부분 원정기간 중에 탄생하여 전통적인 은둔생활 대신에 군사적 활동과 병자와 순례자에 대한 봉사를 병행했던 기사수도회는 서구의 수도생활에 새 요소를 첨가하였고 비잔틴 문화 및 이슬람문화와의 접촉으로 이들에 의해 보존 · 발전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눈을 돌리게 되어 이것은 스콜라 사상으로 발전되었다. 또한 1차 원정의 승리로 절정에 올라 있던 교황권이 계속되는 원정의 실패로 크게 실추되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성지탈환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하였지만 이교도의 더 이상의 세력 확장은 저지되었다는 점 또한 이 원정의 성과라 하겠다.

[참고문헌] J. Bongars, Gesta Dei per Francos, v. 2, Hanau 1611 / J. Mich명, Paris 1811~1822 초판 / E. Heyck, 1900 / A.V. Ruville,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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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형 [한] 十字架刑 [라] cruxifixio [관련] 십자가

죄인의 양팔과 발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매달아 죽이는 형벌, 원래는 고대 동방에서 생겨난 형벌이었으나 로마 제국에 유입되어 로마의 시민권을 갖지 못한 중죄인을 처형하는 데 사용되었고, 십자가형의 집행 전에 죄인을 채찍으로 때리는 것이 일반 관례였다. 그러나 이 형벌이 너무 잔혹하여 기원전 69년 이후에는 일부의 하층민에게만 적용되었고 그 뒤 4세기경 콘스탄티누스대제에 의해서 완전히 폐지되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가 로마인들에게 이 십자가형으로 죽음을 당한 뒤 부활했기 때문에 십자가를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희생제단, 죽음과 지옥에 대한 승리, 또는 그리스도를 신앙함으로써 당해야 되는 고난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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