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락삼종 [한] 喜樂三鐘 [관련] 삼종기도

부활시기에 드리는 부활 삼종기도. 기쁨을 드러내는 기도문이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으며 항상 일어서서 기도한다. 부활 전야부터 성신강림까지 바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상의 모후여,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이, 알렐루야.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우리를 위하여 천주께 빌으소서, 알렐루야. 동정마리아여, 기뻐하시며 즐기소서. 알렐루야. 주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기도합시다. 천주여,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온 세상을 기쁘게 하셨으니, 그 모친 동정마리아의 도우심으로 영생의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 삼종기도

[참고 : 현재 개정된 부활 삼종기도문은 아래와 같다]

○ 하늘의 모후님, 기뻐하소서. 알렐루야. / ● 태중에 모시던 아드님께서, 알렐루야.

○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 ●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알렐루야.

○ 동정 마리아님, 기뻐하시며 즐거워하소서. 알렐루야. / ●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나이다. 알렐루야.

┼ 기도합시다.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온 세상을 기쁘게 하셨으니 성자의 어머니 동정 마리아의 도움으로 영생의 즐거움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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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한] 興宣大院君

흥선대원군(1820∼1898). 이름은 하응(昰應), 자(字)는 시백(時伯), 호(號)는 석파(石坡). 영조의 손자이며 고종의 아버지. 1843년(헌종 9년) 흥선군(興宣君)에 봉해졌고, 1863년 철종이 죽고 고종이 즉위하자 대원군(大院君)으로 봉해졌으며, 이어 섭정(攝政)을 맡았다. 세도정치의 아성(牙城)이라 불리던 안동 김씨 일파를 숙청하고, 신분 · 계급 · 당파를 초월한 인재 등용, 부패관리의 숙청, 서원 철폐, 법률 정비 등으로 중앙집권적인 정치기강을 수립하였고, 혁신적인 개혁책을 펴 조선후기 몰락하는 봉건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경복궁(景福宮)의 중건(重建)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고, 특히 쇄국정책을 고집함으로써 국제적인 고립을 면치 못하였다. 집권 10년간 대원군은 천주교인에 대한 가장 잔인한 박해자로 군림하였다. 병인(丙寅) 대박해를 일으킨 장본인이었고, 이를 통해 그는 2명의 주교, 7명의 신부를 위시한 수천명의 천주교인을 학살케 하였다. 그러나 대원군도 초기에는 천주교인을 적대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호의적이었다. 모든 선교사들의 체한(滯韓)사실을 묵인했고 북방으로부터 침략해 오는 러시아인들을 대비하여 당시 조선교구의 책임자인 베르뇌(Berneux) 주교에게 두 차례(1864, 1865년) 협조를 청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베르뇌 주교는 대원군이 서양의 어느 나라와도 관계를 맺으려 하지 않는다고 판단, 대원군과의 교섭으로 종교자유를 얻으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는 종교자유를 얻는 방법으로는 프랑스 함대의 상륙 밖에 없다고 하여 대원군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포교정책과 결부된 식민지정책에 어느 정도 동조한 천주교 서양선교사들의 잘못된 인식은 그렇지 않아도 “선교사의 보호란 정복자의 구실이요, 선교사란 정복자의 전위이며, 동조자요, 협조자”라고 생각, ‘천주교는 나라와 왕조의 적’이라고 낙인찍으려 했던 반천주교적인 재상들의 입장을 강화시켜 박해를 유치하는데 좋은 구실을 제공하였다. 이와 함께 북경함락(1860년) 이후 1862∼1873년에 계속된 선교사들에 대한 박해소식이 조정에 전해지자 이들의 입장은 더욱 강화되었고, 천주교와 교섭하려는 대원군의 입장을 공공연하게 비난하고 나섰으며, 선교사와 신도들의 처형까지 요구하게 되었다. 마침내 대원군도 선교사 체포령에 서명하였다. 병인박해의 무서운 피바람이 몰아쳤다. 한편 10년 동안 형성된 반(反)대원군 세력은 1873년 그를 권좌에서 내몰았다. 그는 임오군란(1882년)을 통해 정권을 잡았으나 민비의 책동으로 청나라에 잡혀가 4년 동안 유폐되었다가 귀국하여 운현궁에서 재기의 기회를 노리다가 1898년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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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본당 [한] 興南本堂

1936년 함경남도 함주군 흥남읍 하덕리(咸鏡南道 咸州郡 興南邑 荷德里)에 창설되어 1949년 폐쇄된 함흥교구 소속 본당. 주보는 성 펠리치타스. 흥남본당은 함흥본당 공소로 출발하여 1936년 4월 성당이 건축되면서 북청본당 주임이던 히머(C. Hiemer, 林) 신부가 초대 주임으로 부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그 후 피셔(G. Fischer, 魚) 신부가 2대 주임으로 부임, 1944년 대건(大建)의원을 개설하였다. 그러나 8.15광복 이후 북한 공산정권에 의한 교회탄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1949년 5월 15일 피셔 신부가 체포되고 성당을 비롯한 교회재산을 몰수당함으로써 본당은 폐쇄되어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폐쇄되기 직전까지 흥남본당 관내에는 3개의 공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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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숭지례 [한] 欽崇之禮

‘흠숭하다’라는 말은 ‘공경하다’와 같은 뜻이나, 오직 ‘흠숭’이라는 용어는 하느님한테만 쓰인다. 이리하여 ‘흠숭지례’라고 할 때는 ‘천주에게만 드리는 최고의 공경’을 지칭한다. 한국 가톨릭 초기시대부터 사용해 온 이 말을 좀 더 깊이 고찰하면, ‘공경하다’란 ≪한불자전≫에 따르면, ① 존경하다, 숭배하다, ② 예배하다, 경배(敬拜)하다, ③ 열렬히 사랑하다의 뜻이다. 경배 또는 예배는 영어의 ‘adoration’으로 이는 경신덕(敬神德)의 행위이며, 이 행위에 의해서 하느님만이 최고의 영예를 받기에 알맞은 것으로서 인정받는다. 경배는 지성(知性)과 의지(意志)가 동시에 행하는 행위인 것이며, 적절한 기도, 찬미의 자세, 숭경(崇敬)과 희생으로써 표현된다.

그런데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는, 이 ‘흠숭지례’ 다음 가는 용어로 ‘상경지례’(上敬之禮), ‘공경지례’(恭敬之禮)라는 말을 가려서 쓰고 있다. 전자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특별한 공경’을 가리킬 때 사용하며, 후자는 ‘성인들에게 드리는 공경’을 지칭할 경우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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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숭 [한] 欽崇 [라] adoratio [영] worship [관련] 예배

하느님께만 배타적으로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배행위. 하느님은 무한히 완전하시고 인간에 대하여 최고의 지배권을 가지며 인간의 존재는 오로지 창조주 하느님께 의존하고 있으므로 하느님 홀로 최고의 영예를 받아 마땅한 것이다. 흠숭은 기도와 찬미, 희생과 봉헌 등을 표현하는 몸과 마음의 전인적인 행위로 나타난다. 흠숭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은 성인전구(聖人轉求)의 효력을 선포한 제2차 니체아 공의회가 성인들에게 드리는 ‘공경’(恭敬, veneratio)과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드리는 흠숭(adoratio)을 구별하여 규정한 적이 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혈육을 취하신 말씀인 성자가 성부와 성신과 함께 받으시는” 예배를 흠숭이라 하였다(교회헌장 66). (⇒)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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