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丁峰)본당의 전신. ⇒ 정봉본당
신경 [한] 信經 [라] credo [영] creed
신앙을 고백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교의(敎義)의 요체(要諦)를 간추려 적은 공식적이고 권위 있는 진술. 처음에는 입교 때 행하던 간단한 신앙고백에서 시작하여 4세기경에 마태 28:19을 따라 차츰 3단락의 단일한 형식으로 정비되면서 니체아신경과 콘스탄티노플신경, 사도신경(使徒信經) 등으로 발달하였으며, 서방에서는 오래된 로마신경에서 나온 사도신경을, 동방에서는 니체아 공의회에서 인정된 니체아신경을 각각 세례신경으로 채택하였다. 동방교회에서는 5세기말 경부터 이미 성찬식 때 신경을 암송하기 시작했으나 로마 가톨릭 교회는 1014년에 비로소 이것을 채택하였다.
신 [한] 神 [라] Deus [영] God
가톨릭에서는 ‘Deus’ 즉 천주 또는 하느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종교학의 입장에서는 ‘신’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일반적으로는 인간의 종교심의 대상이 되는 초(超)인간적인 위력을 가지고 체계를 지배한다고 하는 존재를 지칭한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만물의 창조자인 절대적이고 무한적인 영적 실체를 ‘신’이라고 하며, 제1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내린 신의 정의 가운데서 보면, 우주의 창조자로서의 역할 외에, 신의 15가지의 내적인 속성이 인정되고 있다. 덴징거의 ≪Enchiridion Symbolorum et Definitionum≫에 따르면, “거룩한 로마교회는, 하늘과 땅의 창조자이며 주이신 유일한 참된 살아 있는 신을 믿으며 공언한다. 곧 신이란, 전능, 영원, 광대무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것, 그 지혜와 의지와 완전성에 있어서 무한한 분이다. 신은 유일무이하고, 단일, 불변의 영적인 실체(實體)이다. 이 때문에, 신은 실제로 또는 본질적으로 우주와 구별되며, 신 자신에 있어서, 신 자신의 본성(本性)에 의하여 완전히 행복한 분이라고 선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신 이외의 존재 혹은 신 이외에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하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한 분이다.”
신의 본성을 고찰하여, 신학(神學)은 신의 형이상학적인 본질이라는 것, 즉 신이란 무엇인가를 확인하였다. 일반적으로 그것은 신의 자립성(自立性)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신에게 있어서는 본질(本質)과 실재(實在)와는 늘 일치한다. 신은 존재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그런 존재이다. 다른 어떤 것은 미뤄두고서라도 신만은 존재하지 않아선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밖의 모든 것은 신의 의지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종교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신의 개념도 역사적인 변천을 겪고 있다. 특히 그리스 철학의 영향 아래서 혹은 현저하게 철학화되어, 모든 존재의 근본 바탕 혹은 최고의 동일원리로서 요청되는 절대적인 것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되었는데, 그 전형적인 것으로는 중세 스콜라학, 근세에 와서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그리고 독일 관념론 등이 있다. 이 경우의 신은,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이 지적했듯이 ‘철학자의 신’이지, 종교적인 의미의 신은 아니었다.
그러나 본래의 종교적인 신의 개념에 있어, 특히 형태적으로 표상되는 ‘신령’(神靈)의 양상은 각양각색으로 복잡하다. 자연적인 것과 인간적인 성격의 것으로 나눌 때, 멜라네시아어의 ‘마나’(Mana)는 자연신(自然神)에 속하며, 개념신(槪念神)과 기능신(機能神)으로 볼 때, 로마 종교의 평화여신이나 정의 여신 등은 모두 개념신에 속한다. ‘신령’이란 개념은, 종교학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한가지는, 다양한 신 개념을 통하여 존재하는 공통된 사상적인 구조를 얻어내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바크(J. Wach)의 ≪The Comparative Study of Religions≫(1958)에 따르면, 신에 관한 관념은 일원론(一元論)과 다원론(多元論), 인격성과 비(非)인격성, 인간에의 접근성과 소원성의 관계라는 세 가지의 양극적이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분화되며 전개되는 것인데, 역사상의 신들은 이들의 조합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관점에서의 유형론에는 하일러(F. Heiler)나 멘싱(G. Menesching) 등의 주장이 있다.
이와 대립되는 다른 하나의 입장은, 신 개념을 그 담당자의 구체적인 생활 또는 문화양식과의 관련에서 보는 것이며, 이 경우에는 신 개념을 역사적인 여러 조건과의 상관성에서 문제삼는다. 예컨대, 거시적으로 보아, 동물 형태적인 신 개념이 수렵 채집문화와 식물(곡물)기원이나 생 · 사의 기원으로서의 신의 개념이 농경적인 문화와, 또는 우주론적인 창조와 관련하여 고도로 의인화된 신의 개념이 고도문화와 같은 관련은 갖는다는 것은, 신화학(神話學)이나 종교민족학(宗敎民族學)에서 이미 지적되어 온 점이다. 종교학의 입장에서는 신 그 자체는 관찰이 불가능하지만, 신을 믿는 사람들이 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취라고 있는가는 관철할 수 있으며, 누구라도 관찰 가능한 사실에 입각하여 신 관념의 기원이나 전개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W. Driesenberg, Theismus und Pantheismus, Wien 1880 / A. Thooris, La Philosophie du Monisme, Paris 1907 / G.E. Swanson, The Birth of the Gods,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Ann Arbor 1960 / F. Heiler, Erscheinungsformen und Wesen der Religion, Stuttgart 1961 / G. Widengren, Religionsphanomenologie, Berlin 1969 / 小口偉一 · 堀一郞 감수, 宗敎學辭典, 東京大學出版會, 1973 / John A. Hardon, S.J., Modern Catholic Dictionary, New York 1980.
식스토 [라] Sixtus
Sixtus 2세(?~258). 교황(재위 : 257~258). 성인. 앞의 교황 성 스테파노 1세에 의해 단절된 키프리아누스, 아프리카,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하였다. 로마황제 발레리아누스의 제2회 금령 공포 직후에 아피아 가도(街道)의 브라에덱스타투스 묘지에서의 제식(祭式) 도중에 습격당하여 순교, 갈리스도의 카타콤브(지하묘지)에 매장되었다고 전해진다. 초기에 가장 존경받던 순교자 교황으로, 4세기 중엽 로마의 축일들에 그 이름이 적혀 있고 또한 미사의 전문(典文)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Sixtus 5세(1521~1590). 교황(재위 : 1585~1590). 원명 Felice Peretti. 중앙 이탈리아 라마르케이지방의 그로타마레 태생.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교황 성 비오 5세의 지우(知遇)를 얻어 페르모의 주교가 된 후 추기경(1570년)을 거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령의 질서 회복에 힘써 그 약탈자에게는 사형을 포함하는 엄벌방침으로 임하였다. 재정면의 개혁에도 뜻을 두어 긴급시에 대비하여 300만 크라운을 저축했으나 그 돈은 결국 공공 건축물의 시설을 위해 소비되었다. 시스티나 가도(街道), 라테라노 광장, 성 베드로 대성당의 원개(圓蓋) 등을 만드는 한편 수도(水道)의 수복을 꾀하였다. 도메니코 폰타나(Domenico Fontana)에 당당한 석조 건축물을 세우게 했으며, 이로 인해 이후 100년간 로코코풍이 풍미하게 되었다. 중앙집권제 실시에 주력하고, 교회 행정기구를 개혁했으며, 로마 시정(市政)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것을 본떠서 교황령내의 다른 도시에서도 중요한 지위는 교회인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외정책은 매우 우유부단하고 연약하였다.
식사전후기도 [한] 食事前後祈禱
식사 전 음식에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고 식사 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 ‘식사전 기도’와 ‘식사 후기도’가 각각 ≪가톨릭 기도서≫에 수록되어 있어 모든 신자들은 식사 전후에 이 기도를 바치거나 간단하게 자유기도를 바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