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xtus 2세(?~258). 교황(재위 : 257~258). 성인. 앞의 교황 성 스테파노 1세에 의해 단절된 키프리아누스, 아프리카,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와의 관계를 회복하였다. 로마황제 발레리아누스의 제2회 금령 공포 직후에 아피아 가도(街道)의 브라에덱스타투스 묘지에서의 제식(祭式) 도중에 습격당하여 순교, 갈리스도의 카타콤브(지하묘지)에 매장되었다고 전해진다. 초기에 가장 존경받던 순교자 교황으로, 4세기 중엽 로마의 축일들에 그 이름이 적혀 있고 또한 미사의 전문(典文)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Sixtus 5세(1521~1590). 교황(재위 : 1585~1590). 원명 Felice Peretti. 중앙 이탈리아 라마르케이지방의 그로타마레 태생.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교황 성 비오 5세의 지우(知遇)를 얻어 페르모의 주교가 된 후 추기경(1570년)을 거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령의 질서 회복에 힘써 그 약탈자에게는 사형을 포함하는 엄벌방침으로 임하였다. 재정면의 개혁에도 뜻을 두어 긴급시에 대비하여 300만 크라운을 저축했으나 그 돈은 결국 공공 건축물의 시설을 위해 소비되었다. 시스티나 가도(街道), 라테라노 광장, 성 베드로 대성당의 원개(圓蓋) 등을 만드는 한편 수도(水道)의 수복을 꾀하였다. 도메니코 폰타나(Domenico Fontana)에 당당한 석조 건축물을 세우게 했으며, 이로 인해 이후 100년간 로코코풍이 풍미하게 되었다. 중앙집권제 실시에 주력하고, 교회 행정기구를 개혁했으며, 로마 시정(市政)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이것을 본떠서 교황령내의 다른 도시에서도 중요한 지위는 교회인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외정책은 매우 우유부단하고 연약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