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티펙스 막시무스 [라] Pontifex Maximus

‘지고(至高)의 주교’라는 의미를 지닌 라틴어. 원래 주교들을 가리키는 존칭어였으나 5세기부터는 교황만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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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시아노 [라] Pontianus

Pontianus(?∼?). 교황(재위 : 230∼235). 성인. 순교자. 축일은 8월 13일. 로마 태생. 성 우르바노 1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되었다. 그는 알레산드리아의 사제 데메트리우스가 오리제네스(Origenes)를 퇴위시키는 것을 허가하였다. 성 갈리스도 1세(재위 : 217∼222) 때 발생한 히폴리토(Hippolytus)의 이교(離敎)는 성 폰시아노 치하에서도 계속되었다. 성 폰시아노는 황제 막시미누스 트락스(Maximinus Thrax, 235∼288)에 의해 히폴리토와 동시에 사르디니아섬으로 추방되어 그곳에서 퇴위하고 성 안테로가 후계자로 즉위하였다(235. 11. 21). 그는 히폴리토와 마찬가지로 사르디니아섬 광산에서의 힘겨운 강제노동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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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영] violence [독] Gewalt [한] 暴力

물리적인 힘을 행사하여 다른 사람의 육체나 재산에 해를 입혀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관철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나 모든 폭력을 하나의 틀 속에 넣어 동일시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래서 폭력을 1차적 폭력, 혹은 구조적 폭력과 2차적 폭력, 혹은 대항적 폭력으로 나눈다. 1차적 폭력(구조적 폭력)이란 사회제도나 법률, 정치 권력을 이용,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불의와 부정으로 타인을 구속하는 행위를 말한다. 옛날부터 구조적 폭력은 폭력의 근원으로 존재해 왔다. 향락과 사치를 추구하기 위해 인간을 노예로 전락시킨 노예제 사회, 인간을 봉건적 구속으로 묶어둔 봉건제 사회, 인간을 기계화시키는 산업사회에서 폭력은 ‘법과 질서’라는 이름 아래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를 유지 강화하기 위해, 지배계급에 의해 공공연히 자행되었다. 인권을 유린하고, 인류를 결국 파멸로 인도할 이 구조적 폭력에 대항하여 싸우며, 구조적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대항적 폭력이다. 물론 대항적 폭력을 두고 논란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악을 근절하기 위한 폭력의 사용을 인정하는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악의 세력이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을 내리려고 하는 경우에서는 정상시의 도덕률과 윤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없고, 그 악의 세력에 대항하는 폭력은 인정되어야 한다는 본회퍼(Bonhoeffer)의 주장. 그는 미친 운전사가 버스를 몰아 사람을 살상하는 경우 우리는 그 운전사에게 폭력을 사용하여서라고 그를 운전석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2차 대전 당시 히틀러의 파쇼정권에 항거하였다. ② 포악한 무리가 연약한 민중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을 때, 분노한 민중더러 가만히 폭력을 받고만 있으라고 하는 것은 민중에게 주체적 인간이기를 포기하라는 말과 같기 때문에, 이 경우 폭력을 사용하더라도 그들에게 항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런 폭력은 자신의 주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됨을 깨우쳐 주는 것이라고 말하는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이나 제임스 콘(James Corn)의 주장. 억눌린 사람은 폭력에 항거함으로써 그의 정신상태를 건강하게 치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③ 사랑의 채찍이라 하여 억눌린 자들이 힘을 모아 대항할 때 강자들은 함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는 흑인 민권운동가들의 말. ④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낡은 생산관계가 발전하는 생산력에 올가미를 씌우는 상태에서 낡은 생산관계를 고수하려는 지배계급을 폭력으로 타도하고 새로운 생산관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이 있다.

이상과 같이 구조적 폭력에 대항하는 대항적 폭력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느냐”고 하는 물음이 잘못된 것이고 “그 방법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고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악한 제도를 파괴하고 새롭고 선한 내일을 이룩할 수만 있다면 대항적 폭력 그 자체도 선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구조적 폭력을 단호히 거부하며, 이에 대항하는 대항적 폭력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는 반대하는 비(非)폭력의 입장에 선다. 제2차 바티간 공의회는 “평화의 건설을 위해서는 우선 불의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폭력의 방종을 억제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83)고 선언하였다. 한편 바르트(K. Barth)와 같은 신학자는 한계상황에서는 폭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은 성전 안의 환전상들의 상을 뒤엎고 내쫓으셨다(마르 11:15)는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참고문헌] 현대세계의 사목헌장 / 바오로 6세, 평화를 위한 정의의 활동 / 한용희, 가톨릭 정치윤리, 분도출판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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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예수성심시녀회 [영] Handmaids of the Sacred Heart of Jesus [한] 浦項∼聖心侍女會

1935년 12월 경상북도 영천군 용평리(永川郡 龍坪里)에서 루이 델랑드(Louis Deslandes, 南大榮) 신부의 지도 아래 6명의 처녀들이 삼덕당(三德堂)이란 이름으로 창설한 수녀회. 복음삼덕(福音三德)을 수련하는 곳이라는 뜻. 삼덕당에서 시작된 창설 당시의 회원들은 본당 사목을 도우며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1936년 2월에는 ‘성모자애원’(聖母慈愛院)을 설립하여 고아들과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1940년 5월에는 델랑드 신부가 경상북도 영천본당으로 부임됨에 따라 수녀원과 사업체의 일부가 이전하게 되었다. 그러나 1944년 7월부터는 일제의 탄압에 의해서 활동은 고사하고 심문과 고문으로 고생하다가 8.15광복을 맞게 되었다. 광복 후 회원수의 증가로 부득이 경상북도 영일군 대송면으로 1950년 3월 이전하였지만 곧 6.25전쟁의 어려움을 겪었다. 1952년 9월 8일 교황청으로부터 정식 수녀회의 인가를 받고 수도회명도 ‘포항예수성심시녀회’로 개칭하였다. 그 뒤 1954년 12월 첫 서원식이 거행되었고, 1957년 12월에는 나환자들을 위한 ‘다미안피부병진료소’를 개설하여 정기적인 치료, 투약, 이동진료 등을 실시하는 한편, 경상북도 영일군 의창면(義昌面)에 정착촌도 마련해 주었다. 1965년 3월에는 서정길(徐正吉) 대구 교구장과 함께 첫 총회를 개최하여 김장주(金掌珠) 수녀가 초대 총원장에 취임하였다. 1968년 10월에는 포항종합제철 부지 선정으로 인하여 현 소재지인 영일군 영일읍 대잠동으로 본부를 이전하게 되었고, 수련소는 대구시 남구 대명동(大明洞)에 자리 잡게 되었다. 1977년 6월에는 포항에 있는 본원에 포항성모병원을 건립하여 보다 효율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현재 탁정자(卓貞子, 미리암) 총원장과 수녀를 비롯한 335명의 회원들이 1983년 12월말 현재 포항의 본원과 성모자애원, 성모병원 그리고 대구교구를 비롯한 전국 10개 교구 70여개 본당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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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콜라레 [관련] 국제마리아의 사업회

⇒ 국제마리아의 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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