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볼 때 평등의 개념은 시대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 있어서는 자유시민 사이의 평등만을 의미하여 노예는 평등에서 제외되었다. 로마시대에 와서는 스토아철학과 로마법의 영향을 받아 자연법(自然法)의 관념이 성립하였다. 거기에서 모든 인간은 이성의 소유자로서 자연법에 따르는 한에 있어서 동일하다는 사상이 지배적이 되었다. 키케로는 재산이나 재능에 있어 인간 사이에 불평등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이 시민인 한에 있어서 법률적 권리는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로마시대도 역시 노예 사회이기 때문에 시민 사이의 평등만을 의미하였지 모든 계급의 평등은 아니었다. 중세에 와서 모든 인간이 계급에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사상이 발전하였다.
그리스도교는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서 평등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중세사회는 봉건사회였기 때문에 계급간의 불평등이 가장 심하였다. 근대 절대주의 하에서는 평등의 사상이 말살되었다. 이에 반대하여 다시 인간의 평등을 주장한 것이 근대 시민혁명(市民革命)이었다. 시민혁명에 의해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는 배제되고 법에 의한 인간의 지배라는 사상이 확립되었으며, 정치적 법률적 평등권이 성립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달은 비록 형식적인 평등을 확립하였다. 그리하여 빈부의 격차 즉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이 생겼다. 그러면 오늘날 가톨릭 교회가 주장하는 평등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로 한다.
인간의 평등에 대하여, 레오 13세는 “그대들 각자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 것인가. 결코 없다. 우리가 서로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가 평등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을 일에 관련해서가 아니라 정신에서 본다면 육체의 상황을 다르다 할지라도 우리들 사이에 노예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형제라고 생각하고, 종교에 대한 공동신봉자인 한 형제라고 부르고 있다. 주인은 일꾼에 대해서도 인간의 품위를 인정하여 그에 맞게 취급하도록 명령받았으며, 그들이 자기와 다른 성질의 사람들이라고 생각지 않고 도리어 자기와 평등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라고 하여 인간의 평등은 종교적인 근원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각 사람에게는 침해될 수 없는 존엄성이 있다. 그래서 존엄성을 침해하는 자는 규탄을 받아야 한다. 평등은 개인이 하찮은 사람이거나 위대한 사람이거나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백인이거나 흑인이라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개개인은 사람으로서 인격적으로 취급받아야 마땅하므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우리 그리스도 신자는 모든 사람을 우리의 형제라고 한다. 개개인이 모두 형제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서로가 사랑을 받아야 함을 의미한다. 모든 인간들이 자연적 존엄성 상으로 보아서 동등하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확신되고 있다. 그러므로 인종차별은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만인이 이성을 갖춘 영혼을 가지고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되어 같은 본성과 같은 원천을 가졌으며 그리스도께 구원되고 같은 목적에로 함께 불리었으므로, 모든 사람의 기본적 평등은 육체적 능력이 다르고 지성적 내지 윤리적 역량이 다르므로 모든 사람이 꼭 같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기본권에 관한 모든 차별대우는, 그것이 사회적 차별이든지, 문화적 차별이든지, 혹은 성별, 인종, 피부색, 지위, 언어, 종교 등에 기인한 차별이든지, 그것은 모두 다 하느님 뜻에 어긋나는 것이므로 극복되어야 하고 제거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부부선택의 자유나, 신분 선택의 자유, 남성과 동일한 교육이나 혜택을 누릴 권리 같은 것을 여성에게 인정치 않는 경우가 그렇다. 또한 인간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간으로서의 평등한 존엄성은 보다 인간답게 공평한 생활조건을 요구한다. 하나의 인간가족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 여러 사회적 불평등이 있다면 그것이 모든 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사회정의, 평등, 인간존엄성, 사회적 내지 국제적 평화에 배치될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사적이거나 공적이거나를 막론하고, 인간제도는 인간의 존엄성과 목적에 봉사하며 온갖 사회적 내지 정치적 노예화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어떠한 정치체제하에서나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도록 진력해야 한다. 비록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까지는 장기간을 요한다 할지라도 이러한 제도들은 점차로 최고의 현실인 정신세계에 적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불의의 환경 때문에 희생당하는 사람들 중에는 종족, 국적, 피부색, 문화, 성별, 종교 때문에 이론적으로나 실제로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모든 사람도 포함된다. 종족적 차별대우는 오늘날 더욱 심각한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다. 같은 국가 안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민족적 차별을 묵인하거나 인정하는 법을 유지하거나 새로 제정하거나 인종적 민족적 선입견에 의거한 행동을 취하는 것은 절대로 정당화시킬 수 없는 것이며 극력 배격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동일한 본성을 가졌고, 따라서 같은 존엄성과 같은 권리와 같은 기본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동일한 초자연적 목적에로 부르심을 받았다. 조국이 같은 사람들끼리는 누구나 다 국법 앞에 온전히 평등해야 하고, 경제, 문화, 정치, 사회생활에 대한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하고, 국가적 재화의 재분배를 공평하게 누릴 자격을 가지고 있다.
각 국가 내에서의 힘과 부(富)의 심한 불균형은 화해에 중대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강대국가와 다국적 집단의 수중에 경제력을 집중하는 것, 무역관계와 상품가격의 구조적 불균형, 세계적인 자원소비의 유형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또는 국제적으로 만연된 실업과 차별적인 고용행위 등은 개혁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부자와 빈자, 약자와 강자 사이의 지나친 불평등의 남용과 불공정을 정력적으로 고발함으로써 일치를 이룩하여야 한다. 자연법에 비추어 본다면, 모든 인간은 평등한 것이다. 재산, 재능, 체력, 학문 같은 것이 평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 곧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평등한 것이다. 자연법으로 인도되는 이 능력이 있음으로 해서 플라톤이 소수인에게만 가능하다고 생각한 덕성(德性) 있는 생활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현대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것이며, 또 민주주의 제도와 전체주의 제도를 구별하는 두 가지의 원리, 곧 자연법과 인간의 평등성인 것이다.
이웃사랑은 사람들이 서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이 서로 평등에 도달하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삼는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평등을 평등하게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이웃사랑의 구실이다. 그러나 불평등한 것을 평등에로 끌어들이는 것, 그것은 정의의 문제에 속한다. 곧 평등이 달성될 때에 정의의 과제는 완성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평등은 정의의 종점에 나타나고 이웃사랑의 기초 및 근원에 자리 잡는다. 이 평등의 누룩은 만인을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정의와 관련을 가짐으로써, 또 누구나 고유한 권리를 승인함으로써, 또 공동재산인 물질적 영적 재화를 만인에게 더욱 더 광범위하게 나누어 가지게 함으로써 그들 사이에 우정의 근원에 자리 잡은 이 평등과 근접성을 확립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 앞의 평등, 정의 앞의 평등, 납세의 평등, 정치적 평등과 같이 본성에서 나오는 평등론을 선언하고 법적으로 결정지을 때, 정치가는 본성적 평등을 참작할 뿐만 아니라 또 각 개인을 자기의 업무에 적합하게 하는 우연적 불평등도 참작해야 한다. (韓庸熙)
[참고문헌] 사목헌장, 제1부 제2장 /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 교회와 인권, 분도출판사, 1975 / 한용희, 가톨릭 정치윤리, 분도출판사, 1980 / 요한 23세, 지상의 평화, 19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