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삼 [한] 李~

이성삼(1795~1827). 순교자. 세례명 요한. ≪일성록≫(日省錄)에는 이름이 유정(儒定)으로 나온다. 충청도 덕산(德山) 높은뫼(현 지명은 忠南 禮山郡 古德面 夢谷里)의 양반 가정에서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 입교하여 두 형과 누이 이시임(李時壬)과 함께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827년 정해(丁亥)박해가 일어났던 당시 전라도 고산(高山)에 살고 있었는데 이 해 3월(음) 큰 형 이성지를 비롯하여 집안 식구 13명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감영(全州監營)으로 압송되었고, 그 곳에서 혹형과 고문을 받아 9월 14일(음) 옥사(獄死), 순교하였다. 함께 체포된 큰 형 이성지도 9년간의 옥살이 끝에 1835년 옥사,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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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례 [한] 李聖禮

이성례(1800~1840). 순교자. 성인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의 아내,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의 어머니. 세례명은 마리아. ≪일성록≫(日省錄)에는 성례(性禮)로 표기되어 있다. 충청도 홍주(洪州)에서 출생, 18세 때 최경환과 결혼하였고 서울로 이주하였으나 외교인들의 괴롭힘으로 강원도 금성, 경기도 부평 등지로 이주하였다가 경기도 과천(果川) 수리산에 정착, 남편을 도와 교우촌을 이루었다.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자 7월 31일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포청에서 300대 이상의 곤장을 맞고 형조에서도 매우 혹독한 형벌을 당하였으나 끝까지 신앙을 고수, 1840년 1월 31일(음 1839년 12월 27일) 당고개[唐峴]에서 6명의 교우와 함께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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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도 [한] 李聖道 [관련] 비테를리

베네딕토회 선교사 비테를리(Bitterli)의 한국명. ⇒ 비테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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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한] 理性 [라] ratio [영] reason [독] Vernunft [프] raison

사물을 올바르게 판다하는 힘, 또는 참과 거짓, 선과 악을 식별하는 능력.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이성이 있기 때문이며, 본능 · 충동 · 감성적 욕구 등에 좌우되지 않고 사려깊게 행동하는 것도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게 갖춘 이성능력을 ‘양식’(良識) 혹은 ‘자연의 빛’이라고 표현했다. 데카르트뿐만 아니라 옛날부터 이성은 번쩍거리는 밝은 빛으로 표현되었다. 이성에 의해서 우주의 모든 것이 어둡고 혼란스러운 카오스(chaos) 속에서 법칙을 가진 조화적 우주의 상태인 코스모스(cosmos)가 되어 나온다. 원래 이성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로고스(logos), 라틴어의 라시오(ratio)에는 비례와 균형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밝은 빛으로서의 이성에 대비되는 말인 감성적 욕망과 정념(情念)은 어둡고 맹목적이다. 기쁨, 슬픔, 욕망, 노함, 불안 등의 정념은 어둡고 비합리적인 힘으로 내부에서 폭발한다. 이성적 의지로써 이것을 통제하지 않으면 정신의 자립을 지킬 수 없다. 여기에서 이성에 의한 정념의 지배라는 도덕적 문제가 발생한다.

칸트는 본능과 감성적 욕망에 의거한 행동에 비교하여 당위(sollen)의 의식에 의해 결정된 행위를 이성적이라고 불렀다. 우리들 속에는 자율적으로 자기의 행위를 결정하는 이성적 능력이 있어 도덕적 행위를 하게 한다. 이것이 이론이성과 구별되는 실천이성이다. 감성과 대립하는 의미에서 이성은 자발적 능력으로 취급되지만 이 경우 거의 오성(悟性)과 구별이 곤란해진다. 그러나 이성과 오성은 구별된다. 옛날에는 개념적, 논증적인 인식능력을 이성이라고 부르고, 직관적으로 존재를 인식하는 것보다 높은 차원의 인식능력을 오성 또는 지성(intellectus)이라 불렀지만, 계몽시대 이후로부터 칸트에 이르게 되면 오성이 감각의 다양한 인식을 통일하는 피제약적 인식능력인데 비해, 이성은 판단의 일반원칙을 구하는 제약없는 인식능력이다. 나아가 헤겔에 있어서는 오성이 추상적 개념의 능력이라면 이성은 구체적 개념의 능력인 동시에 우주를 지배하는 원리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헤겔이 “역사는 세계정신의 자기실현과정이고 그 과정은 이성적 원리가 관철되는 과정이다”라는 것이 그 전형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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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중 [한] 李石中

이석중(1773~1801). 순교자. 세례명은 미상(未詳). 충청도의 한 고을에서 아전(衙前) 노릇을 하던 이부춘(李富春)의 아들로 태어났다. 교회 창설 직후 입교하여 아버지와 함께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801년 신유(辛酉)박해 때 체포되어 충주감영(忠州監營)에서 숱한 고문과 형벌을 받았으나 끝까지 신앙을 고수, 순교했고, 그의 부친도 같은 해 10월 3일(음 8월 27일)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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